1999년을 기억하는가. 종말론이 드리운 세기말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밀레니엄 버그니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니 어쩌고저쩌고 게다가 세기말적인 분위기까지 합세해 ‘세기말’이라는 영화에서는 어릴 적부터 알고 자란 옆집 동생 같았던 이재은이 옷을 벗었고, 전자음에 맞춰 고장 난 로봇 같은 테크노 댄스를 춰댔다. 당장 공룡처럼 인류가 멸망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2000년 1월 1일, 별일 없이 아침에 일어나 사타구니를 긁으며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다. 당시의 우리 집은 IMF 경제 위기를 돌직구로 맞았고 대학생이었던 나는 과외를 다섯 개나 뛰며 집안의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었다. 주말의 의미가 사라진 생활을 하고 있었던 난 사실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하기를 좀 바랐을지도 모른다.
2012년 12월 28일, 또 한 번 지구는 종말론으로 술렁거렸다. 1999년도 그랬지만 나는 여전히 가진 것도 잃을 것도 별로 없었고, 사회 생활하며 볼 꼴 못 볼 꼴 다 봤기 때문에 이제 죽어도 딱히 여한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쩌다 하게 된 소개팅이 꽤 잘 되어 갔고 지구가 좀 더 버텨주기를 바라게 됐다.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멸망한 것은 야후였다.
야후, 생각보다 탄탄한 고정독자층
야후가 곧 망한다는 이야기는 7년 전부터 매년 네 번은 돌던 소리였다. 꼬꼬마 시절에는 ‘정말 망한대요?’하고 사내 메신저로 직원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할부금은 어떡하지 새 직장은 어떻게 구하나 하는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 그러다 돌아가는 분위기도 좀 알고 승진도 하게 되자 점차 무덤덤해졌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야후 직원은 야후가 곧 망한다는 이야기가 들려도 지구 종말론을 받아들이는 자세로 일이나 쳐 했다.
일단 왜 야후가 망했느냐. 젊은 층에서는 ‘사람들이 야후를 안 써서 그런 거 아냐?’라고 하지만 의외로 야후는 부동의 지지층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영남의 50대 남성과 교포 1, 2세대들이다. PC가 보급되고 인터넷 정액제가 생겨 인터넷 강국으로 떠오르던 무렵에 우리는 당연하게 야후를 시작 페이지로 썼다. 시간이 지나며 대부분은 네이버로 또 어떤 분은 구글로 갔지만, 변화 자체가 번거로움이자 스트레스로 받아들여지는 50대 남성은 아직도 야후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일례로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내 친구는 어느 날 부장님이 ‘김대리, 여기 컴퓨터 고장 났으니 와서 좀 고쳐줘.’ 하길래 가봤더니 인터넷 시작 페이지가 네이버로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야후로 바꿔드렸다는데, 한 마디로 자기가 쓰던 거 아니면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거다.
그래서 야후는 철저하게 중년층을 타겟으로 메인 콘셉트를 잡는다. 소녀시대가 파격 노출을 하든 씨스타가 누드톤 의상을 입든 야후를 보는 아저씨는 별로 관심이 없다. 소녀시대보다 전인화, 유지인, 장미희가 더 사랑받는 곳이다. 마지노선이 김혜수 정도일까? 젊은 사람들은 안 들어와서 잘 모르겠지만, 대충 이런 사이트였다(…)
야후 타이완의 패기 : 야후 코리아 몰락의 뒷배경
아무튼 야후 코리아가 망한 건 야후 본사가 망하고 있었던 게 가장 큰 이유지만 개인적으로는 야후 오버추어가 가진 특허와 야후 타이완, 크게 이 두 가지가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야후 포털의 입지는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지만 1997년 설립된 이후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었고 오버추어는 온라인 광고 특허권을 갖고 연 매출 2,500억에 영업 이익률 20%를 내는 회사였다. 그래서 야후 코리아 임직원은 모두 지우가 피카츄를 믿는 것처럼 야후 오버추어만 믿고 있었다.
문제는 국내 법원이었다. 야후 오버추어는 ‘키워드 검색 광고 특허’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법원이 야후 오버추어의 특허를 국내에서 무효로 하면서 N사와의 연간 계약이 끊어졌다. 덕분에 매출의 반 이상이 날아가고 D사마저 구글과 야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줄타기하다가 마치 인터넷 약정 다 되면 보상금을 받아 챙기듯 ‘우리 이번에는 안 할래요.’하고 돌아서 버렸다. 그래서 야후 오버추어가 죽었음다.
야후 오버추어의 매출 감소도 그렇지만 야후 타이완의 간섭도 만만찮았다. 야후의 아시아 태평양 대표 국가가 대만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야후 타이완은 야후 코리아에게 파워 게임을 걸어왔다. 내가 보기엔 파워 게임이라기보단 치킨 게임에 가까웠지만, 아무튼 시작은 메인 콘텐츠를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야후 코리아는 한술 더 떠서 야후 타이완의 간섭이 심한 주에는 일부러 재미없는 콘텐츠만 올려 PV를 현저하게 떨어뜨린 후 ‘야, 너희가 하라는 대로 했더니 우리 PV가 이게 뭐냐.’하고 시비를 걸었다. 한마디로 병신 싸움이었는데 야후 코리아는 결론적으로 진 병신이 됐다.
야후 타이완의 네버엔딩 뻘짓
야후 코리아에서 사용하는 툴은 대부분 야후 타이완의 프로그래머가 만든 것이었는데 이걸 쓰다 보면 안티 대만이 된다.
A라는 뉴스 패키지를 생성하는 툴이 있다. 대만에서 A의 업데이트 버전이라며 이제부터 B를 쓰라고 줬다. 문제는 이 부서에 사람이 10명인데 B툴은 동시 접속이 불가하다. 실시간으로 뉴스를 올려야 하는데 동시 접속이 안 되니 10명이 메신저로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이번엔 제가 만들게요.’하고 보고하면서 일해야 했다. 무슨 지산 락페스티벌 화장실 앞에 줄 서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B에 데이터를 넣으면 패키지가 생성되는 동안 웬 3등신 인형이 나와서 팝핀 댄스를 춘다. 이거 넣으려고 업데이트 했냐? 야후 타이완에서 만들어 보내는 툴은 이런 식으로 업데이트할 때마다 더 구려져서 눈물이 났다.
인기 검색어 툴도 만만찮다. 야후 인기 검색어는 단 한 명이 만든다. 통계 데이터 같은 건 없다. 인기 검색어 통계가 없는데 어떻게 인기 검색어를 만드느냐고?
일단 뉴스를 검색해 자극적인 소식이 있으면 키워드를 뽑아서 인기 검색어 툴에 넣으면 메인에 반영되는 식이다. 실제 네티즌들이 검색하는 인기 검색어 통계는 없지만 내가 넣은 키워드 클릭 수는 볼 수 있거든. 그래서 인기 없으면 내리고 가망 없으면 뺀다. 심지어 키워드 옆에 붙은 숫자도 다 뻥이다. +743 이런 거 다 만드는 사람 마음대로 하는 거다.
이혼, 사망 기사는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무조건 1위에 올린다. 그래서 A라는 배우가 사망했으면 ‘A 사망’을 1위에 넣고 B라는 배우가 죽은 A에 대해 언급하면 또 ‘A 사망’을 1위에 넣고 A 배우의 유작이나 회고전이 있으면 또 ‘A 사망’을 1위에 넣고 이렇게 관 장사를 한다.
이렇게 하루에 서너 명이 번갈아가면서 24시간 동안 인기 검색어를 만드는 식인데, 어처구니없는 부분은 아무래도 사람인 만큼 중간에 휴식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동안은 인기 검색어가 아예 멈춘다. 새벽 시간에 누가 야후 인기 검색어 보고 있겠냐 싶지만, 포털 인기 검색어가 2시간 동안 안 바뀐다니 이런 개그가 없다.
야후 코리아 직원들은 놀라지 않았던 야후의 종말
원래 야후 코리아는 G타워에 있었는데 2000년대 중반 J타워로 이사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 건물 임대료가 지나치게 비쌌다.
2. 건물 소유주와 마찰을 일으켰다.
정답은 ‘3번 일본을 공격한다.’가 아니라 풍수지리 때문이었다. 대만에선 풍수지리학적으로 코너 자리에 있는 게 별로 좋지 않은 거고 그래서 야후 타이완이 G타워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는 거다.
아무튼 야후 코리아는 야후 타이완의 뻘한 삽질에 계속 휘둘렸고 병신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야후 코리아 임직원은 지구에 무수한 종말론이 지나간 것처럼 우리에게 진짜 끝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크게 괘념치 않았는데,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경호원을 대동한 로즈 짜오 야후 아시아 수석 부사장이 야후 코리아 직원을 카페테리아로 불러 ‘우리 올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한 뒤 떠났고, 야후는 2012년 12월 31일로 사라지게 됐다.
그 이후 본사에서 이익 잉여금 1,500억 가져가려고 연 매출 2,500억 영업이익률 20% 나는 야후 코리아를 없앴는데 청산 비용이 1,000억이더라는 병신 같은 이야기가 떠돈다. 진실은 저 너머에 놔두겠다.
야후가 망하기 전에 영리하게 떠난 동료가 그랬다. “일 잘하는 애 있으면 귀신같이 S사, L사에서 스카우트 제의 와서 다 빼 가잖아. 지금 야후에 남아있는 우리는 다 병신인지도 몰라.”
까다로운 한국 네티즌 때문에 야후 코리아가 망했다 말하는 임원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야후 코리아 직원은 다들 야후 코리아가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하루하루를 종말론 전날 기분으로 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