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호 포스팅’의 승리자는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밝혀졌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3일(이하 한국시각) 피츠버그가 강정호의 독점 협상권을 따냈으며 30일간의 계약 협상 기간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포스팅 승리자가 피츠버그라는 것은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피츠버그는 견고한 내야진을 갖추고 있으며 최근에는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지명할당(DFA)된 션 로드리게스를 영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츠버그는 대표적인 스몰마켓(small market)팀으로 알려져있다. 올해 팀 연봉은 7800만 달러로 30개 구단 중 27위. 따라서 과거 이와쿠마 히사시에게 1910만 달러를 제시해 독점 협상권을 따낸 후 몸값에 있어서 선수측과 큰 이견을 보이며 협상이 무산된 적이 있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같은 행보를 밟을 지 모른다는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당시 오클랜드는 의도적으로 많은 금액을 제시해 지구 라이벌 시애틀 매리너스로 가지 못하게 막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그러나 피츠버그는 과거 오클랜드와는 상황이 다르다. 지구 우승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강정호 영입전에서 한발 물러난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타 팀의 영입을 방해할 이유가 없었다.
피츠버그가 국제 스카우팅과 한국야구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요소. 2012년 진출 이전 류현진을 관찰하기 위해 스카우트를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2014년에도 시즌 막바지인 10월과 11월에도 강정호를 관찰하기 위해 스카우트를 보낸 바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따라서 피츠버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억측에 가깝다. 피츠버그의 닐 헌팅턴 단장은 mlb.com과의 인터뷰에서 “강정호를 합류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강정호 및 그의 대리인과 협상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피츠버그가 강정호를 영입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1. 유격수 보강의 필요성
피츠버그는 2014시즌 타격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조디 머서를 주전으로 기용하면서, 6회 이후 수비가 뛰어난 클린트 바메스로 교체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했다. 그러나 2014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FA)선수가 된 바메스는 샌디에고 파드레스로 이적했다. 간간히 빈자리를 채워주던 체이스 다노 또한 필리스로 이적하면서 2014시즌 유격수를 맡았던 선수는 머서 밖에 남지 않았다.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지명할당(DFA)된 션 로드리게스를 영입했지만, 로드리게스는 2014시즌 단 1경기만을 유격수로 출장한 선수. 2013시즌에도 유격수로는 7경기 28이닝만을 소화했을 뿐이다. 이어 영입한 제이크 엘모어, 페드로 플로리몬, 저스틴 셀러스는 메이저리그에서 뛰기에는 모자라는 실력이라는게 중론이다. 따라서 머서가 2014년 4,5월처럼 극심한 부진에 빠지거나 부상에 당하면 대체할만한 마땅한 유격수가 없다.
머서는 2014시즌 실책을 줄이며 수비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좁은 수비 범위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선수.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유격수로서 뛸 수 있을만한 수비력을 보여준다면 기회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2. 닐 워커의 재계약 협상은 순조롭지 않을 것
피츠버그의 2루수는 닐 워커. 2014시즌 23홈런을 기록, 2루수 부문 실버슬러거를 수상했다. 피츠버그의 팬들은 지역 출신의 1라운드 지명자 워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내고 있다. 워커도 마찬가지로 피츠버그에 대한 애정이 상당하다. 따라서 자유계약(FA)선수가 되기 까지 2년이 남은 워커는 피츠버그 재계약을 맺을 확률이 높아보인다.
문제는 워커가 잘해도 너무 잘했다는 것. 이미 재계약 협상이 불발되었던 워커는 시장가보다 낮은 몸값에 계약해주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져있다. 쓸 수 있는 돈이 제한적인 피츠버그는 순조롭게 2년을 보낼 경우 연간 15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받을 수 있는 워커를 잡지 못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2015년 겨울 전까지 재계약하지 못한다면 피츠버그는 워커를 트레이드할 수 있다.
강정호가 충분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면 워커가 트레이드 될 경우를 대비한 대체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2012시즌부터 매년 30여 경기를 결장하고 있는 워커의 부상공백을 감안한다면, 워커의 부상시에 주전 2루수로 출장할 가능성도 있다.
3. 조쉬 해리슨의 내년 성적은 불투명하다.
2014시즌 뛰어난 타격성적을 기록하며 붙박이 3루수로 정착한 조쉬 해리슨은 2014시즌 이전까지는 내외야를 오가며 좌투수를 전문으로 상대했던 유틸리티 플레이어(utility player)였다. 2011시즌 데뷔한 이래로 평범한 성적을 기록하던 해리슨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BABIP(인플레이된 공이 안타가 되는 비율)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2012시즌 0.259, 2013시즌 0.253에 그쳤던 해리슨의 BABIP(주: 인플레이 된 타구가 안타가 될 확률로, 이가 다른 시즌보다 높을수록 운이 많이 따른다고 볼 수 있다.)는 2014시즌 0.353으로 1할 가까이 치솟았다.
문제는 타자의 BABIP는 해당 타자의 통산 BABIP에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해리슨의 BABIP가 통산(0.313)에 수렴하게 된다면 2014시즌 0.315에 이르렀던 타율도 2할 중반대로 하락하게 된다. 해리슨은 타율과 출루율의 차이가 크지 않은 선수. 타율의 하락은 타격생산력을 극단적으로 떨어트릴 수도 있다. 강정호의 영입은 해리슨이 부진할 경우를 대비하는 좋은 카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투고타저시대에 돌입한 메이저리그는 장타력을 갖은 내야수가 희귀하기 때문에, 내야수가 탄탄하다고 알려진 피츠버그에서도 강정호의 활용도는 높다. 강정호는 적응여부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내야 전 포지션에서 보험과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2루수 닐 워커의 대체해줄 수 있는 선수가 되어줄 것이다.
이제 포스팅 진출에 가장 큰 고비, 계약금 협상이 남았다. 강정호의 에이전트 앨런 네로는 포스팅 시점에 3,4년에 연평균 500만 달러의 연봉을 희망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물론 협상전략의 일환이겠지만, 피츠버그가 감당하기에는 큰 금액이다.
한국프로야구 출신 내야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