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주가는 급등 중
땅콩 부사장 사건이 터진 어제부터 오늘까지 대한항공 주가는 떨어지기는 커녕 10% 정도 올랐다. 시가총액으로 치면 2500억 원 이상 오른 것 같다. 즉 투자자들이 보는 대한항공의 가치가 어제 오늘 이틀 사이에 2500억 원 이상 올랐단 얘기다.
부사장이 땅콩 받고 소리질렀다고 해서 기업가치가 올랐을리는 없고, 대체로 유가 하락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기름값이 떨어지면 항공기 운항 비용이 그만큼 절약되니까…(표값은 거의 안 내리면서!) 그렇긴 한데 아무튼 땅콩 사건이 대한항공의 기업 가치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대한항공 회장 일가의 괄괄한 성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일로 대한항공 주가를 회의적으로 보게 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순진한 거다.
이번 땅콩 에피소드 같은 경우는 특히 싸이코 지수가 약한 편에 속한다. 비행기를 빠꾸시킨 게 문제가 되긴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빠꾸한 게 아니라, 빠꾸하다가 다시 전진했겠지. 비행기 머리가 게이트 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의도 자체는 1등석 승객에 대한 서비스를 철저히 하라는 거였으니.
만일 스티브 잡스가 땅콩 부사장이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아마 후세 사람들은 ‘성격이 불같고 직원들에게 못되게 굴었지만 그만큼 완벽한 서비스를 추구한 천재’ 뭐 이런 평가를 내렸을 거다. 사실 내 돈 1000만 원을 내고 1등석에 탔는데 땅콩을 봉지로 가져오면 나라도 실망했을 것 같다.
대한항공 일가는 언론은 어떻게 통제했는가?
그런데 난 이번 땅콩 사건이 이렇게 크게 보도되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웬일로 이번엔 언론사들이 용감하게 대한항공을 공격할까? 가장 먼저 보도한 세계일보야, 요새 워낙에 워리어 스피릿을 가지고 청와대랑도 싸우고 있는 판이니까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다른 언론사들은 눈치 싹 보고 있다가 이번에 건수 하나 생기니까 옳다쿠나! 하면서 같이 대한항공 조지기에 들어간 것일 수도 있다. 평소에 맘대로 못 조지니까 이번 기회에 세계일보 앞장 세우고 우리도 한마디씩 해보자… 이렇게.
대한항공은 그냥 평범한 기업이 아니다. 국적항공사라는 특별한 지위 때문에 아무리 정부나 대형 언론사라도 대한항공과 맞짱떠서 싸우기는 쉽지 않다. VIP 영접이라든가 스폰서 항공권이라든가, 하다못해 편집국장 딸내미 여행갈 때 줄리엣 변호사를 가이드로 붙여준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사장님 체크인 가방 무게 제한을 10kg 올려준다든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치고 대한항공에서 이런 서비스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대한항공 마일리지 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땅콩 사건이 터진 후에도 부사장 본인이 별로 미안해 하지 않는데는 다 이런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거다. 심지어 대통령 전용기도 대한항공이다.
예전에 한 번 ‘대한항공 광고의 저주’라는 기사 내용을 놓고 대한항공이 스포츠서울과 한 판 붙은 적이 있다. 대한항공 광고에 실린 지역에는 곧 재앙이 닥친다는 가십을 기사로 썼는데, 그 다음 날 대한항공 기내에 반입하는 신문 2400부가 스포츠서울 편집국으로 착불 반품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기자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까지 들어갔다.
결국 무죄로 끝나긴 했지만 암튼 대한항공 사장님 집안이 일개 언론사 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었다. 싸우면 니네 손해~ 니네 대한항공 영원히 안 탈거임? 이런 배짱이 있다.
땅콩 사건보다 좀 더 저질이었던 ‘할머니 폭행’사건이 있었다. 2005년에 이 집 장남께서 연세대 앞길에서 난폭운전으로 다른 차와 시비가 붙었는데, 차에서 내려 다른 차에 타고 있던 할머니를 밀어서 넘어뜨렸다고 한다. 경찰서까지 갈 정도였으니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게 당연했다. 근데 당시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가 많지 않았다. 지금 찾아봐도 ‘오마이뉴스’ 정도 뿐이다.
이 사건이 알려졌을 무렵, 대한항공이 승무원 유니폼 바꾼다는 내용의 광고를 메이저 언론사 대부분에 쫙 뿌렸다. 폭행 사건과는 별개로 미리 준비해둔 광고였겠지만, 아무튼 타이밍이 좋았다. 꼭 기사를 빼주기로 하는 딜을 노골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언론사 입장에서 수천만원짜리 전면 광고를 사주는 회사의 사장 아들 폭행 사건을 크게 다루기는 좀 껄끄러웠을 거다. (재벌들의 기행이 계속되는 한 대한민국 언론산업은 망하지 않는다)
기타 등등…
국토부와 대한항공의 관계도 정부와 일반 기업의 관계는 아니다. 그러니 징계는 ‘경고’ 혹은 ‘견책을 권고’ 정도 나오지 않을까? 어차피 사장 따님에겐 별 의미없는 벌일 거고.
그리고 이 참에 땅콩 부사장은 앞으로 본인을 ‘서비스 완벽주의자’, ‘여자 스티브 잡스’ ‘열정의 플라멩코’로 이미지메이킹/포지셔닝 하시면 될 것 같다. 롤모델은 ‘의리맨’으로 포지셔닝 확실하게 하고 있는 한화의 김승연 회장이다. 솔직히 말해 난 이번 일이 대한항공에 악재라고 생각지 않는다. 욕은 먹겠지만 객실 서비스 품질에 대해 사람들 마음속에 좋은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이 땅콩 사건 때문에 청와대 비리가 덜 주목받게 되는 것 같아 오히려 불편하고 불만스럽기도 하다.
그럼 모욕을 당한 그 사무장은? 이 사건의 유일한 피해자. 글쎄 잘은 모르지만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고 그 부사장도 미국 국적이라 하시니 미국 변호사를 써서 sue하면 꽤 승산이 있지 않을까? 대한항공 비행기 앞으로 안 타도 된다는 각오만 있으면 해볼만할 것 같다. 나라면 하겠다.
p.s. 방금 ‘땅콩 부사장측이 언론사들에 항의하고 있다. 기사 내용 때문이 아니라, 왜 자료사진 예쁘게 나온 거 안 쓰고 못생기게 나온 걸로 쓰냐고.’라는 루머를 들었다…. 루머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일관성 있게 터프녀 이미지로 밀어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이다. 최소한 솔직해 보이기는 하니까 잘만 하면 그게 나중에 호감으로 바뀔 수 있다. (물론 내가 개인적으로 그같은 스타일의 사람을 좋아한다는 얘긴 아님.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임).
P.S. 뉴욕타임스 기사에 수백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뉴욕타임스가 뽑은 베스트 댓글 몇 개를 비롯해서 상당수가 ‘서비스에 대해 질책한 것 자체는 좋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 인터넷 게시판들의 반응과 사뭇 다르다. 이것도 스티브 잡스 효과일까? 베스트 댓글 하나.
“While sending the plane back to the gate is excessive, firing the head host(ess) for failing to know how KAL wants to treat its customers is completely reasonable. This is a service industry, and she obviously takes service (the way KAL does it) very seriously. I wish people at the US airlines cared even 1/10th this amount about providing passengers with a consistent, high quality experience.
Frankly, its this kind of attention to detail that makes me always try to fly just a few select airlines. And its also the attention to detail I required of all the folks working for me. If you don’t care enough to do the little easy things right, its unlikely you have the focus to do the big things right either.”
P.S. 2. 1등석 객실이라는 것의 존재 자체가 미친 짓이다. 아무리 좋은 의자나 좋은 식사나 친절한 서비스도 10시간 비행하는 의자에 1000만원이란 가격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그냥 부자들 마음껏 돈지랄하라고 만들어놓은 상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