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함께 만드는 정책”
박원순은 늘 시민이 함께하는 시정을 강조했다. 시민의 의견을 직접 정책에 반영한다는 ‘청책토론회’를 주기적으로 열었고, 정책제안 및 감사 등에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그중에서도 돋보였던 것이 ‘서울시 시민복지기준’이다. 이를 정하기 위해 우선 전문가와 시민대표 등이 ‘추진위원회’를 구성, 서울시에 필요한 핵심적인 복지 정책을 제안했으며, 여기에 일종의 시민위원회인 ‘서울복지메아리단’이 부분적으로 참여했다. 최종적으로는 천여 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1000인 원탁회의’를 열어, 위원회가 제안한 것과 시민들이 직접 제안한 것들 중 특히 중요한 것을 토론 및 투표로 간추려 ’10대 핵심 정책’을 선정하였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서울시의 시민복지기준을 정한 이 정책은 유엔 공공행정상 대상을 받는 등 극찬을 받았으나, 사실 그 화룡점정이라 할 ‘1000인 원탁회의’는 그리 매끈한 성공을 거둔 행사가 아니었다. 원탁회의를 위해 준비한 단말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테이블에 앉아 관심 없던 내용에 대해 토론하는 일도 생겼다.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은 시간이 지나며 자리를 하나 둘 떠나버렸고 최종적으로는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시정질문에서 최호정 서울시의원이 이 문제로 박원순 시장을 추궁하기도 했는데, 다들 아는 그 ‘시의원 막말 동영상’이 바로 이것이다(…). 사실 신경 거슬리는 막말을 꿋꿋이 참고 잘 들어보면, 박원순 시장 역시 이러한 기술적 실수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다만 최호정 시의원의 질의 태도가 너무 엉망이라 그냥 막말 동영상으로 전락해버린 것(…).
어쨌든 이런 기술적 실수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복지 정책의 큰 틀을 잡아나감에 있어 시민들의 의견을 직접 경청한다는 컨셉트 자체는 분명 참신하고도 훌륭한 데가 있었다. 박원순 역시 약간의 기술적 실수는 인정하지만, 시민복지기준과 1000인 원탁회의 자체는 성공적이라고 자평했다.
“시민이 만드는 헌장”
2014년, 박원순의 서울시는 또 한 번 비슷한 시도를 한다. 서울인권헌장을 시민들이 직접 정하도록 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시민들을 안분해 헌장 제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시민위원회에 헌장 제정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6차례의 회의가 치러졌고, 대부분의 조항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다만, 성소수자 차별 금지 등과 관련된 5개 조항에서 이견이 생겼고, 이 와중에 기독교계 단체 등 동성애 혐오론자들의 난입 등으로 인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헌장 제정 권한을 위임했던 서울시는 6차 회의에서 만장일치 합의가 아니라면 헌장을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시민위원회는 이에 반하여 다수결 의결을 결정했다. 결국 시민의원회는 의결절차에 돌입, 5개 조항을 재적인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77명 중 60명)하여 의결하였으나,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은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이를 거부하였다.
이를 1000인 원탁회의와 비교해보자. 단말기는 오작동했고, 패널은 원하는 자리에 앉지 못했으며, 사람들은 절반이 나가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순은 이를 약간의 기술적 실수는 인정하지만 원탁회의 자체는 성공적이라고 자평했다. 반면 여전히 인권 문제가 사회적인 갈등을 촉발하는 주제이며 특히 성적 지향 문제가 그러함을 생각해 볼 때, 시민위원회가 6차에 걸친 회의를 이끌어나가고 자율적인 표결으로 5개 조항을 의결한 과정을 원탁회의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실패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박원순은 서울인권헌장을 실패라 자평했다. 사회적 갈등이 현존하기 때문에 합의가 그만큼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민을 내세운 행정, 시민 뒤로 숨은 정치”
한 전임 대통령은 대통령이란 자리를 ‘조율사’라 평했다. 성소수자 차별 금지처럼 옳고 그름이 명확한 문제에서조차 사회적 갈등은 존재한다.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사람들 또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기에,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박원순의 발언이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인권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과 합의로 갈등을 해결함은 불가능하고, 결국 갈등을 어떤 방향으로 조율하고 결정할 것인가 하는, 일종의 방향성 제시가 필요하다.
그것을 우리는 정치라고 부른다.
사실은 ‘복지’ 정책을 정하자는 것도 이미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권’ 헌장을 시민이 만들자는 것도 이미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애당초 누구의 권리만 지지하고 누구의 권리는 무시한다면 이건 인권이 아니다. 인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보편적인 권리를 얘기하는 것이며, 따라서 여기에는 당연히 성소수자의 권리도 포함된다. … 혹 성소수자는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모르겠지만.
결국 박원순은 스스로 ‘인권헌장을 만들자’는 방향성을 제시해놓고서도, 인권 자체를 부정하는 혐오자들로 인한 갈등이 발생하자 ‘사실은 합의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내뺀 것이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시민을 대표하는 존재라 할 시장 박원순이 갈등의 조율사로서의 역할을 떠넘기고 시민위원회 뒤에 숨어버렸다. 1000인 원탁회의의 ‘기술적 실수’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민 참여’의 성공이라 상찬하던 그는, 그 ‘시민 참여’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자 아예 조율기를 놓아버렸다.
게다가 박원순은 인권헌장을 거부하며 페이스북에 밝힌 글에서, 끝내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않았다. 끝까지 비겁한 모습이다. 시민의 뜻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자신의 뜻을 밝힐 줄도 알아야 한다. 이런 첨예한 갈등에서는 그것이 곧 조율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박원순은 ‘시민이 시장입니다’란 모토를 내걸지만, 서울시민이 천만 의식이 결합한 군체의식 오버마인드(…) 같은 존재가 아닌 이상 이는 불가능하다. 정치적 갈등마저 전부 시민의 뜻을 묻겠다는 그럴듯한 선언 하에 시민의 손에 맡겨버리고, 스스로는 그 어떤 조율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박원순은 그 어떤 갈등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가 추구하는 시민 참여란 의견을 취합하기 조금만 어려워져도 작동을 멈춰버리는 고장난 시스템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는 모든 차별행위에 맞서겠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으며, 더 어렵고 더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논의와 소통의 장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어쩌면 그 자신이 다시 조율사로 나서겠다는 선언일지도 모르며, 사실 – 그러해야만 한다. 인권변호사였던 그가 인권이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고 조율에 나서진 않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