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건축을 업으로 하다 보니 이런저런 문제를 보기 마련이다. 아파트의 경우야 대개 부동산 문제이지만 주택 신축의 경우 복합적으로 여러 원인이 작용한다. 이 중 가장 큰 문제는 건축주, 즉 돈을 내고 건물을 짓고자 하는 이들이 너무 공부 없이 덤벼든다는 것이다. 돈과 땅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도 많다. 이를 해소할 9가지 방법을 정리해 봤다.
1. 니 맘대로 지으려 하지 마라
멋진 집이 TV와 잡지 등에 소개되는 횟수가 늘면서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멋진 집을 지으려 한다. 하지만 의외로 사람은 생활 패턴을 바꾸기 쉽지 않다.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에게 편한 평면이 있고 그건 바로 아파트 평면이다. 아파트 평면을 단순히 질 낮은 공산품처럼 보는 것은 편견. 나름 한국인의 생활상이 반영되면서 꾸준히 변화해온 결과물이다.
예술가처럼 독특한 삶을 살거나 독특한 형태를 원하지 않는다면 일단 기능에 충실한 게 우선이다. 건축가라면 누구나 멋진 건물을 짓고 싶어 한다. 다만 건축주와 건축가가 생각하는 방향성이 다른 경우가 많으니 너무 디자인 욕심내지 말고 그들과 잘 소통하여 최적의 결과를 내도록 하자.
2. 너무 싸게 건물 올리려 하지 마라
콘크리트로 건물을 올리려 할 때 건축비는 사실상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3.3㎡(평)당 400만 원(실제 비용은 후에 정확히 계산해봐야 하지만 일단 퉁쳐서 생각하는 비용은 그 정도 된다) 선으로 거의 정해져 있다. 여기에서 지나치게 더 가격이 내려가면 질이 떨어지는 자재를 쓰지 않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최소한의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일반적인 단가 수준에서 결정하는 게 좋다. 참고로 요즘은 반드시 양지바른 곳이나 남향일 필요가 없으며 그에 따른 문제도 건축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으니 유념해 두는 게 좋다.
3. 굳이 유명 건축가를 쓰기 전 한 번 생각해 보자
사실 유명 건축가의 설계를 받는 것도, 설계 자체에는 생각만큼 엄청 많은 돈을 쓰게 되지는 않는다. 법적으로 설계비는 전체 건물공사 비용의 최대 10%로 계산되는 “건축설계 대가요율”이라는 사실상의 “권고”안이 있지만, 유명 건축가들도 법적 대가요율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굳이 유명 건축가를 쓰지 않아도 충분히 멋진 집을 만들 수 있다. 당신이 그 건축가의 예술세계를 깊이 이해한다면 맡겨도 좋겠지만 이름 있는 건축가일수록 곤조가 있다. 오히려 당신이 원하는 건축물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특히 TV에 이름을 많이 드러내는 건축가는 설계가를 매우 높게 부르는 경우가 있으니 최소한의 비교 견적은 받아도 좋다.
4. 제발 조성된 택지에 들어가라
누구나 한적한 곳에 자기 건물을 갖고 싶은 욕심이 있다. 좋은 일이다. 당신이, 아니… 당신 부모님이 돈이 많다면…
조성되지 않은 택지를 “맹지”라고 하는데 이 경우 인접도로는 물론이고 상하수도 시설도 직접 놓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정작 땅을 사고 집을 짓는 비용보다 더 들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설사 그 돈을 부담할 수 있는 재력이 있다고 해도 한적한 시골에서 혼자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이끼〉에서도 최소한 마을에 몇십 가구는 모여있다. 백골이 죽고 죽어도 아무도 모를 곳에 가봐야 남는 건 심심함 뿐임을 기억하자.
5. 건설사와 건축사, 양쪽의 조언을 적절히 듣자
기본적으로 단독주택 하나, 혹은 3~4층의 근린생활시설을 올릴 때 건설사(업자)를 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바로 설계를 담당하는 건축사와 이야기하면 건축사가 직접 모든 과정을 대행해 주기 때문이다. 어차피 건설사는 세밀한 건축법에 밝지 않기에 굳이 건설사를 낄 이유가 없기는 하다. 하지만 건설사는 대신 시장 동향을 잘 알고 공무원과 연줄이 있는 경우가 많다.
쿵떡쿵떡 널뛰는 한국의 땅값을 고려하면 그곳이 향후 언제 어떻게 개발이 될 것인지 등의 정보는 건설사를 통해서 얻을 필요가 있다. 물론 그 땅을 분양하는 건설사의 경우 자사를 위한 정보를 흘릴 가능성이 있으니 다양한 건설 관계자를 만나 크로스체크해 보는 지혜도 필요하다. 본인도 공기관에 뿌리 깊은 불신이 있지만 개인사업자가 시행하는 택지개발과 시군구급에서 시행하는 택지개발을 비교하자면 아직 개인사업자는 멀었다.
6.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음을 기억하자
비싼 돈 들여 산 땅에, 자기 돈 들여 건물을 올린다. 당연히 욕심이 많이 날 것이다. 디자인도 멋졌으면 좋겠고, 공간도 넓었으면 좋겠고, 땅값도 올랐으면 좋겠고, 결정적으로 가격도 저렴했으면 좋겠고…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걸 한 번에 충족할 수는 없다.
우선 용적률, 건폐율에 맞춰 넓이는 한정되어 있다. 이 한정된 공간을 모두 채우다 보면 당연히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디자인이 희생될 수도 있다. 무리해서 모든 것을 맞추려고 하면 마치 윈도우 me와 같은 괴작이 등장하여 돈 쓰고 후회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럴 땐 제발 건축설계자의 말을 존중해달라. 물론 전제는 정상적인 건축설계자를 만났을 경우에 한한다.
7. 단독주택보증을 활용하라
일단 정부가 뭘 한다고 하면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활용할 수 있는 건 활용하는 게 또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단독주택을 만들 경우 시공사가 중간에 부도 파산하는 경우는 아파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는 애초에 택지를 조성할 때 시공사가 끼어야 하는데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다 보면 아파트 못지않은 리스크가 생기고는 한다.
이럴 때를 대비해 필요한 것이 단독주택보증이다. 단독주택보증은 약간의 보험료로 총 공사계약금액의 일부를 지급함은 물론, 최종 주택 완성까지도 책임져 준다. 최근 건설사들 상황이 워낙 어려워서 문제가 커지고 있는데,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8. 일단 시작하면 멈추기 힘드니 신중하게 선택하라
건축주, 즉 건축을 의뢰한 사람과 건축사는 종종 언성을 높이며 싸운다. 그중 가장 많은 이유는 “왜 이렇게 공사 기간이 길어지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건축가는 항상 같은 답변을 한다. “처음 계획에서 변경하지 않았느냐”고.
건축은 엑셀과 파워포인트처럼 틀리면 지우고 바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중간에 계획을 변경하면 당연히 돈과 시간이 곱절로 들어간다.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다 부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때도 있는데, 이럴 때는 아예 더블로 들어간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처음부터 확실히 마음을 굳히고 시작하자. 어차피 요즘 3D 모델링은 다 제공한다.
9. 전원에 대한 향수를 버려라
누구나 한적한 생활을 꿈꾼다. 그러나 도심을 벗어나는 순간 찾아오는 불편함은 더욱 크다. 회사 가는 데만 2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그나마 혼자이거나 아이가 없으면 다행이지만 아이까지 있으면 육아에 시간을 쓰기조차 힘들다. 이미 전원주택을 지은 많은 사람이 다시 도시로 돌아오고 있다.
이럴 때는 리모델링이나 증축도 하나의 방법이다. 도심 한복판이 아니라면 서울에도 다소 외지고 가격이 낮은 건물은 얼마든지 있다. 신혼부부 같은 경우 저렴한 예산으로 운치 있게 인테리어만 리모델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