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유럽의 청동기 문명은 그리스, 아나톨리아, 레반트,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일대에서 찬란하게 발전을 거듭했다. 그리스에서는 미케네 문명이 꽃을 피워 에게해 전역의 해안지역과 섬들에 작지만 강하고 부유한 왕국들을 건설했으며, 북동부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는 제국을 건설해 레반트 지역의 패권을 두고 다투었다. 그러나 기원전 1200년경, 지중해의 동지중해 문명은 한순간에 붕괴한다.
‘‘바다의 민족(Sea People)’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약탈자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나 도시와 농장을 초토화했으며, 평화로운 도시 생활을 영위하던 주민들은 살해당하거나 자신들의 보물을 땅에 묻고 피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강대한 제국들과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협력하며 강소국으로 존재하던 여러 도시국가는 침략에 맞서 사방으로 구원을 청했으나 이는 그 작은 국가들의 마지막 단말마이자 유언이 되었다.
정복자들은 죽이고 불태웠을 뿐 지배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때 주변을 호령하던 위대한 도시들은 폐허가 되고 잊혔다. 그 후로 다시는 재건되지 못했으며 역사와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옛 주민들이 몰살당하고 아무도 그 폐허를 다시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케네 문명이 멸망하고 그리스에는 암흑시대가 도래했다. 그리스가 다시 유럽 문명의 중심지가 되는 그리스 고전기까지는 400년을 기다려야 한다. 아나톨리아 산악지대의 히타이트 제국은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져 근대 역사학이 재발견하기 전까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는다. 이집트는 대 재난을 이겨내긴 했지만 강력했던 파라오가 통치하던 제국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으며 천천히 몰락하게 된다.
몰락한 문명의 생존자들은 문자를 잃었고 기술을 잃었다. 제국과 도시들을 부유하게 만들었던 무역은 완전히 끊어졌고 인구는 급감했다. 세련된 청동기 제작기술은 사라지고 조악한 초기 철기 문화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 모든 재난은 불과 50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위의 이야기는 완전한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완전한 거짓도 아니다. 조금 자극적이고 과장된 어조로 ‘역사적 사실에 기반 두고’ 작성한 내용이다. 대체 이러한 상황은 어떻게 해서 발생하게 된 것일까?
역사를 살펴보면 갑작스럽게 문명이 멸망하거나 도시가 버려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중 가장 규모가 광범위하고 특이한 예는 기원전 12세기 무렵의 동지중해 후기 청동기 문명의 멸망이 아닌가 싶다. 또한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쉽게 설명이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경우다.
불과 반세기 정도 사이에 동지중해에 꽃 피었던 후기 청동기 문명은 파멸적인 종말을 맞았다. 이 시기에 그리스와 아나톨리아, 레반트, 크레타와 키프로스를 포함한 동지중해 여러 섬의 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멸망했으며 미케네 문명과 히타이트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간신히 살아남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금 동지중해와 접해있는 모든 지역이 멸망하거나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놀랍게도 이 매우 짧은 기간의 대격변의 원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 고고학 연구를 통해 밝혀진 명백한 사실만을 나열하자면,
1. 약 50년 사이에 대격변이 발생
기원전 1206년부터 1150년까지 반세기 정도의 기간으로 역사적 변혁이 매우 천천히 이루어지게 마련인 고대사에 있어서 이는 매우 짧은 기간임이 분명하다. 통상 국가나 문명이 멸망하는 과정에는 전성기를 지나 쇠락의 시기가 있고 결국 내외의 문제를 견디지 못해 최종적으로 망하게 마련인데 딱히 그러한 징조도 보이지 않는다.
2. 완전히 폐허가 되고 몰락한 제국
이 시기 크게 발전했던 도시(3,000년 전 인구 1만 명 이상) 대부분이 완전히 붕괴, 약탈당하고 불에 타거나 버려져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다음은 우가리트와 알라시아 사이에 오고 갔던 유명한 문서의 내용이다.
아버지(아마도 존칭)시여, 여기도 적의 함대가 왔습니다. 나의 도시들은 불탔으며, 적들은 나의 영토에서 나쁜 짓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의 모든 병사와 전차는 하티(히타이트의 중심부)의 땅을 돕기 위해 파견되어 있으며, 나의 함대들은 루카(라이키아)의 땅에 파견되었음을… 나의 영토는 완전히 방치된 상태입니다. 당신께서도 이를 아실 겁니다. 여기 온 일곱 척의 배들이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My father, behold, the enemy’s ships came (here); my cities(?) were burned, and they did evil things in my country. Does not my father know that all my troops and chariots(?) are in the Land of Hatti, and all my ships are in the Land of Lukka? … Thus, the country is abandoned to itself. May my father know it: the seven ships of the enemy that came here inflicted much damage upon us.
이는 우가리트의 통치자가 알라시아의 마지막 왕 아무라피의 지원 요청을 거부하면서 작성했던 것으로 생각되는 편지로, 우가리트의 폐허에서 발굴되었다. 쉽게 부서지는 서판이 3,000년의 세월을 견디고 현대 고고학자 손에 의해 발굴될 수 있었던 것은 불에 단단하게 구워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서판을 태운 화염은 그 작성자와 작성자의 도시를 함께 태웠을 것이다.
즉 왕이 왕에게 보내는 답신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발송조차 못 할 정도로 급박한 위기가 두 도시에 동시에 닥쳤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아마 내용에 언급된, 상국 히타이트 제국을 돕기 위해 파견된 병사들은 다시는 고향을 보지 못하고 제국의 몰락과 운명을 함께 했을 가능성이 높으리라.
3. 재건은커녕 존재와 위치조차 잊힌 도시들
많은 도시가 재건되지 못했고 심지어 현대에 이르러 고고학 발굴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존재조차 잊힌 도시들이 많으며 위치조차 미상인 도시마저 있다. 위에서 언급한, 우가리트의 통치자가 작성한 메시지에는 발신자인 우가리트와 수신자인 알라시아(결국 보내지도 못했지만), 또 상국인 히타이트 제국의 심장부 하티(하투사)가 언급된다.
이 세 지역은 대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모두 망했고 다시는 재건되지 못한 도시들이다. 우가리트와 하투사는 이 시기에 멸망한 이후 완전히 버려졌으며 같은 장소에 다시 도시가 생기지 않았다. 근대에 와서 새로 발굴된 고대도시의 유적에서는 약탈과 혼란, 방화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알라시아의 경우는 더 심해서 그다지 많지 않은 고대의 문자 기록에 주로 교역 상대로서 자주 언급되는 도시임에도 그 위치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의 중요 전략 자원이었던 구리를 10톤 넘게 취급했다는 기록을 보면 상당한 규모의 교역 도시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 역시 대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흔적조차 남지 않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이 흥미를 자극하는 이유는, 통상적으로 정복자가 기존 국가를 무너뜨리고 주민들을 학살하거나 노예화하더라도 ‘도시’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는 잘 없기 때문이다. 일단은 도시와 그 부속 영토 자체가 정복자의 목적인 경우도 많기도 하고, 설령 정복자가 영토에 관심이 없어 떠나간다고 해도 근대 이전에 재앙에서 살아남은 주민이 의지할 곳은 그들이 살던 땅 외에는 없다.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도저히 해당 지역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대규모 이주가 발생했다면 달리 이주한 지역이라도 있을 터인데… 이 시기의 특징은 문명의 전면적인 몰락으로 인해 주변 지역 전부에서 파괴의 흔적과 급격한 인구의 감소가 관측된다.
4. 사라진 국가, 공동체, 그리고 문자
대부분 지역에서 국가, 공동체가 사라졌으며 문자도 사라졌다. 문명 자체가 지워지는 판국에 국가가 살아남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해당 지역에서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최소한의 문화적 흔적마저 남기지 못할 정도로 단기간에 철저하게 붕괴하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이때 사라진 문자 중 대표적인 것이 미케네의 선문자 B와 히타이트 문자로, 다행히 20세기 들어 둘 다 해독되어 당대를 살피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특히 선문자 B는 미케네 문명에서 사용하던 고대 그리스어를 기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미케네의 몰락 이후 그리스어는 오랫동안 기록에 필요한 문자를 가지지 못한 채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구전(oral tradition)의 전통을 가지게 된다.
그리스 고전기에 이르러 페니키아 문자 기반으로 개량된 알파벳을 통해 다시 그리스어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문자를 통해 구전된 기록의 집대성이 호메로스의 서사시이다.
5. 기억과 역사의 단절 현상
많은 주민이 죽거나 이주하면서 기억과 역사가 단절되었다. 재난이 벌어진 많은 지역에서 인구가 1/4에서 1/10 수준까지 줄어들면서 모든 국가 구조와 방어 수단, 관료 조직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리스 지역에서는 급격하게 줄어든 인구는 소규모 농장과 마을을 이루는 형태로 흩어졌으며 향후 폴리스라는 그리스 특유의 도시국가 형태를 탄생시키는 한 원인이 된다.
서문에서도 적었지만 중근동의 강자였던 히타이트 제국의 경우 완전히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후 히타이트를 자칭하는 도시국가들이 레반트 지역에 재건되었다고는 하나 이들과 본래의 히타이트 사이에는 문화나 언어적 연관 관계는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히타이트의 후계들을 네오 히타이트라고 부르며 성경에 나오는 헷 민족이 이들이다.
6. 전역의 무역 완전 단절
동지중해 전역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무역도 완전히 단절되었다. 많은 도시가 무역을 통해 부유해졌고, 특히 일부 도시(대표적으로 하투사)의 경우 입지조건이 좋지 않아 도시 주변에서 생산되는 자원만으로는 도저히 도시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역을 통해 필수적인 자원들을 수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난 이후 동지중해의 모든 무역은 뚝 끊겨버렸다. 다시 무역의 전성기가 돌아오려면 그리스 고전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7. 사라진 청동기, 초기 철기 시대로의 전환
재료와 기술의 부재로 청동기 문화가 사라지고 조악한 초기 철기가 그 자리를 채웠다. 흔히 철기는 청동기의 발전된 형태라고 생각하기 쉬우며 이는 크게 보면 물론 진실이지만 제련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초기 철기는 품질이 조악해서 이미 충분히 기술이 완성된 청동기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실제로 아시아의 경우 청동기-철기 전환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으되 농기구로만 사용이 되던 조악한 철기가 그 완성도를 높여 자연스럽게 전투용 무기로도 활용되는 청동기-철기 혼용기를 거쳤다. 그에 비해서 동지중해 청동기의 끝은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무역의 단절과 산업의 쇠퇴로 양질의 청동을 만들 재료를 얻지 못하자 청동기의 사용은 빠르게 줄었고 재활용을 통해 청동의 재질도 갈수록 열화하다가 철기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8. 살아남은 제국들의 영향력 감소
히타이트가 완전히 멸망하는 사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강자 아시리아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집트는 사실상 인근 지역에 대한 패권을 모두 잃고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쇠퇴기에 접어들었으며 아시리아 역시 레반트 지역에 영향력을 잃었다. 물론 아시리아는 남들 다 망해가는 시기에 빠르게 회복하여 중근동의 새로운 패자가 되긴 하지만.
그렇다면 이 문명들은 왜 멸망했을까?
마치 인위적으로 작성된 멸망 시나리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관적이고도 동시다발적인 재난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학자가 노력하고 고고학적 발굴의 성과도 늘어나면서 차츰 윤곽이 잡히고 있다고는 하지만 명쾌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문명의 소실과 파괴의 흔적이 너무나도 광범위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1. ‘바다의 민족’의 습격
동지중해 청동기 문명 멸망 떡밥의 에이스이자 흥미 위주로 작성한다면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이 ‘바다의 민족’의 역습에 관한 이야기로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력한 해상 약탈자가 알려진 세계 전부를 휩쓸었으며, 약탈과 파괴를 끝낸 후에 사라졌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위에서 말한 우가리트 문서에서도 바다에서 온 침략자를 이야기하며, 해당 시기 이집트의 연대기는 거듭해서 바다에서의 습격을 말하고, 멸망한 미케네 도시의 기록에서도 갑작스러운 습격을 말한다. 흥미 본위로 서술하는 대중서에서 이 ‘바다의 민족’을 ‘갑작스럽게 나타나 가공할 파괴를 일으키고 바람처럼 사라졌다’는 식으로 과장해서 표현하고는 했는데 당시 갑작스럽게 나타난 습격자들을 부르던 여러 이름이 있어서 ‘어디서 온 누구일 것이다’라고 추측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명한 지명의 어원이 된 팔레스타인 민족이 있고, 그리스 암흑기를 가져오는 도리아인도 그 일파라고 설명할 수 있다. 다만 도리아인의 남하가 미케네 그리스의 직접적인 몰락의 원인이며 도리아인이 그리스 문화권 전체에 영향을 미쳤는지 등등에 대해서는 또 명쾌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에는 연구가 진행되면서 ‘‘바다의 민족’이 외계인급 깽판을 쳐서 문명이 멸망했다’는 극단적인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집단이 갑자기 나타나서 파괴를 자행하고 갑자기 사라졌다면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미스터리가 아닐 수가 없으니.
2. 급격한 환경변화
소빙하기나 지속적인 가뭄, 화산폭발로 인한 일조량의 감소 등의 환경변화가 파멸을 가지고 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당시 범지구적인 특기할만한 재난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명백한 증거가 부족하며, 또한 그 재앙이 유독 동지중해 지역에 집중되어서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설명은 없다.
또한 자연재해가 지역이나 문명에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몰락의 한 원인이 되는 것이지 매우 넓은 지역에서 거주자들이 이주도 못 할 정도의 파멸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공룡의 멸종이나 빙하기처럼 범지구적인 현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3. 철기의 발달
오늘날 발칸반도 지역에서 급격하게 발달하기 시작한 초기 철기 문명이 청동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악한 완성도에도 많은 양을 쉽게 공급할 수 있었기에 철기로 무장한 다수의 빈약한 약탈자들이 세련된 청동기와 전차로 무장한 청동기 문명의 정예 전사들을 밀어 버렸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동지중해 지역에서 철기의 발전은 청동기 문명의 몰락 이후에 무역 시스템의 붕괴로 더 이상 주석을 얻을 수 없게 된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철기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딱히 철기를 사용하는 이민 집단이 옛 국가들을 무너뜨린 후 지배했다는 증거도 없으므로 근거가 부족하다.
4. 전쟁 방식의 변화
‘바다의 민족’ 설과도 연관이 있으며, 기존 동지중해 세계를 지배하던 고가의 청동기와 전차로 무장한 귀족 전사들로 유지되던 기존의 지배 시스템을 다수의 ‘보병 습격자’들이 압도했다는 주장이다. 주조 기술의 발달로 청동 무기의 생산 단가가 저렴해졌으며 찌르기와 베기를 모두 할 수 있는 새로운 청동검의 개발 덕분에 더 적은 금속으로 효율적인 무기를 만들 수 있도록 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것은 신세력이 구세력을 압도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는 점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문명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정복자들’조차 자신들의 정복지에 머물기를 거부한 것에 대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5. 복합원인
어떤 점에서 ‘복합적인 원인으로’라는 말은 ‘솔직히 뭐가 원인인지 모름(ㅋ)’을 적절히 포장한 경우일 수도 있겠으나 기술과 역사학의 발전으로 인해 어떤 한 가지 원인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 쉽지 않음은 분명하다. 공룡의 멸종을 설명하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상식을 벗어나는 거대한 사건 혹은 사실에 대해 인지 범위 내에서 설명하려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더욱 혼란스러운 경우가 된다. 최근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던 문명들이 도미노 무너지듯 연쇄작용을 통해 붕괴했다는 설이다.
- 식량 자급이 불가능하며 가치 있는 재화를 생산해 무역을 통해 경제를 유지하던 도시국가 공동체의 붕괴: 생필품이 부족해 도시 존립이 불가능해지면서 이탈자가 늘어나면 외부의 침입에 쉽게 무너지거나 버려진 도시가 됨
- 생필품 부족으로 소요가 발생하고 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해 폭도화한 민중이 인근 도시 및 공동체를 습격하여 파괴: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이 같은 과정을 통해 폭도화하고 또다시 인근 도시 및 공동체를 습격하는 악순환
- 생존에는 성공했으나 문명과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필수품 및 사치품들을 공급해주던 이웃이 멸망하는 바람에 서서히 쇠퇴: 인구와 생활 수준이 급격하게 내려가니 저항력이 약해져 외부 침입에 쉽게 몰락
대략 이런 일들이 짧은 기간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문명들을 무너뜨렸다는 말이다. ‘바다의 민족’이라는 수수께끼의 이민족이 갑자기 나타나서 사방팔방을 무너뜨린 게 아니라 침략자와 약탈자들은 과거 무역을 하며 협력하던 이웃이었으며 이런 혼란의 와중에 문명이 쇠퇴해 버렸다는 주장이다(좀비 아포칼립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대체 어떤 재난이 닥쳤기에 청동기 문명이 찬란하게 발전하던 동지중해 전역이 원래 주민을 죽이고 삶의 터전을 약탈한 침입자들까지도 살아남지 못할 정도의 인외마경이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멸망한 문명은 많지만 그 가해자가 이렇게 불분명하고 파괴의 범위가 넓은 케이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찬란한 문명의 흔적을 가진 유민이 다른 지역으로 탈출해서 흔적을 이어갈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장차 연구가 추가로 이루어지고 중요한 증거가 새로이 발견되면 싱겁게 설명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으로서 신빙성의 차이는 있으나 모든 이론이 추측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며, 그래서 후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야기 하나를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