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근혜 검찰개혁 공약은 별 내용이 없다. 검찰 내부에서는 대선 전 박근혜를 뽑아야 검찰이 살아남는다며 투표 독려 움직임이 돌았다는 소문도 있다. 박근혜의 검찰개혁 주요 공약을 찬찬히 살펴보자.
검찰총장은 국회청문회를 통과해야 한다!
박근혜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인물이 국회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전 대선후보는 대통령의 검찰총장 임명권을 없앤다고 공약을 냈었다. 박근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추천과 임명은 다르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대기업 총수가 임원을 모아놓고 묻는다. “이번에 중국 지사 사장은 누가 좋겠나?” 임원들은 입을 모아 답한다. “A가 적격입니다.” 다음 날 사장은 ‘B’로 발표된다. 총수는 임원에게 임명권을 주지 않는다. 임명권의 힘, 그 뒤에 따라오는 충성을 알기 때문이다. 추천은 허울이다.
박근혜는 국회청문회 과정을 강조한다. 검찰총장은 본회의 임명동의안 표결을 거쳐야 한다. 다수당은 새누리당이다. 청문회에서 두드려 맞는다고 낙마할까? 윤창중 대변인도 언론에서 두드려 맞지만 물러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우리는 정권에 줄 대기 위해 ‘정치수사’하는 검찰을 수없이 목격했다. 국민보다 임명권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
상설특검+특별감찰관제 >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
박근혜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대신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제를 들고 나왔다. 현행 특검이 여야 합의를 거쳐야 한다면, 상설특검은 법무부장관이 요청한 뒤 바로 임명하고 수사를 마치면 해체하는 개념이다. 특별감찰관제의 규제 대상에는 대통령의 배우자, 국무총리, 경찰청장 등 권력핵심이 포함된다.
박근혜는 상설특검을 공수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어떤 조직의 부패, 비리, 악습을 타파하기 위해서 내부 인사들을 불러 모아 개혁TF를 만든다지만, 내부의 문제를 내부 인원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면 공수처는 제3의 기관이다. 항상 검찰을 감시하고 있는 기관이 생기는 것이다. 째려보는 기관이 있다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상설특검을 열어도 검사는 많아야 수십 명 파견, 일을 마치면 돌아간다. 제3의 기관으로 보기는 무리다.
특별감찰관제도 비슷하다. 특별감찰관으로 임명된 검사가 다른 검사를 감시한다. 검사가 검사를 감시한다. 이른바 ‘자기검열’인데. 큰 효과는 없을 것이다. 상위 권력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다. 현 대검찰청 감찰본부와 이름만 다른 쌍둥이다.
추가로 한 가지, 대선 전 몇몇 검사는 “문재인 후보의 공수처 공약 실현을 위해선 헌법을 뜯어고쳐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그들은 헌법에 “기소권은 검사에게 있다”는 조항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법학자들은 검사들의 이런 주장은 ‘말장난’이라고 한다. 헌법에 있는 검사는 ‘검찰직’을 뜻하는 개념이 아니다. 공수처를 만들고 ‘검사 자격’이 있는 변호사 같은 사람을 발령하고 검사로 임명하면 간단한 일이라고 한다.
대검 중수부 폐지하면 검찰개혁 이뤄지나?
대선 전 박근혜는 물론 문재인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폐지를 둘러싸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최재경 중수부장 사이의 힘싸움이 벌어졌다.
검사들은 중수부가 검찰의 꽃이라고 부른다. 중수부가 없으면 거악 척결이 힘들다고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중수부에 소환되면 구속을 피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김영삼, 김대중,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을 구속한 건 중수부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구속했다. 삼성 이건희도 법정에 세웠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을 구치소로 보냈다. 이 정도는 확실한 공이다. 중수부였기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과를 덮을 수는 없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해 죽음으로 내몰았다. 노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 씨의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를 지난해 4월 총선 직전 수사했다. 지역에서 벌어진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공천비리를 새누리당은 지역(부산지검)에서, 민주당은 중수부에서 처리했다.
박근혜는 중수부를 없애는 대신 경우에 따라 고등검찰청에 TF 성격의 임시 수사팀을 만들어 수사하겠다고 주장했다. 각 지검 특수부에서 중수부의 일을 나누도록 했다. 중수부가 없어지고 중수부의 일을 다른 검사가 대신한다면 중수부 폐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검-경 수사권, 일명 ‘밥그릇 싸움’
경찰은 수사 시작부터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는다. 형사소송법이 그렇게 생겨먹었다. 자료 부족하다면 자료 올려야 하고, 압수수색 하려면 영장 신청해야 한다. 얼마 전 다단계 사기의 전설 조희팔 관련 수사를 받던 김광준 전 검사 수사 건을 두고 한 경찰은 “개 같은 상황”이라고 나에게 말했다.
경찰이 시작한 수사를 검찰이 가로챘다. 경찰이 사건 관계자에게 이틀 후 소환을 통보하면 검찰은 다음 날 소환했다. 경찰이 압수수색을 하려고 하자 검찰은 한발 앞서 압수수색했다. 참고인과 관계자들은 “검찰에서 조사 받았으니 경찰 조사에는 나가지 않겠다”며 버텼다고 한다. 경찰 입장에선 서러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경찰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수사권 조정안’을 제출한다고 한다. 사건 송치 전엔 경찰만이 수사권을 갖고,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경찰이 견제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다. 이중조사를 막기 위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효력을 제한하자는 방안도 넣는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수사권 분점이 이뤄진다면 검찰의 힘이 조금 약해질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경찰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야 한다. 수사 지휘 관련 조항 등에 손을 대 정부가 심의하고 조정한 뒤 결국 국회 의결로 넘어간다. 국회에서는 여야가 서로 더 뜯어고치려고 아등바등할 것이다. 경찰 출신 국회의원이 많을까, 아니면 검찰 출신 국회의원이 많을까.
어찌 되든 박근혜에겐 윈-윈 게임이다. 경찰의 주장을 들어준 모양새가 된다. 처리는 국회에서 하니까. 실제로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후보시절 얘기한 “검찰 직접 수사를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목표로 하되 경찰 수사의 독립성을 인정하겠다”는 약속은 지킬 수 있게 될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 기대말자.
박근혜 검찰개혁 공약의 허점은 인사 문제를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검찰이 정치 편향 소리를 듣는 건 인사가 줄타기, 지연, 학연 따위에 얽혀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구와 조직 개편은 허울은 좋지만 실질적 효과는 약하다. 물론 문재인도 이 문제에선 자유롭지 않다. 공수처라고 해서 정치 편향이 사라질까? 아니다. 어떤 인사를 내느냐에 따라 지독하게 정치적인 조직이 될 수도 있다.
수사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치검찰의 행태를 보면 경찰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가도, 선거를 코앞에 두고 조사도 마치지 않은 상황에서 “국정원 여직원 댓글 흔적 없다”는 발표를 지시한 서울경찰청장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 거린다. 현재 서울경찰청장은 차기 경찰청장 내정자란 얘기가 돌고 있다.
어쨌든 박근혜는 애매모호한 검찰개혁을 들고 나와 검찰의 마음을 얻었지만 박근혜의 개혁에는 사람이 없다. 인사를 어떤 식으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내겠다는 다짐은 보이지 않는다. 조직 개편, 기구 창설이 끝이다. 그 지점이 박근혜와 검찰의 타협점이다. 이제 우린 5년 동안 박근혜와 검찰이 함께 가는 모습을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