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승환 수령이 자꾸 글을 쓰라고 종용을 하는데 “원고 청탁 부탁이 ‘원고 청탁합니다.’인 매체가 세상에 어디있냐”며 계속 짜증을 냈었다. 사실 귀찮아서 버틴 건데(…), 그랬더니 진짜 떡밥을 하나 물어다 줬다. 잠깐 쳐다봤는데, 좀 대단했다. 그래서 대선 결과에 관련한 음모론이라는 좀 암울한 이야기들을 좀 들여다보고, 몇 자 적는다.
득표율이 로지스틱 함수와 유사한 것은 부자연스럽다?
저 글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박근혜의 득표수를 두 개 구간으로 나누어 해석할 경우 단순한 로지스틱 함수로 꽤 깔끔하게 예측되므로, 왠지 인위적인 냄새가 난다. 그러니 이 선거에는 수상한 점이 있다.
내가 저 글을 보고 내린 결론은 이렇다. 저건 과학의 탈을 뒤집어쓴 그럴 듯한 사기극이거나, 굉장히 슬픈 이야기다. 판단이 제대로 안 되거나 뭘 모르는 사람이 시간과 정성을 낭비하는 건 굉장히 슬픈 일이니까.
사실, 이 글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데이터를 맞추는 방법이 있다. 간단하고 빠르며 무식한 짓으로, 매트랩이나 매스매티카에 숫자를 넣고 22차방정식의 계수를 구하거나 1차함수 21개를 구간별로 조합하도록 명령을 내리면 된다. 이러면 아예 오차 0의 완벽한 함수가 나온다. 물론 이건 무식한 짓이고,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지성으로 불가능한 건 없는 일이라, 가끔은 해석에 적합한 단순한 형태의 함수를 찾아내기도 하고(가우시안 분포식이라든지 플랑크 법칙이라든지), 이러한 함수들을 적절히 조합하여 수치를 계산하고 각각의 오차수준과 신뢰도를 바탕으로 꽤 정확한 예측까지 해낸다. 결론: 인간은 충분한 데이터가 있으면 적절한 함수로 현상을 환원하여 예측까지(!) 할 수 있다. 이 경우 데이터가 22개밖에 안 되니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리고 로지스틱 함수는 이러한 개표 현황을 분석하기에 좋은 함수다. 개표라는 작업 자체의 특성 때문에, 득표수는 S자 곡선을 그리는 게 일반적이고, 로지스틱 함수는 바로 이 S곡선을 잘 표현하는 함수이기 때문이다.
괴문서에 들어 있는 이 그래프는 SBS 의 자료를 엑셀에 넣어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한 번 들여다 보자. 개표 초반엔 득표수 증가율이 낮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연장 투표시간, 마무리 및 봉인에 드는 시간, 수송 및 상하차 시간 등의 변수 때문에 모든 개표소가 개표를 진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차츰 개표작업이 진행되는 개표소가 늘어나면서 득표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끝점에서는 득표수 증가율이 차츰 낮아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한두 군데씩 개표가 끝나게 되니까. 이게 S자 곡선.
이를 표준 로지스틱 함수와 비교해 보면, 모양이 거의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계수만 맞추면 비슷하게 맞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는데, 이 함수를 구간까지 나누어 여러 개의 함수로 조합할 경우, 오차는 더욱 낮아진다(앞에서 구간을 21개로 나누면 1차함수 21개로 데이터를 오차 제로로 분석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떠올려 보자.).
문재인의 득표수는 어떨까? 분석해 보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변동은 있을 지라도 비슷한 분석이 될 것을 예측할 수 있다(아니, 그렇게 분석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결론적으로, 저 로지스틱맨의 이야기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상황에 적절한 분석 툴을 이용하여 득표수를 적절하게 분석해 보았더니, 결과가 적절하게 나왔습니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는 인위적인 요소가 개입했다는 의심이 가능합니다.
정말로 부정 선거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저 정도면 귀엽다고 보면 되겠고, 개표 부정이 발생했다고 확신하며 재검표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조금 더 심각한 면이 있다. 실제 조작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단계별로 나눠 보자.
일부에서 말하는 해킹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지금 개표를 수검표 / 전자분류기를 이용하여 후보별로 분류된 표를 수검한 후 선관위원이 검열하고 위원장이 확인하기 때문이다. 즉, 전자분류기 해킹은 발생하지 않는다. 선관위 서버가 시종일관 능욕을 당했든지 중앙선관위원들이 단체로 숫자를 변조했다 해도, 그 최종 결과는 지역별 개표소의 기록 결과와 불일치하므로 바로 적발된다.
그게 아니라면 개표 과정에서 조작하는 경우가 있을 텐데, 이게 가능하려 면 전략지역 개표소마다 할당량을 주고, 교육받은 요원들을 대거 투입해야 한다. 표는 선관위원과 위원장의 확인을 거쳐야 하므로, 표 자체도 조작해야 한다. 표를 바꿔친다는 얘긴데, 문재인의 표나 무효표를 박근혜 표에 대량으로 밀어넣거나 박근혜 표를 미리 준비하여 (각 구·시·군 선거관리위원 도장도 미리 입수해서 찍어 둔 상태로 기표까지 한 상태로) 가지고 가서 문재인 표와 1:1로 대체한 후 문재인 표를 씹어먹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걸 참관인이 감시·즉시시정요구·촬영·유/무선 보고할 수 있는 환경하에서 조직적으로 했다는 시나리오? <맨 인 블랙>에서 나오는 플래시가 대량으로 배급되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 같다. 함째로 갈아치우면 따로 뜯어 보관하는 일련번호표와 비교했을 때 숫자가 맞지 않고, 투표소에서 직접 투표용지를 바꾸는 방법은 투표들 해 보셨으니 그 가능성을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본다.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실수는 있다
이 정도로 관리하면 어느 정도 부정과 조작을 견딜 수 있다고 믿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렇게 해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재검표를 한 사례가 있는데, 그 재검표에서 실제로(!) 오차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게 2002년 대선인데, 한나라당의 끈질긴 요구로 투표용지 1천104만9천311장을 재검표했다.
재검표 잠정 집계 결과, 이회창 후보가 88표 증가(+0.0008%), 노무현 후보가 816표 감소(-0.0074%)했으며, 추가 무효표가 204표, 판정보류표 529표가 각각 추가됐다. 존나 대단한 오차라, 당시 한나라당은 최종 집계 결과가 나오기 전에 “재검표 결과를 검허히 수용하고, 신정부 출범에 협조하겠다”고 밝혔고, 당내 개혁모임은 “결과적으로 우리당을 다시 한번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도록 한 이 번 일에 대해 관련 책임자는 국민과 당원에게 고개숙여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며 강력한 인책론을 제기했다. 이 과정을 오마이뉴스가 20신까지 내가면서 추적한 기사가 재미있으니 읽어 보시기 바란다.
음모론의 저편
이 상황을 보다 보면, 9.11에 관련한 음모론 영화 “Loose Change 2nd Edition”이 생각난다. 사실 9.11 사건엔 의문의 여지가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입체적으로 분석할 만한 동영상 자료도 드물었으므로 그 조사 결과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힘들었고, 여러 가지 의문사항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꼼꼼히 조사한 제작진의 결론은 “미국 정부가 쌍둥이빌딩을 발파하여 파괴했고, 펜타곤에 미사일을 쏘았다.”였다. 이 영화에 동조하며 의심하던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지만 일단 조사 결과를 믿든지 / 미국 정부가 아침 출근길에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국민을 학살했다고 믿든지.
의혹의 합당한 근거가 뭔지 도대체 모르겠지만, 이번 선거에 어떤 방식으로든 부정이 있었다는 의심을 한다고 하자. 이때 의심하는 사람들에겐 두 개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한다는데 박근혜가 이겼다고 믿든지 / 박근혜의 이번 당선을 위해 거대 조직이 동원되어 체계적 조작 및 증거은닉을 저질렀고, 부정선거를 막기 위한 노력해 온 (그리고 2002년에 검증된 바 있는) 선거관리의 역사를 단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으며, 여기 관련된 모든 이들이 모두 함구하거나 의문사했다고. 어느 설명을 택하겠는가?
세상 일엔 원래 이해가 안 되는 게 많다. 가끔 논리적 비약이 있기도 하고, 몇 가지 사실이 누락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정황이라든지 일반적인 상황론 혹은 오차처리 등을 이용하여 이를 보정하고, 그 고리를 불완전하나마 이을 수 있다. 이게 현상에 적용하기에 부적절한 가정이나 논리적 맹점을 산더미처럼 쌓아 만든 음모론을 믿는 것보다는 훨씬 더 이성적인 자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험난한 믿음의 길을 택하고 문재인의 패인이 부정선거라고 믿고 수개표까지 하자고 요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환단고기의 신봉자 들이 생각난다. 모든 사료는 이병도와 그 수하들이 불태우고 변조했다고 굳게 믿으며 사료를 부정하고, 그들이 캐낸 사료상의 유의점만이 차마 숨겨지지 못한 진짜 사료이라며 이것만을 이용하여 한민족의 역사를 복원하려는 이들 말이다. 열정은 존중할 만하나,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척 팔라닉의 소설 <Guts >에서 한 마디 옮긴다.
Some deeds are too low to even get a name. Too low to even get talked about.
어떤 일들은 이름을 붙일 가치조차 없을 정도로 저열하다. 언급할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