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 안의 공기는 답답했다. 여기에 간간히 풍겨오는 노뽕의 악취는 평범한 사람들을 기겁하기에 충분했으리라. 한때는 승리한다는 희망이 가득 찼으나 패배가 임박한 지금, 벙커안의 분위기는 너무나 무거웠다.
깨시민 총통은 모니터 앞에 앉아 정신이 나간 채로 마우스만 클릭하고 있었다. 반쯤 풀린 눈동자는 노뽕 중독이 심각한 단계에 왔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흐리멍텅한 눈동자가 가끔씩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적개심과 분노로 가득 찰 때가 있었다.
“총통 각하! 전황 보고가 있습니다.” 부관 이상호였다.
깨시민 총통의 눈이 이상하게 반짝였다. 총통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좁은 방에는 수많은 참모들이 들어서 자리가 없었다.
윤여준 참모총장이 보고를 시작했다. “깨시민 총통 각하. 새누리군이 충남과 강원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수도권 인근에 진출했습니다. 적의 일부는 인천으로 우회해 서울을 포위하려 하고 있습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총통이 입을 열었다. “안철수의 예비대로 반격을 시작하면 포위를 풀 수 있다.”
방안에 있던 모두가 총통의 발언은 그저 노뽕 중독 부작용에 따른 헛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감히 나서 지적할 용기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윤여준 참모총장이 입을 열었다. “각하. 안철수는 미국으로 도망쳤습니다. 반격은 실패했습니다.”
순간 모두가 숨을 죽였다. 총통의 눈동자가 분노와 절망감에 흔들렸다. 마침내 총통의 광기가 폭발하고 말았다. “이건 명령이다! 국민의 명령이라고! 안철수는 정권 교체의 의무가 있었어! 그런데 미국으로 도망갔다고? 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아!”
“너희 정치인들은 정치질 하면서 룸싸롱에서 여자 허벅지 더듬는 거나 배웠지! 나 깨시민은 정권 교체의 주역이었다! 수꼴들은 나의 집단지성에 공포에 떨었어! 그런데 이제 네놈들은 새누리를 이길 수 없다고 하는 게냐!”
박지원 작전과장이 입을 열었다. “각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총통의 광란은 멈추지 않았다. “너희 난닝구들이 문제야! 너희 전라도 토호들은 항상 나의 정치개혁을 발목잡았어!” 총통의 장광설에 밖에 있던 몇몇 비서들은 훌쩍거렸다.
결국 노뽕의 약빨이 떨어졌는지 총통은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래 이렇게 또 패배하는 거지.” 총통은 노통의 초상화를 잠시 바라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다들 나가있어” 총통은 다시 홀로 모니터 앞에 앉아 고개를 수그렸다.
총통 벙커 주차장은 도망치는 고위 간부들의 차로 북적거렸다. 무장 난닝구 1사단장 김한길도 그 중 하나였다. “장군님도 여길 뜨시는군요” 노웅래 대령이었다. “그렇지. 여긴 이미 끝장났어. 노빠들이 다 말아먹었지.”
“총통 각하. 조기숙 박사가 오셨습니다.” 총통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조촐한 저녁 식사였지만 활기가 넘쳤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출구조사는 믿을 수 없어. 이건 분명히 새누리의 거짓 선전이야!”
조기숙은 깨시민 총통의 장광설을 넋나간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총통이 장광설을 마치자 조기숙이 입을 열었다. “각하의 천재적인 지략에 그저 감복할 뿐입니다.”
새누리군은 총통 벙커까지 근접해 왔다. 노련한 장군들은 모든 게 끝이라는 걸 알았지만 이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만원짜리 중국제 키보드와 마우스로 무장한 깨시민 소년단원들은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다.
지나가던 깨어있지 않은 시민이 깨시민 소년단원들에게 물었다. “싸구려 키보드로 뭘 하려고?” 소년단원들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재검표 청원을 할 것입니다. UN과 백악관도 우리의 편이 되어줄 거에요!”
깨어있지 않은 시민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럴 시간에 책이라도 한줄 읽어! 이회창이 망신당한걸 보고도 몰라?” 소년단원 중 한명이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아빠는 무식해!”
깨시민 총통은 간만에 바깥 공기를 쐬러 나왔다. 깨시민 소년단원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기 위해서였다. 부관 이상호가 수여자들을 차례로 호명했다. “각하! 이 소년은 만원짜리 키보드가 고장나도록 수꼴과 난닝구 비겁자들에게 악플을 달았습니다.”
깨시민 총통은 그 소년이 가상하다는 듯 볼을 꼬집었다. “금뱃지 단 난닝구 놈들이 너만큼 용감하다면 좋겠구나” 훈장 수여를 마친 총통은 다시 벙커 안으로 들어가 모니터 앞에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