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교황, 동성애를 포용하다(?)
최근 천주교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도 하에 ‘동성애자, 동거 부부, 이혼한 사람과 그 자녀 등에게도 폭넓게 문을 열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채택하려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간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고 약자를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방한 때 ‘유민아빠’ 김용오 씨의 편지를 직접 건네받는 모습이 기억에 뚜렷이 남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또 한 번 보수적인 교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언론은 결국 이 보고서가 보수파의 반발에 가로막혀 채택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주교대회 참가 주교의 2/3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찬성과 반대가 118표와 62표로 나오면서 찬성표가 5표가 모자랐던 것. 이를 두고 경향, 중앙 등 대부분의 언론은 천주교가 동성애를 포용하려 했으나 결국 무산되었다는 논조를 보였다.
천주교에 있어 진보고 뭐고, 동성애 포용 같은 건 없다
그런데 이를 두고, 실제 주교대회에 참여한 강우일 주교가 반박했다. 애당초 동성애 환영 따위의 문구는 없었다는 것이다.
천주교엔 혼인에 대해 두 가지 절대적인 원칙이 있다. 1) 단일성 –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라는 것과 2) 불가해소성 – 한 번 맺어진 혼인관계는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동성애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 아니므로 혼인으로서 포용될 수 없다. 이혼 역시 한 번 맺어진 혼인관계가 해소될 수 없다는 점에서 포용될 수 없다. 만일 정말 동성애 포용이 최종문서는 물론 중간보고서에서라도 채택되었다면, 이는 혼인에 대한 천주교의 기본 교리를 뒤흔드는 대사건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사실, 가톨릭은 동성애 뿐 아니라 성관계에 대해 대단히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한 예로, 꽤 오랫동안 논쟁거리가 되었던 피임 문제가 있다. 명백히 ‘피임을 의도하는 행위’는 배격되어야 하며, 모든 부부 관계는 남녀가 하나 되는 신성한 결합으로서이자 자녀 출산의 목적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오직 피임이 가능하다면 이는 부부 사이에서, 책임 있는 양육을 위한 자녀 계획의 일환으로서 배란주기를 이용한 피임법을 시도할 때만 가능하다. 그 외에 허용되는 피임은 금욕뿐이다.
이런 종교가 동성애를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 낭설이다.
천주교가 동성애를 환영할 뻔 했다는 오해는 그럼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이는 천주교가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분리해서 본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동성애는 나쁘다, 하지만 동성애자는 나쁘지 않다
동성애는 죄이므로, 천주교는 가증스런 동성애자들을 돌로 쳐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사랑의 종교를 표방하는 기독교가 그럴 리가 없다. 천주교는 동성애자들을 포용하는 태도를 꽤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동성애 ‘성향’은 선도 악도 아니다. 교회는 동성애자들을 포용해야만 하며, 그들을 단죄하거나 처벌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동성애 ‘행위’를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동성애는 분명한 죄악이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성서의 진실이다. 실제로 남자와 남자가 동침하고 여자와 여자가 동침하는 것은 가증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일어나지 않은 죄로 인하여 사람을 단죄할 수는 없다. 동성애자들이 동성에 대해 욕구를 갖게 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더할 수 없을 시련이다. 따라서 그들을 차별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을 포용하고, 그들이 자신의 욕구를 이겨내고 정결을 지킴으로써 주의 뜻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진보적 시각은 여전히 소수
이건 지금 수십년 째 지켜오고 있는 천주교의 기본 교리다. 천주교는 분명 동성애자를 포용하지만, 어디까지나 동성애를 하지 않는 동성애자만 포용한다.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보적 이미지가 보수적인 천주교회를 뒤흔든 것처럼 얘기하지만, 본질적으로 천주교가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그 이미지는 천주교에 덧씌워졌다. 특히 그 행보는 한국 개신교 일부 교단의 비종교적인 행태와 대비되며, 천주교가 그 어떤 종교보다 진보적인 종교인 것처럼 여겨지는 경향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천주교회가 일부 진보적인 행보를 보일지라도, 이는 지독한 보수성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의 극히 제한적인 움직임일 뿐이다. 진보적 시각은 여전히 소수이며, 천주교는 쉬이 그 시각을 바꾸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분리하는, 종교 외부에서 보기엔 모순적인 결론을 내리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