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의 키워드는 ‘융합’이다. 융합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편견 없는 시각으로 관찰하고, 타인의 의견을 최대한 들으려 해야 한다. 무엇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를 가능하게 해 주는 심적 기제가 바로 ‘자존감’이다.
‘유능하다는 느낌’ ‘사랑받는다는 느낌’만으로 족한 자존감은 ‘팩트’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다. 그래서 인재가 되려면 스펙보다는 관점, 즉 마인드가 중요하다. 여기 자존감을 높여주는 심리학책 7권을 소개한다. 순서는 최대한 커리큘럼을 고려했다.
1단계: 시작은 부담 없는 대중서로
1. 캐롤 드웩, 『성공의 새로운 심리학』(2011)
캐롤 드웩은 스탠포드대학 교수로 ‘마인드세팅’ 이론(성장마인드 vs. 고착마인드)으로 현재까지 명성을 떨치고 있다. EBS 다큐를 통해서도 수차례 소개될 만큼 대중적 활동도 왕성하다.
이 책의 강점은 각종 심리학적 증명을 쉽게 풀어냈다는 데 있다. 타 전문가에게 보기 어려운 능력이다. 게다가 강력한 통찰을 준다. 100페이지만 읽어도 단순한 신념 하나가 인생의 방향을 돌려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후배들에게 자주 선물하는 책이며 돈이 많으면 전국의 교사, 학부모, 학생, CEO에게 다 뿌리고 싶을 정도로 강력 추천하는 책이다.
2. 이무석, 『나를 사랑하게 하는 자존감』(2009)
저자가 정신과 의사인 만큼 사례가 충실한 책이다. 세 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다. 특히 자존감의 힘을 열등감을 중심으로 풀어낸 점이 돋보인다. 공감하기 편하다. 다 읽고 나면 드웩 교수와 이무석 박사가 결국 같은 얘기를 다른 방식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3. 최인철,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프레임』(2007)
프레임은 ‘마음의 창문’이다. 사이즈와 색깔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자신에 대한 판단 역시 마찬가지다. 자존감이라는 프레임을 갖추면 성장 마인드는 자연스레 따라온다. 무엇이 나에게 이득이 되는지 선명해지기 때문에 자존심 따위는 하찮게 여겨진다. 저자의 이론, 경험이 녹아 있지는 않지만 프레임 이론을 이보다 쉽게 쓴 책은 못 봤다.
2단계: 이론적 깊이가 필요하다면 대가들을 만나봐라
4. 하워드 가드너, 『다중지능』(2007)
하워드 가드너는 하버드대학 교육심리학과 교수로 70년대 다중지능이론을 주창한 인물이다. 고착 마인드의 뿌리인 IQ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된 연구가 1980년대부턴 세계 교육계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심리학 이론으로 출발했지만 교육계에서 열렬히 지지를 받고 있다.
다중지능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한다. 대표적인 예가 수영챔피언 마이클 펠프스다. 그는 어릴 때 재능도 없고 집중력마저 떨어진다는 평을 자주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집중력의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읽기 만만한 책은 아니다. 그래도 명색이 대중서이니 일독을 권한다.
5.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의 즐거움』(2005)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시카고 대학 심리학 교수로 몰입이론의 창시자다. 그의 이론은 국내에서도 십여 년 전 한창 떠오른 적 있다. MB의 영어몰입교육은 그때 나온 괴물로, 이후 몰입이론의 껍데기만 카피해서 나온 것이 들통나며 지금은 거의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너무 낮지도 않은 너무 높지도 않으면서 도전할만한 목표를 세워라.
책을 읽다 보면 자기계발서의 성격도 다분히 가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쉽다고 하기는 뭣한데 그런대로 읽힌다. 주옥같은 명문에 수시로 밑줄을 긋게 된다.
6. 에드워드 데시, 『마음의 작동법』(2011)
무엇이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에드워드 데시는 동기이론의 대가로, 당근과 채찍으로 대표되는 행동주의 심리학의 패러다임을 제대로 뒤집으며 1970년대 파란을 일으켰다. ‘자기결정성’ 이론(자율성/유능성/관계성)은 지금 나오고 있는 내적동기 이론의 모범이 될 정도로 심리학계에서는 주류다.
사례도 꽤 있지만 약간 딱딱할 수 있는, 다소 학술서에 가까운 대중서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한 일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는 메시지를 집중적으로 증명한다. 내적 동기 이론은 내가 신념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이론이기도 하다.
7. 에이브러햄 매슬로, 『존재의 심리학』(2005)
1950년대까지 심리학계의 양대 산맥이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파블로프의 ‘행동주의’를 뛰어넘어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한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시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이론은 최근 IT와 경영계에서 재조명받았다. 이 책은 ‘욕구단계론’부터 매슬로의 이론을 집대성한 책이다.
그의 후예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XY 이론’을 만든 맥그리거는 대놓고 저작권자가 매슬로라고 했고, 셀리그먼의 ‘긍정심리학’이란 용어도 매슬로가 처음 사용했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의 중요한 아이디어를 학부 때 읽은 매슬로 책에서 배웠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기도 했다. 단점이라면 지금까지 소개한 책 중에서 가장 어렵다는 점이다.
방송 실습생과의 추억과 자존감
“저 책장에 꽂혀 있는 책 보이지? 모조리 꺼내서 목차만 복사해라.”
이것이 방송 실습생 K를 향한 나의 첫 지시였다. K는 소위 명문대 졸업반으로 PD 지망생이었다. 게다가 추천한 지인으로부터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소리까지 건네 들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K가 쭈뼛거리며 책을 내민다. “저… 세로로 복사할까요? 가로로 복사할까요?”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한마디 했다. “가로로 해라.”
스펙 좋은 신입사원, 과연 일은 얼마나 잘 할까? 아래는 한 강연에서 굴지의 IT기업 대표가 한 말이다.
“익숙한 문제가 주어지면 빠르게 잘 해결하지만 처음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할 때는 아주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K에게 복사 과제는 익숙한 문제가 아니었던 셈이다. ‘혹시 잘못 복사해서 헛짓하거나 욕먹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애당초 비판의 싹을 잘라내고 가야겠다’는 소심한 다짐으로 이끈 것이다. 그 기회비용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다. 더 큰 비용은 이런 습관이 누적되면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은 물 건너간다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 자존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