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 언론 보도에 어떤 문제가 있나?
이번 카톡 관련 논쟁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법률용어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점이다. 보도와 토론은 너무 혼란스러웠고, 결과적으로 마치 정부의 불법 사찰과 같은 모양새로 이어져 버렸다.
2.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면 거절할 수 있나?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면 이를 거절할 수 없다. 영장이 날아와도 절대 대화내용을 넘기지 않을 수는 없다. 실제 영장에 기재된 문구를 보면 ‘압수·수색·검증 영장’이라고 되어 있다. 즉 대물적(對物的)인 강제 처분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카톡의 대화내용을 압수한다는 것은 카톡의 서버에 남아 있는 전자기 기록에 대해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당연히 기본적인 정보는 소유 또는 관리하는 자가 넘기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압수수색영장은 경찰이 신청하고 검사가 청구하여 판사가 발부하는 것이다. 그냥 경찰이나 검사가 복사지에 영장이라고 휘갈겨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즉, 압수수색영장은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게 해주는 근거이다. 물론, 영장을 발부받기 위해서 수사기관은 왜 필요한지 기재하고, 관련 증거 자료를 첨부해야 한다.
오죽하면, 군대 오라고 부르는 입영통지서도 ‘영장’이라고 부르겠나?
3.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데도, 왜 영장이 발부될까? (발부: 판사가 영장을 써줌)
수사에 그 필요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생활’ 혹은 ‘프라이버시’라는 헌법적 권리가 침해된다고 얘기한다. 맞는 말씀이다. 침해가 된다. 그러나 우리 헌법에서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범죄수사가 위와 같이 국가안정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라는 가치를 위해 이뤄지는 것이다 보니, 기본권을 제한(혹은 침해)하게 되는 것이다.
4. 카톡은 감청에 대한 허가서에 협조하지 않겠다는데?
감청이라는 것은, 흔히 말하는 ‘도청’ 혹은 ‘엿듣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법적 용어로는 ‘통신제한조치’라고 하는데, 통신비밀보호법 6조 등에 근거하여 ‘범죄수사를 위한 통신제한조치’를 하는 것이 바로 감청이다.
여기서부터는 추측인데, 카톡은 애초에 통신제한조치를 위한 장비나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근데 어느 수사기관이 통신제한조치허가서라고 떡하니 들고 오니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런 시설은 없습니다만, 차라리 저희가 매일 일정한 시간에 대화 내용을 뽑아주면 어떻겠습니까?” 이랬을 것 같고, 수사기관에서도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그렇게라도 하시구려” 이랬을 것 같다.(그냥 내 머리속 소설인데, 정말 그랬을 것 같긴 하다)
즉 카톡이 감청에 응하지 않겠다고 한 이 이야기는.. “우리 감청 장비 없으니, 그냥 지난번처럼 그런 변칙으로도 안 해줄 거야.. 앞으로 수사기관 니네 허가서 그거 들고와 봐야 소용 없으니 뭐라 하지마” 이런 선언으로 보인다.
5. 감청에 응하지 않으면 카카오 애들 맞아 죽는 것 아닌가?
압수수색 영장과 감청영장은 다르다. 감청영장의 경우 법률상 ‘전기통신사업자의 협조의무’가 규정되어 있지만, 비협조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 이는 협조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경우에도 처벌을 규정하는 불합리를 없애기 위해서이다. 한마디로 애초에 감청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 감청에 응하지 않아도 수사기관에서 뭐라 할 수가 없다.
6. 그러면 정말 감청 위험은 없는 것인가?
물론 이런 경우에도 수사기관에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카톡 사용자가 대화를 매시 매초마다 지우지 않는 한, 수사기관이 당번 세우면서 12시간마다 영장 신청해서 발부 받아 집행할 수는 있다. 물론 실무상으로 그 두툼한 사건서류 들고 법원 왔다갔다 하는 것이 정말 짜증나고 귀찮고 토할 것 같을 것이다. 조두순 정도 되는 범인이 아니라면, 그렇게 열과 성을 당해 매달리지도 않을 것이다.
7. 그래도 정부가 작정하고 감청하려 들면, 압수수색 영장 발부는 어렵지 않을 텐데?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이런 절차가 법원의 영장이나 허가서 발부가 아니라, 그냥 검찰이 보고 싶으면 마음껏 뒤벼보고 그런 것이라 생각해서 이슈가 커진 것 같다. 통신제한조치(감청의 법적 용어)라는게 아무 범죄나 대상으로 막 되는게 아니다. 특히 이번 검찰에서 언급한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유포는 그 대상 범죄조차 아니다. 인터넷에 대통령 욕 올렸다고 감청할 수가 없다. 가능한 건 아래와 같다.
내란, 외환, 국교, 공안, 폭발물 , 공무상비밀누설, 공무원수뢰, 도주 및 범인은닉, 방화, 아편, 통화, 유가증권, 체포감금, 협박, 약취유인인신매매, 강간추행, 신용업무경매, 권리행사방해, 절도강도, 사기공갈, 군형법의 이적-지휘남용-항복도피-수소이탈, 국가보안법, 군사기밀보호법, 마약, 폭처법 중 조직구성, 총포도검화약, 특정범죄가중처벌 중 몇십억 해먹은 인간이나 저축가지고 장난친 놈 등등
이처럼 정해진 항목에 대해서만 통신제한조치가 가능하다. 악성코드를 뿌려서 나라 전체에 디도스를 뿌려도 통신제한조치가 안된다. 또 씹알단 규모의 인력을 꾸려 정권 욕하는 댓글을 달아도 감청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8. 그러면 카톡이 감청 응하지 않는다 하니 모두가 해피한 것인가?
조금 다르게 생각을 해보자.. 내 주위 누군가가 살인, 강도, 강간과 같은 강력 범죄, 혹은 보이스피싱, 파밍 같은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 경찰서로 달려가 꼭 잡아 달라고 매달리는데, 내가 그들에게 범인을 추적할 단서로 제공할 만한 것은 카톡 메신저 아이디 밖에 없다.
근데 경찰이 “아 씨바… 지난번에 그 난리 땜에 카톡 데이터 저장 기간이 짧아져서, 그 사람이 범행을 당할 당시 기록은 깨끗하게 날아가 버렸고, 도저히 범인을 잡을 방법이 없네…” 라고 말할 수 있다. 즉 프라이버시권이 과하게 보호될 경우, 역으로 국가안정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에 해가 될 수 있다.
9. 그렇다면 논의가 어떻게 흘러갔어야 한다고 보는가?
이번 논의에서 조금 아쉬운 게, 카톡의 대화 내용을 압수해서, 수사기관이 흉악범이나 지능범을 검거하는데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에 대해 전혀 이야기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당하고 당해도 또 터지는 현실에서 국민의 불안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필자도 종종 해외 정보기관이 내 하드디스크의 은밀한 부분을 원격으로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일 때가 있고, 악몽을 꾸기도 한다.
하지만 좀 더 절차를 엄격히 하고, 이런 정보에 부당하게 접근하거나 열람한 경우, 다시는 이 사회에 발 붙이지 못하게 강하게 처벌하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보너스. 정부가 하는 짓 보면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나?
검찰이 인터넷상 허위사실 유포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하면서 포털사 주요 직원들을 불렀던 것이 무리수이긴 했다. 검찰이야 그냥 절차대로 영장을 발부 받아 자료 제공을 요청하면 그만인 것을, 무슨 실익이 있다고 거기 그들을 불렀던 것일까? 그냥 사진 촬영을 하고 모양새를 잡으려다 보니 조금 무리했던 것 같다. 다음부터 그렇게 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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