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이 글은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이 개인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필자 동의 하에 가져온 글입니다.
2010년 5월,
급성림프성백혈병으로 3년째 치료를 받던 9살 종현이는 유지 항암치료 12사이클 중의 마지막 cycle을 시작하기 위해 입원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항암제를 투여받는 순간 각각 정맥과 척수로 주입되어야 할 두 개의 항암제가 서로 뒤바뀌어 주입되었습니다. 밤 10시경, 피곤에 지친 전공의가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2개의 주사를 한꺼번에 놓다가 주사가 뒤바뀐 것입니다.
정맥주사로 들어가야 할 항암제인 빈크리스틴(Vincristine)이 종현이의 척수로 주입된 이후 종현이는 말로 표현 못할 통증을 호소했고 빈크리스틴이 척수를 녹이면서 생기는 특징적인 증세인 상행성 마비가 진행되었습니다. 종현이는 주사맞은지 24시간 후 중환자실에 옮겨졌으며 그 다음 날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인공호흡기를 달았고 결국 주사를 맞은지 10일만에 종현이는 사망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급성뇌막염에 의한 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종현이의 아버님은 바둑기원을 운영하시는 분이었고 어머님은 주부셨습니다. 두 분은 종현이의 죽음과 관련한 의문이 들었지만 전문지식이 없는 분들이 종현이의 죽음이 의료사고로 인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종현이는 부검도 받지 않았었기 때문에 진실을 밝히는 일은 더욱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평범했던 부모님들은 자식의 죽음 앞에 더 이상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눈물겨운 노력에 여러 조력자들이 힘을 더하기 시작했습니다.
종현이 부모님이 진실을 규명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 그 이유는 단 하나였으며 그에 대해 어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사가 뒤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알아보니 그런 사고가 종현이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고 종현이 이전에도 이미 여러 사고들이 있었더라구요. 그런데 한 번도 이것이 문제된 적이 없었습니다. 이전에 누군가가 단 한 명이라도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해서 안전장치가 마련되었더라면 종현이가 그 일을 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똑같이 이 문제를 덮어버린다면 종현이 다음에 똑같은 일을 당하는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겠어요? 그래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종현이 부모님이 진실규명을 포기하지 못한 이유, 그것은 ‘같은 희생자가 또 다시 나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그것은 저를 포함한 여러 조력자들이 힘을 합해 적극적으로 도왔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2년 후인 2012년 8월, 병원은 공식적으로 의료과오의 개연성을 인정하고 종현이 부모님께 사과했습니다. (병원이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사고의 개연성을 인정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계획을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병원측의 뒤늦은 용기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빈크리스틴 주사가 척수로 주입되는 경우 치사율은 100%에 이르며, 빈크리스틴의 오투여에 의한 사망사고는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빈크리스틴 간호사제도(빈크리스틴을 주사할 때 간호사로 하여금 참관하여 이중 체크를 하도록 하는 제도), 빈크리스틴 포장의 변경(포장을 뜯을 때 여러차례 경고문구가 나오도록 하는 것), 빈크리스틴과 척수주사를 장소를 분리하여 주사를 하도록 하는 제도, 빈크리스틴 전담 의사를 두는 제도 등 사고를 막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논의되고 시행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의료진들이 경각심을 갖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한 결과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시작입니다.
사실상 종현이 사고의 주범은 저수가로 인해 충분한 의료진을 가용할 수 없는 열악한 의료환경입니다. 저가노동자가 되어버린 전공의가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면서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주사를 놓아야 하는 환경, 이를 이중점검할 간호인력을 두기 어려운 의료환경이 사고를 초래한 근본적 원인 중 하나입니다.
종현이의 죽음은 ‘안전한 의료환경’에 대한 사회적 이슈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국회에 들어가서 곁길로 새어버리기는 했지만 환자안전법(종현이법)이 논의되는 시발점을 만들었습니다.
종현이는 억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모님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자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자를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경제적인 대가를 바래서도 아니었습니다. 종현이 부모님들의 관심은 오로지 같은 죽음이 재발되지 않도록, 그럼으로써 종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함께 애통해하였습니다. 저는 세월호 사건이 대한민국을 재진단하고 보다 나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생각했고 그것이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도록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의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월호 사건은 국가적 재난사건이 아니라 정치적 사건으로 그 성격이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9.11사태가 벌어진 이후, 미국정부가 주안점을 두고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인 것은 9.11사태의 책임자를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9.11사태와 관련한 정확한 백서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중대한 사건이 일어난 후, 책임소재를 가리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는 방지책을 강구하는 것 아닐까요.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정과 부패, 그것을 진단하고 끊어냄으로써 제2의 세월호를 막자는 거대한 사회운동이 시작되어야 할 지금, 세월호특별법라는 법 하나가 정치쟁점의 중심으로 부각되고 정작 초기에 일었던 사회 전반의 대대적인 반성과 개혁운동은 점차 잊혀지고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의 질적 구조적 개혁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세월호를 이렇게 무의미하게 떠나보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이렇게 헛되게 흘려 보내서는 안될 것입니다.
새삼 종현이 부모님이 다시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