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주: 그리스의 의학자인 존 이오아니디스 교수가 몇년 전 기고한 글을 Project Syndicate가 다시 소개해 여기에 번역해 소개한다. 다소 의역과 생략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 읽어주기 바란다. 글 가운데 특히 과학적 발견을 마치 절대적인 인류의 진실인양 교조적으로 떠받드는 일은 과학적 원리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과학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크게 공감한다.
흔히 의학에서 새로운 발견은 대단한 연구의 목표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오늘날 장비와 여건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새로운 발견이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엄지손톱 크기의 장비로 소량의 혈액을 분석하기만 해도 수백만 가지 측정을 해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던가. 시대가 이처럼 급속히 변화하는 가운데 이제 수십 수백만 개의 생물학적 인자들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판별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오늘날 의학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그러한 수많은 발견을 검증하는 일이 됐다. 이 과정에서 항상 잊지 말고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로 검증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데이터만 선정해 시험한 뒤 입맛에 맞는 내용만 발표하는 일이다. 이런 유혹에 타협한다면 의학계에는 실로 엄청난 양의 거짓된 발견만 난무하게 된다.
더욱 문제는 이런 거짓 발견이 판을 치는 가운데 진정으로 중요한 발견은 파묻혀 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아찔한 위험성은 이미 수많은 조사 결과 우리 주위에 널린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과학 연구에 있어서 대부분의 연구 결과물은 결국 부정될 운명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발견물이 논박당하고 부정되는 이 과정이야말로 과학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필수 과정인 것이다.
아무리 과학적으로 대단해 보이는 증거물일지라도 이를 도그마(교조)로 여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며 어디까지나 그 증거물은 수많은 의심과 검증 과정을 거치는 동안 “잠재적인” 정보일 뿐이라고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
신뢰도가 낮다고 해서 혼자만 알고 널리 전파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과학적 사실들은 사실 알고 보면 완벽하게 입증되지 못한 것들도 많다.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다만 현실이 그렇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점만은 인식해야 한다. 과학은 신성한 대상이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에서 진정한 발전은 쉽게 얻어질 수 없다. 우선 오랜 시간 끊임없는 노력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자세, 그리고 적정한 자본력 등 물질적 지원과 포기하지 않는 헌신이 필요하다.
과학이 발달하려면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는 독립된 과학자들의 철저한 검증과 재실험이 반드시 요구된다. 과학적 지식이란 최종적인 것이 있을 수 없다. 오늘 완벽해 보이는 과학적 지식이라도 앞으로 끊임없이 진화/변화할 수 있다. 이런 점이 바로 과학의 매력이고 이런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사고의 자유는 고양되는 것이다.
많은 실력자들에게는 이런 점들은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겠지만 알고 오늘날 이런 저런 과학적 정보가 유포되는 과정에서는 이런 중요한 원칙들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인간 사회에는 부풀려진 정보가 끊임없이 떠돈다. 물론 인간 활동에 있어 이런 과장하려는 의도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예계, 법조계, 주식시장, 정계, 스포츠계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러한 과장된 정보가 난무한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문에서 이러한 과장된 정보의 유통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해도 과학계에서까지 이렇게 “보여주기식” 행태가 만연한다면 과학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과장의 행태는 과학적 인식의 핵심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과학적 인식을 가능케 하는 핵심 가치는 바로 비판적 사고와 증거에 대한 조심스런 평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원문: KoreaVi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