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란과 호갱님 사이, 스마트폰 유통의 현실
현실을 짚어보자. 단말기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스팟’이니 ‘버스폰’이니 ‘대란’이니 하는 이름으로 가끔씩 통신사가 보조금을 왕창 풀어 폰을 공짜로 뿌리기 때문이다. 온라인 일부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가 유통되기 때문에, 이런 정보에 어두운 사람은 비싼 돈을 치를 수밖에 없다. 똑같은 아이폰 5s를 사는데 누구는 공짜로 사고 누구는 68만원에 산다.
단통법은 이런 현실을 개혁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미래창조과학부는 ’10월부터 보조금 대신 요금할인 선택이 가능해지고, 저가 요금제 가입자도 보조금을 차별받지 않는다’고 그럴듯한 장미빛 청사진을 내놨다. 말이야 맞는 말이다. 공산품의 가격이 이렇게까지 들쭉날쭉한 경우가 거의 없다. 싸게 파는 온라인 쇼핑몰, 마트 따위를 찾아다니는 것 정도라면 모르겠는데, 공짜와 68만원은 좀 심하지 않은가.
돈에 여유가 있거나 신제품을 사고 싶은 사람은 좀 더 비싼 돈을 주고 갤럭시 노트 4나 아이폰 6 플러스를 사고, 여유가 없거나 신기능에 그닥 관심이 없는 사람은 더 저렴하게 갤럭시 노트 3나 아이폰 5c를 살 수 있는 시장. 소비자가 정보를 찾아 헤매지 않더라도 적어도 뒤통수를 맞을 일은 없는 시장. 이런 시장을 만들기 위한 단통법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다.
모두의 호갱님化? 이상한 단통법
그러나 정말 단통법의 목적이 그것인가? 어쩐지 다른 생각이 든다. 그네쨔응은 지난 2월 17일 미창과부-방통위 합동 업무보고에서 “스마트폰을 싸게 사려고 추운 새벽에 수백미터 줄까지 서는 일이 계속 되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은 “그러니까 누구나 싸게 살 수 있게 하라”는 뜻으로 여기겠지만, 사실 이 발언의 방점이 “새벽에 줄 못 서게 하라”는 데 찍혀 있었다면 어떨까?
악의적인 해석일 수도 있지만, 단통법의 실제 내용이 그렇다.
단통법의 보조금 상한은 30만 원. 아이폰의 출고가는 81만 4천원(플래그십 모델, 16GB 기준)이다. 보조금은 실제 납부 요금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데, 실제 납부 요금이 7만 원 이상일 때만 30만 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으며, 그 이하의 요금제를 사용할 경우 보조금도 비례해서 깎인다. 따라서 아이폰은 7만 원 이상의 요금을 실제 납부해야(요금할인 혜택을 고려하면 실제 사용 요금제는 9만원대 수준이 될 것이다) 할부원금을 51만 4천원까지 낮출 수 있는데(이것도 최대한 보조금이 풀렸을 때 얘기고, 요즘 도는 루머로는 70만원 수준이 될 거라는 얘기가 있다), 이는 미국(199달러)의 2배 이상이다. 하물며 0엔에 풀리는 일본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값이다.
누구는 비싸게 사고 누구는 싸게 사는 단말기 유통 구조의 개혁이 목적이었다면, 곧 시행될 단통법은 무용하다. 모두가 단말기를 가능한 한 최대한 비싸게 사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정작 유통 구조 개혁에 유효하다 할 보조금 분리공시제(통신사 보조금과 제조사 보조금을 따로 공시하는 제도)는 제외되었다.
아니, 사실 분리공시까지도 필요하지 않다. 출고가라는, 진짜로 냈다가는 그대로 호갱님 되는 괴수치를 걷어치우고, 미국이나 일본처럼 약정시 지불해야 할 실제 단말기 값을 투명하게 공시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단통법에도 보조금을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긴 했으나, 보조금과 요금할인, 위약금 제도 등이 매우 복잡한데다 출고가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설정되어 있어 효과가 의심스럽다.
정부와 방통위의 움직임은 보조금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단속, 단말기 보조금 자체에 대한 위약금 제도 등에 맞춰져 있다. ‘호갱님’이 되는 길은 오히려 더 활짝 열어두고는, 대신 싸게 살 수 있는 길만 봉쇄하는 게 단통법의 골자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싸게 사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비싸게 사는 원인이라는(…) 식의 논리도 가능하긴 하지만, 통신사의 큰 순익 등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낮다.
너희에겐 시련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음모론을 하나 꾸며보자. 단통법을 만든 목적이 ‘모두가 적절한 값에 이동통신을 이용할 수 있게’ 하려던 게 아니라면 어떨까? 통신사와 제조사의 이익을 보전해주려 하는 것이라는 음모론도 재미있겠지만, 이런 정부-기업 밀약론은 좀 식상한 감이 있다. 아예 더 화끈한 음모론을 내세워 보자. 정부와 방통위는 ‘애새끼들이 시도때도없이 스마트폰을 갈아치우며 낭비를 하는 것’이 보기 싫었던 것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단통법이 시행되면 단말기 값만 비싸지는 게 아니라 약정 중간에 단말기를 교체할 경우 위약금 부담도 크게 늘어난다. 현재 1.4년에 불과한 스마트폰 평균보유기간을 2년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단통법의 가장 가시적인 효과일 것이다.
너무 허황된 음모론이라 여기신다면, 이미 방통위원장이 전철에서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문화를 두고 ‘사회의 웃어른으로서’ 옳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망언을 한 적이 있었다. 국민들의 과소비 풍조를 사회의 웃어른으로써 교정해야 한다 여긴다 한들 그리 이상할 것만은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그네쨔응의 발언도 해석할 수 있다. 그거 휴대전화 좀 사겠다고 새벽에 줄이나 서고 있는 게 꼴보기 싫은 것일지도 모른다.
위악적인 음모론이라 얘기하긴 했지만, 스마트폰 평균보유기간을 늘리는 것이 단통법의 목적 중 하나임은 자명하다. 실제로 점점 짧아지는 스마트폰 평균보유기간이 문제시된 적도 많고, 사실 나는 이게 그렇게 나쁜 방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정책의 우선순위를 헷갈린 게 아닌가 싶을 따름이다. 무엇이 먼저인가? 통신비 부담을 줄이고 시장을 건전하게 굴리는 것? 쓸데없이 휴대전화 못 바꾸게 막는 것?
문참극 님이 총리였다면 이렇게 일갈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너희들은 술먹고 스마트폰을 허구헌날 잃어버리고 깨먹는 민족이다. 너희에겐 시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