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신입사원들 카드섹션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회장과 사장들 앞에서 신입사원들의 충성심과 단합을 과시하는 자리일 텐데요. 문화적인 충격을 안겨줬죠. 멀쩡한 대학 졸업하고 국내 최대 대기업에 취업한 젊은이들이 왜 저러고 있담, 이런 생각도 들고 말이죠. 조회 수가 100만건이 넘고 일부 언론에 기사로 소개되기도 했는데 대부분 삭제되고 지금은 해상도가 낮은 복사본만 남아있습니다.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좀 더 적나라한 이런 글도 남아있습니다.
“연습은 아침 먹고 8신가 9시에 시작해서 저녁 11시 전후에 끝난다. 12시 넘어서 끝난 적도. 여자들은 화장실이 하나 있는 콘도에 7명 정도가 함께 생활했는데, 화장실 하나로 씻으면 10분씩만 샤워해도 1시간10분이다. 그나마 10분만에 끝나지도 않고 마지막 씻는 사람은 1시간 반 넘게 기다리는 건데. 씻고 머리 말리고. 그럼 잠드는 시간은 2시 3시.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6시. 그렇게 2주 동안 4시간 내외로 자고 나면 진짜 죽을 꺼 같다.”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카드 섹션 들었다 올리고 대열을 바꿔서 뛰어다녔다가 율동도 하고. 손발 얼굴은 까맣게 타고. 사람들은 얼굴에 수건을 칭칭 감고 있다. 안 탈려고-_-;;; 쉬는 시간마다 그늘로 뛰어가서 썬크림 바르기는 필수. 대신 동기들이랑 몇주일 동안 먹고 자고 뛰어다니고 수다떨고 그런 재미는 있다. 그 고생을 같이 하니 다들 얼마나 또 친해지겠어. 그리고 이렇게 연습한 카드섹션과 율동을 응원전이라는 이름으로 본 대회에서 이틀에 걸쳐 경합을 벌인다. 2주에 걸쳐 연습한 카드섹션은 얼마나 멋있는지 보지 않으면 모른다. 카드섹션에서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핸드폰이 진동을 하고, 레이스 옷을 입은 무희가 캉캉 춤을 춘다. 난 이런 게 가능한지… 정말 몰랐다-_-;”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선배들과 동기들은 또 가고 싶다고 난리들이다. 힘들었지만 사무실 출근하는 것보단 그 때가 좋았다고. 추억이라고. 그런데 난 절대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물론 일하는 것보다 재미가 있을 수는 있지만 또 경험하고 싶지 않아. 부서에 배치 받고 처음 사무실에 왔던 날의 충격은… 하얗게 쭈욱 늘어선 책상들. 쭈우우우우욱. 살짝 현기증이 일었다. 그게 첨엔 무언지 몰랐는데 수련대회를 지나고 나니까 알겠더라. 나는 그곳에서 대충 30×40 정도 되는 카드 섹션의 (10, 23) 인가 아무튼 그런 자리였다. 그렇게 커다랗게 움직이는 카드 섹션의 픽셀 하나. 그건 나를 무진장 초라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거대한 무언가 앞에 서있는 무력함이랄까.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일반 사원은 보름 정도 합숙을 하고 행사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태스크포스팀은 2~3달 정도 합숙을 한다고 합니다.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관계자는 “해마다 해오는 것이고 교육을 받은 사원들 대부분이 공동체 의식을 느끼고 자랑스러워 한다”면서 “외부 시각으로 이상하게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픽셀 하나였을 뿐.
전직 삼성전자 직원이었던 한 블로거는 “삼성에 노조가 없는 것은 노조의 싹이라도 보이면 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잘라버리는 삼성의 노무방식의 탓도 있지만, 기꺼이 굴욕을 감수하기로 다짐한 직원들 스스로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치열한 내부경쟁과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 회사의 지속적인 감시와 통제, 순응형 인간을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교육들, 그리고 총수를 향한 충성심 강요”를 떠올리면 “삼성을 그만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는 거죠.
이 블로거 역시 이 매스게임에 참여했던 걸 끔찍한 기억으로 떠올리고 있습니다. 고참 직원이라 깃발을 들고 뛰어다니는 역할을 했는데 끝나고 스탠드에 올라와서 신입 직원들의 카드섹션을 보게 됐다고 하는데요.
“그들은 삼성마크와 이건희 회장의 얼굴을 만들어 냈다. 물론 수도 없는 그림을 그려 냈지만 이건희 회장의 얼굴이 스탠드 한 쪽 면을 가득 메우는 그 광경에 충격을 먹어 다른 그림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카드섹션이 끝나고 난 후에도 그들은 그 날 행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 각종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편을 갈라 응원전을 펼쳤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멋있다고도 하고, 역시 ‘삼성의 신입사원이야’ 하면서 감탄하기도 했다. 난 그 때 느낀 굴욕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삼성은 신입사원들에게 굴욕을 안겼고, 그 굴욕을 감수하겠다고 다짐한 이들에게 보수 좋은 자리를 전리품 나눠주듯 던져 줬다.”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삼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려고 카드섹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게 지난 5월, 벌써 다섯 달이 다 돼 갑니다. 공교롭게도 삼성전자는 2분기 말 형편없는 실적을 공개하면서 어닝쇼크를 불러왔죠. 주가를 낮춰 상속세를 줄이려는 고도의 전략이라는 의혹도 나돕니다만 삼성이라는 은둔의 왕국은 더더욱 은밀한 장벽 안으로 숨는 분위기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살아있는지 조차 의문이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죠.
군림하되 통치는 하지 않는 절대군주의 카리스마.
이건희 이후 삼성의 미래를 가늠하기 위해 몇 가지 사례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사장이라는 것이 말하는 꼴을 봐라. 도대체 뭐라 카는지 아무 것도 못 알아 듣겄다. 니는 들리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한남동 승지원에서 열린 그룹 임원 회의 도중 계열사 사장의 보고를 받다가 옆에 앉은 이학수 부회장에게 했다는 말입니다. 2005년 시사저널 기사에 실린 한 대목인데요. 보고하던 그 사장은 이마에 식은 땀을 닦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다음 갓 군대에 입대한 신병처럼 우렁차게 소리를 쳐야 했다고 합니다.
“(이 회장 얼굴이) 호랑이 상인 데다가 한번 꾸짖기 시작하면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게 혼내기 때문에 혼난 이는 나이나 직급과 상관없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구조조정본부 임원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한 임원이 야단을 맞고 혼이 빠져서 갑자기 회의실 옆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더란 일화도 전해집니다. 삼성그룹 임원이면 나름 목에 힘깨나 주고 다녔을 텐데 얼마나 긴장하고 당황했으면 나가는 문도 못 찾을 정도였다는 말이죠.
기록을 보면 아버지 고 이병철 회장도 비슷한 스타일이었습니다. 회의 때 사장들을 ‘아무개군’이라고 불렀고 경영 실적이 안 좋으면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무섭게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사장들은 어전회의라고 불렀고요. 직원들은 자조 섞인 표현으로 천황이라고 불렀습니다. 지방 출장을 할 때면 비서들이 고속도로 통행료를 미리 지불하고 대기해 회장의 승용차가 요금소에서 멈추지 않고 통과하도록 했을 정도라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이건희 회장의 회의 스타일을 볼 수 있는 몇 가지 일화가 더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회장에 취임하고 한동안 외부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명도 이때 생겼는데요. 1993년 2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장을 갔다가 갑자기 임원들을 불러 모읍니다. 이날 회의에서 그 유명한 말이 나오죠. 원문 그대로 옮겨 봅니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농담이 아니야,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봐.”
“2류 내지 2.5류, 잘 해봐야 1.5류까지는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일류는 절대 안 된다 이거야. 지금 안 변하면.”
신경질적이면서도 단호한 이건희 회장의 화법. 장장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훈시를 했다고 하죠.
삼성은 이날 강연을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라고 의미 부여를 하고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이날 훈시는 며칠 뒤 MBC에도 방송이 됩니다. 6시간 동안 말한 내용을 90분으로 줄이긴 했지만 반말을 쓰며 고압적으로 직원들을 찍어누르는 이건희 회장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재벌 회장은 저렇구나 하는 걸 국민들이 알게 됐죠. 지상파 공영방송에서 특정 기업의 내부 행사를 이렇게 비중 있게 틀어줄 필요가 있느냐는 논란도 많았는데요. 어쨌거나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이 사회적 화두가 됐죠.
이건희 회장이 1942년생이니까 쉰두 살 때였습니다. 동영상을 찾아보면 이때만 해도 에너제틱하고 펄펄 끓는 열정이 느껴집니다. 4개월 동안 해외를 돌면서 툭하면 임원들을 불러모아 열변을 토했다고 합니다. 무려 500여시간, 녹취를 떠서 교본으로 만들려고 봤더니 A4 용지 8500장이 되더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분량은 많이 줄었지만 이 교본은 10만부가 인쇄돼서 배포됐습니다. 직원들이 아침마다 1시간씩 회장님 말씀을 윤독하는 진풍경도 벌어졌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이런 말도 했다고 합니다.
“내 말을 적어도 50번 이상 반복해서 테이프를 통해 들어라. 자꾸 외울 정도가 돼야 비로소 몸에 배고 실천이 가능하게 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삼성 사람들이 그 비디오를 보면서 갖게 되는 첫 번째 생각은 이건희가 삼성의 문제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다는 데 대한 경외감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제왕처럼 군림하지만 실제로 존경을 끌어내는 카리스마가 있었다는 이야기죠.
이런 일화도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양에서 질로 전환하자”는 화두를 던져서 그룹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결국 이수빈 비서실 실장이 임원회의에서 총대를 매고 “양과 질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슬쩍 분위기를 떠봤더니 이건희 회장이 화를 내면서 티스푼을 집어던졌다고 하죠. 회의실 분위기가 얼어붙었겠죠.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이런 단호한 태도가 품질경영을 뿌리내리게 했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글쎄요.
호통경영·격노경영, 어디서 감히 말 대꾸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 본부장은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회장 시절부터 또 회장 취임 후에도 경영에 관해 많은 지적을 해 왔지만 이 지시들이 경영이나 생산현장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아 이대로 나뒀다가는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몸소 박차고 나선 것이다. 세기말적 변화를 앞두고 초일류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느꼈던 것 같았다.” 역시 꿈보다 해몽입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이른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이 시작됩니다.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구경영과 다르다는 의미일 텐데요. 이건희 회장을 중심으로 권력을 재편하는 차원에서 들고 나온 게 세계 일류 기업이라는 화려한 비전과 함께 위기의식이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면서 충격요법을 쓴 거죠. 일부러 해외에 나가 임원들을 불러 모으고 호통을 치면서 임원들에게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지 다시 확인시켜준 겁니다.
흔히 이건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두고 보이지 않게 군림한다고 말합니다. 리모컨 경영이란 말이 나왔을 정도죠.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의 표현인데요. “이건희 회장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군림하되 통치하지 아니한다는 입장을 취하며 실무 대부분의 전권을 이학수 부회장 등 전문 경영인에게 맡겼고, 이런 구조가 삼성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건희 회장 취임 초기에는 확실히 달랐던 것도 같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계기가 된 SBC 보도 영상에는 냉장고 생산 라인의 직원들이 규격에 맞지 않은 부품을 칼로 깎아내서 억지로 끼워 맞추는 장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썩었다, 완전히 썩었다”며 탁자를 내리치면서 호통을 칩니다. “암은 초기에 자르지 않으면 3~5년 내에 죽게 만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합니다. 이때부터 이건희 회장의 호통 경영 또는 격노 경영이 시작됐던 것 같습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직원 교육에서는 이런 말도 합니다. “나는 내 청춘과 재산과 생명과 명성을 걸고서 여러분들 보고 마음대로 해보라고 하는데 그 반도 못 따라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20년 전부터 해온 이야기를 안 듣고 있다. 그동안 수백 번 속아온 것이다. 정말 이런 종류의 회의는 오늘로 마지막이다.” 나를 믿고 따르라, 이런 멘탈리티는 일반적인 전문 경영인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야말로 오너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유명한 애니콜 화형식 사건도 있었죠. 1995년 3월 일입니다. 회의 도중에 휴대전화 단말기 불량이 늘었다는 보고를 받고 “고객이 두렵지도 않나, 돈 받고 불량품을 팔다니”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건 아무래도 윤색이 된 것 같고요. 시중에 나간 제품을 모조리 회수해 공장 사람들이 전부 보는 앞에서 태워 없애 버리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실제로 구미 공장에서 휴대전화와 키폰, 팩시밀리 등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불을 지르는 화형식을 거행하죠.
이건희 회장의 품질경영을 알리는 이벤트적 성격이 강했지만 효과는 상당했습니다. 실제로 제품을 회수했고 개발을 중지하고 생산라인을 세웠니까요.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혼이 들어간 제품이 불에 타는 것을 보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교차하더군요. 그런데 희한하게 타고 남은재를 불도저가 밀고 갈 때쯤 갑자기 각오랄까, 결연함이 생깁디다. 그 불길은 과거와의 단절을 상징한 겁니다.”
무한반복해서 듣는 회장님 말씀에 세뇌될 정도.
삼성전자 부사장 출신의 에릭 김은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삼성전자는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조직에 군사문화가 여전하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승협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겉으로 보이는 삼성은 인재경영과 자율경영, 책임경영이 정착돼 있고 전문 경영인에 의한 분권적 조직구조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구멍가게식 소규모 기업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전제적인 조직운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삼성전자 전직 임원이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도 있습니다. “천왕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신에 버금간다. 마찬가지로 이건희 회장의 권위도 신격화돼 있다. 하지만 직접 통치하지는 않는다. 통치는 구조조정본부가 한다.”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처음 입사하고 난 뒤 일주일 동안 이건희 회장 어록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계속 틀어주더라, 다 보고 났더니, 이 회장이 마치 종교집단의 교주로 느껴졌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 팀장 출신의 김용철 변호사가 공개한 “이건희 회장 지시 사항”이라는 문건을 보면 이건희 회장이 굉장히 꼼꼼하게 때로는 시시콜콜하게 경영 전반을 직접 챙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3년에 작성된 문건인데요. 자세히 들여다 보면 회장님 지시사항이란 게 다분히 선언적이거나 규범적이고 대부분 인상비평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죠. “소니 DVD플레이어를 써보니 열이 많이 나서 디스크가 저절로 튀어나오는 등 문제가 있더라, 우리 제품은 소비전력을 줄여서 그런 일이 안 생기도록 만들자”. 그리고 며칠 뒤에는 “데논 플레이어를 써봤더니 열은 많이 나도 문제가 없더라, 벤치마크 테스트를 해보자, 뒤로 감기나 빨리 감기 같은 기능은 있는데 써먹을 수가 없다, 왜 VTR처럼 만들지 못하나”, 이런 이야기들이 지시사항에 꼼꼼히 담겨 있습니다.
서울대 호암생활관 관장에게 관련자를 보내서 시설 보수 등 개선점을 들어보고 지원방안을 검토해보라는 지시도 있고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분당 플라자를 매각하거나 위탁경영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합니다. 말레이시아 쌍둥이 빌딩을 지은 인력의 반이 퇴사했다는데 다시 스카웃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하고 심지어 곰팡이나 진드기를 박멸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해 보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합니다.
궁금한 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삼성의 놀라운 성장이 과연 이건희 회장의 탁월한 경영 능력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이건희 회장이 큰 그림을 그리면서 임원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잘 잡아줬기 때문일까요. 이건희 회장의 취향에 따라 무리하게 자동차 사업에 진출했다가 크게 말아먹었던 것처럼 자칫 곰팡이나 진드기 박멸 사업에 뛰어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이건희 회장이 직접 지시를 내려 휴대전화 단말기의 통화(Send) 버튼이 맨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거나 두 개의 디자인을 합쳐 이른바 이건희 폰이 탄생했다거나 하는 일화도 전해집니다만 실제 있었던 일인지 삼성 홍보팀의 소설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추론할 수 있는 건 이건희 회장이 자신이 그룹 전체를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믿고 있을 거라는 겁니다. 뛰어난 영도력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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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한국의 경제학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