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대에 대해 글을 쓰자니 어느 50대 어르신이 내 지른 말이 귀에 쟁쟁하다.
“정작 박정희 시대를 산 것은 우리들인데 20-30대가 뭘 안다고 박정희를 욕하나?”
뭐, 그리 볼 수도 있겠다만 꼭 살아봐야 그 시대를 말 할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한 시대를 몸으로 겪은 이는 바로 그 이유때문에 자신의 시대를 거시적으로 조망하지 못할 수 있다. 크게 보려면 밖에서 그 시대를 지켜 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하기는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최고의 책도 미국인이 쓰지 않았다. 이 분야의 가장 훌륭한 책을 쓴 이는 7개월간 주마간산 미국을 살펴본 프랑스인 알렉시스 토크빌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살 무렵 알게 된 교포 아가씨가 어느 날 내게 투덜거렸다. 물건 살 때마다 따라붙는 캘리포니아 소비세가 정말 짜증 난다나? 한참 불평을 듣다 한 마디 해 주었다. 미국의 도로며 공항이며 죄다 네가 낸 세금으로 지은 것이라고. 그 교포아가씨는 살면서 그런 이야기는 내게 처음 들었다는 듯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나? 설마– 했는데 진심으로 놀란 눈치였다.
교포사회에서 보는 대한민국 5060의 세금
대한민국 50-60대 정치의식의 원형질을 보려면 교포사회를 관찰하면 된다. 이들은 60-70년대 이민 올 당시 간직했던 정치의식이 그대로 화석화되어 있어, 드센 20-30대에 주눅들어 말을 삼가는 경향이 있는 한국의 동년배들보다 속 마음을 더 잘 보여준다.
이들을 이해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세금이다.
세금이란 국가공동체와 개인 사이의 약속이다. 내가 세금을 낼 터이니 국가는 나를 보호해달라는 약속.
하지만 한국의 50-60대는 바로 이 간단한 의식화가 되어있지 않다. 세금은 할 수만 있다면 피하는게 최선이고, 갖가지 첨단 탈세기법에 대한 무용담이 교포사회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물론 미국인들도 각종 탈세와 절세가 잦다. 하지만 개인적 꼼수들일 뿐 한국 교포사회에서처럼 그것을 대놓고 무용담이라고 떠벌리지는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
왜 이럴까? 조선시대 이후로 국가란 국민을 괴롭히는 귀찮은 존재였을 뿐 체감할 수 있는 도움을 준 적이 없다. 이렇게 조선시대가 어영부영 끝나니 태생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일제통치가 시작되었다. 바야흐로 세금을 떼 먹을수록 애국자인 세상이다. 그럼 해방 후는 달라졌나? 일제 통치때 호가호위하던 바로 그 면장, 서기, 경찰서장, 파출소장, 친일장교가 그대로 국가권력을 인수인계받아 군림하려 드는데 자진해서 세금 내고 싶은 생각이 들겠는가?
국가를 신뢰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5060 정신구조
이런 사회에서 믿을 것은 나 밖에 없다. 조금 더 나가면 가족이 있고 방계친족이 있으며, 아주 멀리 가도 씨족을 넘기 어렵다. 이렇게 영호남 지역감정의 씨도 심어졌다. 지금의 50-60대는 ‘국가공동체와 개인과의 계약’이라는 근대국가 형성에 필수적인 의식화단계를 거치지 못한 채 젊은 시절을 보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 말고 믿을 사람 없다”는 말은 대한민국 보수의 골수를 제대로 보여준다. 교조적 자유방임주의의 극치다. 또한 영국 왕정의 세금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 온 미국 정통 보수층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가치관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경제적 성장을 통한 시장에서의 기회’가 근대화라는 의식이 자리잡혔다. 때문에 사회계약 부분으로 채워져야 할 공동체 인식의 빈공간을 애국심으로 채우게 됐다. 민주주의가 아닌 민족주의가.
그러니 조선시대 이후로 도움 된 적 없던 국가는 좀 꺼져줄래? 세금 걷어 복지라니 “무신 씰데 없는 소리?” 나 먹고 사는 것은 내가 알아 할테니 제발 간섭이나 하지 마!
한국전쟁이 남긴 폐허의 정글 속에서 50-60대는 이렇게 살아남아 자식 세대를 먹여살렸다. 생존하고 아이들 먹여살리겠다는데 탈세면 어떻고 뇌물 좀 먹이면 뭐가 어떠리? 이렇게 돈 벌고 집 한 채 마련해 아이들 교육까지 마쳤는데 말이다. 대한민국 50-60대의 정신세계는 이렇다.
공중파 방송에서 대 놓고 말하지 못해도 이것이 바로 이들 세대의 정신적 DNA일 것이다. 정글에서 생존의 노하우를 깨친 이 세대는 지금도 심중으로는 내가 왜 세금을 내야 하는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콘크리트 세대 5060
50-60대 정신세계의 DNA를 이해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콘크리트”다.
힐링이며 올레며… 이런 말이 화두가 되는 시대에 믿어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50-60대는 사실 콘크리트를 정말 사랑한다. 애잔한 그리움까지 느낀다고 할까?
꼬불꼬불한 시골마을길을 반듯하게 펴 놓은 것도 콘크리트고, 초가집 지붕을 말끔하게 세대교체 한 것도 콘크리트 담장이며 슬레이트 지붕이다. 콘크리트 1.0이라고 할까? 개발독재의 전성기에 콘크리트는 업그레이드를 지속하며 드디어 콘크리트 5.0으로 진화했다. 그 심볼이 바로 강남 아파트다. 20-30대가 신형 스마트폰이 나올 때마다 열광하는 것처럼, 50-60대는 콘크리트 외피가 바뀌는 것을 보며 세상이 진보하는 것을 실감했다. 아파트는 지어야 하고 세월이 흐르면 때려 부순 뒤 재건축해야 하는 것이다. 휴대폰이 2년마다 바뀌어야 하는 것처럼.
특히 50-60대 저소득층에게 콘크리트는 실질적으로 생존의 기반이다. 이명박이 대운하며 4대강으로 아무리 욕을 먹어도 공사판의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이들은 이유야 어떻든 엄한 공사를 일으켜 준 대통령이 고마울 뿐이다. 땅 값까지 덩달아 올려준다면 더 고마울 일이고.
이렇게 해서 내 집도 마련하고 부동산 투기로 대학도 가르쳐 놓으니 어린 것들은 콘크리트 경제의 신화적 인물 이명박 대통령을 공구리 십장 어쩌구 하며 비하한다. 억장이 무너질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생 모르고 자란 어린 것들이 뭘 알겠어. 따라서 그 시대를 살며 독재정권의 홍보채널에 불과했던 미디어를 통해 익숙해진 박씨 왕조의 공주님 박근혜가 50-60대의 아이돌이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지금 세대에게 소녀시대가 있다면 50-60대에게는 박근혜가 있다.
무너지는 5060의 신화, 최후의 줄 박근혜를 잡다
나라고 그 시대를 살았다면 달리 살았으리라고 장담할 자신이 없다. 국가란 국민을 괴롭히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고, 세금이며 병역의무는 피할 수록 무용담으로 인정받으며, 뇌물 정도는 성공을 위한 편의장치에 불과했던 이들에게, 국가공동체 의식화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기회가 있을리 없기 때문이다.
이 세대의 상식 두 가지는 이제 모두 무너졌다. 민주화 이후 국가권력은 투표를 통해 정통성을 획득했고 콘크리트로 상징되는 부동산 신화도 무너졌다. 50-60대가 애잔하게 추억하는 부동산 기반의 성장 패러다임은 이제 끝장났다. 집 값을 받쳐줄 젊은 세대가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집 살 돈이 없는데 어찌 집 값이 오르기를 기대하나?
50-60대는 왜 경제는 성장하는데 나의 삶은 갈 수록 팍팍해지는지 의아해 할 지도 모른다. 아니다. 이들에게는 이미 모범 답안이 있다. 바로 박정희같은 강력한 대통령이 없어 나라 경제가 이 모양인 것이다. 근혜 공주님이 그 시대의 영화를 되살려 줄까?
50-60세대의 이런 기대가 허상임을 보여주는 증언은 이들이 바로 자기 세대의 모범생으로 생각하는 삼성전자 내부에서 나왔다. “반도체 라인 하나 까는데 1조원 정도 든다. 예전이라면 신규 라인이 깔릴 때마다 수백여명의 직원을 채용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20여명 정도로 충분하다.”라고. 왜 경제는 성장하는데 내 삶은 팍팍해 질까?
박정희 시대 때 물적 성장이 고용과 연결되었다면, 지금의 물적 성장은 오로지 자본소득과의 비례 관계를 보일 뿐이다. 경제성장이 서민의 삶과 별로 상관관계가 없어진 것이다. 어쨌든 50-60대가 그런 향수를 가졌고 이번 투표에서 이겼다고 해서, 그것이 시대착오라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 한다.
답은 세월의 흐름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대선 후 터져나온 주장처럼 진보 방송을 만들어 때 늦은 어르신 의식화 작업을 이제라도 시작해 볼까? 경험에서 말하자면 사람은 스무살이 넘으면 생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더구나 박정희 시대라는 강력한 물적 성장의 추억을 지닌 세대가 이제 와 생각을 바꿀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세상의 변화는 결국 인구구조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것이 대선에 패배한 세력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다.
앞으로 5년간 매년 약 35-40만의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이 5년간 매년 45만명이 신규 유권자로 편입된다. 다음 대선에서는 예전 세대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200만명 이상이 유권자로 쏟아진다.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히 보수화되는 현상이 있기에 장밋빛 미래는 그릴 수 없지만, 세상은 아주 조금씩 인구구조에 의한 변화를 맞을 수밖에 없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이번에 무려 90%의 투표율을 기록한 50대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투표율을 10% 이상 올릴 수 없다. 투표율이 아직 60%대 중반인 20-30대는 30% 가까이 올릴 여지가 남아있다. 이번에 멘붕을 심하게 겪었으니 트라우마의 기억이 5년 후에도 남아있다면 투표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어르신들이 즐겨보는 드라마를 보면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받아들이는 결말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현실의 시어머니는 시퍼렇게 눈을 부릅뜨고 버티고 있다. 그렇다고 드라마처럼 세대갈등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이는 이번 대선과 같은 역동원을 낳을 뿐이다. 그렇다면 세월의 흐름만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