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중간관리 공무원이 한 이야기다. “한국의 교육 체계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전문직을 배출할 수 있는 것인지 알고 싶다. 배우고 싶다.” 심지어 대사관을 통해서도 자료 요청을 했다. 인터넷에 흔히 도는 「핀란드의 교육장관이 한국 교육장관에게 직접 등수는 1등수 차이지만 삶의 질은 전혀 다르다고 면박을 주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거나, 최소한 핀란드 정부 전체에 공유된 판단까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읭?
핀란드의 교육체계는 많은 이들이 행복함을 느끼게하는 것에는 적절하지만, 대신 석박사 이상의 연구자나 엔지니어, 의사와 같은 사회에 필수적인 인재들을 길러내는데는 덜 적합한 체제이다. 의사나 석박사가 되기까지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이 노력에 부합할 정도의 인센티브를 사회가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복지가 문제되지 않는 시대에는 핀란드가 우리를 고민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경제 위기의 상황에서는 핀란드 스스로 그리 희망적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국의 빈부격차, 민주화. 그렇게까지 막장일까?
OECD에는 재미있는 자료들이 나온다. 이것으로 1차적인 판단을 내가 하는 것은 어렵고, 이걸 가지고 학자들이 응용한 자료들을 보면 조금 재밌다. 예컨대, 정부의 조세/재정지출을 통해 빈부격차를 감소시키는 나라들의 현황에 대해 나온다. 일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그리스는 재정지출을 통해서 빈부격차가 도리어 늘어나는 국가다. 이탈리아는 재정활동을 통해 자국의 빈부격차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구체적인 각각의 조세제도와 재정지출로 빈부격차를 어느 정도 감소시킬 수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고 특히 한국/일본에 특유한 건설토목사업의 문제(종사자나 관련 기업 대부분이 영세하므로 이 분야 재정지출은 빈부격차를 감소시키지만, 그것이 한국 경제와 사회에 타당한지는 다른 문제가 된다)가 있어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긴 하지만, 정부의 경제활동을 통해 빈부격차가 줄어드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50개국에도 미치지 못한다. 실질적인 수준으로 이뤄내는 나라는 사실상 OECD 국가 중 일부분뿐이고 한국은 그 안에 속한다.
20세기 이후로 합의된 룰에 따른 선거를 통해 여야가 2회 이상 교체된 나라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한국인이 스스로 민주화에 대해 자랑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년간이다. 현 대통령께서 민주화를 일궈내셨다는 말이 아니다. 세계의 상당수 국가는 정당 인명부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여야 교체를 한번도 이뤄내지 못했거나, 혹은 한번만 이뤄냈다. 그 이후 그 정권이 계속 유지되고 있거나, 군사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었거나, 외세에 의해 국가가 무너진 경우가 많다.
2회 교체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존 세력이 강고한 국가에서는 대체로, 새로 여당이 된 이들이 정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독재를 시행하거나 혹은 이를 뒤엎기 위해 이전 여권이 반격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아프리카의 정상국가’라고 하는 보츠와나도 1960년대 독립 이후 지금까지 정권이 단 한번도 바뀌지 않았고, 명백히 선진국의 대오에 있는 일본은 바로 이번 달에 비로소 역사상 2번째 선거를 통한 정권 2회이상 교체를 얻어냈다.
한국은 최소한 김영삼 전직대통령 -> 고 김대중 전직대통령으로 한번의 여야교체를 선거를 통해 이뤄냈고, 고 노무현 전직대통령 -> 이명박 현임 대통령으로 또 한번을 이뤄냈다. 최소한이 2번이고, 만일 이번 선거에서 문재인 의원(전 민주당 대통령후보)이 승리했다면 세 번째 교체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것은 어찌되었든 독재의 증거는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30개국에 못미치는 국가만이 지난 100년간 일궈낸 업적이다.
현재 유의미한 사료가 남아있는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 국가간 전쟁을 감행한 경우는 없다고도 한다. 이것도 블랙스완이라고 하면 할말 없지만,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민주주의 국가간 서로 공격함으로 전쟁이 시작된 사례가 없다는 것은 시사점이 작은 이슈는 아닌 것 같다. 또한 50년 내지 100년 내에 선거를 통한 2회 이상 정권 교체를 경험한 국가가 다시 권위주의로 돌아가는 경우도 없었다.
우리가 때로는 민주화라 이야기하는 실제 막장국가들
말이 나온 김에 진짜 막장 국가들이 어떤가도 생각해 보자. 지난 10년동안 내전이나 혹은 100명 이상으로 구성된 무장단체의 투쟁을 국가 내에서 경험한 국가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만큼 많다. 조금 궤가 다르지만, 의미 있는 수준의 분리독립운동이 진행중인 나라만 해도 위키에서 그냥 긁은게 다음 정도 된다.
니제르, 말리, 러시아, 모로코, 미얀마, 방글라데시, 벨기에, 세네갈, 스페인, 영국,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캐나다. 아프리카는 일단 Blood Diamond라는 조어를 실시간으로 일궈내고 있는 R.U.F. 가 학살을 진행중인 국가만 중부 아프리카 지역에 십여개 국가가 되고, 중동 등 이슬람권에는 탈리반이나 알카이다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이 테러나 내전, 혹은 정권 장악을 하고 있는 경우만 수개 국가에 달한다.
서로간의 차이로 인한 학살은 또 다르다. 정치적 성향 차이에서 빚어진 킬링필드(캄보디아, 76~79년, 170만명 학살)나 천안문 사태(중국, 1989, 한국으로 치면 광화문 앞에 운집한 사람 기준 2천명 이상 살해)는 둘째치고 종족 차이에서 빚어진 르완다 학살(르완다, 1994, 80만명(투치족의 70%) 학살), 동티모르 대학살(인도네시아, 1970~1999, 10만명 이상 학살) 같은 이슈들은 유럽인들께옵서 조금 개도국에서 일어나는 사례라 부족하다고 보신 것인지 1990~1998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는 40만명이 학살당했는데 이들은 범슬라브주의라는 인종적 이슈를 달성하기 위해 살해당한 것이다.
핵강대국인 파키스탄은 이웃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스며들어온 탈리반 반군이 한국으로 치면 계룡시 삼군본부를 습격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정도로 막장 상태이고, 이들은 특히 핵심 자원인 에메랄드 광산 지역을 탈레반에게 빼앗기고 5년간을 유지하고 있다. 중부아프리카에서는 태어난 것만으로 40% 가까운 확률로 이미 에이즈환자다. 중부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태어난 것만으로 이미 15% 확률로 영아기에 사망한다.
치안 문제도 다시 생각해보자. 미국 바로 남쪽에 위치한 멕시코 치와와 주의 주도 시우다드 후아레스의 별명은 city the murder이다. 이곳은 군과 특수경찰이 마피아로 전향해서 다시 군이나 시민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다. 멕시코는 OECD 회원국이다. 브라질은 국토 곳곳에 산동네나 빈민촌을 조직폭력배들이 아예 영지처럼 소유하고 있는 사례들이 있다. “브라질 정부 비자”로는 이 지역에 들어갈 수 없고 이들과 국가권력은 상시적으로 투쟁을 반복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마피아를 척결하기 위해서 벌인 대대적인 소탕 작전은 유명한데, 1960년대의 1차 마피아 전쟁과 70년대 2차 마피아 전쟁에서는 국가헌병대(이탈리아와 프랑스는 국가 치안을 경찰과 헌병이 나누어 맡는다) 요원이 살해당하거나 심지어 헌병대 사령관이 살해당하는 사태도 벌어졌고, 80년대 마피아 대전을 거치고 나서도 여전히 92년 마피아 검거 운동을 지휘하던 판사가 자동차 폭탄으로 살해당하고 그를 보좌하던 검사 둘도 같은 달 중에 살해당하는 다크나이트스러운 일을 겪었다.
지나간 일이라고? 21세기 들어와서도 이탈리아에서는 마피아 진압작전을 지휘하는 검사는 항상 교도소에서 생활하는데, 이곳이 그나마 생존에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철창 안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마피아 수익은 2010년 기준으로 250조원에 조금 못미치는 규모로 예상되고 있고 자산도 200조원이 넘는 수준이라고 생각된다.
아프리카의 안정국가인 케냐의 경우 빈부격차가 극심하여 빈민층은 쓰레기 하치장 수준이고, 한때 한국에 원조를 주던 필리핀은 총을 가지고 다니는 게 그리 이상하지 않은 수준의 치안 상태이다. 남아프리카의 맹주인 남아공의 평생강간피해율(생애 1회 이상 강간을 경험할 가능성)이 5%를 넘고 중부아프리카 지역의 일반적인 국가에서는 30%를 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까지 있다.
한국,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부정적 이미지가 사실일까?
한국인들이 많이 하는 두 이야기가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하고 있습니다.”와 “후진국에서도 하는 걸 한국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보다 한국은 나쁘지 않은 나라이며, 외국에서 한국을 학습하고자 하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 뭐 최고로 위대한 나라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경제적 성취 외에도 한국이 굉장하게 이뤄낸 것이 많고, 한국의 문제들은 전세계적인 관점에서는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한국이 부정선거를 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매번 선거 때마다 나오지만 선관위가 심지어 중동이나 동유럽 국가들에 선거관리 기법을 전수하고 있다는 것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쌍용차 사태에 대해서 이후에도 노동자 탄압적인 사회라는 말이 나오지만 벨기에 정부가 우리나라의 정책 대응을 모범사례로 입수하려 했다는 것도 알려져 있진 않다. 약탈 등 문화재를 외교적 협상을 통해 (중세시대 합의금 협상 말고…)본국으로 다시 환수해온 세계 첫 사례가 김영삼 전직대통령 당시 외규장각 도서이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우리의 경험을 선진국들과 교류를 하면서 특히 헌법재판소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는 것도 그렇다.
김영삼 전직대통령 당시 하나회 등의 대장들을 척결한 이후(당시 군인의 계급 환산을 획기적으로 낮추기도 했다. 그 전까지 4성장군은 장관급으로, 3성장군은 차관급으로 갈음하고 있었다) 명백하게 한국은 군사 우위적인 사회 정치 이슈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중동의 강대국인 이집트에서 주기적으로 군부가 발흥하고 있는 것이나, 파키스탄의 군부 독재만 보더라도 이것이 얼마나 큰 민주화의 성과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와 구성원에 대한 신뢰
도리어 나는 서로 믿고, 어느 정도는 상대 세력을 양해하고,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르완다 내전에서 생사를 가른 것은 후투족인지 투치족인지 여부였는데, 그 기준은 콧대의 높이와 키였다. 킬링필드에서 생사를 가른 것은 엘리트 압제계층인지 아닌지 여부였는데, 그 기준은 안경을 쓰고 피부가 흰색인지였다. 동티모르에서 생사를 가른 것은 티모르족인지 여부였는데, 그 기준은 그 시점 동티모르에 있었는지였다. R.U.F는 아마도 지금도 아프리카 어딘가의 마을을 불태우고 여자들을 강간하며 남자들의 팔을 자르고 있을 것인데, 그 기준은 단지 R.U.F인지 아닌지이다.
조선조 조광조 개혁 실패 이후 기묘사화가 벌어진 뒤에, 일단의 유생들은 한가지 음모를 꾸몄다. 조광조 일파를 몰아간 남곤, 심정을 비롯한 대신들을 척결하자는 운동을 벌이자는 것이었다. 이 운동은 방법론적으로 극단주의적 면모를 띄었는데, 대신들을 탄핵하는 것이 아니라 살해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운동은 결국 실패하고 이들은 유배나 사사를 당했다. 이것이 우리가 기묘사화에 가려 잘 모르는 “신사옥사”의 내용이다.
게다가 이미 이들이 척결하자고 하던 남곤, 심정, 홍경주는 이들이 싫어하던 도교적 풍모와 실용적 내용을 담은 훈구파가 아니었다. 남곤 자신이 이미 조광조의 스승인 김굉필의 동문 사제였고, 이 시점의 중심 세력은 (기득권층이라는 점 하나를 제외하면) 훈구파로 볼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신사옥사 전후의 유생들은, 의금부의 보고 등을 통해 보면 대신들을 성리학적 논의에 들어와있지 않은 척결해야할 대상으로 인식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런 몰이해가 몇차례 반복된 뒤에, 유생층의 대규모 실업문제와 맞물려서 조선의 당쟁은 탄핵과 논변으로 일관되던 분위기보다는 사사와 유배로 점철된 방식으로 전락한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걱정해야할 일이 아닐까?
다시 반복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신뢰이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도 상대 세력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 초반에만 반짝 지지율이 있을 뿐, 빠르게 등을 돌린다. 심지어 기존 지지자들조차 그렇다. 레이 팬과 아스카 팬의 대결은 언제나 치열하다. 하지만 그들 모두 에바 팬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세력을 지지하든 함께해야 할 국민이다. 그리고 국가 정책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견제가 아닌 신뢰가 기반된 견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