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발의, 법안통과수 역대 최대 “과부하 국회”가 식물 국회라고?
중요한 건 당연히 양이 아니라 질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 조차도 민주주의를 직접 공격하지는 못한다. 대신 그들은 정치를 욕함으로서 민주주의의 위력을 무력화 시키려한다.”
정치 혐오의 위험성을 경고한 최장집 교수의 말이다. 세상을 떠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20세기의 특징은 독재국가마저도 민주주의를 내세운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신정권도 북한도 일베도 민주주의를 외치는 세상이란걸 생각하면 틀린 말도 아니다.
뜬금 없이 국회 법안 처리율이 화제다. 조선/중앙/동아일보와 여러 통신사들은 19대 국회의 낮은 법안 처리율을 문제 삼으며 식물 국회라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리고 그건 여당에 사사건건 반대하며 장외투쟁하는 야당 때문이며, 그런 무능한 야당이 ‘민생법안’을 막고 국회를 마비시킨다는 교묘한 프레임이다.
그런데 정작 법안가결수(통과수)는 지난 2년간 역대 최대였다. 새정연 박수현 대변인에 따르면, “19대 국회에서 전반기(2년)에 처리한 법안의 건수는 모두 1276건으로 역대 어떤 국회와 비교해서도 최고의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는 15대 전체 1120건, 16대 전체 948건의 법안통과수를 능가하는 숫자이며, 17대 국회의 745건, 18대 국회의 1241건보다도 많다.
그럼 왜 이런 왜곡된 기사가 나오는 것일까? “‘식물국회”라는 이름의 연합뉴스 기사는 두가지 왜곡을 하고 있다. 우선 법안 제출수에서 통과수와 부결수를 합쳐 계산한 법안 처리율을 사용하고 있다. 분모가 증가하면, 비율은 감소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의원들의 법안 발의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법안 처리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 기사에서는 통과 법안과 달리 부결 법안이 많았던 17대 국회는 법안 처리율이 매우 높아지는 기현상마저 나타난다.
연합뉴스 기사의 두 번째 맹점은 바로 국회의 회기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회는 상시 열리지 않으며, 상당수 법안이 9월 정기국회부터 연말까지 이어지는 기간에 처리 된다. 회기 첫 해(19대는 2012년) 5월 31일부터 다다음 해(2014년) 5월 30일의 전반기 통계가 국회의 상대적 “휴가기간”이었던 5월 31일에서 9월 8일까지를 더한 연합뉴스의 통계보다 정확한 이유다. 국회가 120일간 정지 중이라며 책임을 묻는 억지도 바로 여기서 나온다.
그 시간 사이에는 두 차례의 선거와 전당대회가 있었다. 출근 않는 토요일 일요일을 더해 업무 생산성을 측정하면 정확한 측정 값보다 낮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법안 발의는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국회는 결코 놀고 있지 않지만 저절로 법안이 쌓이고 있는 수준이다. 19대 국회의 일감은 17대의 약 3배, 18대의 약 1.25배로 늘어났다. 이건 식물 국회가 아니라 과열 국회다.
더구나 여당의 ‘최노믹스 민생법안’은 이른바 ‘규제 개혁’을 통한 경기부양 정책이다. 세월호 참사로 안전규제의 중요성이 드러난 상황에서 정부는 오히려 규제를 폐지하자고 나서고 있다. 이런 법안이 무더기로 ‘묻지마 상정’되는 현실은 결코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부결 수가 늘어난 것도 이런 정국에 대한 야당의 견제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대 국회는 안정적인 국회 선진화 법 속에서 ‘몸싸움’과 ‘연말 국회 공성전’도, 직권 상정도 없이 많은 법안을 통과 시켰다. 이 공로는 인정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많은 법이 아니라 좋은 법이 아닐까? 과열국회를 해결하면 국회 상시화나 법사위의 간소화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국회의원과 그 보좌진수를 늘려야한다. 하지만 정치 혐오가 만연한 한국에서 실현 가능 할 지는 의문이 든다.
법안 하나하나는 각기 다른 무게를 가진다. 법안을 위해 들여야 할 시간과 대변하는 계층도 다를 수 밖에 없다. 단순한 숫자놀음인 법안처리율이 아닌 진정한 국회의 효율을 논하는 생산적인 정치평가, 정치평론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