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김정호 교수가 자유주의를 위해 분연히 들고 일어섰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시위를 그만 두라고 ‘소리 치고’ 싶지만 겁이 많기 때문에 작은 용기를 내서 피켓(“‘복수’가 아닌 ‘진상 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반대>)을 들었다. 환영한 사람도 많고 비판(욕설?)을 한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그래서 자기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설명을 내놓으며 다시 피켓(‘전체주의를 경계합니다’)을 들었다.
전체주의를 경계한다는 것 환영한다. 나 역시 자유민주주의자로서 우리 사회가 전체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경계해야 할 전체주의(totalitarianism)가 뭔지만 분명히 하면 되겠다. 이른바 자유주의자로서 전체주의와 싸우지 않으면 무엇과 싸우겠는가.
우리 자유주의자들이 볼 때 전체주의의 본질은 폭력이다. 왜냐면 전체주의자들은 침해할 수 없는 개인들의 권리라는 걸 인정하는 데 인색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보기에 국가를 비롯한 사회는 유기체와도 같은 것이어서 세포나 조직보다 유기체 전체가 늘 더 우선시된다.
다시 말하자면 부분은 전체의 존속을 위해서만 가치가 있다. 썩은 부분, 몸 전체의 건강을 해치는 부분은 잘라내야 한다는 게 유기체적 국가관의 태도다. 흥미롭게도 주체사상이 개인은 유한하지만 민족은 무한하다고 선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우익 전체주의야말로 종북의 가장 가까운 친구다. 이들에 맞서서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의 신념이다.
그렇다면 누가 전체주의자들인가. 김정호 교수가 말하듯이 ‘다른 생각과 말을 허용하지 않는’ 세력들이다. 그런데 ‘허용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학생이 교수에게 가서 ‘저희는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헛소리 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하면 교수가 ‘자네가 내게 무례하게 구는 걸 허용하지 않겠네’라고 말하면서 불이익을 주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누군가에게 ‘다른 생각과 말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힘(권력)과 그 힘의 행사를 필요로 한다. 김정호 교수는 광우병 시위 때 군중들이 그런 힘을 발휘했다고(‘신변의 위협’ 운운) 느낀 모양인데, 도대체 왜 이리 엄살인가. 진짜 전체주의적으로 힘을 행사하는 쪽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으면 종북(반체제 세력)이라고 말하는 검찰이 바로 전체주의적이다.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서 오판이 한 번도 없고, 무고한 사람이 누명쓴 일이 한 번도 없다면 그 말에 일리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건 권력을 가진 집단(정부)이 ‘다른 생각과 말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이다.
김정호 교수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유주의자로서 전체주의적 성향을 띠는 검찰(정부 소속이다)에 대해 작은 용기를 내어 비판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교양이 풍부한 김정호 교수라면 잘 알고 있겠지만, 자유주의를 개척해 온 선배들 중에 폭압적인 정권과 싸워온 사례는 넘쳐난다. 당장 비판적인 문제제기를 한 언론(산케이 신문)을 탄압하려고 하는 정부에 대해서도 자유주의의 수호자답게 한 말씀 해주셨으면 좋겠다.
자유주의를 소중히 여기는 김정호 교수라면 잘 알고 있겠지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이끌어 온 선배들은 민주주의가 사상의 시장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 논쟁하는 건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측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의견이 달라서 언성이 높아지는 수준을 뛰어넘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규칙은 깨지고 전체주의의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서로 의견을 내놓고 논쟁을 벌이는 게 아니라 힘을 행사해서 ‘다른 생각과 말’을 내놓지 못하게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행사도 아닌 곳에 가서) ‘왜 국민의례를 하지 않느냐’며 물리적 폭력을 종종 휘두르는 집단이 있는데, 이들의 전체주의적 성향에 대해서 김정호 교수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한국의 진성 (애국주의) 보수인 조갑제 씨는 백주대로에 아무 거리낌 없이 거리를 걷고 TV건 홈페이지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고 있다. 이분의 의견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무도 조갑제 씨에게 ‘그런 말을 하도록 허용하지 않겠다’고 힘을 행사하지 않는다. 세월호 관련 시위에 대해 반대하는 글을 쓴다고 해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욕설과 비판은 듣겠지만, 그 정도의 격렬한 의견 표시는 자유주의자라면 익숙할 뿐더러 견뎌야 할 것이기도 하다.
도대체 누가 ‘허용하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았는가? 게시판에 글 좀 썼다고 유언비어를 엄벌에 처하겠다고 말하는 검찰에게 출두명령이라도 받으셨는지? 명색이 자유주의자라면 반대파들의 세력이 만만치 않다고 엄살을 피우는 대신, 자신과 의견이 다른 반대파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정부 권력으로부터 발언권을 제한당하는 사태를 보지 못하는 게 자유주의자 아니겠는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나는 김정호 교수에게 백만 번 동의한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동의하기가 힘들다. 같은 자유주의자로서 다시 묻고 싶다. 지금 이 곳에서 전체주의자들은 누구인가? 자유민주주의의 진짜 위협은 어디에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