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낮은 생산성
최근 필자는 한국은행 금요강좌에 연사로 참가해 한국경제의 도전 과제에 대해 강연했다. 그 내용 가운데 한국경제의 가파른 생산비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생산성 개선, 특히 역대 정부의 반복적인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고 있는 서비스업 생산성 문제를 이 글에서 소개하려 한다.
한국경제는 전쟁과 이어진 국내의 이념적 갈등으로 혼란을 지속하다가 군사정부의 강력한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으로 불과 한 세대 만에 기초적인 산업화 단계에 접어들 수 있었으며 또 한 세대 뒤에는 세계 10위권을 넘볼 정도의 경제규모를 달성할 수 있었다. 조선과 스마트폰 그리고 메모리반도체 등의 업종에서는 세계 최대 생산국이 되었으며 자동차와 기타 전자제품 등의 분야에서도 발군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조선 업종을 제외하고 다른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은 이제 전체 생산물량 가운데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그나마 국내에 남아 있던 부품 생산업체들도 서서히 고객사를 따라 해외로 설비를 이전하거나 신규 설비투자를 해외로 집중하고 있다. 결국 수만에서 수십만 명의 고용을 필요로 하는 규모의 제품 생산이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국내에는 고용유발효과가 적은 업종들만 남게 되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제조업체들이 해외로 시설을 이전하는 것은 시장 접근성이나 원자재 확보 문제 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그에 덧붙여 경직적인 국내 고용제도와 가파르게 상승하는 국내 생산비의 문제도 있다. 또한 제조업이 해외로 이전하는 추세를 막을 수 없다면 국내 서비스업의 질을 개선해 고용을 창출하고 전체 부가가치 창출도 높여 전체 경제성장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국내의 총 노동비용 추이를 살펴보자. 그림에서 보듯 한국의 경우 2000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단위 노동투입에 들어가는 총 노동비용은 2011년까지 두 배가 됐다. OECD 전체로 보면 이 비용은 같은 11년 동안 약 40% 오르는 데 그쳤고 미국은 정확히 OECD 평균과 동일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 노동비용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것은 임금상승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 이외에 각종 수당이나 혜택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는 것도 지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노동비용이 빨리 늘어나는 것 만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주요 비교대상국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오랜 시간 일을 하면서 시간당 부가가치 창출은 멕시코 다음으로 낮다. 두 번째 그림에서 보듯 OECD 평균 시간당 부가가치 창출액은 40달러를 넘는데 한국은 30달러 수준이다. 반면 OECD 평균 연간 노동시간은 1800시간 정도인데 한국은 2000시간이 넘는다. 결국 오래 일하면서 생산성은 낮다는 말이다.
비생산적인 회사문화
최근 한국의 평범한 회사에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가까운 분들과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회사에서 본질적인 일과 관계 없이 “사람들”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와 “사람들” 사이의 관계 때문에 소모하는 시간과 노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이 중·고소득국가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 일하면서도 왜 생산성은 낮은가에 대한 의문이 최소한 부분적이나마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의 불평 사항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사람은 같은 회사 내 다른 부서의 상급자가 “계속 짜증나게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을 언제 한 번 “들이받을” 생각이라는 점을 비장하게 밝혔다. 참으라고 하니까 “후배들 가운데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꽤 있고 내가 들이받으면 지지할 것”이라고 밝히는 것이었다. 이 일로 회사에서 “말이 많고 다른 사람들과도 의견 교환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퇴근 후 한밤중이나 주말에 또 다른 사람 문제로 전화통화를 하며 시간을 보낸 일도 소개했다. 이번에는 직속 상급자가 그 위 상급자와 불화를 겪고 있는데 자신에게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와 불평을 하길래 자신이 여기에 맞장구를 치느라 애썼다는 사연도 소개했다. 또 자신이 최근에 딸이 갑자기 병원에 가서 하루 휴가를 썼는데 그것 때문에 회사에서 윗분들로부터 좋지않은 소리를 듣곤 한다고 소개했다.
퇴근시간도 자유롭지 못하다며, 정시는 말할 것도 없고 한 시간쯤 지나도, 별 일 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나로서는 재미있다는 느낌도 들었고 솔직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직장도 많고 또 늘고 있다고 알고 있고,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일터에서 한 두시간 퇴근이 미루어지는 것은 다반사고 사실 그것은 본질적인 업무 처리 때문이 아닌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이것보다 더 기막힌 관행을 가진 회사도 많을 것이다. 결국 점심시간 포함 하루 9시간 근무하면 처리할 “업무”를 하는 데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근로 시간에 포함시키지 않더라도 이러한 업무 외 시간 낭비는 다음날 근무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조직인 만큼 회사에서 “업무” 이외에 시간을 단 1분도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부가가치를 산출하지 않는 시간을 줄이면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그만큼 개선될 것이다. 아마 산출되는 부가가치만으로 놓고 볼 때 위에 소개된 경우와 같다면 10명이12시간씩 근무(점심시간 포함)하고 있던 것을 업무 이외의 부담을 없앤다면 한 8명이 9시간씩만 근무해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명은 실직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2명도 추가로 부가가치를 산출할 것이므로 한국 전체적으로는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은 회사가 얼마나 되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회사는 아주 많다. 선진국에서는 거의 모두 그렇다.
결국 문제는 생산성
결국 문제는 장시간 노동이 아니라 낮은 생산성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서비스업의 생산성이다. 세 번째 그림에서 보면 한국의 부가가치노동생산성지수(투입노동 량 대비 부가가치 산출량=GDP/노동투입시간)를 보면 2004년을 100으로 했을 때 2012년 현재 제조업은 거의 두 배로 높아졌지만 서비스업은 20% 정도 높아지는 데 그쳤다. 한편 전체 취업자 가운데 제조업 비중은 2004년 18.5%에서 2012년 16.6%로 낮아졌지만 서비스업은 73.3%에서 77.1%로 높아졌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역대 정부마다 서비스업 생산성 향상을 강조하고 많은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아직도 이 문제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필자가 이 자리에서 만병통치약이 될 해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서비스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더욱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되겠다. 현재 제도적으로는 외국인투자에 대한 제약이 거의 사라졌지만 비법적 제약은 상당히 많은 상태다.
또 한 가지는 비제조업 부문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을 적극 장려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부문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곱지 못하다. 예를 들어 고급 서비스를 고가에 제공하는 사업을 펼치려 하면 이내 “호화” “위화감” “낭비” 등등의 어휘를 이용한 비난이 쏟아지고 당국은 세무조사를 하느니 규제를 하느니 하고 나서기 마련이다.
부당한 불로소득은 문제가 되겠지만 창의력과 자본력을 이용한 고소득 사업은 부당한 불로소득이 아니다. 나는 땀흘려 일하는데 시원한 곳에서 짧은 시간 일하고 나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린다고 비난만 할 일이 아니다. 그들이 결국 내 자식들의 일자리를 나보다 더 많이 만들어내고 나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돼 있는 것이다.
원문: KoreaVi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