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하면 듣는 분들의 상세한 이해도 돕고 강연자도 물 한잔 마시고자… 한두 개 정도 영상을 봅니다. 그날 주제가 이벤트, 프로모션이었는데 Q&A 시간에 아래와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왜 한국에는 저런 영상이 없을까요?”
다양한 질문은 강연의 매력인데, 이날의 질문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저도 늘 생각하던 지점이거든요. ‘왜 우리나라에는 때깔좋은 대박 이벤트나 프로모션이 없을까?’, ‘정말 그런 대박 이벤트가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물론 재미있는 아이디어,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프로모션, 의미 있는 효과를 거둔 이벤트는 국내에도 많습니다. 다만, 실무자들도 진심으로 감탄하게 만드는 이벤트, 프로모션이 있느냐면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현재까지의 고민을 공유해 봅니다.
#1. 경직된 환경과 아이디어의 부재
원죄론적 이야기이자 답 없게 만드는 성찰이기도 한데요. 그냥 처음부터 우리는 글러먹었다(…) 류의 이야기입니다. 말하자면, 애초에 그런 쌈박한 아이디어를 낼 환경 자체가 아니라는 거죠. 줄 세우기, 상명하복, 튀는 놈은 밟아 버리는 식의 교육과 문화 속에서 자라오고 일하는 우리에게 ‘탄복할 만큼 기발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그것을 고민해 볼 사람에게도, 그 이야기를 받아들여줄 환경에서도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2. 그에 연계한 에이전시의 자기검열과 고객사의 이율배반
#1에서 심화발전된 고민입니다. 그나마 척박한 환경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도 ‘너무 튀는거 아닌가?’, ‘리스크 감당이 될까?’하는 자기 검열로 아이디어를 무난하게 깎아냅니다. 여기에 결정권자들의 산업에 대한 몰이해와 과도한 개입까지 겹치면서 실무진의 예산 압박이 적절하게 섞이면… 어느새 대책이 없는 아이디어가 실행에 옮겨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말하자면, 브랜딩과 마케팅을 동시를 고려하고, 관심도 많이 끌고, 리스크도 없는, 뭔가 ‘완전체’ 프로모션을 기대한다는 건데요. 모든 것을 고려하고 만족시키면서도 엣지까지 있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죠. 자고로 ‘대박’을 노리려면 그것만큼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죠.
무엇이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기획하고 결국, 집행까지 하게 했을까?
#3. 검증병
일종의 ‘검증병’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레퍼런스를 따지고 ‘정말 그게 가능하겠느냐?’를 묻는건데요. 정말 쌈박한 대박 아이디어를 고민하는데, 케이스를 따져본다라… 그 자체로 넌센스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많습니다. 여기서 담당자의 적절한 ‘운영의 묘’가 필요한데요. 그마저 이리 흔들 저리 흔들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결국은 예산 집행 자체를 위한 아이디어가 탄생합니다. 바야흐로 형식이 메시지를 지배해 버리는 것이죠.
#4. 마케팅적 시각과 ROI 설정의 혼선
많은 좋은 기획과 의도가 용두사미의 운명을 맞이하는 이유가 되겠습니다. 명확한 목적과 방향이 없거나 적절하게 공유되지 않은 경우일 텐데요. 예를 들어, 쇼킹한 친구들이 강남 한복판에 등장해 어떤 액션을 한다… 그리고 나서 전단지를 나눠준다… 랄까요?
혹은 사회적 이슈가되었던 ‘XX녀’를 본딴 영상을 만들겠다고 하면, 브랜딩에서는 리스크가 한 보따리로 나오니 하지 말자고 하죠. 하지만 브랜딩이 아닌 마케팅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해볼만한 이벤트입니다. 이가 정리되지 않고 인식의 혼선에서 탄생한 아이디어는 근원적으로 대박 아이디어의 반열이 될 수 없고, 바로 이가 우리나라 실무진에서 왕왕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5. 뭔가 미묘한 ‘때깔’의 문제
이 부분은 명확히 정의하기 힘듭니다. 말하자면 ‘아우라’ 정도일 것 같은데요. 마치 고질라 같은 영화를 보고 ‘왠지 모르게 영상 퀄리티 후지다…’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요. 이벤트의 대가 루이 까또즈 신유철 과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프로모션은 제품 또는 브랜드와 본질적으로 연결 고리가 있는 것을 소비자에게 경험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본질과 무관하게 성공사례를 그저 베끼다 보니 겉핥기만 된다.”
단순히 영상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위의 이야기처럼 연관성(relevance)의 문제도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의 이벤트 영상을 보면, 왠지 순수하게 이입이 되지 않는 괴리를 종종 느낍니다.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는 지점입니다.
원문 : 짬봉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