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가 위원장에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하며 그 베일을 벗었다. 그러나 구국의 일념으로 똘똘 뭉쳤던 윤창중 수석대변인 및 당선자 대변인실 인선에 비해 파괴력이 적다는 의견이 다수다. 워낙에 대단한 경력을 가진 인물인데다가, 이미 대선 때 박근혜 선대위의 선대위원장으로 일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던 지체장애 2급 장애인. 만 19세에 사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하고 대법관을 거쳐, 김영삼의 문민정부 시절 헌법재판소장에 임명되어 2000년까지 일한 입지전적인 인물. 동성동본 혼인 금지, 영화 사전검열, 군 제대자 가산점 등 굵직굵직한 이슈에서 위헌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수장. 언론이 정리한 그의 이력은 대강 이렇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먼치킨이란 느낌이 팍팍 온다. 언론도 선대위 때 쓴 걸 재활용할 수 있어서 좋았을 것 같다.
그와 박근혜 당선자의 인연은, 조금 무리해서 보자면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써 구속된 송요찬 전 육군참모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언론은 그의 기용을 박근혜의 ‘대통합’의 한 갈래로 해석하기도 한다. 아버지에게 반대한 인사를 인수위에 기용함으로써 과거사에 대한 의지와 반대파에 대한 포용력을 보여주었다는 해석이다.
사실 사법부의 특성상 법조인으로서의 이력에서는 특이한 점을 찾기가 어렵다. 다만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1963년 당시로 돌아가보도록 하자. 1963년 8월 17일 동아일보 기사다.
17일 하오 4시 50분 송요찬씨의 구속적부심사를 해온 서울형사지법(김택현 수석부장판사, 김재홍, 김용준 판사)은 살인 및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된 송씨를 “증거인멸, 도주의 우려 없다”고 석방결정했는데 김택현 부장판사가 석방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송씨는 육군참모총장, 내각수반을 역임했고 증거는 이미 조사돼 있고 일삼년 전, 또는 사 년전의 사건으로 증거인멸할 여지가 없으니 정식공판에 회부, 유죄판결을 받을 때까지 불구속 조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잠깐, 살인 및 살인교사 혐의라니? 언론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써서 구속’이라고 표현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당시 동아방송의 방송 내용이 참고가 될 것 같다. 8월 18일 방송된 내용이다.
지난 10일 살인과 살인 교사죄로 구속되었던 전내각수반 송요찬씨의 구속사건은 그 저의가 의심된다고 국내외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더니 서울 형사 지방법원의 석방 명령에 의해서 전제 밤 9시 45분에 마포교도서에서 석방됐습니다. 송요찬씨는 6·25 전란 당시 그가 수도사단장으로 있을 당시 부하였던 조용구 중령을 살해했고 4·19때는 발포명령을 했다는 혐의로 지난 11일 서울 형사지방법원 원정백판사가 발부한영장에 의해서 구속됐던 것입니다.
우연하게도 박의장의 출마를 반대하는 공개장을 동아일보에 내놓은지 사흘만에 구속된 송요찬씨 사건은 국내외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미국은 민정이양을 앞두고 일어난 이 사건에 전에 없는 관심을 보였고 우리나라 쪽에서도 일단 불기소됐던 사건을 재기했다는 것과 공소시효가 만료된 특별법에 해당되는 사건을 일반형법에 적용시킨 것은 법률적용에 착오가 아니냐는 등 물의를 자아 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구속 1주일째인 어제 오후에 서울형사지방법원에 김택현부장판사는 송요찬씨의 과거의 형력과 사회적인 지위로 봐서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석방명령을 내렸습니다.
읽기 귀찮으신 분들을 위해 대강 요약하자면 이렇다. 송요찬 씨가 구속된 것은 살인이니 살인 교사니 이런 이런 이런 저런 저런 저런 이유 때문인데, 그 구속이 하필이면 박정희의 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낸지 사흘만에 이뤄진데다, 법 적용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논란이 거세어진 것이다.
어쨌든 구속 이유도 따로 있고 김용준 혼자 석방 판결을 내린 것도 아니며 부장판사도 다른 사람이지만, 뭐 어쨌든 대운하 만들듯 꼬이고 꼬인 얘기를 뻥뻥 뚫어 버리면 딱히 틀린 얘기도 아닌 듯 하다. 뭔가 심하게 요약된 것 같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어쨌든 대통합이라니 해피엔드, 해피엔드. 5.18특별법은 위헌 의견을 낸 것 같지만 뭐 그런건 별로 상관없
딱히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을 가늠하기 힘든 법조인으로서의 이력과 달리, 헌법재판소장에서 물러난 뒤의 여러 행적이나 인터뷰로부터는 그의 성향을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충청미래정책포럼에도 참가한 바 있다. 모두 보수 색채의 단체들. 대체로 그는 중도 보수 성향의 인물로 평가받는다. 윤창중 대변인처럼 구국의 일념으로 뭉친 인물이 아니라는 게 아쉬울 뿐이다.
그의 좀 더 자세한 생각은 인터뷰를 통해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를 찾은 여러 인터뷰가 있었지만 대부분 전 헌법재판소장으로서, 그리고 법조인으로서의 입장을 내놓았던 것과 달리, 2012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는 조선일보의 독자권익보호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가진 것이라 그 의미가 다르게 느껴진다. 법이 아니라 언론과 사회를 보는 그의 눈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조선일보가 젊은이들에게 쓴소리는 하지 않고 ‘아첨’하려고 하는 게 불만이다. 우리 때도 고학(苦學)하면서 어렵게 공부했다. 요즘 젊은이들만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런데 ‘반값 등록금’이니 해서 달콤한 얘기만 들려주려고 한다.
반값 등록금에 대한 그의 고언은 쓴 약과도 같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그리도 ‘반값 등록금’을 얘기하시면서도, 사실 자세히 들여보면 “장학 혜택이랄든가 이런 것으로 해서” 하는 ‘실질적인 반값 등록금’만을 얘기하셨나 보다. 그의 고언은 계속된다.
책도 안 읽고, 신문도 안 읽고 그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서 얻은 쪼가리 지식이 전부인 줄 아는 일부 젊은이들에게 따끔하게 실력을 키우라고 왜 얘기 못 하나. 공부를 잘하든지, 아니면 스스로 학비를 벌라고 해야지, 노력도 안 하는 대학생들에게 국민이 세금으로 등록금을 대신 내줘야 하나.
무릎을 치게 하는 고언이다. 젊은이들은 책과 신문을 읽은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인터넷 찌라시에서 얻은 지식은 무시해야 한다. 공부를 잘 하든지 아르바이트를 하든지 해서 알아서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어르신들도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국민이 세금으로 무언가를 지원해준다는 것은 넌센스다. 오직 이런 재인식만이 이번 대선을 통해 새 숙제로 떠오른 세대 갈등을 봉합하고 100% 대한민국을 세울 큰 그림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