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저널리즘에 깊이 있는 들풀님의 글 을 재게재하였음을 밝힙니다.[/box]
내 웹 브라우저 ‘즐겨찾기’에 걸어 놓은 신문 몇 개가 있다. 다른 신문들은 필요할 때만 가서 필요한 기사만 본다. 즐겨찾기의 신문 중 하나는 <한겨레>다. 요즘 이 신문을 보면서 생각이 많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편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일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다. 편집 수뇌가 어떤 아이디어를 가졌는지 모르겠으나, 정도를 걷는 언론이라고 보기에는 도가 지나친 일들이 너무 잦다. 지지 후보가 있어도 이를 속시원히 밝히지 못하게 해 놓은 기형적인 공직선거법 때문인지, 박근혜를 낙선시키고 싶어하는 노골적인 의지가 구석구석에서 읽힌다.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의 인터뷰 기사다. 무슨 말씀 드리려고 하는지, 보시는 분들도 쉽게 짐작할 것이다. 큰따옴표가 빠졌다. 독자 수준, 국민 수준은 이렇게 높아졌는데, 신문이 독자 상대로 이런 장난이나 하려고 한다.
위 기사의 제목은 인터뷰 기사 중에서 김종인이 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 기사에서 관련된 언급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은 다음과 같은 부분들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는 게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경제민주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11월11일 (경제민주화 공약 발표를 앞두고) 박 후보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선거전략 변화를 처음 알았다. 경제상황이 어렵다고 하니까 성장 콤플렉스에 또 빠진 것인데, 새누리당의 상당수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경제민주화가 성장을 저해한다면, 경제민주화를 안 한 이명박 정부 4년간 왜 성장률이 저조한지 묻고 싶다. 747 공약 중에서 하나라도 된 게 있나? 경제민주화가 성장을 저해한다는 논리는 현실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것이다.”
“박 후보의 의지에 달린 거지. 본인은 실현하겠다고 하지 않나. 박 후보 자신이 경제민주화의 구체적 내용까지 알 수는 없다. 주변 사람들이 자꾸 딴소리를 하니까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지 …”
“경제민주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는데, 어떻게 해야겠다는 수단에 대해선 확신이 없는 것 같다. 지금 방법(공약)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쓸데없이 성장 가지고 떠드는 사람들이 상황을 이상하게 만들고 있다. 박 후보가 다시 생각하면 시정이 가능할 것이다.”
“… 박 후보가 (경제) 전문가가 아니지만 내가 신뢰를 가지고 하면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변 반대세력이 하도 많다 보니, 저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인터뷰 전체를 관통하는 김종인의 취지는, 박근혜가 경제 전문가가 아니므로 그 주변 인물들이 중요한데 이들이 경제 민주화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지가 없는 인간들이라서 박근혜의 경제 정책에서 경제 민주화가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이런 의견들을 담은 기사에 제목을 ‘박근혜, 경제 민주화 모른다’라고 붙였다. 김종인 발언의 핵심 취지가 ‘박근혜는 경제 민주화를 모른다’인 것인지는 둘째로 치자. 나는 <한겨레> 웹사이트에 주요 기사로 올라온 이 제목을 보고, 어떤 조사나 연구에서 박근혜가 경제 민주화를 모르는 것으로 판정되었다는 소식 같은 게 담긴 기사인 줄 알았다. 만일 그런 판정을 보도하는 기사라면 제목 저렇게 달아도 된다. 사실이니까. 이를테면 박근혜의 중학교 학적부를 본 뒤 ‘박근혜, 아이큐 90’ 이라는 제목을 달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제목의 근거는 오로지 김종인의 의견이고 김종인의 말이다. 인용해 온 의견은 큰따옴표를 써서 인용했음을 명시하고 사실과 혼동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요즘은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도 배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기사는 개인의 의견을 따옴표를 빼고 옮김으로써, 박근혜가 경제 민주화를 모르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내가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해서 그렇지만, 기사, 특히 제목에서 따옴표를 매개로 한 사실과 의견의 판단은 독자의 관점에서 볼 때 직관적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따옴표가 붙은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상당히 다른 정도의 임팩트로 독자에게 각인된다는 것이다. <한겨레>의 편집자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실수인가? 불행히도, 그렇지 않은 듯하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웹사이트에서 이 기사와 함께 주요 기사로 돋운 ‘안철수 지지 자살 소동남’ 인터뷰 기사에서는 ‘“난 절대 새누리당 알바가 아닙니다”‘라고 하여, 그가 한 말을 따옴표로 정확히 인용한 제목을 달았다. 또 그 밑에 기사에서도 박근혜가 유세장에서 한 말에 대해 ‘박근혜 “MB정부도 민생 실패”…현 정부와 차별화’라고 제대로 달았다. ‘박근혜, 경제 민주화 모른다’만 인용이 아니라 사실을 서술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의도적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럼 이 제목에 따옴표를 붙여 ‘“박근혜, 경제 민주화 모른다”‘ 혹은 ‘김종인 “박근혜, 경제 민주화 모른다”‘라고 했으면 옳게 될 것인가? 기사에 따르면 이것도 옳지 않다. 김종인이 “박근혜(가) 경제 민주화(를) 모른다”라고 말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인터뷰 기사가 아니라 김종인으로부터 글을 외고로 받아 실었다면 ‘박근혜, 경제 민주화 모른다’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것은 개인 칼럼으로서 김종인 개인의 의견을 담은 기사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해당 일자 지면에 함께 실린 ‘유신공주는 양공주 문제엔 관심이 없었다’는 제목도 가능하다. 필자 한홍구 개인의 의견을 담은 글의 제목이기 때문이다. 위 김종인 기사와는 성격이 판이하다.
종이 신문의 지면에 어떻게 제목이 달렸는지 모르겠지만, 지면을 소개하는 화면은 이렇게 되어 있다.
세 부분으로 쪼개어 실은 탓이겠지만, 문제의 잘못된 제목을 세 번이나 반복해 박았다.
이 기사의 핵심을 살리면서 제목을 제대로 붙인다면 ‘김종인,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이해를 부정적으로 평가‘ 정도가 될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므로 문제가 없다. 한국 언론에 유달리 많이 등장하는 큰따옴표 제목은 1) 지면의 공정성을 해치는 한이 있더라도 쉽게 가자는 생각의 반영이거나 2) 남(취재원)의 말을 빌어 내(언론사)가 하고 싶은 말 하자는 생각의 반영이다. 의도가 어떤 것이든 되도록 피해야 할 일이다. 하물며, 그런 따옴표조차 붙이지 않고 의견을 사실인 양 가장하는 편집을 해서야 되겠는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뜨거운 열기를 뒷심으로 하여, 우리도 공정한 언론 하나 가져보자고 국민이 뜻을 모아 만든 신문이, 그런 비판적 각성의 대상이 되었던 보수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이명박 5년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래서, 자신이 사실을 캐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주장을 이식하는 대중활동가로 착각하는 기자들이 활개치는 일도 정당화할 수 있었던가. 팩트 체크 같은 것은 하지도 않는지 대선 투표율이 잘못된 대문짝만한 표를 갖다 싣기도 하고, 독자 반응은 보지도 않는지 해당 기사 밑에 ‘투표율 틀렸으니 확인해 보라’는 독자 댓글이 있는데도 여전히 그 꼴이다. 그러니 그조차 의도적인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원문: 사실이 되어버린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