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 지사의 아들이 군대에서 후임병사를 폭행하고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해 남지사는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했습니다. 전근대사회에서처럼 연좌제를 함부로 적용해서는 안 되지만, 자식 문제에 부모의 일정한 책임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혹시 정치활동에 바빠 자식교육에 제대로 관심을 쏟지 못한 결과일 수 있고, 그런 점에서도 비판 받을 소지가 없지 않습니다.
한국의 오늘날 사회처럼 가족 특히 부자관계가 희박해진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도 있는 만큼 나라를 다스릴 정치가들은 가정 문제에도 좀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과 관련한 언론 보도 중에는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남지사가 아들의 가혹행위가 드러나기 바로 전에 중앙일보의 “나를 흔든 시 한줄 “이란 코너에서 군대 간 아들을 걱정하면서 쓴 글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남지사는 기고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아들 둘을 군대에 보내놓고 선임병사에게 매는 맞지 않는지, 전전긍긍했다. 병장이 된 지금은 오히려 가해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바로 남지사가 우려했던 사건이 터진 셈입니다. 그런데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종이판은 어떤지 모르지만 온라인판에서 이 사건을 톱으로 올리고 헤드라인을 다음과 같이 붙였습니다.
한겨레 : 남경필, ‘아들 맞을까’ 걱정하더니 — 되레 폭행·성추행
경향신문 : 남경필 나흘전 기고 ‘아들 맞을까봐 전전긍긍’
남지사의 기고글과 두 신문사의 헤드라인이 얼마나 다른가는 쉽게 알 수 있지요. 분명히 남지사는 지금은 가해자 역할을 하는 게 아닌지 걱정한다고 했습니다. 그걸 아들 맞을까봐만 걱정하는 형편없는 인물로 몰아간 것이지요. 이 정도의 왜곡이면 명예훼손에 가깝습니다. 물론 (노무현 같은 강건한 의지의 정치인을 빼고는) 기자에게는 을의 처지인 게 정치인인지라, 명예훼손 소송이 제기될 리는 없을 것입니다.
허나 사실 이런 정도의 왜곡에 대해선 담당자의 책임을 물어야 마땅합니다. 어려운 사실확인이 필요한 사안도 아니고, 간단한 기고문의 내용을 읽으면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왜곡을 일삼는 언론이라면 언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언론들은 왜곡을 일삼는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심심찮게 이런 왜곡을 저질러왔습니다.
남지사가 보수세력인 새누리당 인물이라 진보언론들이 이런 왜곡을 저질렀다면, 거꾸로 진보세력에 대해선 보수언론들이 왜곡보도를 자주 해왔지요.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 보수언론들의 보도를 한번 상기해 보십시오(“마법에 걸린 나라“란 책을 보시면 그 구체적인 왜곡사례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한국에는 <진보 – 보수>의 대치선(X축) 이외에, <개혁(상식) – 수구(몰상식)>의 대치선(Y축)이 존재한다는 걸 저는 늘 주장해 왔습니다. 객관적인 사실보도는 상식의 문제인데, 이걸 제대로 지키는 언론이 한국에는 잘 없다는 게 우리 언론계의 낮은 문화수준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며칠 전 TV에 등장한 신정아씨와 관련된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씨는 분명히 논문대필과 불륜이라는 커다란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 언론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신씨를 몸을 팔아 출세한 여자로까지 몰아갔습니다.(신씨의 첫남자는 변양균임이 법정에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도 나중에 그런 마녀사냥 식의 왜곡보도에 대해 진보건 보수건 제대로 사과한 언론이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영화로 유명해진 이른바 “부러진 화살” 사건에 대해서도 제대로 진실을 밝힌 언론은 진보건 보수건 별로 없었습니다.(진실은 사건이 영화화되었을 때 제가 쓴 글 “부러진 화살, 좌우파 균형, 합리적 개혁”을 참고하시길. 블로그에도 올려져 있음.) 진보쪽은 약자로 보였던 교수 입장만 일방적으로 옹호했고, 보수쪽도 자기 말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법원에 대해 마뜩찮게 생각해서였는지 제대로 진실을 밝히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전에 한국에 ‘문화혁명’ 이 필요하다는 걸 역설했습니다. 그런데 문화혁명을 위해 절실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언론계의 문화혁명입니다. 지금과 같이 일종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진실보도에는 게으르고 진영논리에만 사로잡힌 언론계를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의 문화혁명은 불가능합니다.
우선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남지사 관련 보도에 대한 정식 사과와 담당자 책임추궁을 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들부터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기우에서 말씀드리면, 저는 남경필 및 원희룡 지사의 연정시도에는 찬성해왔지만, 그 둘과는 지금 아무 관련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