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은 언제 시작해야 할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하지만, 때로는 조금씩 돌아가며 좋아하는 일을 하나씩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건축으로 출발해 VFX,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또 서울에서 LA로의 여정을 통해 점점 좋아하는 일에 다가가고 있는 아티스트, 박준기님(Joonki Park)을 만나보았습니다.
Q. 오랜만입니다. 간단히 자기 소개 부탁드릴게요.
A. 현재 드림웍스에서 레이아웃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Turbo’라는 작품부터 드림웍스에서 파이널 레이아웃 아티스트(Final Layout Artist)*로 일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How to train your dragon 2(드래곤 길들이기2)’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차기작부터는 러프 레이아웃 아티스트(Rough Layout Artist)*와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로 참여할 예정입니다.
Q. 3D 애니메이션에서 레이아웃 부서는 카메라 계획 & 실행과 세트 드레싱*을 하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그 중에서 특히 파이널 레이아웃은 어떤 분야인가요? (Set Dressing: 본래 무대를 꾸밀때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카메라에서 보이는 부분의 구조물이나 소품들을 가장 보기 좋게 배치하는 것입니다.)
A. 드림웍스의 레이아웃은 크게 ‘러프 레이아웃’ 과 ‘파이널 레이아웃’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러프 레이아웃’은 샷 혹은 시퀀스단위로 전체적인 카메라 작업을 합니다. ‘파이널 레이아웃’ 아티스트는 절반 정도의 시간은 셋드레싱에 사용하고, 나머지 절반의 시간은 카메라 정리와 핸드헬드 혹은 스테디캠과 같은 실제 카메라의 느낌을 더해주기 위해 사용합니다.
Q.굉장히 카메라에 특화된 부서입니다. 처음부터 레이아웃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나요?
A. 졸업작품을 시작할 때는 레이아웃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어요. UCLA와서 처음 애니메이션을 시작할 때는 2D 애니메이션부터 시작하였고, 그 때 당시는 애니메이팅이 가장 재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Maya를 사용해 졸업작품을 시작하자 애니메이션을 하는 것이 너무 복잡했습니다.
애니메이터는 제가 갈 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게 알게 되면서 모델링, 스토리보드등 여러가지 다른 파트들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중에서 연출 쪽이 흥미로워 카메라에 집중해서 졸업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Q. 카메라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군요. 학생 졸업 작품을 스테레오 스코픽(입체영화)으로 제작하는 경우는 찾아 보기 힘듭니다. 2008년에 졸업작품 ‘Friday Night Tights’를 기획하면서 왜 더 많은 제작기간을 요구하는 스테레오 스코픽 방식을 택했나요?
A. 2007년에 ‘베오울프’라는 영화를 3D로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특히 드래곤들이 날아다니는 시퀀스를 3D로 봤을 때 3D영화가 미래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때마침 그 해의 Maya가 스테레오 카메라를 기본으로 지원해 주기 시작해서 큰 고민 없이 일단 3D 입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그 결정 덕분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요. (웃음)
Q. 최근 레이아웃에서 스토리보드로 부서를 옮겼다고 들었습니다. 왜 스토리보드 분야를 선택하셨나요? 그리고 스토리보드로 가기 위해 어떠한 준비를 했나요?
A. 학생때 부터 가장 하고 싶었던 분야는 스토리보드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림으로 승부해 취업의 문을 뚫을 자신도 없었고 어떠한 형태로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회사에서 파이널 레이아웃 보다 연출에 깊게 관여하는 러프 레이아웃으로 옮기고자 개인 단편을 준비하던 중 제 그림체가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스타일이라는 말을 듣고 차라리 최종 골인 스토리보드로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업무 외 시간에 Concept Design Academy라는 곳에서 풍경화 수업도 듣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라이프 드로잉수업도 계속 들으면서 기본기를 재정비했고요.
스토리보드 수업을 들으면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습니다. 그 후에도 영화 개봉이 연기되는 등 몇가지 악재 때문에 힘든 상황이 많았지만 내부 테스트 1,2차를 통과하면서 1년간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로 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Q. ‘Friday Night Tights’의 장르는 뮤지컬입니다. 뮤지컬 형식의 작품을 위해 작사, 작곡도 본인이 다 하고, 발레 수업까지 수강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진행하고 계시는 단편 작품도 뮤지컬이고요. 뮤지컬 형식에 빠져든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A.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디즈니의 ‘인어 공주’와 ‘알라딘’ 이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2학년때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기 위해 입시 미술을 하고자 하였는데, 담임 선생님의 극구 반대로 좌절되었지요. 부모님까지는 설득했었는데…
Q. 담임선생님이 미술을 반대했어요?
A. 네. 한국에서 미술을 하면 밥 벌어먹기 힘들다고 하며 극구 반대를 했지요. 결국은 가장 미대와 비슷하다고 느낀 건축과를 갔습니다. 신기한 점은 건축을 디자인 하는 것도 건물에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영상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체험의 스토리텔링을 제공하는 것이었지요. 건축을 하면서 체험적인 스토리텔링을 배우게 된 점이 큰 자산입니다. 뮤지컬에 대한 사랑도 이때의 배움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Q. 연세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하셨습니다. 학교 졸업 후 건축 관련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왜 적지 않은 나이에 다시 애니메이션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A. 건축을 하는 동안에도 스케치북을 보면 반은 캐릭터 드로잉과 낙서였습니다. 한때는 그래픽 디자이너도 생각했지만, 디자이너 타입은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달았지요.
결정적인 계기는 졸업 후 3년동안 건축관련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면서, 건축분야가 제가 추구하는 것과 많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우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방위 산업체 근무가 끝난 뒤 바로 애니메이션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고, 애니메이션이 활성화 되어있는 미국으로 오기로 생각했습니다.
Q. 그렇게 UCLA 애니메이션 석사과정에 오셔서 만든 작품이 앞에서 언급한 ‘Friday Night Tights’이지요. 성공적인 졸업작품 덕분에 Rhythm & Hues(이하 R&H)라는 세계적인 VFX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R&H에서는 어떠한 프로젝트를 했나요?
A. Alvin and the Chipmunks , Hop, 그리고 Life of Pi에서 레이아웃 아티스트로 작업했습니다.
Q. Life of Pi도 작업하셨군요. 애니메이션을 위한 레이아웃과 VFX에서의 레이아웃은 어떻게 다른가요?
A. VFX에서 레이아웃은 일단 그린 스크린 플레이트(그린 스크린에서 실제 배우나 셋트를 찍은 영상)를 받아서 그 위에 약간의 Pan&Tilt를 합니다. 예를 들어 Life of Pi에서는 물 위에 있는 느낌을 주기 위해 일렁이는 파도의 느낌을 카메라를 통해 더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그린스크린 플레이트에 이미지를 맞춰야 하는 제약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위한 카메라 작업보다는 창의적인 작업이 많이 제약됩니다.
Q. 건축과 VFX를 거쳐 원래 목표 했던 애니메이션에 도달했습니다. 다음 스텝으로 어떤 것을 하고 싶으세요?
A. 앞에서 말했듯이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요즘은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것이 가장 제 꿈과 가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언젠가 제 이름을 건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그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실제 뮤지컬도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이미지 출처 <사진1> 직접 촬영 / <사진2> How to train your dragon 웹페이지 / <사진3 & 4> 박준기님 홈페이지 / <사진5 & 7> 박준기님 페이스북 / <사진 6> Life of Pi 웹페이지
이 인터뷰 시리즈는 한국 컨텐츠 진흥원과 CGLand.com에도 연재합니다.
원문: Skimat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