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할아버지가 알고 계시다는데, 아청법 위반범이 될 각오를 하고서 어린애들의 생활을 낱낱이 살펴보고 있는 건지, 초인 로크처럼 어떤 상황이라도 꿰뚫어볼 수 있는 초능력이 있는 건지, 아님 코갤러인지, 대체 무슨 수단과 방법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착한 아이고 나쁜 아이인지를 알고 있다고 한다. 대단한 꼰대다.
산타 클로스는 본 적이 없으니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겪어보니까 알겠다. 누가 착한 아이인지 나쁜 아이인지.
크리스마스에 집에 놀러온 친척 꼬마애가 내 프라모델이나 게임기를 맘에 들어하며 징징대기 시작할 때 내가 착한 아이인가 나쁜 아이인가가 결정된다. 평소 행실이 어땠는지는 상관없다. 골목에서 5명의 불량배에게 갱… 아니 희롱을 당하는 여고생을 구해주기 위해 달려들었거나 시골에서 올라와서 길을 못 찾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 드리고 길을 찾아드리는 따위의 소소한 무용담은 아무 의미없다. 장난감을 양보하냐 아니냐로 착한 아이인지 나쁜 아이인지가 결정된다.
크리스마스에 친구들끼리 나이트에 놀러갔을 때 착한 친구인지 나쁜 친구인지가 결정된다. 가장 마음에 들게 워싱이 된 청바지를 입고, 그 안에는 5장의 캘빈 클라인 팬티 중 짭이 아닌 유일한 한 장을 입고 나간 그 날, 내 옆에 앉아서 농담도 잘 받아주고 스킨십도 잘 받아주던 파트너와 드디어 귀를 빠는 경지까지 진도가 나갔을 때 갑자기 친구가 파트너 양보를 요구한다. 내가 평소에 그 친구를 위해서 술을 몇 번이나 사줬는지 걔네 엄마한테 무슨 욕을 쳐먹으면서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파트너를 양보하냐 아니냐로 착한 친구인지 나쁜 친구인지가 결정된다.
크리스마스 특박을 앞두고 동기들끼리 소각장에 쓰레기를 버리러 갔을 때 착한 동기인지 나쁜 동기인지가 결정된다. 근무자가 모자라기 때문에 특박을 모두 나갈 수는 없는데 지난달에 휴가를 다녀온 동기 녀석은 어머니가 너무 편찮으시니 자기가 꼭 나가야겠다며 석달 만에 특박 나갈 기대에 차있던 나를 쪼기 시작한다. 그 새끼가 점심시간에 장비 정리하다가 빠져나가서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목소리 좆 같은 여자친구 년한테 반드시 나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20분 넘게 이빨을 까는 광경을 봤던 사실을 알고 있지만 상관없다. 이미 지휘관과 고참들에게도 이빨을 털어놓은 후이기 때문에 내가 특박을 양보하느냐 아니냐로 착한 동기인지 나쁜 동기인지가 결정된다.
크리스마스 당직 근무를 놔두고 직원들끼리 순번을 정할 때 착한 동료인지 나쁜 동료인지가 결정된다. 근무시간 내내 일은 한 시간도 안 하고 해외여행 사이트와 환율 정보 페이지를 켜놓고 옆자리 동료와 이빨을 까던 동료가 올해는 자기가 쉬고 내년에 양보할 테니 꼭 좀 부탁한다며 캔커피를 사줘도 좆같이 제일 싼 레쓰비를 사주는 상황에서도 선택지는 하나 뿐이다. 크리스마스에 같이 못 놀게 됐다며 미안하다며, 오빤 착하니까 이해해 줄 거라며, 대신 설날에 좋은데 가서 맛있는 거 먹자며, 자기 못 믿냐며, 너무 하다며, 오빤 정말 착한 줄 알았는데 너무 하다며, 대신 연말에 맛있는 거 먹자며, 자기 못 믿냐며…
산타 클로스는 본 적이 없으니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는 알고 있다. 누가 착한 새낀지 멍청한 새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