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월호 특별법의 수사권/기소권 부여 문제가 첨예한 갈등을 낳고 있는데, 난 이것이 이렇게 첨예한 갈등을 낳을 문제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세월호 사건은 안전행정부니 행정안전부니 하는 말놀음으로 치장되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안전한 사회 운운에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이 비극은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무능과, 각하의 표현을 빌자면 ‘적폐'(積弊;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의 산물이었다. ‘선장이 설마 그따위로 하진 않겠지’, ‘해경이 설마 그따위로 하진 않겠지’ ‘구조본이 설마 그따위로 하진 않겠지’ ‘청와대가 설마 그따위로 하진 않겠지’ 하던 것들이, 죄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로 결론지어졌다.
그런데 이게 거꾸로 말하자면 그만큼 엄청 단순하게 무능하고 한심한 상황인 탓에, 이미 진상조사 단계에서 문제들이 거의 밝혀진 상황이다. 대통령이 지명하는 특검이 사태를 은폐할 거라고 보기에는 사태가 그렇게 복잡하거나 미묘한 게 아니라 은폐할 만한 게 그리 많아 보이지도 않는다.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이니 하지만 그건 어차피 조사 불가능한 문제고, 설령 조사를 한다 해도 아마 박근혜는 그때도 무능했다는 당연한(?) 결론 정도밖에 나오지 못할 것 같다. 국정원의 세월호 실소유주설 같은 것들은 크게 논할 의미가 없어 보인다.
수사권, 기소권 문제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한 것도 이런 까닭이 아닐까 싶다. 정말 특검으로조차 밝혀낼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음모나 권력의 핵심이 얽혀있다면 모르겠는데, 딱히 그런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즉 수사권, 기소권을 주장하는 쪽에서도 “여당을 어찌 믿는가” 처럼 (여당 지지층을 절대 설득할 수 없는) 뻔한 얘기만 할 수 있을 뿐, 왜 대통령이 지명하는 특검 등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세월호에 어떤 의혹이 더 숨겨져 있는지 상대를 설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
그런데 왜 이렇게 수사권 기소권 문제가 커졌는가? 난 그 핵심이 박근혜라고 생각한다.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무한책임을 지는 게 대통령 자리니까 – 같은 이차적인 게 아니라, 진짜로 박근혜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의 행보에서 이미 세월호는 지워졌다. 한 유가족의 40일간의 단식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월호를 언급조차 하지 않으며, 심지어 특별법 처리 문제를 두고는 “여야가 합의할 일”이라며 발을 빼버렸다. 만나달라는 요구에는, 물론 생깐다. 한마디 말이라도 해줄만 한데 그조차도 않는다.
흔히 ‘말이라도 잘 하면’ 이라고들 하는데, 대통령의 말과 움직임은 그 무엇보다 큰 힘과 울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월호 사태에 대한 유감 표명도 너무 늦었고, 그나마 그 후속조치가 제대로 뒤따르지 않았으며, 해경 해체라는 뜬금없는 말만 남았는데다가, 그나마도 불가능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지켜지지 않았다.
만일 대통령 또는 청와대의 주요 참모가 나서 “걱정하시는 바는 알고 있다, 믿어달라, 그 어떤 성역도 없을 것”이라고 립서비스라도 했다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발전했을까. 물론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이건 사실 모 아니면 도 식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조사 그 자체에 있으며 수사권이나 기소권은 그를 위한 일종의 도구인 것이다.
3.
왜 이럴까. 처음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음모다. 모종의 심각한 음모가 세월호 사태의 이면에 감춰져 있고, 그 이유로 진상조사를 방해해야 하는 것이다.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조사로 인해 그 무능과 적폐(…)가 가감없이 드러날 행정기관이 조사를 방해할 수도 있겠지만, 여차하면 해체해버리는 현대의 해체주의자 각하께서 그 장단에 마냥 놀아날 것 같지도 않다.
두 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무능이다. 대통령으로서 그는 도대체 한 게 없다. 그나마 가장 돋보이는, 그리고 대통령으로서의 철학을 드러내는 활동이라 할 만한 내각 인사 때마다 그는 참사를 일으켜왔다. ‘창조경제’ ‘구태 척결’ ‘적폐 해소’ 따위의 슬로건은 무슨 뜻인지 아무도 모른다.
좋은 것만 보이면 창조경제고 나쁜 것만 보이면 죄다 적폐란다. 말은 하는데 그 이후 뒤따르는 정책이 없다. 내실이 없다. 다들 묻고 싶을 것이다. 대통령이야말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하는지. 무능해서 일을 이렇게까지 만든 것이다.
또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권위주의다. ‘비밀해제 MB5년’ 기획기사가 박근혜의 그런 면을 다룬 적이 있다. 가장 즐겨 쓰는 말이 하극상이고, 그와 일할 때는 ‘아씨와 마님’ 같은 관계가 되어야 한다던가. 그가 즐겨쓰는 단어인 ‘법과 원칙’에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고른 내각 인사들이 어떤 불법과 탈법을 자행하더라도, 그는 ‘법과 원칙’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반(反)하는 것에 대해서만 ‘법과 원칙’을 얘기한다.
그는 원칙론자가 아니다. 어쩌면 대통령은 자신의 권위와 ‘법과 원칙’을 동치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화에 응하는 것 자체를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법과 원칙’에 반하는 일로 여길 수도 있다.
어차피 가설이지만, 나는 아마 두 번째와 세 번째가 함께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한다. 대화로 풀 만한 이성도 없었고, 대화를 할 만한 감성도 없었다는 것이다.
4.
결국 돌파구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에게 만능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현대의 대통령은 원래 미묘한 갈등을 조정하는 조율사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 자리고, 지금이 바로 그 미묘한 조율이 필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우상인 그는, 실로 마치 돌로 만든 우상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치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왕을 대통령으로 세워놓아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때로 어지러워지기 마련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우리의 대통령은 난세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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