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타이드를 연구하던 교수님, 창업의 길로 들어서다
이승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용태: 바이오빛 대표 김용태입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연구 교수로 있다가, 8년 전 펩타이드를 아이템으로 창업했습니다.
이승환: 펩타이드가 뭔가요?
김용태: 우리 몸을 이루는 기본적인 구성 성분이 ‘아미노산’입니다. 수십 개의 아미노산이 특정 형태로 연결된 걸 ‘펩타이드’라고 해요. 펩타이드는 종류에 따라 다양한 효능을 발휘하는데, 소량으로도 효능이 뛰어나서 의약품, 화장품 등 다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죠. 문제는 안정성이 매우 떨어져요.
이승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게, 펩타이드가 다시 아미노산으로 분해가 된다는 건가요? 아니면 효과 자체의 지속성이 낮다는 건가요?
김용태: 둘이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펩타이드는 아미노산이 특정 형태로 계속 연결되어 구조를 유지해야만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산소 접촉 등 외부 요인에 의해 이 구조가 쉽게 무너집니다. 자연히 효능도 떨어지죠.
이승환: 아무리 효과가 좋아도 구조가 금방 무너지면 무쓸모 아닌가요?
김용태: 그래서 기존에 펩타이드 의약품들은 대부분 주사제 형태였어요. 바로 신체에 주입하면 구조가 무너지기 전에 효과를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박사과정부터 펩타이드를 구조적으로 안정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연구했어요. 이게 상업적으로도 큰 잠재력을 가질 것으로 기대하고 창업한 거죠.
펩타이드를 통해 ‘안전한’ 항균 물질 개발
이승환: 펩타이드가 되게 다양하잖아요. 그러면 다양한 구조에 따라 안정화 기술도 다른가요? 아니면 몇 가지 표준 방법으로 안정화가 가능한가요?
김용태: 특정 펩타이드에 맞춤 적용하는 기술도 있지만, 그보다는 여러 펩타이드에 범용적으로 적용하는 기술 연구가 훨씬 많습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은 고분자를 이용해 나노구조체를 만들어 펩타이드 유지 시간을 높이고, 원하는 신체에 전달된 후 녹아 효능을 발휘하는 거죠. 그런데 이런 기술의 문제가 몇 있는데요. 첫 번째는 정말 원하는 곳에서 잘 녹아져 나오냐는 거고, 두 번째는 독성으로 인한 염증이나 면역거부반응 문제가 있어요. 아무래도 고분자가 원래 신체 안에 있는 물질은 아니니까요.
이승환: 바이오빛은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요?
김용태: 제가 하는 기술은 ‘프로테인 모디피케이션(Protein modification)’이라고, 쉽게 말해 단백질에 펩타이드를 붙이는 거예요. 이 기술은 펩타이드 구조를 거의 가리지 않고 대다수 펩타이드에 적용 가능하고요. 또 펩타이드를 이루는 아미노산도 단백질이잖아요? 원래 신체 안에 있는 단백질이니 신체에도 안전하지요.
이승환: 그럼 이 안정화된 펩타이드가 하는 역할이 뭔가요? 기능이 다양할 것 같은데…
김용태: 항균/항바이러스 펩타이드가 저희 핵심 물질입니다. 사람, 동식물 모두 외부 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항균펩타이드를 가지고 있어요. 이걸 활용한 겁니다. 항균펩타이드는 외부 균이나 바이러스를 죽이기도 하고, 면역반응을 통해 몸의 염증을 줄여주기도 하죠.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는 물질이기 때문에 외부 균은 죽이지만 우리 몸에는 안전한 겁니다.
이승환: 안전하면서도 오랫동안 지속되는 항균인 거네요.
김용태: 네. 안전한 항균을 구현하기 위해 ‘바이오 항균 코팅’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항균’ 제품을 너무 많이 쓰잖아요. 코로나 이후에는 더 그렇구요. 그런데 균을 죽이기 위해서 쓰는 항균제품이 실제로 우리 몸에까지 유해한 경우가 꽤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만 봐도 알 수 있죠. 10여 년 동안 피해자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게 바이오빛의 목표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이 인정한 기술 기업, 사드로 기회를 놓치다
이승환: 근데 원천기술을 가진 것과 돈을 버는 건 또 다른 일이지 않나요? 주변에 벤처 창업한 교수님들 생고생하는 경우 많던데.
김용태: 아… 이게 어렵죠. 과학자는 연구를 잘하고 기술을 잘 만드는 사람이지, 상업화는 다른 일이거든요. 스타트업에서 ‘시장’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원천기술은 그걸 어느 시장에 쓰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제가 처음 적용하려고 했던 분야는 화장품 쪽이었어요.
이승환: 뷰티요? 시장 너무 좋은 거 같은데요.
김용태: 그게 아모레퍼시픽에서 저희가 투자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해요. 창업 초기, 아모레퍼시픽이 주관하고 퓨처플레이가 진행한 ‘아모레 테크업플러스’라는 행사가 있었어요. 기술력 있는 200여 개 스타트업들이 모여서 참여한 행사였는데, 저희가 최종 3개 팀으로 뽑혀 퓨처플레이랑 아모레퍼시픽 투자를 받았고요. 이후 자연히 TIPS까지 연결됐습니다.
이승환: 그리고 자연히 아모레퍼시픽과 협업으로 연결된 거군요.
김용태: 네. 아모레퍼시픽에서 그러려고 만든 행사니까요. 여자분들 쿠션에 쓰는 ‘퍼프’ 있잖아요? 이것도 펩타이드를 잘 쓰면 굉장히 좋아요. 퍼프를 얼굴에 바르고 다시 넣고 할 때마다 피부와 공기 중에 닿고 오염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 회사 바이오빛, 아모레퍼시픽, 퍼프 납품 업체와 3자 계약까지 마치고 시제품까지 만들었죠.
이승환: 시작부터 대박인데요?
김용태: 근데 마침 그때 사드 배치로 인한 한한령이 터졌어요. 아모레뿐 아니라 화장품 업계 전체가 가라앉았죠. 그러면서 신규 프로젝트가 완전히 무산됐어요.
세계 최대 렌즈 안과 업체와의 렌즈 계약… 도 직전에 날아가다
이승환: 눈물 났겠네요…
김용태: 그래도 그때는 창업 초기라 기술력 하나는 우리가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이 있었죠. 아모레퍼시픽이 택했다고 하면, 전 세계 어디든지 관심을 가질만한 거니까요. 그러면 우리는 잘하는 기술개발을 계속하자. 그러다 우연히 미국 최대 안과 관련 업체 ‘VSP’와 연결됐어요. 여기서 안경렌즈 항균 코팅 의뢰를 받았습니다.
이승환: 오, 안경렌즈에 항균을 얹는 건가요…?
김용태: 맞습니다. VSP는 우리가 잘 아는 Ferragamo, Calvin Klein, Nike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회사입니다. 여기에서 저희 기술을 활용해 항균 펩타이드를 안경 렌즈에 코팅해서 항균 기능을 부여하기로 했죠. 렌즈에 항균 코팅을 하면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장기간 착용할 때 발생하는 안구감염에 도움이 되거든요.
이승환: 되면 대박이겠네요. 미국 최대 업체와 거래하게 되는 것이니.
김용태: 맞습니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어려운 도전이었어요. 렌즈면 빛이 투명하게 투과해야 하잖아요? 투명도가 99% 이상 나와야 하는데, 이러려면 은(Ag) 입자 사이즈를 엄청 줄여야 되는 거예요. 은 입자 사이즈가 조금만 커지면 haze 현상이라고, 렌즈가 뿌옇게 됩니다.
이 때문에 렌즈 겉부분에만 나노 사이즈 은 입자를 코팅하는데, 이러면 항균 기간이 굉장히 짧아요. 항균 펩타이드의 경우, 크기가 나노 단위이기 때문에 코팅을 해도 투명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항균 지속력이 있어서 투명도가 나오면서도 항균 효과가 오래 유지되는 것이죠. 이런 점을 VSP에서 좋게 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출시를 못 했어요.
이승환: 이번엔 또 뭔가요…
김용태: VSP 미국 공장에서 양산테스트까지 완료했는데, EPA에서 저희 항균 렌즈에 들어가는 펩타이드를 두고, 이게 신고된 물질이냐고 질의가 들어왔어요. 미국에서 항균 물질은 EPA, 한국으로 따지면 환경부의 규제를 받더라고요. 저희는 이거는 바이오 물질이다, 아미노산으로만 연결된 안전한 물질이다… 이렇게 답했죠. 그런데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 바이오빛 김용태 대표 [email protected]
작정하고 10억 이상을 들여 전 세계의 안전 인증 물질 등록에 들어가다
이승환: 별 문제 없을 거 같은데 왜 통과되지 않은 거죠?
김용태: 기본적으로 미국 환경부, EPA에서 이야기하는 항균 물질이라는 거는 다 농약이에요. 저는 따졌죠. 이건 단백질이지 화학 물질이 아니다, 논문 자료부터 해서 여러 자료를 다 보냈어요. 하지만 EPA는 일단 모든 항균 물질은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 비용만 최소 몇억이었고, 시간도 3년 이상 걸려요. 돈이야 어찌 해도, VSP는 당장 제품화를 원했으니 계약이 무산됐죠.
이승환: 눈물 나겠네요…
김용태: 그사이에 놓친 기회도 많아요. 효성 TNS가 미국 ATM기 보급률 1위로 점유율이 50%가 넘는 회사입니다. ATM기 화면부터 손에 닿는 키보드까지 전면 항균 코팅하는 기술이 필요해서 저희를 먼저 찾아왔었어요. 미국 뿐 아니라 러시아, 중동까지 수출을 논의해서, 아주 저온부터 사막과 같은 뜨겁고 건조한 조건에서의 성능평가까지 완료했어요. 테스트 통과하고 유통 계획까지 세웠지만, EPA 허가를 받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필요해서 무산됐어요.
이승환: 미국에서 계속 큰 기회를 잡을 뻔하다 놓쳤네요;;; 결국 인허가 때문에 항균 코팅 사업을 접게 됐나요?
김용태: 고민 끝에, 결국 인허가를 받고자 도전했습니다. 주변에서 모두 미쳤다고 했습니다. 인허가는 공인임상시험기관(GLP)에서 진행해야 하는데, 3년 이상의 시간과 10억 이상의 돈을 투자해야 하거든요. 진행한 지 4~5년째인데 이제야 가닥이 잡힙니다.
이승환: 진짜 고난의 행군이군요… 새로운 물질 하나 만들고 등록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네요.
김용태: 그래도 뿌듯한 게, 전 세계에서 항균 펩타이드를 등록한 회사가 우리가 최초예요. 각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아직 등록된 항균 펩타이드는 아직 없거든요. 사업 기회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에서도 계속 연구개발 의뢰가 들어오고 있고, 자동차나 공기청정기 필터, 마스크, 키오스크 등 적용 범위가 매우 광범위합니다. 항균물질이 기존에 있음에도 저희에게 계속 의뢰가 오는 이유는 안전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저희 물질이 필요한 거겠죠.
이승환: 그러면 바이오빛의 기술을 쓰면 펩타이드의 효과가 얼마나 유지되는 걸 목표로 하나요?
김용태: 보통 항균제가 뿌리면 금방 효과가 없어져요. 사실상 닦을 때 없애고 마는 거죠. 저희는 이미 렌즈 업체 VSP, 효성 TNS, 3M 등과 기술 평가는 마쳤잖아요? 다들 1년 정도 유지 가능한지 테스트했고 통과됐어요. 심지어 안정적으로 생산 가능한지 양산까지도 말이지요.
10년간 버틴 결실, 전세계에 항균 펩타이드 수출 계획
이승환: 대체 10년 가까이 어떻게 버티며 물질 인증까지 간 거죠.
김용태: 초기에는 아모레퍼시픽과 퓨처플레이의 투자금으로 버티다가, 중간에 중기부에서 빅3 창업기업이라고 반도체, 미래차, 바이오, 세 가지 분야의 미래선도 국내기업을 뽑는 프로그램에서 바이오헬스 유망기업으로 선정됐어요. 이때 받은 지원금과 국가 R&D자금으로 기술개발과 인허가를 위한 비용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진짜 10억 넘게 들였고, 지금은 미국 EPA, 유럽 BPR, 한국 환경부, 이렇게 다 등록 예정입니다.
그 외에도 화장품 원료로 펩타이드를 판매하기도 했어요. 항균, 항감염쪽으로 연구를 하다보니, 탈모나 트러블 방지, 아토피와 같은 피부면역질환에 대한 효능 스터디도 깊게 했습니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 대기업 반려동물 계열사에 원료를 판매하기도 하고, 로레알, P&G와 같은 글로벌 회사와 원료 적용을 위한 논의 중에 있습니다. 인허가를 준비하는 사이에 화장품, 동물의약외품을 5종이나 만들었어요.
이승환: 그나저나 사업은 어쩌다 시작하게 되셨나요?
김용태: 첫 직장은 유한양행이었어요. 제가 학부 마치고 취업할 당시, 국내 제약회사들이 다 카피약을 만들고 있었어요. 저는 철없는 마음에, 국내 1위 제약회사도 이러고 있구나, 다른 분야처럼 글로벌 경쟁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학부 졸업생이니 아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회사를 5년 정도 다닌 후 뒤늦게 석박사를 했습니다. 그래도 국내 1위 제약회사에서 제품 기획과 제작 경험이 있으니 잘 적응했어요. 이후 연구교수가 됐고, 연구 쪽에서는 인정받는 교수님들과 창업하게 된 거죠.
이승환: 8년 동안 개고생했는데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습니까?
김용태: 대기업 인수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어요. 대기업 바이오 계열사의 임원분이 단백질 쪽 연구하셨던 분이라 저희 기술을 바로 이해해주시더라구요. 투자 논의가 있었고 실사까지 완료되었는데, 제 욕심도 있고 대기업과 딜이 쉬운 것도 아니라 막판에 서로 갈 길을 가게 됐습니다. 박사 출신이다 보니 사업을 하면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기술에 대한 확신이 있고, 그동안 다양한 기업들과 협업을 하다 보니 올 하반기부터 필터, 의료기기 등에 저희 펩타이드를 적용한 제품이 시장에 나올 겁니다.
이승환 : 코로나 특수가 다 지났는데 너무 아쉽지 않나요?
김용태: 코로나가 한번 오고 말 일이 아니에요. 요즘 기후위기 이야기가 많은데, 코로나도 박쥐에서 왔다고 하잖아요? 기온이 1도만 올라가도 박쥐들의 서식지가 훨씬 넓어져요. 사스, 메르스, 코비드19, 어차피 다 같은 코로나 종이거든요. 많은 과학자들이 이제 그런 질병들이 더 빠르게 올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 바이오빛의 다음 스텝은 무엇인가요?
김용태: 단기적으로는 공기청정기나 에어컨에 사용되는 필터에 항균 코팅을 적용하려고 합니다. 대기질 악화, 반려동물 증가,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 기후변화 등으로 항균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겁니다. 직접적인 호흡기와 연관된 만큼, 안전한 항균기술이 꼭 필요한 분야입니다. 저희 기술로 기여할 수 있는 바가 클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의료보건분야로 적용을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수술 후 사용되는 스킨 스테이플에 항균펩타이드를 적용해서 수술 후 감염 문제를 해결할 겁니다. 임상을 진행하고 있어서 빠르면 내년부터는 본격적 상용화를 예상하고 있어요. 바이오 기술로 보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