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은퇴를 선언한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의 근황을 전하는 <연합뉴스> 기사가 각 일간지에 실렸다.
손 고문이 다산초당 인근 백련사 뒤에 있는 거처에 ‘칩거’하고 있다는 소식인데, 어째 그 ‘거처’를 이르는 이름이 두어 차례 바뀌고 있는 듯하다.
최초 <연합뉴스> 기사의 ‘토굴’
어제(20일) 처음 확인한 기사에선 그 거처의 이름이 ‘토굴’이었다. “‘정계 은퇴’ 손학규 강진 백련사 인근 토굴서 칩거”라는 제목 아래 실린 사진은 슬레이트 지붕의 ‘시골집’이다. 꽤 널따란 마루에 앉아 손 고문은 신발을 꿰고 있고 오른쪽에는 부인인 듯한 여성이 등을 보이고 있는 사진이다. ‘칩거(蟄居)’가 ‘나가서 활동하지 않고 집안에서 죽치고 있음’의 뜻이니 그 공간으로 ‘토굴’은 궁합이 맞는다.
그런데 토굴이란 ‘땅굴’과 같은 뜻으로 ‘땅을 파서 굴과 같이 만든 큰 구덩이’(<표준국어대사전>)란 뜻이다. 굳이 국어사전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걸 땅굴과 같은 의미로 새기는 건 상식이다. 기사를 읽으면서 내가 ‘웬 토굴?’ 하면서 전체 기사를 내리 훑어 본 것은 그 때문이다. “설마, 이 슬레이트집을 ‘토굴’이라고 한 건 아니겠지. 이 집 뒤편 어디엔가 토굴이 있는가 보다.”
그러고는 그걸 잊어버렸다. 두어 시간쯤 후에 <경향>에 실려 있는 기사의 제목에서 ‘토굴’은 ‘흙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 교열(사후 교열도 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을 거친 것이거나, 독자의 항의를 받았나 보다, 했다.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아도 집의 외벽이 흙인지는 분명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토굴’과는 거리가 먼 집이니 낱말을 바꾼 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요즘 기자들은 ‘토굴’의 뜻도 새기지 못하나 하고 말았다.
그러다 혹시나 싶어서 검색해 본 결과, 이게 단순한 실수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에 이르렀다. <연합>에서 제공한 기사에 제목을 붙이고 가공하면서 다소 교정이 이루어지긴 했는데, 그게 어쩐지 오류를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최초의 기사(2014/08/20 16:39 송고)에서는 일관되게 ‘토굴’이라고 쓰고 있는데, 사진 설명에서도 괄호 안에 ‘흙으로 지은 집’이라는 뜻풀이를 해 놓았다. 대충 일별해 보니 <조선>,<서울방송(SBS)>, <위키트리>, <허핑턴포스트> 등은 ‘토굴’을, <한겨레>에서는 ‘토담’, <경향>과 <동아> 등에서는 ‘흙집’을 쓰고 있다.
‘토굴’과 ‘토담’ 모두 ‘흙으로 지은 집’이라고?
‘토굴’에서 ‘토담’으로 바뀌어 게재하면서 <한겨레>에선 원 기사의 ‘토굴’을 ‘토담’으로 바꾸면서 뜻풀이는 그대로 두었다. 결국 ‘토담’도 ‘흙으로 지은 집’이 된 것이다. 다시 머리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토담’은 말 그대로 ‘흙담’인데, 어떻게 ‘담’과 ‘집’의 차이도 모르나 싶어서다.
하긴 공중파 방송의 기자가 ‘고가(高架)’ 도로 앞에서 [고:까](高價)라고 늠름하게 발음하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니, 신문기사에서 그런 잘못이 나오는 건 놀랄 일은 아닌지 모른다. 날이 갈수록 발음이나 우리말 쓰기의 중심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애당초 최초의 기사를 쓴 기자가 ‘칩거’에 너무 ‘꽂혔던’ 걸까. 한때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기도 했던 거물 정치인이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산골짜기로 들어간 건 ‘칩거’라고 해도 무방하긴 하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거처가 허술한 촌집인데, 거기 붙일 만한 이름은 ‘토굴’이 마침 맞았다. 바쁜 신문사에선 공급받은 통신 기사를 그대로 전재했다……. 그게 내가 상상한 그림이다.
속내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문은 방송과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언어생활의 준거 구실을 하는 곳이다. 기사에 쓰이는 낱말 하나도 정확·적확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영국 사람들은 영어가 궁금해지면 <비비시(BBC)>에 물어보자고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한국어능력시험’을 주관 시행하는 곳이지만 <한국방송(KBS)>에 ‘한글’을 물어보자고 하는 이가 없는 우리 현실을 확인하면서 씁쓸해지는 마음을 가누지 못한다.
원문: 이 풍진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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