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급성장 중인 코스메틱 브랜드 ‘라로제’
ㅍㅍㅅㅅ 이승환(리):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비미 이지선 대표: 안녕하세요, 프랑스 브랜드 종합 편집샵 ‘비미’를 운영하고 있는 이지선입니다. 최근에는 프랑스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라로제’ 한국 총판을 운영 중이에요.
리: 더마코스메틱이 뭐죠?
이지선: 프랑스 화장품 시장은 둘로 나뉘어요. 백화점이나 올리브영 같은 곳에서 판매하는 일반 화장품과, 피부과 의사가 만들거나 하는 ‘더마코스메틱’ 류 브랜드는 주로 약국에서 팔아요. 약사가 피부 타입에 맞춰서 화장품을 제안해 주는 기능성 화장품 시장이죠. 이 시장에서 라로제가 올해 매출액만 1천억원을 넘어, 프랑스 6위까지 올라갔어요. 그래서 벨기에 최고 갑부의 딸이 운영하는 FG bros라는 회사에서 투자도 했어요. 한국으로 치면 이부진 정도 되는 분이죠.
리: 엄청난 브랜드네요. 라로제 총판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죠?
이지선: 좀 운명 같았어요. 라로제 화장품을 주문했는데, 2차 포장 없이 제품이 다 깨져서 온 거예요. 너무 화가 나서 전화를 했죠. 그때 막 시작한 때라 창립자가 전화를 직접 받더라고요. 버블랩(뽁뽁이)을 안 쓴 건, 환경을 위해서 불필요한 포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물건이 깨진 건 미안하지만, 앞으로도 환경에 해를 끼칠 2차 포장재를 쓰지는 않겠다,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 이러는 거죠.
리: 환경에 관해 엄청나게 집착하네요.
이지선: 네. 그때 이 브랜드를 꼭 잡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인연이 이어진 거죠. 용기도 재활용 용기만 활용하고, 회사 화장실에도 티슈 아닌 수건을 써요. 출장 갈 때도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거나, 심지어 탄소 발생량 줄이게 첨부 파일에도 용량 많이 걸지 마라… 2015년 약사 두 분이서 만든 브랜드인데, 환경 이슈에 정말 상상을 초월해 집착해요.
리: 근데 환경이랑 돈 되는 건 다르지 않나요?
이지선: 이제 뷰티 브랜드들은 제품을 잘 만드는 건 기본이고, 내가 이 브랜드를 쓰고 있다는 거에 대한 자부심을 줘야 해요. 라로제가 이를 굉장히 잘 끌어간 게, 기존의 자외선 차단제에 들어가던 물질이 바다 산호를 죽인다고 이슈가 된 적이 있어요. 라로제가 2021년 이 문제를 해결한 UV필터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했어요. 이걸로 라로제가 엄청 떴고 매년 매출이 2배씩 늘고 있어요. 유럽 많은 브랜드들이 그 필터를 따라 사용하며, 라로제의 가치가 더욱 높아졌고요.
1인 블로그마켓에서 시작한 프랑스와의 인연
리: 어쩌다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됐나요?
비미 이지선 대표: LG패션 MD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때 연애한 지 얼마 안 된 남편이, 자기는 프랑스로 유학 갈 거니까 일단 결혼부터 하자고 하더라고요. 저도 놓치기 싫어서 콜했죠. 그렇게 남편은 프랑스로 유학 갔고, 전 한국에서 혼자 3년간 일했어요. 언젠가 프랑스에서 낭만을 누릴 거니까, 한국에서는 일개미처럼 살아도 즐거웠어요. 그렇게 프랑스로 가게 됐는데…
리: 됐는데?
이지선: 낭만이 바로 사라졌어요. 영어를 할 줄 알아서 불편한 거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프랑스인들은 영어에 응해주지 않더라고요. 슈퍼에 가서 물건 하나 사기도 힘들어서 남편한테 다 부탁해야 했죠. 3년 동안 정말 우울증 걸린 것처럼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어느새 33살이 됐네? 이대로 있으면 완전히 내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냅다 5천만원을 빌려서 장사를 시작했어요.
리: 행동력 쩌네요;;; 어떻게 장사를 시작한 거죠?
이지선: 블로그 하나 만들고, 제가 프랑스에서 샀던 물건과 옷 중 괜찮은 걸 올렸죠. 저는 물건 보는 걸 너무 좋아해요. 프랑스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파리에는 정말 다양한 소비재가 있거든요. 산책 나가서 그걸 보는 게 낙이었어요. 그리고 물건을 직접 사용하다 보면, 쇼핑몰이나 가게에서는 몰랐던 디테일이 느껴지잖아요. 직접 사용해 본 그 느낌을 블로그에 쓰며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리: 잘 팔렸나요?
이지선: 잘 안 팔렸죠. 근데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를 소개해 주는 것만으로 즐거웠어요. 저는 ‘물건을 쓰다 보면 그 뒤에 있는 사람이 보인다’고 하는데요. 그냥 물건만 올리는 게 아니라, 제품과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해 주려 노력했어요. 이 물건을 왜 샀는지, 어떤 물건인지, 만든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계속 꾸준히 진솔하게 썼어요. 그러다 우연히 육아용품이 터졌어요.
프랑스의 숨은 브랜드를 찾아헤매 정식 수입으로 연결
리: 아, 저 예전 직구업체 일할 때도 유럽 육아용품 엄청 팔렸어요.
이지선: 맞아요. 그게 트리거가 되며 사람들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잘 모르던 프랑스 제품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어요. 혼자 열심히 포장해서 보내고, 물건 받은 사람들도 좋아하고… 첫해 매출이 1천만원이 안 됐는데, 3천만, 6천만, 9천만, 이렇게 계속 늘었어요. 큰돈을 번 건 아니지만, 꾸준히 사람들이 저를 믿어준다는 자체로 좋았어요. 직구 힘들잖아요. 물건이 정말 좋은지도 모르는데 2주 기다려야 하고…
리: 뿌듯했겠네요.
이지선: 그렇게 잘되니까 욕심이 나더라고요. 직구, 병행수입으로는 좋은 브랜드와 함께하는데 한계가 있어요. 도매상에서 사도 이익률을 높이기는 힘들거든요. 그래서 브랜드와 직접 거래하는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어요. 아예 우리가 국내 총판 역할을 하면서, 한국에서 그 브랜드를 키워가는 방향이죠.
리: 그건 또 어떻게 했죠?
이지선: 그냥 이메일로 들이댔어요. 나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한국인인데, 너네 브랜드 제품 써보니까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잘 맞더라. 한국에 한번 잘 소개해 보고 싶은데, 만나서 얘기를 해보고 싶다… 그러면 프랑스 사람들이 되게 신기해해요. 한국은 블로그에서 제품을 판다고? 하면서 미팅하고 그랬죠. 그래도 비즈니스 미팅은 영어로 대화해 주니까, 생활보다 훨씬 편하더라고요.
리: 미팅하면 성과는 좀 있었나요?
이지선: 당연히 큰 브랜드는 저 같은 작은 사업자를 거들떠 보지도 않죠. 근데 정말 조그마한, 소위 프리미엄 인디펜던트 브랜드들은 목숨 걸고 자기를 알리려 하거든요. 그런 초기 브랜드들이 3~4년 후에 프랑스를 넘어 유럼에서 큰 브랜드가 되는 걸 많이 봤어요. 저는 그 가능성을 보고 초기에 연락하는 거죠. 그렇게 하나씩 계약을 따내서 파는 제품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라로제 창업자가 딱 찍어 선택한 한국 총판 권한
리: 그중 하나가 라로제인 건가요?
이지선: 맞아요. 그런데 저는 포기하고 있었어요. 라로제가 너무 잘나가게 됐으니까요. 전 세계 주요 뷰티 회사, 유통 회사에서 러브콜이 왔고, 한국도 쟁쟁한 회사들에서 라로제에 연락이 갔죠. 저는 낄 판이 아니라 생각하고 기대도 안 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창업자가 저를 부르더니, 우리는 너 말고 다른 사람이랑 한국에 수출할 생각이 없다는 거예요.
리: 와… 의리파네요.
이지선: 프랑스가 좀 그런 면이 있어요. 인연을 맺기는 힘든데, 한번 내 사람이다 하면, 끝도 없이 믿고 챙겨주는 거죠. 심지어 한번은 전 세계 라로제 유통사들이 다 모이는 자리에서 절 밀어준 적도 있어요. 다들 글로벌 대형 유통사들이라 제가 의기소침해 있었거든요. 그런데 라로제 창업자가 공개적으로 제 이야기를 했어요. 작은 회사지만 브랜드 창립 때부터 함께한 사람이다, 이 사람만큼 라로제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이렇게요.
리: 한국에서의 반응은 어떤가요?
이지선: 오자마자 반응이 좋아요. 8월에 런칭했는데, 4개월 만에 이미 월매출액이 1억을 찍었어요. 별다른 마케팅도 하지 않았는데, 빠르게 다양한 채널에 입점할 수 있었죠. MD들도 프랑스에서 핫한 브랜드니 노출을 잘해주셨어요. 그런데 반응이 너무 좋으니까 물건을 사입할 돈이 부족하더라고요. 급한 대로 비미에서 번 돈을 몽땅 라로제 재고 만드는 데 쓰고 있어요.
리: 주로 어떤 제품이 인기인가요?
이지선: 수분 크림을 스틱화한 ‘수분 스틱’이 인기예요. 한국에서 ‘가이 멀티밤’이 인기인데, 이보다 몇 년 먼저 라로제에서 수분 스틱을 만들었어요. 수분크림이나 미스트는 들고 다니기 힘들잖아요? 근데 이건 들고 다니면서 계속 얼굴에 수분과 영양을 공급할 수 있죠. 프랑스에서 제일 잘 팔리는 거는 선스틱인데, 내년부터 수입 예정이에요. 그러면 이 둘이 베스트 상품이 될 거라 생각해요.
리: 스틱류? 특이하네요.
이지선: 아까 제가 환경 이야기했잖아요? 화장품의 90% 이상이 물이에요. 그래서 방부제가 많이 들어가요. 근데 라로제는 모든 제품의 보존제를 빼고 활성 성분을 농축시켜 스틱화시킨 거죠. 기존 마스크처럼 용기와 방부제에서 환경 오염이 발생하지 않아요. 물이 적으니 보존기간이 길어 제품 사용기간도 길고요. 이렇게 모든 제품이 환경과 연결돼 있어요.
리: 정말 환경에 미친 회사로군요… 그러면 이제 비미에서 라로제 국내 총판을 맡게 되는 건가요.
이지선: 이미 라로제는 비미 안에 담기에는 너무 큰 브랜드예요. 그래서 저희 비미, 프랑스의 라로제 본사, 이렇게 둘이 조인트 벤처를 설립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비미는 유럽의 잘 알려지지 않은 프리미엄 브랜드를 소개하고, 인지도를 높여나가며 총판 사업으로 유기적으로 연결하려 해요. 즉 비미가 B2B, 라로제처럼 아예 브랜드 한국 진출 전체를 맡은 B2C 이렇게 함께 하는 거죠.
라로제와 같은 브랜드를 늘려나가며 프랑스와 한국을 연결할 것
리: 이미 라로제처럼 총판으로 유통하고 있는 제품이 있나요?
이지선: 네. ‘피콕’이라는 프리미엄 세제가 있어요. 조향사 학교를 졸업한 분들이 만든 세제죠. 1리터에 4만 원이니까 절대 싸지 않은데, 이 향을 좋아하는 분들은 계속해서 구매하시더라고요. 또 오피덤이라는 프리미엄 코스메틱 브랜드도 내년 초 런칭 계획이에요. 여기는 정말 비누를 하나를 만들 때마다, 자연 숙성시킨 신물질을 건조한 후 도자기로 빚는 것처럼 하나하나 깎아서 내놓는 브랜드예요. 이 브랜드는 이솝만큼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질 거라 생각해요.
리: 요즘 유럽 브랜드 소싱 경쟁이 치열하던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지선: 생각보다 프랑스 현지 브랜드를 소싱해 오는 게 어려워요. 프랑스 안에서 오랜 관계와 활동이 없이는 거래 트는 것 자체가 쉽지 않거든요. 여기에 행정적인 문제 장벽도 커요. 한국에서 문제 터지면 관공서가 문제를 해결하러 나서는데, 프랑스에서는 행정절차에 문제 생기면 모든 걸 법인이 직접 해결해야 해요. 저희 10년 경험이 남들이 따라가기 힘든 디테일에서 힘을 낼 거라고 생각해요.
리: K뷰티 엄청 뜨던데 역으로 수출해 볼 생각은 없나요?
지금 K뷰티는 제가 처음에 프랑스 물건을 블로그에 팔 때처럼, K팝에 심취한 젊은 분들이 역수입해서 많이 팔아요. 저도 아직까지는 수입만 하고 있지만, 한국 브랜드를 수출하는데 관심이 많고요. 제가 프랑스 사업가들과 엮일 일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랑스인들 반응을 볼 기회는 많잖아요. 혹시나 프랑스 진출에 관심 있는 분은 편히 연락 주셔도 좋아요.
리: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이지선: 제가 블로그마켓에서 시작해, 프랑스에서 사업한 지도 벌써 10년이 됐어요. 지금은 오히려 프랑스 인디 브랜드들이, 한국에 진출해보고 싶다고 저에게 먼저 연락을 주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래서 라로제 같은 케이스를 더 늘려나가고 싶어요. 그러려면 이제 좋은 팀과 자금이 필요할 때라서 고민이 많아요. 좋아하는 일을 지금까지 잘 키워왔으니,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