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은 ‘창업’이라는 위험한 선택지만 있지 않다
이승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임승현: 아이디어스와 텀블벅을 서비스하는 백패커 CSO 임승현입니다.
이: 『세컨드 펭귄』이라는 제목이 독특한데 무슨 뜻이죠?
임승현: 보통 가장 먼저 빙산에서 뛰어내리는 용기 있는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고 해요. 주로 창업자를 이야기하죠. 저는 지금이 퍼스트 펭귄의 시대인 것 같아요. 다들 근로소득으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창업을 장려하고 실제로도 많이 하죠. 유튜브도 보면 6개월 만에 1억 버는 법, 스마트스토어 대박… 그런데 창업은 대박 말고 쪽박도 있어요.
이: 그렇죠. 사실 쪽박차는 사람이 훨씬 많죠.
임승현: 네. 그런데 ‘퍼스트 펭귄’, 즉 창업자가 뛰어드는 세계는 운이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사회가 자꾸 창업을 권하는데, 진짜 퍼스트 펭귄은 드물거든요. 창업 성공 확률은 극히 낮고 사람들은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하니까요. 설사 창업했다 해도 이후 그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죠. 그러니 무리해서 퍼스트 펭귄이 되지 말란 거죠. 요즘 너무 쉽게들 창업을 권하는 것 같아요.
이: 그럼 세컨드 펭귄은 2인자가 되라는 겁니까? 님도 회사 내 이사이기도 하고.
임승현: 세컨드 펭귄은 조직 내 2인자가 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두 번째로 뛰어내리라는 겁니다. 첫 번째 뛰어내린 펭귄인 창업자는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합니다. 세컨드 펭귄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나 리스크를 짊어지죠. 편하게 돈 잘 받을 수 있는 회사를 나오는 거니까요. 하지만 대표로 창업하는 게 아니기에 망하지는 않습니다. 저를 예로 들면 컨설팅 펌 3년 다니고, 연봉 깎으며 당시 직원 500명 정도 되는 쿠팡에 합류했죠.
이: 근데 쿠팡이 지금 잘돼서 그렇지, 잘못했으면 커리어 꼬일 수도 있는 결정 같은데요.
임승현: 제 생각은 다릅니다. 가장 위험한 결정은 가만히 있는 거라 생각해요. 대기업이든 컨설팅이든 좋은 직장에 취업하면, 가만히 있는 게 제일 편하죠. 그런데 신입으로 입사해서 머리가 조금만 굵어져도, 내가 여기에서 뭔가 도전적인 일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임원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느 순간 타성에 젖어버리게 되죠. 이때 뛰어내려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게 세컨드 펭귄의 길입니다. 대신 무리해서 창업하지 않고, 리스크도 함께 낮추며 도전하는 거죠.
내 역량을 발휘하고 극대화할 수 있는 회사에 몸을 담아야 한다
이: 근데 회사를 나와서 스타트업에서 도전하려면, 기존 가지고 있던 직무와 핏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임승현: 저도 첫 직장에서 한 컨설팅 업무가 실무와 좀 거리가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실무에서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이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그래도 컨설팅 펌에서 배운 것은 ‘데이터를 해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데이터를 많이 다루는, 커머스 플랫폼 쿠팡으로 간 거죠.
이: 쿠팡에 가보니 어땠나요?
임승현: 뛰어난 인재들이 막 본격적으로 영입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엘리트들이 와도 IT나 유통을 모르잖아요. 그분들도 좌충우돌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기회였습니다. 2014년 당시만 해도 데이터가 있어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정리가 안된 시기였거든요. 특히 쿠팡은 너무 급속도로 성장하다 보니, 전사적으로 데이터를 잘 활용하기는 힘들었어요. 그래서 아예 SQL을 배워서 직접 데이터를 뽑기 시작했어요.
이: 그래서 쿠팡에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임승현: 데이터를 자유롭게 다루니 많은 게 보이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커머스가 주먹구구식이었어요. 영업본부장이 “이벤트는 7일 정도 해볼까” 하면 통과되는 식으로, 베테랑 MD의 감으로 운영된 거죠. 그런데 제가 카테고리별 주간 매출과 이익, 이벤트시 매출 변화폭 등 데이터를 제시하며, 의사결정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게 됐어요. 나중에는 수요예측 프로그램도 만들었고요. 로켓배송도 데이터 기반으로 나온 겁니다. 유독 배송 문제에 소비자들의 불만족이 엄청났거든요.
이: 그 쿠팡은 왜 그만뒀습니까?
임승현: 체계 없이 조직이 커지는 과정이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몇 달에 한 번씩 조직 발령이 나는데, 제게 맞는 일도 아니고 윗사람이 제가 뭐했던 사람인지도 모르고… 반대로 지금 쿠팡이 그걸 이겨내고 대기업이 된 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때 조직이 너무 비효율적으로 돌아가니, 작게라도 내가 경영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처음부터 MVP를 만들어 시장과의 접점을 찾아보고 싶었죠. 그래서 산타토익을 만드는 뤼이드에 COO(운영총괄) 입사했습니다.
연봉이 아닌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회사에 가야 하는 이유
이: 그런데 보통 이럴 때는 창업을 하잖아요.
임승현: 저는 확실히 창업은 안 할 것 같아요. 창업자들은 정말 다르거든요. 성공한 창업자를 많이 봤지만 내성적인 사람도 외향적인 사람도 있고, 성격은 다양해요. 하지만 불확실한 세계에 뛰어들어 내가 할 수 있다고 믿고 사람들을 끌고 나가는 낙관성, 때로는 무지해 보이기까지 하는 무모함, 이건 제 기질로는 절대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창업자는 생각보다 굉장히 회사에 매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도 저에게 맞지 않다 생각했어요.
이: 그래서 2인자를 겨냥한다?
임승현: 2인자라고 특정할 필요는 없어요. 자신이 가진 역량으로 창업자가 가지고 있지 못한 부분을 잘 보완하고 보좌해 주면 되는 거죠. 창업자는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며 도전한다면, 순간순간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게 제 역할이죠. 지금까지 여러 회사에서 그 역할을 했고, 최근에는 조직에서 영향력도 커져서 업무 범위도 넓어졌습니다. 창업자가 아닌 세컨드펭귄의 길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거죠.
이: 어쨌든 큰 회사 관두고 작은 회사로 가면 연봉이 깎일 확률이 높잖아요?
임승현: 이직할 때마다, 내가 무엇을 얻을지 어떤 비용을 지불할지 명확히 비교해야 해요. 제가 이직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내가 어떤 역량으로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가’라고 했잖아요. 또 하나의 중요한 기준은 ‘내가 쌓고 싶은 역량을 여기서 쌓을 수 있는가’입니다. 제 경우도 쿠팡, 뤼이드 갈 때 연봉은 전혀 고려 안 했거든요 . 대신 쿠팡에서는 데이터와 마케팅 역량을 높였고, 뤼이드에서는 제품과 조직 운영 역량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연봉을 비용으로 지불하는 대신, 역량을 얻은 거죠.
이: 그런데 쿠팡도 잘됐고 뤼이드도 일단 엄청 컸으니까, 지금 커리어가 잘 풀린 거 아닐까요?
임승현: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런데 반대로 제가 뭔가 꼬인 회사에 갔다, 그래도 전 큰 문제는 안 됐을 거라고 봐요. 저는 좋은 커리어는 ‘어떤 역량을 쌓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연봉이 좀 더 낮고 스톡옵션도 별로 못 받았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쿠팡이 아닌 다른 커머스 기업에 갔어도 데이터 기반으로 실무부서의 문제를 풀고, 전략을 제시하는 역량을 쌓았을 거예요. 일시적으로 차이는 있겠지만, 길게는 회사 명함 떼어낼 때의 생존력이 중요하다 봅니다.
세컨드 펭귄은 군주를 돕는 ‘참모’
이: 그렇다면 성공적인 세컨드 펭귄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어떤 능력은 어떤 게 있다고 보세요?
임승현: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일단은 신뢰를 얻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퍼스트 펭귄인 창업자들은 시작부터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의 지위에 누구도 의문을 제시하지 않죠. 결국에는 그거를 스스로 잘 인지하고 잘 그냥 실행하는 거가 되게 중요한데요. 세컨드 펭귄은 처음부터 권력이 없습니다. 좋은 회사 출신 좋은 경력, 이런 걸 가지고 오면 오히려 경계심에 부딪힐 때도 있죠.
이: 그러면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신뢰는 어떻게 얻어가야 할까요?
임승현: 가장 쉬운 건 배우는 겁니다. 모든 실무를 각 실무자들이 훨씬 더 잘하잖아요? 이걸 하나하나 배우는 거죠. 어떤 리더도 특정 영역을 제외하면 실무자만큼 하지 못해요. 그렇게 배워나가다 보면, 좀 더 큰 조직의 시야에서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더 낫게 만들 수 있습니다. 더 효과적인 일을 하거나,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동기부여를 해주는 거죠. 그 과정이 반복되며, 동료의 실력이 늘고 실적이 오르면 신뢰를 얻게 되겠죠.
이: 이런 일들을 대표가 직접 해도 되지 않나요?
임승현: 대표는 세세한 실무를 배울 시간이 없습니다. 직접 뭘 하기에는 비용 대비 효율성도 떨어지고요. 좋은 사람을 찾고 큰 결정을 내리는 게 대표의 역할이지요. 세컨드 펭귄에게는 ‘내 역량으로 대표를 성공시키고 싶다’는 생각은 중요합니다. 삼국지 보면 참모들이 끊임없이 군주를 찾아다니잖아요. 군주를 도우며,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국가를 만들 듯 회사를 만들어 가는 거죠.
이: 삼국지 참모라 하니 확실히 감이 오네요.
임승현: 네. 세컨드펭귄은 대표를 잘 보완해야 합니다. 대표들은 과감하고 빠른 만큼, 무모한 의사결정을 하기도 하거든요. 대표의 직관은 존중해야겠지만, 이를 논리적으로 분석해 줘야 하죠.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대표의 비전을 지지해 줘야 하고, 또 대표로부터 어느 정도 신뢰를 얻었는지를 지혜롭게 봐야 합니다. 보통 대표는 고집이 세서 설득하기 힘드니까요. 그렇게 회사를 위한 의사결정을 끊임없이 근거 기반으로 하는 것, 이게 세컨드 펭귄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편한 회사에 계속 남는 것은 결코 좋은 선택만은 아니다
이: 그러면 어떤 분들께 세컨드 펭귄이 되길 권하시나요?
임승현: 대부분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내 역량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해요. 하지만, 지금 상황이 편하고 익숙하니까 회사에 계속 남아있죠. 그런데 세컨드 펭귄은 ‘아무리 편해도 내 역량을 펼치지 못하는 게 만족스럽지 못한 사람’인 것 같아요. 남들이 볼 때 잘 살고는 있지만, 안정적인 빙산이 불만족스러운 거죠.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빙산에 머물러 있죠. 그냥 그게 편하니까.
이: 하지만 돈을 포기하기는 너무 마음 아프지 않습니까.
임승현: 저는 반대로 돈을 많이 받는 직장은 기회비용이 그만큼 크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받는 만큼 역량을 발휘하고 성장하고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거든요. 예로 지금 회사에서 1억을 받고 있는데 내가 밖에 나가서 1억을 벌 수 있는가? 아마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을 겁니다. 시장가치보다 내 가격이 높은 거죠. 그런데 우리가 안정적이고 좋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개인의 역량과 가치가 극대화되기 힘들거든요. 회사 운영에 최적화된 시스템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가격보다 가치를 올리는 게 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봅니다. 좋은 직장에서 주어진 일만 하면 가치가 떨어지고 나와서 할 게 없는 거죠.
이: 스타트업에 뛰어들 때 다들 연봉 대신 지분을 택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건 어떻게 보세요.
임승현: 처음 스타트업에 올 때, 주식 가치를 생각하면 아마 실망할 확률이 높을 것 같아요. 우선 스톡옵션의 실현 개념이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고 세금 등을 떼면 생각보다 연봉 이상 받을 확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사실 많은 경우에 스톡옵션은 실현할 필요조차 없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에 처합니다. 스톡옵션이 인생을 바꾸는 건 정말 운 좋을 때 이야기에요. 세컨드 펭귄 전략은 단기 보상을 좇는 것이 아니라, 일단 역량을 쌓으며 기회를 탐색하다가, 역량을 극대화할 기회가 나면 뛰어드는 거라고 봅니다.
이: 돈도 아니고 주식도 아니면 좀 슬프잖아요.
임승현: 세컨드 펭귄이 얻는 건 당장의 부가 아니라, ‘언제라도 부를 얻을 수 있는 역량과 기회’입니다. 저만 해도 세 번째 스타트업에 몸담고 있어요. 그때마다 제 권한과 보상의 기회는 훨씬 커졌고요. 다만 첫 시작은 스타트업을 알아가는 거라 생각해요. 막상 스타트업에 오면, 생각보다 스타트업에 기여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 당황하실 수도 있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기여할 수 있는지 고민하며 역량을 쌓아가다 보면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커지고, 굉장히 좋은 가격으로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겁니다.
기술이 아닌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 대기업에서 열심히 일해 임원까지 올라가는 분들은 어떻게 보세요?
임승현: 제가 ‘세컨드 펭귄’을 ‘기업가형 인재’라고 정의했잖아요. 저는 그렇게 승진하며 성공하는 분들도 ‘기업가형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대기업에서 위로 승진할수록 정말 큰 일을 맡은 C레벨을 보좌해야 하잖아요. 또 거기까지 올라가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을 넣으며 도전해야 합니다. 사실 저는 인생에서 직업적 성공이나 일에서의 성취가 주목적이 아닌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제 주변에도 일과 가정과 취미를 균형 있게 가져가는 분들이 많아요.
이: 그러면 스타트업 주니어들에게 하고픈 말은?
임승현: 저는 먼저 스타트업 개념을 아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은 일반 직장처럼 다니면 더 위험하거든요. 대기업, 중견기업과 달리, 스타트업은 10년이 된 곳도 시장과 비즈니스 모델이 불안정한 곳이 많아요. 반면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기회가 열려있다는 거예요. 그렇기에 최대한 역량을 높일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는 직장에 가야 합니다. 당장 연봉 좀 낮더라도 배울 게 많은 포지션을 택하면, 앞으로 훨씬 많은 기회가 펼쳐지거든요.
이: 그럼 주니어들이 더 높은 레벨로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임승현: 몇 년 전까지 퍼포먼스 마케팅 열풍이 불었잖아요. 그걸 할 줄 아는 사람들 몸값이 막 뛰었죠. 그런데 페이스북 광고 성과가 떨어지며 열기가 확 식었어요. 본질이 중요하다, 이런 뻔한 말이 아니라 스킬이 아닌 다양한 문제해결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려면 다양한 문제에 부딪혀 봐야 해요. 퍼포먼스 마케팅을 했던 사람이면 CRM이나 온사이트 마케팅도 해보고, 기회가 되면 더 작은 스타트업에서 마케팅 리더를 하며 브랜딩도 익힌다거나, 공부로 배우기보다 문제에 부딪히며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하고 빙산 위에 남는 사람이 되어버리죠.
이: CSO나 COO가 흔히들 기술 없는 잡부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세요?
임승현: 그 관점이 ‘문송합니다’ 잖아요? 저는 그런 저변에 깔려 있는 생각이 ‘스킬셋이 곧 역량’이라는 생각인 것 같아요. 이게 주니어에게는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기술은 몇 년 하면 숙달되거든요. 공식 그대로 할 수 있는 건, 가치 창출이 높지 않습니다. 결국 조직의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의사결정, 조직의 구조가 커질수록 여러 사람과 팀이 함께 같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게 하는 것, 이런 게 정말 비싼 능력이라 생각하거든요. 여기에 필요한 건 경험이고, 몸으로 부딪히며 얻은 경험은 스킬셋으로 대체할 수 없다고 봅니다.
운에 맡기지 말고 타인을 따라 하지 말라
이: 아이디어스는 어쩌다 합류하게 되셨나요?
임승현: 쿠팡, 뤼이드와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기여할 수 있고, 제 역량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죠. 이미 쿠팡에서 커머스를 경험했고 뤼이드에서 조직 구조도 만들어 보고… 다만 이번에는 대표님의 인성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이 대표님은 내가 꼭 성공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그래서 시작부터 CSO에 권한도 많이 받았다…
임승현: 감사하게도 좋은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어요. 처음에는 전략팀 리더로 입사했었고, 6개월 정도 일하며 성과를 보인 후 CSO 포지션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직장인은 보상이 산술적으로 꾸준히 오르잖아요? 그런데 세컨드 펭귄의 보상은 지수 곡선처럼 처음에는 거의 오르지 않다가 갑자기 급격하게 올라가요. 저도 지금은 연봉이 높지만, 최근 몇 년 만에 확 높아진 거거든요. 그 전 10년 정도는 제 주변 사람에 비해 연봉이 훨씬 낮았어요.
이: 당장 욕심낼 필요는 없겠군요.
임승현: 네. 저는 세컨드 펭귄이 리스크는 낮추면서도 기댓값을 최대화하는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창업자는 승률은 매우 낮지만 리턴이 매우 높습니다. 반대로 직장인은 승률은 매우 높지만 리턴은 높지 않지요. 세컨드펭귄은 승률이 그리 높지 않지만 돌아오는 건 직장인보다는 훨씬 높습니다. 무엇보다 망하지 않으면서 계속 도전할 수 있지요. 그러니 확률이 굉장히 낮은 스톡 옵션에 가치를 두기보다, 경험과 역량에 투자하길 권합니다. 그러면 연봉이 높아지고, 스톡옵션의 기회도 많아질 거예요.
이: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임승현: 책의 마지막 장을 쓰고 나서야,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는 ‘나 자신으로 사는 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문제가 되는 경우는 무턱대고 퍼스트펭귄을 따라 하는 것이에요. 그게 멋져 보이니까,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특히 한국은 스스로를 어떻게 보는지 보다,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가 더 중요한 사회 같아요. 그렇지만 타인의 욕망을 욕망해서는 결코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모두가 창업이라는 특수한 길을 갈 필요가 없고, 실제 스타트업의 99%는 멤버로 구성되어 있죠. 저는 세컨드펭귄으로서 충분히 주도적으로 일하면서도, 적절한 리스크로 높은 보상을 가져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겁니다. 반대로 안정적인 조직에 있지만 성장하지 않고 역량에 발전이 없다면, 필요한 때에 적합한 리스크를 져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 방향성이든지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되겠네요. 운에 맡기지 말 것. 타인을 따라 하지 말 것. 그리고 뛰어내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