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리승환 수령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다짜고짜 ㅍㅍㅅㅅ라는 듣보잡 사이트에 여성들을 위한 섹스 칼럼을 써줄 것을 요구했다. 원체 조신한 데다 나름의 사회적 체면을 지켜야 하는 필자로서는 도무지 안 될 말이었다.
그래서 애걸복걸한 끝에 필자의 직업과 연관된 ‘크리스마스를 혼자 버텨야 하는 솔로들을 위한 스마트폰 앱’에 대해 쓰기로 쇼부를 봤으나, 전화를 끊고 1분간 숙고해본 결과 솔까말 앱은 무슨 얼어죽을, ‘솔로들은 크리스마스날 그냥 짧은 동면을 취하시라’는 게 최고의 조언이 아닐까 싶은 거다.
하지만 오더는 어떻게든 완수해야 한다는 종특을 체화한 사회인으로서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기왕 비겁하게 익명으로 나갈 글, 사실 얼마 되지도 않는 사회적 지위와 체면은 잠시 내려놓고 한 12금 정도로 스스로와 타협했다.
스킨십에 대한 시각의 남녀간 큰 차이
우선 갓 대학에 들어갔을 때의 일화로 시작하자. 살짝 마음이 비뚤어진 나도 인정할 만큼 착하고 순진해서 별명이 천사표인 여중 동창이 있었다. 이 친구가 당시 첫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었는데, 남자친구가 가벼운 스킨십을 시도했다고 한다. 성인들 사이의 스킨십이 가볍든 무겁든 무슨 상관이겠느냐마는, 이 동창의 반응은 나로서도 놀라웠다. 남자친구가 이 동창을 얼싸안았을 뿐인데 그만 무서워서 울어버렸다는 거다.
이 일화는 남녀의 ㅅㅅ 온도차가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제발 ‘아하, 여자들은 대부분 저렇게 유리구슬처럼 연약한 멘탈을 지녔구나’하고 단세포처럼 결론 내리지는 말자. 요지는, 한없이 무한에 수렴하는 99.9999%가 미친듯이 ㅅㅅ를 좋아하는 남자 집단과 달리 여자 집단에 속한 이들의 ㅅㅅ선호도는 0부터 100까지 가지각색이라는 거다.
그리고 심지어 여자들의 ㅅㅅ선호도는 겉모습으로 알아채기도 어렵다. 한겨울에도 미니스커트에 망사 스타킹… 까지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걸 고수하는 야한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한 지인은 거의 불감증이다. 이 지인이 남자로부터 원하는 건 정감어린 대화와 손잡기와 따뜻한 포옹 정도다.
이 온도차는 남녀 간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첨예한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 여자들 중 일부(이게 몇 %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불가능하다. 다행히 시대가 변한 덕에 점점 줄고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는 별로 땡기지도 않는데 남자친구가 워낙 졸라대서 마지못해 응한다는 식으로, 별 느낌도 없이, 아니 느낌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아프기까지 하면서 첫 ㅅㅅ를 치렀다.
아아… 피곤한 남자들의 욕구여…
이렇게 몸가짐이 지나치게 조신한 여자친구를 둔 남자들은 안달복달하면서 끊임없이 회유하고 조르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개중에 찌질한 놈들은 날 못 믿냐는 둥 화를 내며 고전적인 드립을 치거나 섭섭한 티를 내기도 한다. 참고로 필자는 좀 둔하고 단순한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있었다. 필자는 남자친구에게 바라거나 요구하는 게 그닥 없는 성격인데도 상대방이 너무 둔해서 가끔 섭섭해하곤 했다.
그런데 이 둔한 인간이 반대로 나에게 섭섭한 표정을 짓는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내가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거절했을 때였다. 이 구남친 같은 사람에게는 세상에 섭섭할 상황이 ‘여자가 ㅅㅅ를 거부할 때’ 정도밖에 없었던 거다. 서로 좋다고 사귀는 입장에서 이해 못할 것도 없긴 하지만 솔직히 좀 찌질한 느낌이긴 하다. 세상엔 이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남자도 조금은(결코 많지는 않다, 어른스러운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희귀종) 있단 말이다.
반대로 미국 영화의 십대 언니들처럼 ‘OMG, 난 아직 버진이라는 게 쪽팔려’라면서 남자를 물색하는 여자들도 좀 있다. 이 분들은 남자와 목적의식을 공유하면서 소극적이든 노골적이든 순탄한 ㅅㅅ를 위한 멍석을 깔아준다. 불량 없는 아이폰을 배송받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뽑기운’이듯, 모험심 강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 것도 다 뽑기운에 달렸다.
그러니까 자, 기운 내고 파이팅! 아님 당신이 좀 잘생겼든가….
ㅅㅅ 냐, 돌아섬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아마 여자들은 이 글을 읽어내리면서 공감을 하겠지만(그…그래주실 거죠?;;), 남자들은 이쯤 되면 또다시 안달복달하면서 그래서 이런 온도차를 극복할 솔루션을 토해내라고 재촉할 듯하다. 그런데 바로 그게 문제다. 안달복달 하면서 솔루션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 묻고, 더 나아가 지금 나와 ㅅㅅ를 할거냐 말거냐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그놈의 종특.
극단적인 사례지만, 언뜻 멀쩡해 보이는 한 남자 지인은 첫 데이트날 여자에게 모텔에 가자고 제안했다가 당연히 거절당한 적이 있다. 정말 이 지인의 두개골 속에 뭐가 탑재돼 있는지 모르겠는 게, 이 남자 지인과 여자는 무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이였다. 여자는 솔로탈출의 희망감에 가득 차 데이트를 나갔다가 완전 ㅈ같은 기분으로 귀가한 후 회사에 소문을 냈고, 지금은 이직한 상태다.
남자 지인은 그 이후로 여러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그리고 그 중 한 여자친구와는 결혼 직전까지 갔고, 여친이 유산을 했고, 자세한 사정은 알 길이 없지만 둘이 헤어졌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내 얘기는 종특을 이성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막 나가는 희한한 애들도 있다는 거다.
인간사가 워낙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이게 진리라고 간지나게 내놓을 수 있는 솔루션은 없다. 하지만 솔직하게, 상대를 배려하는 자세만 돼 있다면 심한 말더듬이라도 어떻게든 뜻은 전해지기 마련이다. 마치 쥐뿔도 없고 심지어 민폐 캐릭터지만 진심만은 충만한 해리포터 등 수많은 판타지소설, 소년만화 주인공이 천인공노할 악당을 물리치고 영웅이 되는 것과 같은 당연한 (응?) 원리다. 하고 싶으면 넌지시(아양을 섞으면 더 좋으다) 뜻을 전하고, 상대방의 입장이 이해가 안 가면 대화를 하자. 삐침이나 화는 잠시 억눌러야 한다.
어떻게 이걸 극복하냐고?
남녀 간의 ㅅㅅ온도차를 잠시 되새겨 보자.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만, 야동에서 본 언니들이 현실에도 존재하리라고 믿는 남자와 이 남자가 내 손만 잡고도 마냥 행복해 할 거라고 믿는 여자가 만나게 되는 사건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이게 아니다 싶은 순간이 오면 정작 상대방과 대화는 않고 네이트판이나 일베에서 고민 상담을 하기도 한다.
또, 여유가 된다면 네이트판이나 일베는 끊고 사람 보는 눈도 좀 기르자. 남녀를 막론하고 제일 별로인 애들은 의리(책임감) 없는 애들, 주는 법(아니, 몸을 주는 법 말고)을 모르는 애들이다. 상대방이 자기 친구나 부모님을 어떻게 대하는지 살펴보면 답은 나온다. 답을 알면서도 무시해버리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뭔가가 있다면, 상대의 결점을 감수해 보거나 실패에서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다.
드립력필력 쩌는 필자들이 이끄는 ㅍㅍㅅㅅ에 글을 싣게 돼 영광스럽기 짝이 없고,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읽은 김에 무플 방지에 협조 좀 해 주시고, 특히 남자분들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신다면 매우 환영이다. 모두 복 많이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