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계의 북산, 어느새 50명 규모로
리: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화랑 슬로그업 대표: IT스타트업 슬로그업 대표 이화랑입니다. “북산같은 스타트업에서 강백호 같은 개발자 찾습니다”라는 글로 유명해졌죠.
리: 아, 기억나네요. 근데 슬로그업은 뭐 하는 회사인가요?
이화랑: 기업들의 의뢰를 받아 SW를 만드는 ‘아웃소싱’ 사업부와, 저희 자체 서비스를 내놓는 ‘밸류업’ 사업부로 이뤄져 있습니다.
리: 어… 외주로 돈을 벌고, 자체 서비스에 돈을 넣는 생존형 스타트업인가요?
이화랑: 초기에는 그랬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다양한 프로젝트의 경험을 쌓게 됐습니다. SK렌터카 다이렉트, 수입차 서비스 카펫, LG전자 커런트닷의 플러스팟, 휴대폰 재활용 민팃 등 여러 대기업의 대형 프로젝트를 저희가 함께 만들었거든요.
리: 와, 어지간한 회사보다 훨씬 크네요. 그럼 자체 서비스는 무엇을 하나요?
이화랑: 몇 있는데, 가전 케어 플랫폼 ‘쓱싹’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에어컨 설치해야 할 때, 막상 설치하려면 어디에 맡겨야 할지 불안하거든요. 누가 잘하는지 가격이 정말 합리적인지 모르니까요. ‘쓱싹’은 이런 가전 설치와 수리에, 믿을 수 있는 기사님들을 연결해주는 서비스입니다.
리: 쓱싹은 잘 되나요?
이화랑: 예. 많은 업체들이 이 시장에 도전했다가 철수했는데, 저희는 국내 1위 가전 케어 전문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리뷰 중 95%가 대만족/만족을 표하며 세상에 꼭 필요한 서비스가 됐죠.
저흰 자체 서비스를 제대로 해봐야만 아웃소싱 프로젝트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 개발하고 납품하는 방식이면 절대 비즈니스 구축의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볼 수 없어요. 쓱싹도 여러 번 피봇을 거치며 지속적으로 지표를 개선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학습한 프로덕션 역량이 아웃소싱 사업에서도 발휘됐어요.
내부 개발팀처럼 비즈니스 기획까지 함께하는 외주사
리: 아웃소싱부터 이야기해 보죠.
이화랑: 일반적인 외주 개발사는 고객사의 발주에 딱 맞춰 결과물을 냅니다. 기획이나 개발 능력이 떨어져서는 아니에요. 고객사의 기획안 그대로 가는 게 안전하기 때문이죠. 물론 SI도 일정 정도 기획을 하지만, 도전적인 개발은 거의 힘듭니다. 반면 저희는 ‘고객사 내부 개발팀’이란 입장에서 일합니다.
리: 내부 개발팀이라 함은 어떤 거죠?
이화랑: 기본적으로 그 제품의 CTO 롤을 수행합니다. 필요할 경우 제품기획 업무도 함께 하고요. 처음 들어갈 때 컨설팅부터 시작해요. 개발만 딱 해주고 넘기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도 다 확인한다는 거죠. 서비스의 목표는 무엇이고 잠재고객은 누구인지, 이런 정의부터 시작합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마케팅과 브랜딩까지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단순 외주보다는 ‘IT팀 아웃소싱’ 개념인 거죠.
리: 근데 이러면 고객사가 선 넘는다고 싫어하지 않나요?
이화랑: 아닙니다. 저희가 여러 대기업과 일해봤는데요. 대기업이 갑질한다는 편견과 달리, 실제로는 일하기 수월합니다. 작은 회사는 비지니스 기획 업무 담당자가 적거나 없는 경우가 많은데, 대기업은 이런 분들과 함께 일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KPI등의 요건이 역시 잘 정의되어 내려와서, 저희도 어떻게 개발하는 게 좋을지 의견을 드리기도 편합니다.
리: 오… 의외네요.
이화랑: 물론 이건 슬로그업이 좀 큰 이후의 이야기이긴 합니다. 흔히들 갑을병정… 이야기를 하는데, 저희가 직접 계약을 하거나, 을로 계약해도 어느 정도 결정권이 있을 때 가능해요. 왜냐면 대기업은 주로 턴키로 넘기거든요. 이걸 받으려면 기존 실적이 있어야 하는데, 다행히 굵직한 제품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이런 큰 프로젝트 의뢰는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맞춤형 아웃소싱
리: 외주개발이라고 하면 뭔가 인하우스보다 개발자가 꺼리는 느낌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화랑: 저는 아웃소싱이 재미있고, 또 개발자에게 좋은 경험이라 생각해요. 하나의 제품뿐 아니라, 다양한 제품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슬로그업처럼 잘 자리 잡은 곳이라면, 대기업, 중견기업, 스타트업, 이런 다양한 고객사와 함께 일하게 됩니다. 자연히 특정 기술과 스펙에 갇혀있지 않고, 다양한 고객사 상황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게 되지요.
리: 대기업과 일하는 건 어떤가요?
이화랑: 일하기 깔끔한 클라이언트죠. 애초에 과업을 굉장히 명확히 정의해요. 대기업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아웃소싱 업체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이런 R&R이 정말 분명합니다. 물론 행정절차가 복잡하긴 합니다만, 롤이 매우 명확하기에 이후 분쟁의 여지도 적어요. 또 CEO를 비롯한 임원진 등 여러 이해관계자를 만족시켜야 하는 만큼, 요구하는 퀄리티가 높아서 개발의 재미도 있어요.
리: 그러면 스타트업은 어떤가요?
이화랑: 스타트업은 회사마다 정말 케바케죠. 개발에 들어갈 때 업무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나쁜 점도 있지만 유연성을 발휘하기에는 좋아요. 그래서 저희를 정말 CTO처럼 믿고 맡겨주실 경우에 좋은 퍼포먼스가 나올 때가 많았습니다. 기억나는 사례로는 시리즈A 받을 때까지 저희가 외부 미팅도 함께 하며 도와드렸고, 이후 CTO를 채용하고 자체 개발팀을 꾸리며 인수인계까지 마친 사례도 있어요.
리: 반대로 스타트업이랑 일하면, 과업 설정이 제대로 안 돼서 일이 끝도 없이 늘어난다는 말도 있는데요.
이화랑: 글쎄요, 솔직히 SI에서 당연히 있는 일 아닌가 싶은데;;; 저는 중요한 건 일이 늘어나느냐보다, 방향성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개발이면 저희도 신나서 일하는데, 가끔 프로젝트의 성공과 거리가 있는 일을 하게 될 때도 있거든요. 그러면 개발하는 입장에서 좀 힘이 빠지죠. 저희도 고객사와 마찬가지로 프로젝트의 성공을 바라니까요.
10년째 이어져 온 대기업 제품 개발 아웃소싱
리: 클라이언트들에게 ‘아웃소싱 잘 쓰려면 이렇게 하세요’라고 권할 게 있을까요?
이화랑: 이 차이가 미묘한데, 내부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아웃소싱하면 꼬이는 것 같아요. 이러면 업무 분담이 애매해질 때가 있거든요. 아웃소싱은 일손이 모자랄 때보다는, 클라이언트가 하기 힘든 부분을 채워줄 때 잘 되는 것 같아요. 또 하나의 팁이라면 작은 것부터 맡겨보는 것도 좋습니다. 외주 개발사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합도 중요하거든요. 작은 일로 맞는 개발사를 찾고, 이후 꾸준히 관계를 이어 나가길 추천합니다.
리: 고객사 중 유독 SK가 많던데, 이것도 그렇게 관계가 이어진 건가요?
이화랑: 네. SK는 저희가 처음으로 아웃소싱을 맡았던 회사예요. 처음에는 회사가 작으니, 당연히 직접계약을 못 했죠. 그런데 그때 20대 젊은 애들이, 클라이언트 회사에 가서 밤을 새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게 정말 기특해 보였나 봐요. 거기다가 출시 이후 성과까지도 좋았고요. 그게 인연이 되었던 것 같아요.
리: 그러면 어떤 프로젝트는 인하우스, 어떤 프로젝트는 아웃소싱 맡기면 성공 확률이 높다거나…
이화랑: 솔직히 최종 결과물은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구성원의 열의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어지간하면 첫 미팅에서 이 프로젝트를 향한 열의가 보이거든요. 조직 규모와 상관없이, 뭔가 비전이 뚜렷하지 않은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쉽지 않았고, 고객사 팀원들이 애정을 가진 게 느껴지는 프로젝트는 많이 성공했던 것 같아요.
리: 애정, 열의… 넘 뻔해보이는 단어 같은데요.
이화랑: 근데 개발 능력은 큰 제품과 서비스에서 일부잖아요. 예로 저희가 한 대기업의 O2O 앱을 만든 적이 있어요. 그런데 개발을 하다보니 수천 개 지점의 ‘주소’가 균질하지 않더라고요. 어디는 도로명, 어디는 지번, 이런 식이죠. 개발로는 해결이 안 되는 이슈였는데, 그때 부장급 과장급 할 것 없이, 전국 지점에 다 전화를 돌려서 하나하나 확인해 주셨어요. 프로젝트의 성공에 개발력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결국 구성원의 자세가 판가름하는 것 같아요.
리: 그러면 그 자세는 어디서 나올까요?
이화랑: 결국 리더에서부터 나오는 것 같아요. 여기서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스타일이 좀 다르긴 합니다. 대기업의 경우는 정말 사람과 조직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실천한다면, 스타트업은 대표의 순수한 열정 자체가 구성원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여러 조직을 보고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아웃소싱의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구성원의 개발 능력을 높이는 게 회사의 주요 임무
리: 50명이나 되는 개발회사 굴리는 건 어떠세요?
이화랑: 꽤 긴 시간 저 스스로 뛰어난 개발자라는 자부심만 강했지, 조직을 관리하는 능력은 없었어요. 그래서 대표인 제가 ‘내가 개발하면 1개월에 끝낼 거 같은데 왜 3개월이나 달라고 하냐’ 하며 힘 다 빠지게 만들곤 했죠. 이후 일정은 스스로 정하는 걸로 원칙을 바꾸니, 어지간하면 다 그보다 빨리 해내더라고요. 심지어 제가 생각해도 못할 것 같은 일정도 맞추는 경우도 봤어요. 이렇게 구성원을 신뢰하게 되니, 자율적으로 개발조직이 점점 잘 돌아가는 것 같아요.
리: 그러면서 구성원의 애정도 좀 깊어졌다고 생각하시나요.
이화랑: 그렇죠. 저는 사실 예전에 구성원이 우리 회사의 자부심을 성과로 느낄 거라 생각했어요. 대기업 일을 많이 하다 보니, TV 틀거나 유튜브 보면, 우리가 만든 앱 광고가 많이 나오거든요. 그게 이 회사에 다니는 자부심을 심어줄 거라 생각했어요. 물론 누구나 아는 프로덕트를 만든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회사에서 내가 개발을 잘할 수 있고, 또 개발을 더 잘하는 개발자가 되는 거라 생각해요.
리: 음… 사실 SI라 하면 한국에서는 진짜 무슨 IT 인력시장… 취급받았던 게 몇 년 전이니까요.
이화랑: 그렇죠. 그런데 저희는 그냥 개발만 해주고 끝이 아니라, 서비스 기획단부터 어떻게 하면 사업이 잘될지 함께 고민하니까요. 개발 하청업체가 아니라 컨설팅부터 개발, 운영까지 함께하는 파트너 입장으로 함께 합니다. 또 여기서 경험하는 프로젝트가 대기업 프로젝트 위주잖아요? 경력이 길지 않은 개발자라면, 굉장히 좋은 포트폴리오도 얻게 되지요.
리: 뭔가 인력 양성소(…) 같군요.
이화랑: 직원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렇잖아요. 당연히 개발 잘하는 분이 우리 회사에 오래 남아주면 고맙지만, 또 큰물로 나가고 싶을 거니까요. 그래도 저희도 인재를 잡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 중입니다. 정말 업무환경이 좋아요. 저희가 최고의 사무실은 아니겠지만, 가장 일에 집중할 환경을 제공해요. 예로 몰입 공간이 따로 있고 심지어 헬스장도 있어요. 교육은 말로만 무한 제공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개발을 잘할 수 있을지 회사 전체가 매일같이 고민합니다.
투자까지 하며 자체 제품을 계속 내놓을 것
리: 앞으로는 어떻게 회사를 발전해 나갈 생각인가요?
이화랑: 기존에는 아웃소싱 비중이 높았지만, 이제는 자체 사업 비중도 높여가고자 합니다. 그동안 저희가 ‘내부 개발팀’처럼 일하며 쌓은 경험을 녹일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IT 제품’에 있어서는 최고의 전문가라 자부합니다. 우리처럼 대형 프로젝트를 여럿 한, 젊은 아웃소싱 기업은 거의 없을 거예요. 심지어 그걸 컨설팅 영역부터 세세하게 시장에서 잘 작동할 수 있을지 점검하고요. 하지만, 우리가 모든 전문 카테고리를 잘 알지는 못하잖아요? 그런 건 각각 영역의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맞다고 봅니다.
리: 오… 그러면 여러 개의 조인트벤처가 생길 수도 있겠군요.
이화랑: 맞습니다. 그러면서 또 그 경험은, 아웃소싱 사업으로 스며들겠죠. 스타트업들은 외주와 자체 서비스를 딱 긋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자기 제품에만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다양한 IT 프로덕트를 만들며 쌓이는 경험도 만만치 않거든요. 저는 우리 회사가 그 어느 회사보다 IT 서비스를 잘 만드는 개발회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정체성만큼은 잃지 않으려 합니다.
리: 앞으로 회사는 어디까지 키워보고 싶은가요?
이화랑: 2025년까지 국내 50대 IT 스타트업으로 우뚝 서보고자 합니다. 저희가 유명하지는 않지만, 저희처럼 꾸준히 성장하며 영업이익을 내는 견실한 스타트업도 드물잖아요? 여기에 좀 더 근사한 회사가 됐으면 해요. 아웃소싱 개발을 가장 잘하면서도, 이름 있는 자체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회사죠. 새로 출시하는 제품들이 각각의 도메인에서 1위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리: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이화랑:누군가 “창업을 한번 했으면 최소 10년은 개고생해야 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막상 10년 해보니 10년도 부족한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개고생이라고 생각하면 이 일을 못 할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는 개고생한다고 보이는 이 재미있는 일을 평생 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는 엄청 가치 있는 프로덕트를 만들면서 살아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