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도전한다는 건 그만큼 많은 실패를 감당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각각의 실패는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주고 미래에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습니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 위해서는 용기뿐만 아니라, 실패를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배우는 태도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도전의 과정까지 모두 포용하고 각각의 실패를 성공을 향한 디딤돌로 삼는 것입니다.
NBT는 ‘도전이 많은 세상을 만든다’는 비전을 가진 스타트업입니다. 지난 10년간 약 30개의 서비스를 출시했을 만큼 빠른 시도와 다양한 실험을 추구합니다. 과감한 도전을 장려하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실패를 책망하지 않습니다. 대신 실패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고민하고 공유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죠.
NBT에서는 창립 1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실패에서 배운 것들을 공유하는 세션이 열렸습니다. 모두 다섯 개의 세션으로 진행되었지만 그중에서도 이번 아티클에서는 두 개의 세션을 선정해 보았습니다. 두 세션 모두 공통적으로 사업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박주형 님께서 참여했던 프로젝트인데, 뼈아픈 실패를 통해 배운 교훈들이 생생하게 와닿습니다. 이 이야기가 언젠가 NBT에 합류할 분들을 위해, 그리고 지금도 과감한 도전과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낯선 영역에 도전하다, 스몰바이츠
스몰바이츠는 2019년에 출시한, 패션 브랜드와 소비자를 직접 연계하는 국내 최초 크라우드펀딩 방식의 패션 유통 플랫폼입니다. 2019년 한 해 동안 스몰바이츠에서 51개 브랜드로부터 66개의 프리오더가 진행되었고, 42개의 프리오더가 펀딩에 성공했습니다.
그동안 NBT는 새로운 도메인에서 도전해왔지만, 패션 플랫폼인 스몰바이츠는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도전이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NBT는 왜 패션 플랫폼을 시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스몰바이츠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사업개발팀의 박주형 님과 서비스운영팀의 조성준 님을 모시고 이야기 나누어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스몰바이츠’는 NBT가 이전에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패션 도메인의 서비스입니다. 스몰바이츠의 기획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박주형 :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NBT에서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을까 싶은 마음도 드는데요. 2017년, 2018년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서 다방면으로 시도하던 시기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저희는 ‘가치 소비’라는 키워드를 주목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사람들마다 쓰는 단어들이 조금씩 달랐을 뿐이지 유사한 트렌드가 시장에 나타나고 있었어요. 대중적인 브랜드가 아닌, 대표적으로 미국의 엣시(Etsy)나 한국의 아이디어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와디즈와 텀블벅, 패션 분야에서는 무신사, 29cm처럼 개인들의 다변화된 취향을 제공하는 시장이 뜰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찰나에 우연히 ‘마더그라운드’라는 패션 브랜드를 런칭하고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이근백 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근백 님께서는 스몰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페인 포인트와 이를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많이 가지고 계셨어요. 근백 님의 아이디어와 패션 업종에 대한 전문성, 그리고 저희가 가진 플랫폼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역량들을 조합해서 패션에 특화된 가치 소비 플랫폼을 만들 수 있겠다는 기대로 함께 ‘스몰바이츠’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죠. 나중에는 패션 칼럼니스트 홍석우 님도 합류하게 되셨고요.
Q. 아무래도 완전히 새로운 도메인인 만큼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스몰바이츠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박주형 : 초기에 브랜드 소싱이 굉장히 어려웠어요. 이 프로젝트의 가설은 일반적인 대중 커머스처럼 돈을 때려 붓고 트래픽 만들어서 규모를 키우는 형태가 결코 생산자나 소비자 플랫폼에게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나와야 하고, 그러려면 팬덤이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을 섭외해서 사용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성공에 가장 큰 핵심은 양질의 디자인 브랜드들을 섭외해 오는 것이었는데요. 아까 말씀드렸던 마더그라운드의 이근백 님과 패션 칼럼니스트 홍석우 님이 브랜드 섭외에 도움을 주셨어요. 한 100개 정도의 브랜드들을 타겟으로 정하고 매주 리뷰를 하면서 브랜드의 반응을 확인했는데요.
개인적으로 답답했던 것은 브랜드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이 있는데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다들 미팅을 거절하지도 않고 2시간, 3시간씩 이야기도 하고 서비스 취지에 너무 공감하고 너무 참여하고 싶은데 지금은 사정이 안 되니 다음 컬렉션 때 진행하겠다는 반응인 거예요. 그 당시에는 원인을 알기 어려웠어요.
Q. 결론적으로 실패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조성준 : 일단 섭외한 브랜드들에 대한 지원이 미비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실질적으로 프리오더가 성공하려면 브랜드의 기존 팬덤이 프리오더에 참여하고 소셜 채널을 통해 부스팅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타겟한 브랜드의 대부분은 2~3명 정도의 소수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었어요. 서비스의 취지도 좋고, 선호도 조사나 재고 관리 측면에서도 도움받을 부분이 많을 것 같다는 피드백을 주시긴 하셨지만요.
하지만 브랜드로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 특히나 스몰바이츠 프리오더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 만큼 팬덤이 크지 않았던 것도, 그만큼의 리소스를 쏟을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조직 내부에 패션 플랫폼 종사자나 MD 등 패션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계신 분들이 부재했기 때문에 서비스를 지속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내부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계신 분이 계셨다면 브랜드를 직접 상대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박주형 : 규모가 크고 팬덤이 강한 브랜드를 섭외해서 그들을 바탕으로 플랫폼을 키워나간다는 가설, 그리고 브랜드들을 업계에 계신 분들을 통해서 섭외한다라는 가설 자체는 지금도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업이나 제휴 성사를 위해서 노력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고객이 우리를 만나준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기회가 있었다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서로 간을 보는 느낌이 컸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스몰바이츠가 아직 완벽한 환경을 갖추지 못한 플랫폼이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브랜드들이 스몰바이츠의 취지는 공감하는데 아직 확신이 없으니까 다른 브랜드들이 시도하는 걸 보면서 판단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안 그래도 할 일도 많고 사람도 없고 바쁘시니까요.
게다가 저희는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과감하게 마케팅을 한다든지 트래픽을 유입시키기 위해서 비용을 투입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과감한 접근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Q. 만약 다시 돌아가서 스몰바이츠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한다면, 무엇을 다르게 시도하실 것 같나요?
박주형 : 결국 스몰바이츠를 1년 넘게 운영하다가 접게 되었는데요. 차라리 타임라인을 3개월, 6개월 정도로 아예 짧게 설정하고 비용도 과감하게 책정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초기에 참여하는 브랜드에게는 인센티브나 지원금, 마케팅 비용을 크게 지원해서 더 과감하게, 더 짧은 타임라인으로 드라이브를 걸어보는 거죠. 잘 안 되더라도, 우리의 실행력이 부족하거나 성공할 수 없는 모델이거나 시장 환경이 좋지 않거나 등 뭔가 명확한 답이 내려지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이 좀 아쉬웠던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나에게 스몰바이츠란 어떤 의미인가요?
조성준 : 학창 시절의 짝사랑 같은 느낌이 들어요. 짝사랑하는 대상이 있으면 잘 보이고 싶고, 멋을 부리거나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좀 더 자기 스스로를 바꾸고 노력하게 되는데요. 스몰바이츠가 저에게 그런 존재였던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서비스가 저를 좋아해 주지 않는 느낌이요.(웃음) 그 과정에서 많은 부분 배우고 성장하기도 했어요. 브랜드 담당자들을 만나고 인터뷰하고 함께 협업을 하면서 그분들의 주도적이고 열심히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을 많이 봤거든요. 저렇게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내가 너무 안일하게 살고 있지 않나, 그렇게 스스로를 돌이켜 보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박주형 : 비유를 하자면, 시원하게 대시해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헤어진 썸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희는 저희의 세운 취지 때문에 자꾸만 소극적이었던 게 있었고, 브랜드나 시장에 있던 플레이어들도 저희가 그렇게 과감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차라리 손해를 보더라도, 조금 자존심 상하더라도 선물이라도 큰 거 하나 사주고 멋있는 이벤트라도 해주고 나서 대차게 차였으면 좋았을 텐데, 서로 인연이 아니었던 건지 내가 무엇이 부족했던 건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끝나버렸어요. 그래서 속 시원하게 해결이 안 된 썸녀 같은 느낌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두 번의 실패에 이은 성공, 애디슨 오퍼월
‘애디슨 오퍼월’은 2018년에 런칭한 B2B 오퍼월 네트워크 플랫폼입니다. 네이버웹툰, 네이버페이, 카카오 T, 토스, 페이북 등 40개 이상의 국내 주요 서비스와 제휴하며 매월 천만 사용자가 방문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습니다. 사실 애디슨 오퍼월은 2번의 실패와 피봇을 거쳤습니다. 일명 애디슨 1세대, 2세대를 거쳐 3세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NBT의 안정적인 B2B 비즈니스 모델로 정착하게 된 것인데요.
많은 구성원 분들이 이 두 번의 실패를 NBT 사상 가장 뼈아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과연 어떤 이유로 뼈 아픈 실패가 되었을까요? 3세대인 애디슨 오퍼월은 앞선 두 제품과 과연 무엇이 달랐을까요? 사업개발을 총괄하는 박주형 님과 애디슨 개발을 총괄하는 O 파티(애디슨 제품팀)의 남상균 님을 모시고 이야기 나누어보겠습니다.
Q. NBT는 2015년부터 B2B 사업을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캐시슬라이드가 고속 성장하고 있을 시기였는데요. 왜 B2B 사업을 고민하게 됐을까요?
박주형 : 저는 2013년에 입사해 광고 세일즈로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2015년까지 매월 매출 성장을 끊임없이 만들어 냈는데요. 당시 성과가 목표 대비 조금씩 모자랐어요. 어느 날 미팅에서 광고주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캐시슬라이드의 인벤토리가 제한적이라서 더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이런 서비스들이 몇 개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광고 인벤토리를 늘려야 한다. 마케팅으로 늘리는 게 어려우면 직접 네트워크 만들자.’ 그런 니즈를 기반으로 모바일 광고 도메인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저희만의 네트워크 플랫폼을 만들어보자는 쪽으로 사업 방향성을 다듬어갔어요. 그렇게 B2B 광고 네트워크, 애디슨 1세대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그렇게 첫 B2B 프로젝트가 바로 애디슨 1세대, ‘애디슨 RTB’였습니다. 2016년 11월에 출시되었죠. 이 프로젝트는 많은 구성원들께서 가장 뼈아픈 실패로 뽑아주셨습니다. 두 분이 보시기에 애디슨 1세대는 어떤 면에서 뼈 아픈 실패였나요?
남상균 : 이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애디슨 1세대 프로젝트가 기획부터 개발까지 1년 반 정도 걸렸거든요. 당시 CAN이라고 해서 ‘Cashslide Audience Network’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요. 구글, 페이스북 등 해외의 광고 네트워크를 넘어서자는 목적을 갖고 있었어요. 큰 꿈을 꾸는 건 좋았는데 목표를 너무 무겁고 크게 잡고 시작했어요. 캐시슬라이드가 잘 나가니까 우리가 광고 네트워크를 만들면 당연히 잘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고요.
게다가 프로젝트의 진행사항이 전사에 공유되지 않아서, 다른 구성원들이 도움을 주거나 피드백을 주고 싶어도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할 수가 없었어요. 결론적으로 기획과 개발 역량에 비해 크고 무거운 목표를 갖고 있었고, 투명하게 일하지 않았기에 결국 실패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박주형 : 중장기적으로 어떤 시장을 공략하고 어떤 관점으로 어떻게 성장해 나갈 건지에 대한 예상이나 전략을 많이 고민을 했던 것으로 알어요. 당시에 국내에 있었던 카울리나 구글, 페이스북이 현지화가 잘 안 됐던 시기라 시장 기회도 있었고요.
그래서 단순히 매출을 올리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진짜 이 광고 시장에 문제 해결이나 혁신을 해볼 만한 지점은 확실히 발견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과감하게 배팅했던 건 맞는데 다만 초기 목표가 너무 크다 보니 개발 속도가 느렸어요. 그리고 프로젝트에 참여하셨던 분들이 개인의 감정을 너무 많이 투영하셨어요. ‘이 프로젝트로 크게 터뜨려야 돼.’라는 과한 욕심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주변에서 이쯤에서 한번 제품을 출시해보면 어떻겠냐, 기획을 이렇게 수정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피드백이 드렸을 때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셨어요. 우리는 구글과 페이스북을 이겨야 되는데 그 정도 수준으로는 택도 없다고요. 결국 제품을 출시했던 시기에는 이미 시장의 트렌드도 바뀌었고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되었죠. 밸런스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꿈은 크더라도 실행은 작고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 사례라고 생각해요.
Q. 그다음 해에 애디슨의 두 번째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습니다. 2017년 12월에 애디슨 ‘애드런/Fraud Manager’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죠. 애디슨 1세대와는 무엇이 달랐나요?
박주형 : 애디슨 2세대는 과감한 시도가 있었다거나 처절하게 실패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애디슨 2세대는 1세대의 큰 실패를 수습하려는 과정에서, 당시에 유행했던 nCPI 해외 어필리에이트 파트너들을 묶어서 하나의 대시보드로 관리할 수 있도록 제공하자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어요. 완전히 다른 컨셉이었죠. 당시에는 ‘이거라도 좀 해보자’의 심정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물론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까 이 시장의 불투명한 부분과 다수의 어뷰징을 발견하면서 우리가 혁신할 부분이 있긴 했는데요. 이미 이 시장은 다른 사업자에 의해 선점되어 있었고 제품의 임팩트도 점점 떨어지는 시기였어요. 두 번째 프로젝트는 과감한 도전이었다기보다는 2016년의 실패를 종결짓지 않으려고 끌고 갔던 연장선상이지 않았나 싶어요.
Q. 그러던 중 2018년에 새로운 B2B 사업의 기회가 생기게 됩니다. 네이버웹툰과 제휴를 맺고 오퍼월(Offerwall) 서비스를 출시하게 된 것인데요. 결국 NBT의 성장을 견인하는 사업이 되었습니다. 앞선 두 프로젝트와 무엇이 달랐을까요?
남상균 :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하나는 초기에 소수의 인력이 개발을 진행했어요. 캐시슬라이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구성원들이 참여했고, 이전부터 캐시슬라이드를 어떻게 하면 모듈화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기에 빠르게 실행할 수 있었고요.
다른 하나는 이전 프로젝트와 같이 너무 큰 스케일로 개발하면 안 된다는 걸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어요. 네이버웹툰의 제안으로 첫 파트너사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애디슨 오퍼월’ 솔루션을 만드는 것보다 네이버웹툰을 위한 ‘쿠키오븐’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그 이후의 B2B 사업을 위해 확장성 있게 개발한다고 범위를 최대한 정확하게 정하고 실행했던 게 가장 큰 차이였던 것 같아요.
박주형 :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요. 애디슨 1세대의 실패를 교훈 삼아서 좁고 명확하고 빠르게 진행하는 걸 목표로 삼은 덕분에 빠른 시점에 초기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상 ‘네이버웹툰의 쿠키오븐을 만든다’에만 올인해서 진행하다 보니까, 오픈하고 나서도 자잘한 버그들 혹은 개선사항들이 계속 쏟아지고 고생을 많이 하긴 했죠.
그래도 초기부터 명확한 성과가 나오면서 사업적으로 과감한 인력 배치 혹은 조직 확장을 통해서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지금 와서 보면 쿠키오븐에 맞춰진 것을 다른 매체도 커버할 수 있도록 구조를 뜯어 붙이는 과정을 거의 6개월에서 1년 가까이 진행했었던 것 같은데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들도 많지만 결과적으로는 단계적으로 좁고 명확하고 빠르게 실행했던 것이 훨씬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어요. 전사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선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Q. 나에게 ‘애디슨’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남상균 : 저는 ‘성공한 재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NBT에서 제일 오래된 개발자거든요. 처음 5~6년 정도 캐시슬라이드를 개발한 것을 첫 번째 결혼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 뒤에는 애디슨 오퍼월의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데, 애디슨이 빠르게 성장하고 회사에 도움이 되고 있어서 성공한 재혼이라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이번 재혼이 오래갔으면 좋겠습니다.
박주형 : 저에게는 ‘무덤 속에서 찾아낸 왕관’ 같은 존재예요. 진짜 무덤 속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흙 속에서 발굴해서 왕관이라는 의미로 말씀을 드린 건데요. 비즈니스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당시 3년 동안 굉장히 힘들었을 정도로 매출 하락세를 연달아 겪고 있던 시기였어요. 그러던 중에 ‘애디슨 오퍼월’이라는 서비스로 기사회생을 하면서 올해 매출 1천억을 바라보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고마운 서비스이기도 하지만, 작은 왕관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사이즈도 커지고 보석도 많이 갖게 된 왕관으로 성장하면서 점점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구성원 분들을 무겁게 짓누르는, 그런 어려운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왕관의 무게를 어떻게 하면 잘 견딜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요즘에 많이 하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NBT의 도전들 중 ‘스몰바이츠’와 ‘애디슨 오퍼월’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이 두 프로젝트는 실패를 단지 실패에서 끝내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산으로 만드는 NBT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NBT는 실패를 종점이 아닌 성공의 디딤돌로 보는 성장 방식을 통해 주체적인 변화와 실험 그리고 지속적인 개선의 문화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NBT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입니다. 아직 이야기되지 못한 NBT의 도전들이 많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구성원들은 각자의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의 주요 프로젝트를 모아 아카이브한 ‘NBT WAY‘ 페이지에 방문하면 NBT가 치열하게 쌓아온 도전과 실패의 자산을 더 많이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다음은 여러분의 차례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크고 의미 있는 도전들을 함께 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