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향 + 18금 + 네임드 성우 CV… 이런 조합 흔치 않다
한국은 여성향 게임의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여성향’이라는 단어 자체가 게임 시장이 남성 유저 위주로 이뤄져 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굳이 ‘남성향’이라 이름이 붙지 않아도, 거의 모든 게임이 남성 유저를 타겟으로 만들어져 왔기 때문.
예전엔 남성 유저들이 게임 시장의 주류였기에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두의 손에 ‘스마트폰’이라는 고성능 게임기가 주어져 있고, 여성 유저의 수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게임 시장은 여성 유저에게 제대로 호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스토리타코의 신작 ‘위험한 재배’의 발매 소식에 흥분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었다. 기대되는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1) 우선 여성향 게임을 주력으로 미는 귀한 게임사의 신작이라는 점, 2) 여성향 중에서도 더 귀하다는 18금(!) 성인 게임, 3) 일러스트가 넘쳐날 수밖에 없는 카드 수집형 RPG 장르, 4) 그리고 심지어 전문 성우들이 CV까지 소화했다는 점.
특히 기대가 컸던 게 CV인데, 공략 캐릭터들의 목소리를 맡은 성우들의 면면이 여간 화려하지가 않았기 때문. 최승훈 성우, 김민주 성우, 박노식 성우, 그리고 김보나 성우까지. 대표작 리스트를 읊자면 한도 끝도 없고, 개취를 꼽아보자면 <에반게리온>의 ‘나기사 카오루’,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의 ‘토가시 유타’, <수성의 마녀>의 ‘니카 나나우라, <50가지 그림자>의 그레이까지. 그 목소리들로 그런 대사를 읊는 걸 생각하면…
“내 넝쿨로 네 어딜 만져줄까?”
공략 캐릭터 및 CV를 소개하는 인트로 영상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위험한 재배’ 게임이 시작된다. 공략 대상은 모두 네 명인데, 제일 먼저 여는 첫 캐릭터가 슈가바인 아이비. 이름만 봐도 아시겠지만 여성 캐릭터고, 무려 넝쿨을 사용한다. 보는 순간 느꼈다. 이분들, 가방끈이 기시구나…
넝쿨을 쓴다고 무작정 좋다는 건 아니고(물론 그것도 좋지만)(…), GL이 아닌데도 여성 캐릭터로 문을 열었다는 게 꽤 신선한 점이었다. 이게 만일 남성향 게임이었다면, 공략 가능 캐릭터에 남자를 넣어 놓고 그 남자를 게임 서장에 제일 먼저 보여주는 건데… 아마 절대 상상도 못 할 일일 것이다.
이건 뭐가 더 낫고 못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말하자면 여성향과 남성향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성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이, 여성향에서는 오히려 스토리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한 수가 된다.
스토리타코의 강점이, ‘여성향의 문법과 남성향의 문법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게임사들을 보면 남성향 게임에서 성별만 바꿔놓은 단순한 역하렘 게임을 여성향 게임이라고 내놓고는 하는데, 스토리타코는 실제 여성향 게임 유저가 게임을 기획하고 만든다는 느낌을 준다.
‘인간형 식물’, ‘맨즈레이크’를 발아시키고 육성하는 게 게임의 목적
소재부터 남다르다. 주인공은 멸종 위기 씨앗을 관리하는 기업 ‘LSC’의 직원인데, 우연히 금지 구역에서 멸종 위기 식물 ‘맨즈레이크’를 발아시킨다. 맨즈레이크는 발아하면 성인 인간의 형태를 띄게 되며, 인간 형태임에도 식물로서의 개성을 드러내는 특이한 식물.
공략 가능한 네 캐릭터는 모두 실제 식물에서 이름과 개성을 따왔다. 예를 들어 아이비는 넝쿨식물인 ‘슈가바인 아이비’처럼 넝쿨을 특징으로 하고, 헬리암포라는 습지식물이자 포충낭을 가진 ‘헬리암포라 네블리네’처럼 포식성을 가지고 있다. 세레우스는 선인장 ‘에키노 세레우스’의 특징을, 디필레이아는 ‘디필레이아 그라이’처럼 물에 젖으면 반투명해지는 등의 특징을 갖는다.
이처럼 ‘위험한 재배’는 식물의 특성에서 공략 캐릭터들의 개성을 끌어옴으로써, 단순한 인간 캐릭터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뚜렷한 개성을 구현했다.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로도 유명한 ‘헬리암포라’는 공격성이 특징이다. 성욕과 식욕을 구분 못 하고, 본능 위주로 움직인다. 선인장인 ‘세레우스’는 듬직하고 과묵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괴롭혀지고 통제받기를 좋아하는 섭에 가까운 캐릭터. 해골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디필레이아’는 병약하고 예민한 타입이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며 은연중에 애정을 표현하는 캐릭터다. ‘아이비’는 넝쿨에서 볼 수 있듯 주인공을 능숙하게 리드한다.
이런 캐릭터마다의 개성은 ‘섹슈얼한’ 부분에서도 십분 발휘된다. 헬리암포라는 특유의 페로몬으로 주인공을 취하게 만들고, 세레우스는 듬직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섭, 마조 취향으로 sm 플레이 상황을 연출한다. 디필레이아는 마치 첫경험을 하는 듯한 아슬아슬한 상황으로 유저를 숨죽이게 만들고, 아이비는 LGBT 속성과 더불어 넝쿨을 이용한 가벼운 속박 플레이까지 즐길 수 있다.
그냥 야한 장면만 반복하는 게 아니라, 흥미로운 스토리 속에 씬을 녹여낸 것도 특징이다. 인간 이상의 능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맨즈레이크’가 왜 멸종 위기종이 되었는지, LSC는 맨즈레이크의 씨앗을 확보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특히 LSC의 소장 ‘케인’은 등장부터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고, 주인공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등 LSC에 뭔가 어두운 비밀이 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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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게임에 카드 수집 요소를 더해, 더욱 풍성한 일러스트를 즐기다
장르를 국한할 수 없는 복합적인 플레이 또한 ‘위험한 재배’만의 특징이다. 캐릭터를 공략하는 오토메 게임으로서의 요소는 물론,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스토리 게임으로서의 속성, 그리고 카드 수집 게임의 속성까지 더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요소를 하나만 꼽는다면, 물론 캐릭터 공략이다. 4명의 공략 가능 캐릭터 중 하나를 ‘데이트 상대’로 지정하고 일러스트를 화면에 띄워놓을 수 있다. 일러스트의 질도 물론 높지만, 더 인상적인 건 전문 성우가 더빙한 캐릭터들의 특별한 목소리. 터치할 때마다 해당 캐릭터의 개성적인 대사를 성우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세워놓기만 하는 건 물론 아니다. ‘데이트 상대’로 지정한 공략 캐릭터와는 4인 4색의 개성적인 ‘데이트 콘텐츠’를 즐길 수 있고, 이를 통해 해당 캐릭터와 친밀도를 쌓고 캐릭터의 뒷이야기까지 파고들 수 있다. 친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해금되는 다양한 일러스트는 덤. (덤이라기엔 너무 큰 요소긴 하지만.) 또 캐릭터를 ‘방문’해서 캐릭터를 터치하거나 코스튬을 입히고 선물을 줄 수도 있는데, 이렇게 캐릭터와의 ‘친밀도’를 향상시키면 데이트 콘텐츠는 물론 스토리 콘텐츠 진행에도 도움이 된다.
게임의 메인 콘텐츠는 ‘연구’라고 할 수 있으며, 스토리가 진행되는 ‘스토리 스테이지’와 간단한 미션을 수행하는 ‘보너스 스테이지’로 구성된다. 스토리 스테이지를 통해 세계관 뒷이야기를 알 수 있는 건 물론, 스토리가 진행돼야 해금되는 데이트 콘텐츠도 많기에 필수 진행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위험한 재배는 여기에 카드 수집형 게임으로서의 요소를 더했다. 수집 방식은 일반적인 카드 수집 게임과 대동소이하며, 각각의 카드에는 공략 캐릭터의 매력적인 일러스트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돋보기를 터치하면 카드에 수록된 일러스트의 ‘풀 버전’을 감상할 수 있는데… 보통 카드에는 얼굴과 상반신 위주로 그래픽이 표시되지만, 돋보기를 쓰면 그보다 좀 더 아래까지(…) 표시가 된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아래와 같은 뜻이다(…)
카드 수집 게임답게 아이템을 이용해 카드를 강화할 수도 있는데, 특히 이 게임에는 ‘개화’라는 특별한 카드 강화 콘텐츠가 추가로 준비되어 있다. 일반 강화보다 강화 난이도가 어렵긴 하지만, 그만큼 보상은 확실하다. 무엇보다도, 개화 전후로 일러스트 자체가 바뀐다는 점이 제일 중요하다! 위의 일러스트들이 열리기 전의 꽃봉오리라면, 개화 후 일러스트는 그야말로 활짝 핀 꽃 그 자체(…) 개화라는 말이 아쉽지 않을 만큼 콘셉트도, 수위도 천치차이다.
익숙한 오토메 게임의 변주, 18금 여성향 게임의 세계가 반갑다
게임 방식은 익숙한 오토메 게임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약간의 변주를 가미한 정도라, 오토메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크게 무리 없이 따라올 수 있는 정도다. 친숙하지 않은 방식을 무리해서 도입하면 괜한 진입장벽만 생기는 경우가 많으니, 유저로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 어쨌든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얼마나 예쁘고 다양한 일러스트가 적재적소에 준비돼 있는가 하는 거니까.
물론 18금 게임이라고 해서 단순히 수위 높은 일러스트만 진열하면 되는 건 아니다. 특히 여성향 게임은 더욱 그렇다. 스토리 전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일러스트는 상황과 스토리에 대한 몰입을 돕고, 유저 스스로 상황을 상상하게끔 만든다.
초기에는 일러스트 노출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업데이트가 진행되면서 이 부분이 많이 해소되었다. 특히 최근 업데이트 후 로딩 화면에서 일러스트 일부와 캐릭터 뒷설정을 살짝 보여주기 시작했는데, 이게 신의 한 수라는 느낌이다. 캐릭터들이 어떤 성격의 인물인지를 엿볼 수 있어 공략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고, 저 일러스트가 과연 어떤 스토리에서 나오는 건지도 궁금해진다.
특히 앞에서 얘기한 ‘개화’ 콘텐츠가 게임의 핵심 중의 핵심인데, 무려 ‘모든 일러스트 카드’가 개화 가능하다! 내 취향에 맞는 카드들, 여기서 수위가 더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 걸까 궁금한(…) 카드들, 어떤 카드든지 전부 개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앞에 얘기했던 것처럼 수위와 콘셉트가 천치차이인데다, ‘성인 취향의’ 엄청나게 다양한 콘셉트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 일러스트 해금하는 재미에 빠지게 되면 정말 답도 없이 빠질 정도. 일러스트 게임 특유의 이런 재미를, 게임 초반에도 조금 엿보여줬으면 좋지 않았을까가 오히려 아쉬워진다.
또 심의 문제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기왕 ‘인간형 식물’이라는 소재를 쓴 김에 좀 더 과감한 터치가 들어갔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그래도 업데이트를 통해 일러스트 노출 빈도가 높아지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치가 추가된 점은 다행스러운(?) 부분. 운영 초반, 안드로이드에서의 업데이트 버그는 플레이스토어 평점이 낮아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건 조금 애매한 부분이긴 한데… 무과금 플레이의 경우 벽에 빨리 부딪치는 것도 아쉽다면 아쉽다. 극초반을 지나가면 SR급 이상 카드가 절실히 필요해지는데, 극초반부터 과금에 들어가기에는 손이 선뜻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 다행히 초반 보상과 7일 차 출석 보상, 그리고 과금 없이 게임 내 골드로 구매할 수 있는 SR/SSR급 카드가 몇 장 있으니, 이렇게 레어급 카드를 먼저 2-3장 이상 확보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이런 작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재배’는 굉장히 값진 게임이다. 우선 게임 시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여성향 18금’ 게임의 문을 다시 열어줬다는 것. 시장에서 사라지다시피 했던 새로운 시도이기에 훨씬 어려웠을 테고, 그래서 더 반갑다.
단순히 18금 여성향 게임이라서가 아니다. 일러스트의 질도 높고 심지어 ‘네임드’ 전문 성우들까지 기용했다. 초반 운용에서 살짝 아쉬움이 있었지만 소통에 적극적이고, 꾸준한 업데이트를 통해 유저들의 애로사항을 적극적으로 해결해주고 있다. 18금 여성향 게임이니까 응원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확실히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러스트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