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사고 환자는 4주만 치료받으라고요?
사례
자동차 사고로 다리를 다친 뒤, 후유증이 계속돼 한 달째 치료를 받고 있는 B씨. 보험사에서는 4주가 지나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굳이 치료를 받고 싶으면 진단서를 떼어 오라고도 하고요. 그뿐이 아닙니다. 3주 진단을 받았는데 왜 한 달 넘게 치료를 받냐며, ‘나일롱 환자’가 아니냐는 의심까지 하네요.
위의 사례는 최근 자동차 사고 환자들이 굉장히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2023년부터 바뀐 지침에 따라 경상 환자는 4주까지만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 대강 치료를 마무리하고 합의를 보자는 것이죠. 안 그러면 매번 진단서를 떼야 한다, 진단서 떼는 것도 다 돈이다 위협까지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건 다 부당행위입니다! 환자에겐 충분히 증상이 회복될 때까지 치료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진단서, 떼면 됩니다. 어차피 진단서 발급 비용도 보험사가 다 내게 돼 있습니다. 전치 2주, 3주 같은 숫자에 발이 묶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 이상 얼마든지 치료받아도 됩니다.
진단서를 끊으라는 거지, 치료를 끊으라는 게 아닙니다!
그럼 궁금해집니다. 대체 뭐가 바뀌었길래 저런 얘기들이 나오는 걸까요?
실제로 2023년부터 자동차보험 관련 새로운 지침이 시행되고 있는데요.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경상 환자가 4주 이상 진료를 받을 경우 진단서를 의무화한다’는 것이죠. 이는 경상 환자가 합의금 등을 목적으로 ‘나일롱 환자’가 되는 것을 막고 자동차보험 재정을 아끼겠다는 목적이라고 합니다.
물론, ‘나일롱 환자’를 막는다는 명분 자체는 옳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일률적인 지침이 온당한 것인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우선 ‘경상’의 정의부터 생각해 보죠. ‘경상’이라는 단어에서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그냥 손목 발목 좀 삐끗한 정도, 목이 좀 아픈 정도… 일상생활에 별 지장이 없는 말 그대로 ‘가벼운 부상’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경상’의 정의는 훨씬 넓습니다. 물론 그렇게 자잘하게 다친 경우도 경상입니다. 하지만 허리가 완전히 나가서 일주일 내내 움직이지 못해도 경상입니다. 팔다리가 찢어져도 경상이죠. 사고로 얼굴이 찢어져도, 부상 범위가 크지 않다면 경상입니다. 이가 몇 개씩 흔들려도 경상이고, 감각 이상이 나타나도 경상입니다. ‘경상’이 아니려면 적어도 어디 하나 부러지는 정도는 돼야 합니다.
‘경상 환자의 과잉 진료를 막는다’는 문장은 착시를 일으킵니다. “가볍게 다친 정도야 당연히 대강 외래 진료 몇 번만 받아도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죠. 하지만 문제는 ‘경상 환자’의 범위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겁니다. 한 달씩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고생을 해도, 여전히 환자는 의학적으로 ‘경상 환자’일 수 있습니다.
경상 환자 중에는, 물론 4주면 충분히 완쾌하고도 남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치료를 종결하면 됩니다. 하지만 때로는 증상이 중해서, 치료를 충분히 받지 못해서, 나이가 고령이거나 건강 상태가 원래 좋지 않아서 증상이 오래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4주 이상 치료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과잉 진료를 의심하는 건 부당합니다.
사실 바뀐 지침 역시, ‘경상 환자’라고 해서 무조건 4주 만에 치료를 끝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최소한의 객관성을 담보하고 ‘가짜 환자’를 거르기 위해 진단서를 발급받는 과정을 하나 추가했을 뿐이죠. 자동차 사고로 인한 증상이 남아 있다면 당연히 기간의 제한 없이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진단서는 절차의 부담 없이 언제든 쉽게 발급받을 수 있는 서류이므로, 병의원이나 한방병원, 한의원, 어디서든 편하게 발급을 요청하시면 됩니다.
‘전치 몇 주’ 같은 숫자에 갇히지 마세요
진단서를 받으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문장이 이거죠. “향후 2주간의 안정 가료를 요한다”, “향후 3주간의 안정 가료를 요한다” 하는 부분이요. 흔히 ‘전치 몇 주’라고 하는 게 이 부분인데요. 숫자가 떡 하니 박혀 있으니, 그 기간을 딱 지켜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숫자는 행정상의 지침에 따라 정해진 숫자를 쓰게 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반영하는 건 아닙니다. 여기에 통증, 후유증, 재활 치료 등을 감안하지 않고 ‘최소한의 필수 치료가 필요한 기간’을 산정하는 개념에 가까워, 실제 필요한 치료 기간을 제대로 나타내지도 못하죠.
환자는 진단 기간을 넘겨서도 계속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부담 없이 더 치료받을 의사를 표하고, 병의원, 한방병원 및 한의원 등에 진단서를 요구하세요. 의사 또는 한의사가 추가 치료가 필요한 기간을 쓰고, 계속 치료를 진행할 겁니다. 진단서 비용은 차후에 보험사에 청구하면 되고요.
추가 기간이 경과하고 나서도 여전히 통증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역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단서를 다시 발급받고, 추가 치료 기간을 또 적으면 되니까요. 이 지침은 소위 ‘나일롱 환자’가 끝도 없이 치료를 받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지, 진짜 환자가 아픈데도 치료를 못 받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몇 번이든 괜찮습니다. 자동차 사고는 후유증이 진짜 무섭습니다. 꼭 제대로 치료받으셔야 합니다.
문제는 일부 보험사 직원들이 실적을 위해 환자를 호도한다는 것인데요. 위 지침을 곡해해 ‘앞으로는 4주 치료만 가능하다’거나, ‘앞으로 진단서를 떼면 발급 비용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피해자들이 보험사 직원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조기에 치료를 종료하고 합의해줬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립니다. 모두 부당행위입니다.
자동차 사고도 억울한데, 입원 치료도 못 받는다고요?
자동차 사고 환자에 대한 치료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은 사실 작년부터 있었는데요. 대표적인 예가 경상 환자의 입원 일자 한도를 5~7일로 축소하고, 사고 후 3일 이내가 아니면 입원을 할 수 없게 만든 2022년 지침이죠. 이 역시 합의금을 목적으로 불필요한 입원 치료를 받는 가짜 환자를 걸러내겠다는 목적입니다.
‘경상 환자’라고 하면 입원 치료를 최소화하는 게 맞는 방향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렸듯, 의학적으로 ‘경상 환자’는 굉장히 넓은 개념입니다. 정말 손가락 하나 삔 환자도 경상 환자일 수 있지만, 몇 주씩 거동하기 힘든 환자도 경상 환자일 수 있죠.
또 자동차 사고는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기 때문에, 사회인들이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바로 입원을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통증을 참고 수일 이상 주변을 수습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여기에 보험사 직원의 말만 믿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부지기수인데요. 사고 처리가 늦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가짜 환자’로 취급하는 건 옳은 일일까요?
자동차 사고, 당해보면 정말 억울합니다. 내 잘못도 아닌데 내 몸이 다치고, 내 일상이 불편해집니다. 충분히 일상생활을 영위할 만큼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그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하고, 매일같이 병원을 다니고, 그러느라 몸이 더 축나고… ‘나일롱 환자’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은 십분 공감하지만, 그게 진짜 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해치면서까지 달성해야 할 목표인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빈대도 잡아야 하지만, 진짜 환자까지 잡으면 안 되죠
많은 언론은 이 같은 지침 변경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일롱 환자를 방지하고’, 이를 통해 ‘자동차보험 재정을 아낄 수 있다’고요. 이렇게 보험사의 수입이 남으면, 언젠가는 자동차보험 보험료도 내려갈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비슷한 명분으로 기업의 수입’만’ 보장해준 법률들을 여럿 보아왔습니다. 그게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도요.
경상 환자의 치료 범위를 축소하려는 지침 개정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자동차보험 재정을 아낌으로써 궁극적으로 가입자들에게 이익을 돌려줄 것이라는 명분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보험사는 공익을 추구하는 기관이 아니라,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기업입니다. 이런 선순환 구조가 정말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이미 있는 지침마저 곡해해 아픈 환자들의 치료 종결을 종용한다는 증언이 들리는 와중에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늘 환자여야 합니다. 환자의 권익을 먼저 생각하고, 보험사 측의 부당행위에 대한 감시와 통제 또한 함께 이뤄져야 하는 까닭입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홍보 부족입니다. 많은 교통사고 환자들이 이 지침을 ‘4주 이상 치료받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홍보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입원을 원한다면 3일 내로 반드시 입원해야 한다’는 지침도 그렇죠. 덕분에 잘 모르는 사람만 아픈데도 치료를 중단하는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물론 ‘나일롱 환자’를 방지하는 명분은 좋습니다. 합의금만을 목적으로 불필요한 치료를 받는 가짜 환자들은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지침은, 자칫 잘못하면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조차 막아버릴 수 있습니다. 빈대를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워버리는 지침, 괜찮을까요? 보험사의 이익과 환자의 이익 사이에서, 이 지침은 과연 어느 쪽에 더 기울어진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