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했던 불황?
코로나 유행,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위기까지 놀라운 일들이 시장에 충격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경기 하강은 처음 벌어진 것이 아니다. 당장 기억나는 예시만 해도 1987년 블랙 먼데이, 1997년 아시아 신흥국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다. 그렇게 매번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졌고, 정부도 부적절한 정책을 연이어 내놓았다.
투자자들은 ‘지금 현재’의 징후를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올 초까지 상승장을 기했던 것처럼, 반대로 지금은 하락 직후를 과대평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런 때야말로, 시장 상황을 면밀하게 고려하여 판단을 내려야 한다.
우리가 코로나 이후의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이유
2023년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국의 거듭된 금리 인상 때문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에 대비하고자 금리를 올렸고, 이는 소비와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며 세계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기침에 전 세계가 독감을 앓게 된 것이다.
한국 경제도 충격을 받았다. 수출 비중이 큰데다 미국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은 금리 역전 현상까지 계속되면, 한국 입장에서는 자본유출까지 우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미국을 따라 금리를 높이기에는 경기 침체의 위험성이 더 커진다.
결국 핵심은 미국이 언제까지, 얼마나 강력하게 금리 인상을 계속할 것인지에 있다. 미국 연준의 입에 시장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은 계속될 것인가?
그렇다면 연준의 금리 인상은 계속될 것인가?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우선 빠른 시일 내로 금리가 떨어지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연준의 3인자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고 말했다. 노동, 서비스 수요가 공급을 웃돌아 인플레이션 안정에 상당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 또한 크다. 연준이 지난 11월 23일 공개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 의사록에는 내년에 경제가 침체될 가능성이 약 50%라고 기재되어 있다. 위원들 역시 금리 인상 속도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고금리 정책이 장기간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근거들이 있다. 지난 9월 FOMC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 정책금리 전망치는 4.4%에 달했으나 중립금리(인플레이션을 제어하면서도 경기를 후퇴시키지 않는 이상적 금리 상태)는 2.5%를 유지했다. 이는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또한 FOMC 멤버 19명이 각자 금리 전망을 표시한 점도표에서도, 2024년의 금리 전망은 굉장히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금리 인상에 동의하면서도, 현 수준의 금리 인상이 성장 동력을 망가뜨릴 거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하면, 2023년 초까지는 현재와 같은 금리 인상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후에는 금리 인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인플레이션도 그렇게 비관적이지는 않다. 전망대로라면 내년 하반기까지는 3% 수준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 역시 부동산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만큼, 내년에는 주거비용도 하락할 것이다.
2023년은 1997 외환 위기의 재현이 될까?
한국에는 더욱 민감한 요소가 있다. 바로 ‘달러 강세’다. 이건 1997년 외환 위기의 트라우마로도 직결된다. 당시의 외환 위기가 달러화의 급격한 강세로부터 시작되었던 기억 때문이다.
2022년 9월, 달러가 1400원대 중반까지 급격하게 오르면서 불안 심리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대거 투입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사람들은 1997년 외환 위기가 재현되는 게 아닌가, 하는 절망적인 예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재의 경기 침체가 1997년 외환 위기는커녕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 진단한다. 어째서일까?
1997년과 2008년 모두 30% 이상의 환율 급등이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이후의 양상은 달랐다. 1997년에는 부채를 갚지 못한 금융기관과 기업에 연쇄적인 파산이 발생하면서 정부가 금융시장에 대한 통제를 잃어버렸다. 반면 2008년에는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사용하면서 강력한 경기 회복을 경험했다. 결국 차이는 정부의 ‘통제력’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어떨까? 우리 정부는 통제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에서는 셰릴 오일을 꾸준히 생산하고 있고, 에너지 위기와 유가 상승에 대한 정치, 사회적인 대비도 진행하고 있다. 덕분에 국제 유가는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혹 미국과 한국의 금리 역전 현상을 그대로 두고 볼 경우, 외화 유출이 가속화되어 1997년과 같은 경제 위기가 초래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미국을 따라 금리를 인상할 경우 우리 경제에 경기 침체가 그대로 파급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운용할 경우 일시적인 물가상승 충격은 있지만,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조절론이 불거지고, 유럽이 에너지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자 환율이 1300원대로 급격히 안정되기도 했다. 과거의 충격적이었던 사례에 현재의 징후를 끼워 맞추는 것은 흔한 실수다. 강달러에 과민반응하는 건 더 위험할 수 있다. 환율에 대한 무리한 개입을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경제 위기처럼 기업들이 무너질 것인가?
1997년 외환 위기는 기아, 대우, 한보 등 수많은 대기업들의 부도에 이어 국가 부도까지 발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동양, STX, 대우조선해양, 한진해운 등 대기업이 연쇄 부실 사태를 맞았다. 반면 2023년의 경기 침체는 대기업의 연쇄 부실, 또는 부도 사태까지 연결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충격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레고랜드 사태’ 등이 보여주듯이 단기적인 유동성 리스크가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브리프 특별호(22.11.18.)에서 검증한 결과, 증권사의 채무보증금 전액이 채무로 확정되는 극단적인 시나리오에서조차 유동성 리스크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은 금융 분야의 규제 관리가 대단히 강력한 편에 속한다. 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은 15% 이상일 정도로 건전하다. 정부의 규제 기준인 8%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가게 부채 문제다. 특히 집값 급등기에 대출로 인한 가계 부채가 급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 전반을 이끄는 기업들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집값이 급등한 것은 사실이지만 강력한 대출 억제 정책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고정금리 대출은 신규 주택 담보 대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가계가 보유한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평균도 18%(2020 기준) 수준에 불과하다. 어려움이 없진 않겠지만, 대출로 인해 가계가 무너질 정도로 심각한 비중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측은 완전하지 않다
물론 예측은 완벽하지 않다. 인플레이션 자체는 관측되었던 것이었지만, 인플레이션이 9%에 이르고, 기준금리가 5%까지 오를 거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갑작스러운 전쟁이나 중국의 정책금리 인하, 봉쇄 일변도의 제로코로나 정책 등 ‘합리적이지 않은’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보다, 정보를 계속 수집하면서 어떤 상품을 운용할지 계획하는 게 합리적이다. 물론 불경기니 경제적 자유를 얻는 일은 호황기보다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투자로 경제적 부와 자유를 얻는다는 큰 꿈이 지나치게 퍼져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버블을 이용해 엄청난 부를 거둔 사람들은 소수다. 그 소수가 SNS를 통해 파급력을 갖춰서,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의 꿈을 꾸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것도 2022년 만의 현상은 아니다. 1999년의 닷컴 버블은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그때도 ‘모두가 떼돈을 버는 장’ 같은 건 없었다. 소수는 엄청난 부를 얻었지만, 대부분은 결과가 좋지 않았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이 복리라는 것이다. 투자 없이 근로소득만으로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근로소득이 무의미하지도 않다. 처음 투자에 투입할 자금은 충분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내 노동력의 가치를 높여 주기적인 수입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침체기에는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투자를 여러 갈래로 고려해야 한다. 리츠(Litz)나 주택연금, 장기물 채권 등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마무리하며
비스마르크는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지나치게 크게 본다. 그래서 상승장에서는 무조건 벌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락장은 실제보다도 더 거대하게 느껴 패닉에 빠진다.
그래서 경제의 역사를 읽고, 전문가들의 인사이트를 들으며 객관성을 키워야 한다. 그러면 테크의 맥락이 보여 자신만의 기준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눈을 기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신에게 <머니 트렌드 2023>을 추천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