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프란치스코”의 탄생
드디어 ‘그’가 오셨다. 작년 3월 즉위 이후 소탈하고 검소한 행보로 매일 화제를 뿌리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2013년 2월 28일 전임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가 전격 사임 한 후, 콘클라베를 거쳐 로마 가톨릭교회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그는 즉위부터 3가지 타이틀을 거머 쥐었다. 시리아 출신이던 그레그리오 3세 이후 1,282년만에 탄생한 비(非) 유럽권 출신 교황으로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 첫 예수회(Society of Jesus) 출신 교황에 이은 ‘프란치스코(Francisco)’라는 법명(法名)을 사용한 교황이다.
이탈리아 출신 이주노동자의 아들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예수회에 입회 하였고, 1969년 사제서품을 받은 후 1992년 주교, 1998년 대주교를 거쳐 2001년 ‘교회의 왕자(王子)’라 불리는 추기경(樞機卿)이 되었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Jorge Mario Bergoglio) 추기경은 교황에 선출 된 후 교황으로서 사용할 법명을 ‘프란치스코’라고 밝혔다. 이는 프란치스코수도회의 창립자이기도 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서 따온 것. 교황 비밀선거인 콘클라베 도중 그를 지지하던 클라우디오 후메스 추기경이 있었는데,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 되었을 때 그는 호르헤 추기경에게 입맞춤과 포옹을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마세요.”라고 했다.
여기에 호르헤 추기경은 ‘가난한 사람’이라는 말이 크게 다가 왔고, 곧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떠올렸고, 자신의 법명으로 결정 하였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탄생 이다.
경차 쏘울을 택한 교황의 정신
교황이 된 호르헤 추기경은 ‘명실상부(名實相符)’하게 자신의 법명 그대로 겸손함과 온유함을 잃지 않았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와 관용을 촉구하며, 자신의 표현대로 ‘자비의 교회’가 이들에게 있어 ‘최후의 보루’가 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그도 몸소 실천하여, 자신의 생일날에 노숙자들을 초청하기도 하고, 동성애자와 무슬림의 발을 몸소 씻기도 거기에 입 맞추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검소한 행보다. 교황에 선출 된 후 전임 교황들이 사용해 오던 화려한 궁전에 머무는 것을 거부 하고, 바티칸 내의 한 호텔의 방 하나를 자신의 거주지로 정하였다. 옷차림에서도 교황 권위의 상징인 붉은색 모제타(mozzetta)에 붉은 구두 착용을 거부하고, 장식 없는 순백색 제의를 즐겨 입는다. 그의 손목에 찬 시계는 50달러 자리, 목에 건 가슴 십자가는 추기경 시절부터 사용하던 약간 녹이 슨 철제, 교황의 상징물 중 하나인 ‘어부의 반지’는 순금에서 은도금제로 바꾸었다.
생활과 차림새에서 ‘소박함’이 뭔지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그는 ‘탈거리’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교황이 된 후에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시절부터 타던 20년이 넘은 르노 자동차를 가져와 손수 운전하기도 하였으며, 자신의 관용차로도 ‘보통사람들이 타는’차인 1600cc급 포드 포커스(Focus)로 바꾸었다. 물론 운전사 없이 자가 운전한다. 이런 그는 해외 순방시 의전차량으로도 그 나라의 소형차를 선택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8월 14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후부터 한국에서 공식 일정 동안 이용하는 차는 기아 자동차의 1600cc 크로스오버유틸리티 차량(CUV) ‘쏘울’이다. 방한 전부터 “한국에서 생산된 가장 작은 차를 타고 싶다.”고 밝힌 그의 의사를 존중하여, 여러 차종을 후보로 올린 후 최종 낙점된 차량이다.
그는 “가톨릭 신자들이 최신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광경을 볼 때 마다 가슴이 아프다. 좋은 자동차를 타고 싶은 이들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배고픔으로 죽어 가고 있는지 떠올려 보기를 바란다.“고 밝히며, 중·소형차 이용을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 한국에 앞서 방문한 브라질에서도 피아트의 1600cc급 다목적 차량(MPV) ‘아이디어’를 공식 의전차로 사용하였다.
화려함의 상징이었던 교황의 이동수단 “포프모빌”
사실 2,000년의 역사 속에서 전통과 의전을 중요시 하는 바티칸은 각종 의식에서 화려함을 추구해 왔다. ‘교황의 공식 이동수단’인 의전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황의 이동수단’라는 뜻의 ‘포프모빌(Popemobile)’도 자동차가 보편적인 이동수단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1920년대 이후 벤츠, 마세라티 등 고급 승용차들이 공식적으로 사용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 교황의 공식 접견 행사와 카퍼레이드에서 사용되는 차종도 뒷 부분을 방탄유리로 덮은 벤츠 G-Class다.
이런 포프모빌의 원래 ‘세디아 게스타토리아(sedia gestatoria)’라 불리던 교황이 공식 행사 때 사용하던 의전용 가마를 1978년 요한 바오로 2세 때부터 자동차를 이용하기 시작한 후부터 탄생 하였다. 이후 대중의 접근성과 교황의 안전이라는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하여, 자동차 뒷면이 방탄유리로 덮힌 오늘날 포프모빌의 원형이 탄생 하였다.
‘교황의 차’라는 상징성이 높기에 많은 자동차 메이커들이 저마다 개성있는 포프모빌을 제작하여 바티칸에 기증해 왔다. 1965년 바오로 6세(Paul VI)의 미국 방문 시에 포드사는 ‘프레지덴셜 리무진(presidential limousines)’을 베이스로 한 의전차량으로 제공하였고, 이후 벤츠 600 풀만-랜덜렛(Pullman-Landaulet)와 더불어 바오로 6세가 애용하는 발이 되었다.
폴란드 출신인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II)는 교황에 취임 한 후 고국 폴란드 방문 시에는 교황의 수단 색깔이기도 한 하얀색의 ‘FSC Star’를 의전차량으로 사용 하였다. 이는 폴란드가 생산한 소형 트럭을 개조한 것이었다. 뒷 자석이 개방된 오늘날 포프모빌의 원조 격이다. 1980년 독일 방문 시에는 오늘날에도 사용하는 벤츠 G-230을 개조한 의전차를 사용하였으며, 1982년 스페인에서는 ‘SEAT Panda’를 탔다.
1984년 캐나다 방문시에는 GM의 ‘Sierra’를 베이스 모델로 한 방탄차가 사용 되었으며, 1988는 쿠바에 갔을 때 역시 이 차를 이용하였다. 1987년 미국에서 이용한 차량은 벤스 G-230모델이었는데, 안전을 고려하여 두 대를 세트로 제공한 모델 중 한 대는 오늘날 독일 슈르트가르트의 메르세데스-벤츠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벤츠 M-Class를 개조한 포프모빌을 즐겨 이용하였는데, 오늘날 흰색 차체에 뒷면은 방탄 유리로 덮여 있어, 교황이 서서 대중들을 맞이할 수 있게 한 포프모빌의 대명사로 굳어진 모델이다.
세상과 장벽을 원하지 않는 교황 프란치스코
현 프란치스코교황도 전임자로부터 이런 포프모빌을 물려 받았고, 바티칸 성 베드로광장에서 열리는 공식 행사에서는 벤츠 G-Class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다만 “이 나이에 잃을 건 많지 않다. 방탄차로 세상과 장벽을 만들고 싶지 않다. 신자들과 항상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더 가까워지고 싶다.” 고 말하는 그는 테러나 암살 위험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방탄 유리를 내리고 포프모빌을 운영하고 있다.
더불어 해외 순방시에도 방탄차 이용을 단호히 거부하고, 그 나라에서 생산된 소형차를 이용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런 이유로 선택한 것이 기아자동차 쏘울이다. 이로서 ‘쏘울(Soul)’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탄 ‘쏘울’은 이제 ‘포프모빌 히스토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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