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제일: 인터랙티브 스토리 게임 회사 ‘스토리타코’를 운영하는 김제일입니다.
리: 잘 팔리고 있습니까?
김제일 대표: 네. 18개 게임을 176개 국가에 출시했고, 누적 유저도 2,000만 명을 넘었어요. MAU(월간활성유저)도 200만에 가깝고요.
리: 와… 어느 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습니까?
김제일 대표: 매출만 따지면 미국, 다음이 유럽입니다. 한국도 꽤 매출이 높고요. 유저 수는 남미, 동남아시아, 러시아가 많고요. 매출은 작년 30억원을 넘었고, 올해는 60억원을 넘을 것 같습니다.
리: 가장 잘 팔린 게임은 무엇인가요?
김제일 대표: <위험한 그놈들>이에요. 600만 다운로드가 넘었고, 지금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죠.
리: 세상에, 600만이라니… 그 정도면 투자도 많이 받았겠군요.
김제일 대표: 게임회사는 보통 스타트업에 비하면, 수익성 있는 경영을 중시하는 편이라 많은 투자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베이스인베스트먼트 초기 투자에 이어 2021년 상장사 넵튠에서 20억, 신용보증기금에서 10억을 투자해 주셨습니다.
여성 대상의 인터랙티브 스토리 게임을 시작하기까지
리: 그런데 어쩌다 이 독특한 게임을 만들게 되신 겁니까.
김제일 대표: 앞의 이야기가 좀 긴데, 대학교 3학년 때 과외 중개 서비스를 만들었어요. 넘 어렸을 때라 광고비 아끼려 신문 배달도 했어요. 신문 배달 월급은 중요하지 않았고, 신문에 광고지를 공짜로 넣은 거죠.
리: 독한 사람이었군요…
김제일 대표: 네. 그래도 몸 갈아 넣은 만큼 잘 됐어요. 과외 중개로만 월 매출 5~6천을 달성했고, 나중에는 보습학원까지 열어서 최고 월 매출은 1억까지도 찍었거든요. 내친김에 좀 더 욕심내서 모바일 과외 중개 서비스를 만들고… 그런데 막상 만들고 보니 운영 비용이 너무 들어갔어요. 그 비용을 벌충하려고 SI를 받기 시작했죠.
리: 이때부터 지옥행이었겠군요.
김제일 대표: 맞습니다. 지금처럼 개발 외주 시장이 안정화된 것도 아니라, 수주 단가는 낮고 계약 내용보다 더 많은 일을 시키고 돈은 안 주고… 그런 문제가 있으니 저희는 또 무리해서 일을 더 받고…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라는 걸 깨달으니 빚만 10억이더라고요.
리: 헐… 어째요?
김제일 대표: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망했으면 정신이라도 차려야죠. 망하며 깨달은 건, 전장을 잘 고르고 캐시플로우가 좋은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시장은 충분히 크되, 경쟁자들이 고래가 아닌 사업이 무엇이 있을까? 그렇게 여성향 인터랙티브 스토리 게임을 택하게 됐습니다. 이미지와 텍스트 위주로 유저의 선택에 따라 진행과 엔딩이 달라지는.
리: 게이머는 대부분은 남성이니까, 남성 대상 스토리 게임이 훨씬 큰 시장 아닌가요?
김제일 대표: 반대로 개발자 대부분도 남성이에요. 그러다 보니 여성을 타겟으로 한 게임을 잘 떠올리지 못하죠. 저희가 리니지나 배틀그라운드 같은 게임회사와 경쟁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여성향 스토리 게임은 그렇게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어요. 제가 일찍 자리 잡으면 충분히 잘 커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죠.
리: 동아시아는 원래 이런 스토리 게임을 많이 제작하는 편 아닌가요?
김제일 대표: 남자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에 그런 착각들을 하는데, 일본 쪽에는 좀 있지만 한국에는 많지 않았어요. 또 있는 게임들의 완성도는 높았지만, 상업화할 수 있는 기업 구조를 가진 곳도 드물었고요.
망한 첫 게임, 그러나 뚜렷한 수확
리: 그래서 스토리타코의 첫 게임은 어땠습니까.
김제일 대표: 망했어요. 2017년 6명이 만든 <학생회 그놈들>이었는데, 2억 들여 제작비 1/10도 못 뽑았습니다.
리: ……
김제일 대표: 직원들 엄청 낙심했는데, 저는 긍정적으로 봤어요. 작은 회사에서 만든 첫 게임이니까 지금 보면 많이 부족하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결제를 했거든요. 제가 온갖 앱을 만들어봤는데, 소비자들이 돈을 쓰게 만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데 게임에는 돈을 쓰더라고요. 적어도 게임이라는 업 자체는 잘 선택했다 생각했죠.
리: 그래도 10억 빚에 첫 게임에 2억을 날리다니, 맨정신으로 버티기 힘들 것 같은데요…
김제일 대표: 힘들죠. 저보다 직원들 멘탈이 더 걱정됐어요. 근데 게임회사 오래 한 선배들 만나보면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요. 그냥 게임은 망하는 게 디폴트고 대박나는 게 드물거든요. 이걸 사람들에게 강조했죠. 대신 어차피 망할 확률이 높다면, 빠르게 만들고 작게 망하자. 즉 실패의 비용을 줄이며, 운이 터질 때까지 해보는 거죠.
리: 그런데 회사 굴릴 제작비가 있어야…
김제일: 돈이 없으니 온갖 사채 다 썼죠. 주변에 이자 20% 준다고 몇천씩 빌리고… 그렇게 회사를 운영했죠.
리: 운은 언제 터졌나요?
김제일: 바로 다음 게임입니다. 두 번째 게임 <위험한 그놈들>이 7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으니까요.
‘린 스타트업’ 방법론을 도입하다: 빠르게, 많이 만들고 공식 도출하기
리: 아니, 님… 넘 빨리 터진 거 아니에여? ㄷㄷㄷ
김제일 대표: 밖에서 보면 그런데 안에서는 그렇지도 않았어요. 회사가 먹고살 만해진 건, 게임 출시 1년쯤 지나서 글로벌에서 성공한 후였어요.
리: 그럼 그 1년은 또 어떻게 버텼나요?
김제일 대표: 제가 계속 어디서 빌려왔죠. 당시는 <위험한 녀석들>도 성공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일단 계속 게임을 만들었어요. 다만 두 번 게임을 만들어보니, 정말 성공 가능성을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면 시도 회수를 늘리자. 회사를 최소 규모 팀으로 나눠, 다들 각자 게임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남들은 1개 게임을 만들 시간에, 3~4개 게임을 만들었어요.
리: 게임 하나 잘 만들기도 힘든데, 가뜩이나 작은 회사의 역량을 분산해도 괜찮아요?
김제일 대표: 게임을 잘 만든다고 잘 팔리는 건 아니에요. 게임을 잘 만드는 건 기본이에요. 재미없는 게임이 팔릴 리 없으니까. 하지만 잘 팔리는 건 정말 어려워요.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 결제하는지 알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너무 결제를 자주 유도하면 이탈하니까 적정 구간을 찾아야 하죠. 우리는 아직 그걸 모르는 상황이었고, 여러 게임으로 실험했던 거예요. <위험한 그놈들>은 운 좋게 두 번째 게임이 터진 것일 뿐이에요.
리: 거기서 익힌 성공 공식을 다른 게임에 또 대입하는 거군요.
김제일 대표: 그렇죠. 예로 <위험한 그놈들>의 성공으로 배운 게 많아요. 우선 전작의 요소를 활용해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것, 제작비를 2억에서 1억으로 낮췄죠. 게임 하나에 들어가는 직원 수도 몇 명에서 몇 명으로 최적화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첫 작품이 망했다고는 했는데 캐릭터 등을 공유하며 도움이 됐죠. 이후 게임 하나하나가 성공할 때마다, 스토리를 이끄는 선택지뿐 아니라, 히든 스테이지를 진행하기 위한 티켓 등 적절한 BM을 더해갔죠.
리: 게임에도 린 스타트업을 적용한 셈이군요.
김제일 대표: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저는 성공과 실패는 운이 많이 작용한다고 지금도 생각하는 편인데… 그걸 구성원이 잘 받아들이게 하는 게 힘들어요. 작게 만든다고 해도 열정을 쏟기 마련이고, 게임이 실패하면 좌절하게 되거든요. 그걸 잘 털어내고 배움의 기회로 받아들여야 성장할 수 있어요. 그 과정이 반복되면 회사 자체가 성장하는 거고요.
팀으로 나뉘어 여러 게임을 한 번에 만든다
리: 지금도 그 시스템은 유지 중인가요?
김제일 대표: 네. 저희 회사가 60명인데, 그중 40명이 신작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개씩 게임이 출시되고 있어요. 저희가 작년까지 8개 게임을 출시했는데, 올해만 10개를 출시할 계획입니다.
리: 엄청난 속도인데요?
김제일 대표: 원래 게임회사는 소위 대박 게임이 80% 수익을 내요. 저희도 몇 개 게임이 매출 대부분을 냅니다. <위험한 그놈들>은 초반부터 쭉 베스트셀러고, 카드 수집형 게임인 <아르카나 트와일라잇>, 뱀파이어 로맨스라는 소재를 내세운 <블러드 키스>도 인기가 많죠. 최근에는 버프 스튜디오와 함께 만든 <러브 페로몬>도 큰 인기를 끌고 있어요.
리: 회사 구조는 어떤가요?
김제일 대표: 팀 하나가 게임 하나를 만듭니다. 팀장이 멤버를 모아 이런 게임을 몇 명이서 언제까지 만들 거다… 기획안을 내놓죠. 거기에 제가 도장을 찍으면 팀이 출범합니다.
리: 게임이 발매되면 또 다른 팀에서 일하게 되겠군요.
김제일 대표: 네. 팀원이 팀장에 도전해보기도 하고, 또 팀장 자리를 잠시 내려놓고 스페셜리스트로 일하기도 하죠. 또 친한 사람들끼리 같이 일하다 보니 팀워크도 좋아지고요. 신입이 1년도 안 되어 빠르게 팀장을 맡게 된 적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하고 싶은 일의 기회를 주려는 편이에요. 그쪽이 좀 더 신나게 일할 수 있으니까.
리: 부작용은 없나요? 내부 경쟁이라거나…
김제일 대표: 경쟁은 있죠. 근데 뭐 건전한 경쟁이라면 괜찮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혼란도 있었어요. 서로 너무 매출에 집착하다 보니 유저 기분 상하게 한 일도 있었고… 지금은 여러 게임을 내놓으며 내부적으로 가이드라인이 있어 선을 넘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여성들이 좋아하는 게임이므로, 여성을 존중하며 만든다
리: 그런데 남자 대표가 여성 대상의 게임을 만드는 게 어렵지 않나요?
김제일 대표: 맞아요, 그래서 실무진분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편입니다.
리: 같이 일하는 분들의 역량을 신뢰하시는군요.
김제일 대표: 맞아요. PD님, 작가님, 일러스트레이터님 같은 분들은 이 분야의 장인들입니다. 특히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취향에 대해 잘 알고 계시죠. 그분들의 의견을 최대한 듣고 수렴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아시죠? 엄청난 히트작인데, 남자들은 그 이유를 잘 몰라요. 그 이유를 잘 아는 여성들이 담당하는 게 좋아요.
리: 그래도 대표가 가진 인사이트가 있으니,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지 않나요?
김제일 대표: 게임 외적으로야 제가 다 관리하죠. 그런데 게임은 지나친 검증 과정이 자율성을 해치기도 합니다. 처음에야 다 재밌을 것 같은데, 만들다 보면 애매해지거든요. 막판까지 자신 없이 내놨는데, 막상 유저들은 엄청 좋아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은 멤버들이 끌린다는 느낌을 공유하게 되면 게임 제작에 들어갑니다.
리: 말은 쉽지만 참 버리기 힘든 욕심이기도 하죠.
김제일 대표: 게임 발매가 늘어나며 저희도 나름의 매뉴얼이 잡혀서 가능한 것 같기도 해요. 지켜야 할 것은 당연히 지키고, 나머지 부분은 알아서 해보라는 거죠. 또 너무 매뉴얼화되면 획일화된 제품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단 매뉴얼의 원칙은 뚜렷해요. 상업으로 성공하는 게임을 만든다.
리: 어… 그런데 또 상업성을 중시하다 보면, 게임 제작자의 의욕이 떨어질 수 있지 않나요?
김제일 대표: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편협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확고한 기준점이 있어야 조직이 유기적으로 작동합니다. “이거 돈 돼?”라는 질문에는 답할 수 있어야죠. 반대로 상업성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선에서는 뭐든 해봐라. 이 균형을 지키기 쉽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회사를 이끌어온 원칙입니다.
파트너쉽 프로그램: 더 많은 사람들이 스토리 게임을 만들고 즐길 수 있도록
리: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김제일 대표: 크게 둘입니다. 하나는 저희 장르에서 가장 성공적인 개발사가 되는 것, 하나는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포함한 퍼블리셔로서의 성공입니다.
리: 파트너쉽 프로그램은 뭐죠?
김제일 대표: 게임 개발 제작 전 과정을 지원하는 스토리타코의 새로운 전략적 퍼블리싱 시스템입니다. 협력사가 원화가, 시나리오 조직 등 최소한의 조직만 가지고 있어도 스토리 게임을 제작 및 출시할 수 있도록, 스토리타코가 개발 제작 전 과정을 지원해 주는 퍼블리싱 시스템이에요.
리: 와, 그런 게 가능한가요?
김제일 대표: 네, 스토리타코만의 제작 프로세스와 프레임 워크가 있어서 단기간 게임 제작이 가능하거든요. 저희가 컨설팅 및 개발지원, 마케팅, CS, 글로벌 현지화까지 모두 도와드립니다. 협업 시작부터 런칭까지 빠르면 5개월 안에도 할 수 있습니다.
리: 저작권과 수익 배분은 어떻게 됩니까?
김제일 대표: 수익은 정확하게 5:5로 배분합니다. 저작권은 한쪽으로 귀속되지 않고, 각 사의 기여도에 따라 각각 분배되고요.
리: 협력사 측에서는 게임 제작의 리스크가 크게 줄어들겠는데요.
김제일 대표: 네. 우리가 만들어 둔 게임 제작 시스템을 제공해 주고 물리적으로도 글로벌 유저 확보를 도와주는 거죠. 어떻게 보면 일종의 프랜차이즈 모델인데, 리스크는 훨씬 적어요.
리: 이런 모델은 처음 들었습니다.
김제일 대표: 그쵸, 개발사도 퍼블리셔도 하지 않는 모델이에요. 개발사들은 자기들의 스타일이 있어서 퍼블리셔가 개입하는 걸 원치 않아 하고, 퍼블리셔도 개발 방향성에까지 손대는 건 번거롭고 힘들어서 하고 싶지 않아 해요. 그런데 왜 굳이 이런 걸 하냐면, 요새 게임 업계의 경쟁이 너무 심해요.
리: 음…
김제일 대표: 저도 들은 이야기인데, 중국 게임 시장이 막히기 전까지는 개발사가 투자금을 확보하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지금의 회사들은 개발비를 본인들이 충당해야 해요. 이런 상황에서는 게임의 방향성을 잡아주고 글로벌 마케팅을 도와주는 조직이 필수입니다. 저희는 이 부분을 도와드릴 수 있는 거죠.
리: 대단하네요. 지금까지 몇 개 회사 정도가 같이 했나요?
김제일 대표: 지금까지 했던 데가 세 군데였고, 이번 달에 새로 계약한 데가 세 군데 정도 될 것 같아요. 원래는 내년부터 홍보하려고 했는데, 버프스튜디오와 했던 게임이 가능성을 보이니 다른 분들도 연락을 주셨어요. 파트너쉽 미팅 언제나 환영입니다.
리: 인터뷰하면서 느낀 거지만, 제작자분들에 대한 리스펙트가 있으신 것 같군요.
김제일 대표: 제가 게임업계 들어와 느낀 게, 제작자들의 재능이 너무 뛰어나요. 게임에 대한 애정도 엄청나고요. 게임 프로그래머는 일반 서비스 쪽보다 훨씬 일도 이슈도 많은데, 그걸 하나하나 신경 써요. 아트 쪽은 거의 장인이에요. 초등학교부터 10년 이상 공부한 걸 게임에 쏟아 부어요. 자연히 존중하게 되죠.
리: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김제일 대표: 한 가지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 회사에 오시면 게임 제작의 A부터 Z까지 알 수 있습니다. 저희는 입사하시는 분들이 배우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지원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실력 있고 의욕 있는 분들의 지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