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애에만 판타지가 존재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우리는 친구들과의 우정에 있어 더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아름다운 우정의 모습은 실로 감동적이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하고, 이익을 포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연애 대상)마저 양보한다. 그래서 모두가 가슴 한편엔 깊은 우정 혹은 진정한 베스트 프렌드를 찾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된다. 그리고 왜 나에게는 그런 존재가 없는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나는 시간을 들여 유대를 쌓고,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지향한다.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관계를 활용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선호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들을 대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하는 노력 몇 가지를 소개한다. 이는 내가 손절하고 싶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났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1. 똑같은 문제로 징징거리지 않는다
만날 때마다 매번, 같은 문제를 화두에 올리는 것은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힘든 일이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징징거리는 친구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해결이 불가한 문제를 반복해서 듣다 보면 “이렇다 할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내가 그 애의 친구라고 말할 자격이있을까” 하는 무력감마저 느낄 수 있다. 그런 속상함을 친구들에게 안겨주기 싫어서라도, 절대 이 행동은 하지 않으려 한다.
2. 친구와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두고 내 생활은 뒷전으로 미루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과 정체성이 없는 사람의 마음은 오로지 타인으로 가득 차 있다. 상대에게 모든 관심을 쏟고 상대를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모든 면에서 나를 먼저 위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고마움을 느껴 금방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무엇이든 무르익으려면 적절한 시간이 필요하듯 관계도 그렇다. 시간이 주는 관계의 깊이는 억지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상대도 나에게 그만큼 해주기를 바라는 기대감이다. 상대가 기대하는 만큼을 절대 채워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이 관계가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부담과 버거움은 관계의 결실로 보기에 좋은 산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관계는 지양한다.
3. 부정적인 이야기로 상대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해도 꼭 부정적으로 토를 다는 이들이 있다. 내 이야기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걱정을 빙자한 평가를 쏟아낸다. 잘되도록 격려하고 응원이나 조언을 해주기는커녕, 대화의 기저에 부정적인 태도가 깔려 있는 사람은 늘 상대의 이야기를 평가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
같은 상황을 몇 번 겪고 나서야, 이 대화가 나를 위한 대화가 아니었음을 눈치챈다. 혹시나 내가 무의식중에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가장 경계하는 모습이다.
4. 가까워져도 예의를 지킨다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에게 더 깍듯하다. 상대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예의를 ‘지켜도 되는’ 개념으로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늘 가까운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기적으로 굴어 상처를 준다든가 무리한 부탁을 해서 도움 받고 감사를 잊는다든가 하는 것은 아마도 상대를 ‘당연히’ 여기는 마음가짐 때문 아닐까. 그렇기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더욱 예의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마무리하며
아무리 말이 잘 통하고 마음을 나눈 친구라도 관계 유지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좋은 사람이어도 상황적으로 맞지 않는다거나 물리적으로 멀어져서 혹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대치되어서 관계를 이어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우정이라는 감정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 같다. 오늘은 이런 모양일 수도 있고 내일은 다른 모양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날씨처럼 흐렸다 개었다 한다.
지금에 와서야 인간관계야말로 가장 순리대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고 내가 직접 통제할 수도 없는 것. 그래서 원하는 그림을 정하고 기대를 품으면 품을수록 우리는 환상일 뿐인 우정의 개념에 매몰되어 버리기 쉬워진다.
요즘은 확실히 시대가 변하니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법도 변했다. 학교나 회사, 동네에서만 만날 수 있던 사람들이 공간이라는 물리적 제약을 벗어나 관심사 위주로 모이게 되었다. 이제는 친구의 개념도 범위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인생 밑바닥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환상 속의 친구를 찾기보다는 관심사 위주로 찾아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것이 친구라면, 우리 주변에 널린 게 친구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