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을 대신하여 벌해주겠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또 손석희의 JTBC 뉴스에 중징계를 결정해서 논란이 거세다. 세월호 사태 당시 JTBC 뉴스의 논조가 마냥 좋았냐 하면 그렇지는 않고 난 오히려 별로였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굳이 중징계씩이나 결의하시는 건 아무리 봐도 정권에 누가 되는 놈들은 방심위의 이름으로 벌해주겠어 하는 방심위 요정들의 오바라고밖에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 방심위란 물건이 전부터 실로 남사스러워 누가 봐도 정권에 딸랑딸랑 하는 심의를 많이 해 왔는데, 그게 이 방심위 위원의 인적 구성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 대통령이 3명을 추천하고, 여당이 3명, 야당이 3명을 추천하는 구도인데, 결국 여당이 6명, 야당이 3명을 배정받는 셈. 안그래도 편향된 인적 구성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극단적으로 편향된 인사가 대통령 몫으로 추천받아 내려오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정치 뉴스를 심의하면서 편향성을 이유로 징계를 결정하는 건 자칫 잘못하면 심의가 아니라 검열으로 치달을 수 있다. 문제는 방심위가 편향된 구성에도 불구하고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고, 전혀 견제받지 않는다는 것. 여당 추천 위원들과 야당 추천 위원들이 건전한 논의를 나누고, 정치적 견해와 무관하게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 발언 내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가관이다.
궤변으로 심의 내용을 결정
예를 들어 2012년 7월 5일 정기회의 회의록을 살펴보자. MBC 뉴스데스크는 당시 MBC 파업을 다루며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퇴근하려는 순간 파업 중인 노조원 수십 명으로부터 저지를 받았습니다. 권재홍 보도본부장은 차량 탑승 도중 노조원들의 저지 과정에서 허리 등 신체 일부에 충격을 받았고”
그러나 이는 권재홍 보도본부장 본인이 노조원들에 의해 상처를 입은 사실이 없다고 밝힘으로써 거짓 보도로 드러났다. 그런데 이에 대해 방심위원들은 이 보도가 잘못이 아니라면서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권혁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신체 일부에 충격을 입어’는 반드시 상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처를 입었다고 할 것 같으면 보도에서 일반적으로 상용되는 ‘상해를 입었다’고 표현해야 맞는데, 신체 일부의 충격이라는 것은 허리가 삐끗할 수도 있고 떠밀려서 걸어가다가 헛디뎌서 발목이 시큰거릴 수도 있고, 또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정신적으로 충격받은 것을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만 가지고 이 표현이 잘못됐다고 하기는 어렵다.”
박만: “이것이 ‘저지 과정에서 허리 등 신체 일부에 충격을 받았다’ 고 하는데, 역시 그 뒷부분도 주체의 표현이 안 되어 있습니다.”
주어가 없으니까 거짓말이 아니라는 얘기다. 어디서 많이 봤던 얘기다. 게다가 ‘신체 일부에 충격’이란 표현에는 정신적 충격도 포함된다는 궤변까지 펼친다. 이 궤변은 심지어 이렇게 확장되기까지 한다.
추측만으로 심의, 증거영상 상영은 거부하기까지
박만: “어떤 범죄행위를 피하기 위해 달아나다가 넘어져서 다쳤다면, 역시 범죄행위를 하려던 사람한테 그 책임이 가는 것입니다. 지금 퇴근하려는 사람을 저지하려고 하니까 아마 청원경찰이나 경비원들이 에워싸고 가다가….”
박만은 방심위 위원장이다. 위원장이 심의를 하면서 근거도 없이 추측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이런 식으로 심의를 한다면 그냥 샤먼을 불러 복불복으로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게 더 합리적일 것이다. 이에 몇몇 위원들이 영상자료가 있으니 이걸 직접 보자고 주장하자, 위원이 개인적으로 가져온 동영상은 적법하게 입수된 것이 아니라는 궤변을 펴며 이를 거부하기까지 한다.
사실관계 지적하자 색깔론으로 맞서
논쟁이 첨예했던 다른 회의록도 살펴보자. 2014년 1월 23일 회의록이다. 여기에서 방심위는 NLL 문제, 대선 부정선거, 한미 군사훈련 등에 대해 인터뷰한 박창신 신부의 ‘김현정의 뉴스쇼’를 심의한다.
박창신 신부의 인터뷰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근거 없는 부정개표론 등을 들고 나온 것은 충분히 징계가 이뤄질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심의위원들은 이 과정에서 잘못된 사실관계 등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념을 몰아가고 ‘비국민’ 논란까지 들고 나오는 등 매우 부적절한 태도를 보인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김택곤 : “사실 NLL은 남북 간에 협의한 바 없습니다. 15마일의 지상의 군사분계선은 합의를 했지만, 서해 5도를 둘러싼 해상은 남북 간의 정전협정에서 합의한 바 없습니다”
권혁부: “NLL을 부정하시는 것입니까?”
NLL이 남북 간에 협의된 선이 아님은 논란의 여지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지적했다 해서 갑자기 NLL을 부정하냐고 몰아가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같은 심의위원에게조차 색깔론을 뒤집어씌우는 모습이다. 권혁부는 당시 방심위 부위원장이다.
어느나라 국민이냐 질문하며 종북 공세까지
방심위는 일전에 정미홍씨가 박원순, 이재명 등을 종북 인사로 규정한 데 대해서는 ‘문제없음’, 최민희,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을 종북세력 5인방으로 규정한 데 대해서는 비교적 그 무게가 가벼운 ‘권고’ 조치만을 내렸다. 이에 박경신 위원은 심의에 일관된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며 어떤 기준으로 심의가 이뤄지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여당 위원들은 이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이에 양자간의 언성이 높아진다.
박경신: “지금 국민들 대표해서 언론이 방청하고 있습니다. 얘기해 보세요.”
권혁부: “어느 국민들한테 얘기하라는 거예요?”
박경신: “대한민국 국민이지, 누구예요? 얘기를 해보세요.”
권혁부: “박경신 위원이 국민이라고 하면 누구를 얘기하는 거예요?”
박경신: “제 목소리가 시끄럽고, 낮고 이딴 얘기 하지 마시고요.”
권혁부: “박경신 위원 국민이 어느 국민이야?”
박경신: “질문에 답을 하세요. 또 제 국적 가지고 물고 늘어지지 말고, 그런 저질 인신공격 하려고 하지 말고 내용에 대해서 얘기를 하세요!”
권혁부: “한국에서는 한국답게 회의에 임해야지!”
결국 박경신 위원이 말하는 국민이 한국 국민이 아니라는 식의 색깔론이다. 심지어 이런 발언까지 나온다.
엄광석: “발언의 팩트가 틀리다고 다 똑같이 제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것은 국기를 문란하게 하는 일이고, 중대한 발언이기 때문에 법정제재 수위까지 간 것이고, 그것(정미홍 발언)은 행정지도로 충분한 것입니다.”
박경신: “그러면 국기를 문란하다고 할 정도면….”
엄광석: “아니 대한민국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 종북 발언을 하는 게 제대로 된 발언이에요! 말이 되는 얘기를 해야지!”
결국 ‘종북’이라는 자의적인 기준이 심의의 잣대가 되었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방심위 회의에서조차 이런 색깔론, 종북 논란을 기준삼는데 심의의 권위가 제대로 설 리 없다.
기준도 없고 일관성도 없어
여기서는 특히 엉망으로 진행된 두 개 회의록을 살펴보았지만, 비단 이 둘만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규정을 숙지하지 못하거나 규정을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적용하고, 규정에 없는 내용을 규정처럼 들이미는 등 방심위 회의는 박경신 위원의 지적처럼 그 일관성과 기준이라는 게 명확하지가 못하다.
심의위원 스스로가 전문성이 떨어지고 편향적이라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새로이 출범한 3기 방심위에 방송 통신 분야 종사 경험이 없는 박효종, 함귀용 등을 추천했는데, 이들은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와 공안검사 출신 인사로 심지어 편향성까지 의심되는 인물들이다.
위에서 종북 발언을 한 2기 방심위 엄광석 위원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헌법질서를 부정하는 세력이 25%”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미국같은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은 국민들이 너무 감정에 치우칠 수 있”다고도 얘기한다. 근거가 전혀 없을 뿐더러, ‘국기 문란’이라는 기준을 굳이 적용하자면 이 발언이야말로 국기 문란 발언이다. 방심위원이 오히려 방심위의 징계를 받아야 할 상황인 셈이다.
심의를 맡은 이들이 심의받아 마땅한 행태를 보일 때, 과연 이들은 누가 심의할 것인가? 인사권자의 명을 받들어 권력에 딸랑대는 행보를 보일 때, 이들의 편향성은 과연 누가 심의할 것인가? 방심위의 판단이 법원에서 뒤집힌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방심위의 심의는 종종 조롱거리로 전락하기까지 한다. 방심위를 심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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