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각오한 제1야당은 놀랍게 기사회생했다. 충청과 강원을 석권하고, 부산과 수도권 선거를 초박빙으로 몰아넣었다. 선거 일주일 전 여론조사와는 딴판이었다.
그러나 야당이 여유롭게 임한 7월 재보궐 선거는 전혀 달랐다. 야당은 공천파행과 야권 단일화 협상에 발목이 잡혔고, 여당의 무덤이라는 재보궐에서 대승은커녕 텃밭을 내주고 말았다. 한달 전 석권했던 충청권에서는 전패했고, 수도권 선거도 크게 졌다. 지도부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다.
2014년 7.30 재보궐이 아니다. 정확히 4년 전인 2010년 7.28 재보궐 선거 이야기다.
평행 이론 1. 황당한 전략 공천, 거물만 있는 진보의 단일화 승부수
4년 전 문국현 의원의 서울 은평을은 재보궐의 핵심 지역이었다. 여당에서는 2년 전 낙선했던 이재오 후보가 일찌감치 등판해 있었다. 이재오 후보는 탄핵 바람이 몰아 닥치던 2004년 17대 총선은 물론, 2년 뒤인 2012년 19대 총선에서도 생환할 만큼 바닥 표심이 튼튼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의 후보는 영 함량미달이었다. 2002년 김대중 정부의 총리로 지명되었다가 청문회 끝에 총리에서 낙마한 장상 총리서리. A급 챔피언에게 B급 ‘그때 그 사람’을 내보낸 셈이었다. 원내 진입을 노리던 국민참여당의 천호선 후보와 민주노동당의 이상규 후보는 장상 후보와 단일화 협상을 벌였다. 장상은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간신히 승리했으나 예상대로 큰 표차로 패했다. 장상 공천은 지금도 역대급 공천 실패로 입에 오르내린다.
또한, 진보신당과 연대한 사회당의 금민 후보와 문국현의 당인 창조한국당의 후보는 연대 협상에도 끼지 못했고, 고작 1% 대를 득표했다. 이상규 후보는 야권연대로 관악을의 지역구 의원이 되었지만 여론조사 조작 의혹을 거쳐서만 당선 될 수 있었다. 천호선 후보는 단일 후보로 19대 총선에서 출마했으나 석패를 거두었고, 그 이후의 행보는 이번 한 달간 우리가 보던 대로다.
여당의 텃밭에 이뤄지는 황당한 전략 공천, 거물만을 내세운 진보정당의 단일화 승부수, 지역기반이 없는 군소 정당의 미미한 존재감. 이 모든 것은 2013년 노원 병, 올해 동작 을과 수원 영통에서 반복되었다.
평행 이론 2. 승리가 당연할 것이라 예상한 지역구
4년 전 인천 계양을은 안상수 전 시장을 꺾고 당선 된 송영길 시장의 지역구였다. 인천에서도 가장 야권 표심이 강한 지역구로, 역시 민주당이 이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곳이었다. 하지만 계양을 선거 역시 텃밭을 가꾼 여당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양당 후보의 격차는 5%가 채 되지 않았는데, 민주노동당 후보가 자그만치 7.62%를 득표했다. 계양을은 여야가 5:3으로 야당이 패한 결정적인 지역이었다.
4년 전 광주 남구는 민주당과 비민주 단일후보의 1:1대결이었다. 민주노동당의 오병윤 후보는 44%를 득표하며 의미있는 패배를 거뒀고, 2년 뒤 광주 서구을에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하여 새누리당의 이정현 후보를 꺾고 당선된다.
이번 7.30 선거에서도 통합진보당의 득표력은 강했다. 순천-곡성에서 이성수 후보(전 전남지사 후보)는 약 6%의 득표를 올렸는데, 당선된 이정현 후보가 50%에 조금 못미친 득표를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광주 광산을에서도 통합진보당은 30%에 육박하는 26.37%의 득표를 했다. 같은 지역구에서 정의당의 득표율은 3%였다.
평행이론 3. 재보궐의 도시 충주에서의 패배
충주는 재보궐의 도시다. 2004년 이시종 당시 시장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기 위해 사퇴한 이래 10년간 시장 선거만 6번, 총선만 다섯 번이었다. 국회의원 선거 역시 충북도지사에 출마하기 위해 이시종(2010년), 윤진식(2014년)이 차례로 사퇴했기 때문이다.
4년 전 재보궐 선거는 이시종 의원의 충북 도지사 출마로 지역구가 공석이 되어 치러졌다. 당시 여당의 윤진식 후보가 낙승을 거뒀다.
이번 7.30 선거에서는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사퇴한 이종배 시장이 야당으로 갈아탄 한창희 전 시장을 꺾고 낙승을 거뒀다. 이종배 후보와 한창희 후보는 이미 2011년 충주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한차례 맞붙었다. 나왔던 인물이 계속 나오는 “충주판 삼김시대”라고나 할까. 야당은 여당 인사를 무작정 수혈하여 불리한 구도를 극복하려고 들고, 여당은 이시종만 아니면 두려울 것이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현실은 인정해야
물론 어려운 선거였다. 원래 지방선거 직후 치러지는 여름철 재보궐은 투표율이 낮아 민주당계 정당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12년 전인 2002년 8월 재보궐 선거는 한나라 7 : 민주 6으로 시작해서 결과는 자그마치 한나라 11: 민주 2였다. 당시 투표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으며, 민주당은 수도권 각지에서 30%대 득표로 참패를 거뒀다. 민주당은 이대로 정권을 내주고 말 것이란 공포에 시달렸지만 겨울 대선에서 이겼다.[1]
재보궐에 지방선거까지 억지로 패배로 규정하며 ‘지기만 하는 야당’이란 프레임은 과장된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민주당계 정당이 야당으로 이긴 선거는 손에 꼽는다. 95년, 2010년, 그리고 올해 지방선거가 전부다. 명백히 불리한 선거에서 야당 과반이란 여당의 엄살에 넘어간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패배는 뼈아프다. 2010년의 상황은 지금에 비하면 약과일 정도다. 야권은 2010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순천-곡성마저 빼앗겼으며, 적진에 출마한 거물들도 줄줄이 낙선했다.[2] 무엇보다 야당은 여당, 특히 오세훈 시장의 실책 덕분에 2011년 두 차례의 재보궐에서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번엔 장장 20개월 간 그럴 기회가 없다.
물러난 김한길 대표의 취임사는 ‘이기는 정당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4년 전 정세규 대표도 취임이래 수권정당을 강조했다. 그래서 지난 두 차례의 지방선거에서 야당 지도부는 ‘지지 않는’ 선거를 했다. 이미 대선 전부터 차기 당권 유력주자였던 것도, 지방선거 한 해 전 여당과 맞서며 장외투쟁의 시행착오를 겪은 것도 똑같다.
야당이 보여줘야 하는 것은 수권 능력
그렇다면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크게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당 대표 자신의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기반이 취약하기에 어떻게든 자기 파를 심으려고 무리수를 두고, 그 무리수 때문에 다른 계파들이 등을 돌리는 악순환이다. 실제로 정세균 대표는 사퇴 후 전당대회에서 손학규-정동영에 이어 3위로 크게 패했다.
다른 하나는 더 결정적인데, 지방선거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서 이미 재미를 본 낡은 전략들은 이어지고, 지방선거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군소 진보정당들도 자기 몫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승자의 저주’인 것이다.
4년 전에도 여당은 새로운 지도부로 선거를 치렀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정몽준 대표가 물러나고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보온상수 안상수 대표가 취임했다. 여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선거에서 컨벤션 효과를 등에 업을 수 있었다.
20개월 뒤 2016년 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혹은 그 후신 정당)은 2012년의 패배를 반복하게 될까? 수권 정당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집권 할 만하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다. 18년 전인 1996년 김대중 대통령은 총선에서 야권 분열로 참패했지만 다음해 대선에서 이겼다. 정세균-김한길 대표의 전략은 지방선거에서 소임을 다했다. 지금 야당이 보여줄 것은 ‘야당다운 야당’이 아닌 수권 능력이다.
(피처 이미지 출처: 민중의 소리)
- 12년 전 서병수(현 부산시장)를 국회에 입성시킨 해운대기장갑은 18.8%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당시 민주당 후보는 20%의 득표로 2등에 머물렀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둔 서병수 의원의 사퇴로 같은 지역에서 재보궐이 치러졌다. 이번 투표율은 22.87%. 새정연 윤준호 후보는 34.4%를 득표했다. ↩
- 18대, 19대 총선에서도 반복되었던 일이다. 2008년 손학규와 정동영은 종로와 동작을에서 낙선했고, 2012년 정동영과 천정배는 강남을과 송파을에서 낙선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로 손학규 후보는 정계 은퇴했고, 김두관 후보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이미 사라지고 있는 정동영 의원이나 광주 국회의원들의 반발로 공천에서 배제된 천정배 후보 역시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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