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최수연(하윤경 분)은 마냥 착하고 다정한 인물로 그려지진 않는다. 1화에서 그가 우영우(박은빈 분)를 대하는 장면은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준다. 최수연은 ‘우영우가 어떤 사람이냐’ 묻는 권민우(주종혁 분)에게 로스쿨 시절의 일화를 들려준다.
나는 걔 보면 괴로워요. 어설픈 모습이 안쓰러워 도와주다 보면 정작 걔는 일등하고, 나는 뒤처지고…
그러면서도 회전 출입문을 못 지나가는 우영우를 본다. “저러고 있는데 어떻게 안 도와줘요”라고 말하니, 권민우는 “그럼 도와주시던가요”라는 말을 남기고 여유 있게 우영우 옆을 지나쳐간다. 오기가 생긴 최수연도 그냥 지나가지만, 결국 몇 걸음 못 가 뒤를 돌아보고 한숨을 푹 쉬고 우영우를 위해 회전 출입문을 잡는다. 그리고 우영우에게 쏘아붙인다.
회전문이 어려우면 다른 문으로 나오면 되잖아. 너 바보야 너 바보냐고! 아 진짜…
최수연이 우영우를 대하는 태도는 ‘동정’인지 아닌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가 진심으로 우영우를 친구로서 아끼는지도 알 수 없다. 만나서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동그라미(주현영 분)의 우정과는 상당히 다른 지점이다. 실제로 우영우가 동그라미에 대해 “‘하나’밖에 없는 친구”(동동삼씨의 사기 사건에 대해서 언급하며)라고 말한 것을 보면, 최수연과 우영우의 관계는 친한 친구 관계로 보기에도 애매하다.
우영우가 이준호(강태오 분)에게 고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전화를 하자 “영우아 너 지금 뭐 해, 근무 시간에 이러면 안 돼”라고 지적한다. 이준호에게도 “영우가 자주 이러냐, 평생 들어주실 거 아니면 준호씨가 먼저 선을 그어야 한다”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우영우와 이준호가 점심시간에 고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는 우영우를 말리려고까지 한다.
하지만 대체로 최수연은 우영우에게 다정하다. 새 명패가 생긴 우영우에게 “사진 찍어줄까”라고 말한다. 권민우가 의도적으로 알려주지 않은 ‘ATM 사건’에 대해서도 일러준다. “구내식당에서 김밥 나오는 날은 말해줘야겠네”라고 하며, 아무렇지 않게 생수병 뚜껑을 따주기도 한다. 우영우의 ‘엄마’ 이야기를 들었을 땐 말 없이 경청을 하고, 뒤늦게 그를 위로하기 위해 백화점에 가서 가방을 사주겠다고 말한다. 7화 예고편에선 우영우에게 “준호씨가 너 좋아하는 거 같은데?”라며 (자신도 약간의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이준호의 마음이, 사실은 우영우에게 가 있다는 것을 솔직히 밝힌다.
최수연은 특별히 선하거나, 진중하거나,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다. 우영우와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며, 편하게 대하려고 노력은 한다. 하지만 우영우를 도와주고 배려를 베풀어야 할, 혹은 관리가 필요한 ‘약자’로 여기는 경향을 버리지 못했다. 우영우의 ‘1등’에 왠지 모를 괴로움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최수연은 우영우에게 ‘봄날의 햇살’이다.
너 그런 거 아니야. 너는 봄날의 햇살 같아. 너는 나한테 강의실의 위치와 휴강 정보와 바뀐 시험 범위를 알려주고 동기들이 날 놀리거나 속이거나 따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해. 지금도 너는 내 물병을 열어주고 다음에 구내식당에 또 김밥이 나오면 나한테 알려주겠다고 해. 너는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최수연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사람이다. 우영우를 찾아가서 밥을 사 먹이진 않지만, 우영우를 보면 “밥 먹었냐”라고 물어본다. 우영우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거나 손해 보거나 미움받지 않도록 노력한다.
우영우에게 “고래 이야기를 그만하라”라고 한 것도, 그를 단순히 다그치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준호가 우영우에게 고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점심시간’으로만 제한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좋아졌다. 아마 로스쿨 시절에도 그는 우영우와 우영우를 이해하지 못하고 배척하는 이들의 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남들 모르게 해왔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누군가는 현실에서 최수연 같은 사람에 대해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착한 척하는’ 위선이라고 꼬집었을 수도, 또 누군가는 약자성을 갖고 있는 타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만 보는 사람이라고 비판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최수연이라는 캐릭터에게 “봄날의 햇살”이라는 최상의 찬사를 남기면서, 그가 우영우를 대하는 방식이 우영우의 삶에 큰 힘이 됐음을 보여준다.
요즘 나는 타인에게 친절하기가, 또 언제나 기꺼이 도움을 주기는 영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한다. 예의를 차리고 깍듯하게 대하는, 존중을 표하는 것은 오히려 쉬울 수 있다. 그러나 ‘곁’을 내주고 끊임없이 신경 쓰는 일은 ‘존중’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가능하다. 핑계겠지만, 줄곧 나는 ‘남에게 마음을 줄 만큼 에너지가 없구나’라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왔다. 실제로 누군가를 챙기는 일은 내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몸에 맞지도 않은 행동을 억지로 할 바에는 그저 무례하지 않게,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 타인을 대해야겠다는 것이 나의 오랜 생각이었다.
아마 나의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수연이라는 캐릭터는 그동안 내가 너무 ‘겁쟁이’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만든다. 나는 누군가에게 마냥 헌신과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이준호도 아니고, 어떠한 편견 없이 진정한 우정을 맺을 수 있는 동그라미도 아니다. 나는 속되고, 거만하고, 냉소적이며,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은가.
아주 조금 용기를 내서, 너무 멀리 있지도 또 너무 가까이 있지도 않은 채로, 타인에게 찰나의 마음을 쓰면 어떨까. 아마 그건 정말 별 게 아닐 것이다. 너무나 사소해서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민망할 행동일 게 분명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곁을 쉬이 내주는 일은 불가능할뿐더러, 그것이 타인과 연대하며 마음을 나누는 유일한 법은 아닐 것이다. 그 점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일깨워준다.
최수연은 우영우의 고통과 불편을 제 일처럼 여기고 나서진 않았다. 가까이 다가와서 위로해주는 스타일도 아니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결코 외면하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거기에서부터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내 목표는 최수연이다.
원문: 박정훈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