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대선, 이준석을 묻다: 문문 인터뷰 1/2」에서 이어집니다.
커뮤니티’라는 ‘물리력’을 등에 업은 선거 전략의 등장
임예인: 둘 다 문제라고는 생각하지만, 적어도 역사적 명분이라도 내세우는 게 소수자 혐오를 내세우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문문: 뭐, 그런 면도 있긴 하지만 말이죠… 혐오동원을 하든 역사적 명분을 ‘소유하는’ 방식이든 현실에서 나타나는 양태는 비슷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유튜브 채널 등으로 강하게 결속된 여론 집단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는데요. 이건 ‘여론’과는 다릅니다. 여론은 ‘물리적 실체’가 분명하지 않지만, 커뮤니티는 물리적 실체로 존재하고 있거든요. 이 물리적 실체는 선거 때 중요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임예인: 이준석 역시 그런 ‘커뮤니티’를 등에 업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문문: 앞서 이준석이 ‘공정’이라는 키워드를 ‘소유’함으로써 ‘경쟁이 공정하다’는 2030세대의 여론을 등에 업는데 성공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것이 실제 물리력으로 확인된 것은 ‘남초 커뮤니티’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30의 국민의힘 입당 러시로 그 물리력의 규모 또한 확인할 수 있었죠.
이 물리력이 확인된 이후, 이준석은‘남초 커뮤니티’와 더욱 긴밀한 관계로 나아가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이준석의 ‘페미니즘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표가 된 이후, 혹은 대선을 거치면서 이준석은 훨씬 자극적으로 이슈를 제기했습니다. 물리력이 필요한 선거에서 자신이 보유한 물리력을 동원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임예인: 그러고 보면, 최근에는 국민의힘 뿐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특정 ‘커뮤니티’를 지지 세력으로 동원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곳들요.
문문: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 정치와 선거는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겁니다. 선거는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지만, 정치가 곧 선거는 아니죠. 무슨 ‘전략’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사실 전략이라기보다 전술에 가깝습니다. 어떻게 하면 ‘선거를 이길 것이냐’에 집중돼 있죠. 최근 한국 정치의 중요한 경향 중 하나가 정치인들의 관심이 오직 ‘선거’에 집중되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지만요…
임예인: 정치인들의 관심이 지금처럼 ‘선거’에만 집중된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문문: 원래 보통 정치인들은 자기 소명을 ‘사회통합’이라고 여겼어요. 정치의 방식도 ‘갈등 조정’에 가까웠죠. 물론 실제로는 갈등을 부추기거나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최소한 명분상으로는 정치의 공간에서 타협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려고 했죠.
그런데, 오직 선거 승리가 정치의 목적이 되어가는 분위기에서는 오히려 ‘갈등의 일방’을 잘 취하는 정치인이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그렇죠. 이런 흐름에 있어서도, 이준석의 정치는 트렌드를 잘 쫓아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임예인: 다시 ‘세대포위론’ 얘기로 돌아가 보면… ‘세대 포위론’도 결국 여성에 대한 ‘혐오’를 부추겨 2030 남성을 규합하는 식으로 흘러갔죠.
문문: 그렇죠.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준석의 세대포위론은 공정에서 시작해 혐오로 귀결됐습니다. 남초 커뮤니티의 지지라는 ‘물리력’을 확실히 담보할 수 있는 쟁점을 전선으로 긋고, 지지층을 공고히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2030 여성에게 포위당한 ‘세대포위론’, 성공이었나, 실패였나?
임예인: 결국 이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공정’으로 시작했지만 ‘혐오’로 귀결됐고, 2030 남성층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지만 2030 여성의 압도적인 비토에 맞닥뜨린 ‘세대포위론’. 이준석의 ‘세대포위론’이 성공했다고 생각하시나요?
문문: 답하기 무척 어려운 질문이죠. 이 흐름이 ‘성공’이었느냐 아니냐는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 어느 시점에 두는가, 근본적으로 성공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임예인: 하지만 ‘성공으로도 실패로도 볼 수 있다’는 말은 너무 애매해서 말이죠… 그래도 결론을 낸다면,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세요?
문문: 일단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이겼으니, 이준석의 세대포위론은 성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애초 세대포위론 자체가 대선을 염두에 두고 나온 전략이었고, 그렇다면 성공이죠. 사실 국민의힘의 지지층을 확대했다는 측면에서도 성공적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20대에서 힘을 못 쓰던 정당이 절반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그렇죠.
임예인: 하지만 ‘혐오’에 기대는 ‘세대포위론’은 아무래도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거든요. 정치인 이준석이 ‘세대포위론’을 기반으로 계속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요?
문문: 이준석 개인을 기준으로 본다면 현재까지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은 성공적이겠죠. 30대 정치인이 ‘2030 남성을 대표하는’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실제 물리력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민주당의 30대 남성 정치인들이 같은 영역을 공략하고자 군침을 흘리기도 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또 도전은 계속되지 않을까요. 타이틀을 빼앗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든 생길 수 있으니까요.’
임예인: 실제로 국민의힘 내부에선 이미 이준석 대표를 흔들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던데요.
문문: 그렇습니다. 이준석을 싫어하는, 혹은 비판하는 사람들은 결국 이준석이 이용만 당하고 팽당할 위기에 처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볼 필요도 있어요. 이준석 입장에서는 지금 팽당하는 그림이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임예인: 엇, 팽당하는 게 낫다니, 그건 무슨 말씀이신가요?
문문: 글로벌 경기침체가 불 보듯 그려지고, 한국 자산시장도 흔들립니다. 이대로 가면 윤석열 정부는 고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젊은 층의 지지율이 추락할 가능성이 있겠죠. 이렇게 되면, 이준석을 팽한 것이 젊은 층 지지율 추락의 원인으로 대두할 수 있습니다. 이준석이 다시 당을 구할 영웅 취급을 받으며 중앙 무대로 복귀할 수도 있겠죠. 국민의힘 대선 전략으로써의 ‘세대포위론’은 역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세대포위론’을 들고 시작한 이준석의 ‘자기 정치’는 여전히 승승장구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임예인: 사실 ‘혐오를 동원하는’ 방식의 전술은, ‘전술적’으로만 따져도 위험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문문: 그렇죠. 정치에서 적극적 팬만큼이나 무서운 것은 적극적 안티입니다. 보통 40대 중반을 넘어서면 이념적으로 보수화된다고 합니다.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이죠. 갈수록 이 경향성이 강해진다고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의 4050세대는 좀 특별합니다. 이들이 5060세대가 되고 이념적으로 훨씬 보수화된다고 해도 지금의 한국 보수정당을 지지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습니다. 그들은 젊은 시절 군사독재를 경험했고, 그 기억이 흐릿해질 즈음 노무현 서거를 겪었습니다. 정서적으로 ‘적개심’ 수준의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임예인: 노무현 서거는 정말 엄청난 사건이었죠. 세계관이 뒤흔들릴 만한 사건이었고요.
문문: 그렇습니다. 뿌리 깊은 반감은 이념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특히 이 반감이 역사적 혹은 사회적 정의와 연결돼 있으면 그 힘은 훨씬 커집니다. 영남의 지역감정보다 호남의 지역감정이 압도적이며 생명력이 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 대선, 20대 여성층의 국민의힘에 대한 반발은 엄청났습니다. 만일 이게 지속되어 집단적 정서로 굳어진다면, 국민의힘의 미래는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이준석 역시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는 정치인으로 갇히게 되겠죠.
20대 여성의 막판 결집이 앞으로 정치권을 흔들 가능성은?
임예인: 이제 20대 여성의 막판 결집 쪽에 집중해서 말씀을 들어보고 싶은데요. 이 움직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이준석 대표의 ‘세대포위론’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이 움직임이 앞으로 정치권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문문: 일단 선거기간 20대 여성층의 여론 흐름을 살펴봅시다. 매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중 18~29세 여성층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겠습니다.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군이 거의 결정된 2021년 12월 시점에서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은 30% 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여성가족부 폐지’가 등장한 1월 초반 이후 30% 선이 무너졌고, 한 번도 30%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게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에요.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함에 따라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긴 했지만, 결국 40%를 넘지 못했습니다.
임예인: 사실 이재명 후보가 원래 여성들에게 썩 인기 있는 정치인은 아니었죠. 이재명 후보의 확장성에도 한계가 있었던 걸까요?
문문: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같은 기간 20대 여성층의 지지는 안철수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상당 부분 나눠 갖고 있었습니다.
1월 첫째 주까지 9~11%를 오가던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윤석열 후보의 한 줄 공약 ‘여성가족부 폐지’가 등장한 이후인 1월 2주 22.4%를 기록하며 뛰어오릅니다. 이후에는 조금 떨어져서 15~19%를 오갔고요.
한편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은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빠지면서 지속적으로 상승해 15% 전후를 유지했습니다. 여기에 부동층이 꾸준히 15% 수준에서 유지되었고요.
임예인: 20대 여성층의 표심은 뭔가 여기저기 복잡하게 나뉘어 있었네요. 정리해보자면 어떨까요?
문문: 흐름으로 보면, ‘여성가족부 폐지’ 등장 이후 윤석열 비토 – 혹은 이준석 반대가 견조하게 유지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비토 여론이 이재명으로 쏠리지 않고 이재명-안철수-심상정으로 흩어져 있었던 것이죠.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런 추세가 이어졌습니다.
임예인: 그랬는데, 출구조사 결과는 좀 달랐죠.
문문: 네, 출구조사 결과는 ‘이재명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나타났습니다. 출구조사에서 20대 이하 여성의 투표 결과는 이재명 58%, 윤석열 33.8%로 예측되었죠. 그간 이뤄진 여론조사가 전부 완전히 틀린 게 아니었다면, 결국 극적인 변화가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이후에 벌어졌다고 볼 수 있겠죠.
임예인: 극적인 변화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문문: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윤석열-안철수 간의 후보 단일화겠지요. 후보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후보에 대한 20대 여성층의 지지율이 30%대 초반에 멈췄다는 점에서, 적어도 이 세대 여성층에서 안철수 지지층이 윤석열 지지로 옮겨가진 않았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임예인: 결국 누가 됐든 ‘윤석열만 아니면’ 됐다는 얘기 같기도 한데… 그런 점에서 이재명 지지도 그리 공고하지는 않다는 느낌인데요.
문문: 말씀하신 것처럼, 안정적인 모멘텀이 형성되었다고 보긴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20대 남성층과는 다른 부분이죠. 20대 남성층은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꽤 오랜 기간 모멘텀을 형성해 왔고, 이준석이라는 뚜렷한 정치적 대안을 중심으로 결집하기도 했거든요. 이런 공고한 흐름이 20대 여성층에서는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20대 여성이 보여준 에너지는 어디로 갈 것인가
임예인: 그렇긴 해도, 이번 대선에서 보여준 파괴력은 놀랍기는 했거든요.
문문: 전반적인 흐름에서 알 수 있듯 20대 여성층은 특정한 정당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20대의 특성이라고 볼 수도 있죠. 20대 여성층은 오히려 ‘제3지대’에 대한 기대가 어느 세대보다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재명에 표심이 쏠리긴 했습니다만, 이는 ‘위기감’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윤석열은 ‘여성가족부 폐지’로 대표되는, 성평등 정책에 대한 백래시 수준의 정책 반동을 시도했습니다. TV 토론에서까지 이런 인식이 드러나면서 ‘윤석열이 되면 위험하다’는 정서가 급속도로 확산된 게 아닐까 합니다.
임예인: 이 힘이 대선이 끝나고 가라앉을지, 오히려 더 커질지도 궁금하네요.
문문: 대선에서 20대 여성층의 에너지가 폭발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 혹은 정치세력이 형성될 것인지에 따라 이 에너지가 지속될 수도, 아닐 수도 있겠죠.
사실 20대 여성층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발견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강남역 사건’ 이후 지속적으로 발견되어왔고, 그 에너지를 결집하려는 시도 또한 계속되었죠. 다만 그들을 설득할 만한 정치인, 혹 정치세력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임예인: 20대 여성을 대변하는 정치인이라… 나올 수 있을까요?
문문: 쉽지는 않아 보이죠? 다만, 여기에서 오히려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해 왔던 혐오정치가 역풍을 맞았다는 측면이죠. 20대 여성층의 이재명 지지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였다기보다, 윤석열의 공격적 정치에 대한 반작용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중요해 보입니다. 혐오 동원 정치가 사회적으로 거부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최근 이준석의 ‘장애인 혐오 정치’가 역풍을 맞은 흐름에서도 확인되죠.
임예인: 그것도 놀라운 부분이었어요. 전장연 시위는 거듭되는 출퇴근길 지하철 지연으로 비난을 듣던 상황이었잖아요. 이준석이 또 영리하게 전장을 잡았구나 싶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이준석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하더라고요.
문문: 맞습니다. 이 부분은 확실히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윤석열 정권 동안 진보진영이 선택해야 할 정치적 방향은 ‘이 방향이 옳다’고 설정하고 안티를 생성하더라도 지지자를 강하게 결속하는 방식이 아니라, ‘혐오 동원’에 맞서는 폭넓은 연대, 낮은 수준이지만 혐오에 반대하는 여론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젠더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
임예인: 20대 여성 / 남성의 후보 지지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데서 볼 수 있듯, 젠더 갈등은 점점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시비를 떠나, 이처럼 극단적인 갈등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문문: 일단, 질문 중 ‘시비를 떠나’라는 대목이 걸립니다. 극단적인 갈등의 원인 중 하나가 왜곡된 정보에 대한 ‘시비를 정확하게 가리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갈등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사실관계가 엄밀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성평등’을 주장하기에 앞서 관련 정보를 바로잡는데 꽤 많은 노력과 시간이 쓰이고 있죠. 너무 공자님 말씀인가요?
임예인: 네, 사실은… 맞는 말씀이긴 하지만, 좀 이상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문문: 그래도, 이 부분을 짚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적어도 ‘시비를 떠나’라는 태도는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사실’을 둘러싼 논쟁을 젠더갈등이라고 포장(?)하지도 말아야 하고요.
임예인: 하지만 참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해요. ‘팩트’라는 개념 자체가 오용되고 있는 요즘 세태에서는 더욱 말이죠.
문문: 어려운 이야기인 건 분명합니다만, 할 일은 해야죠. 여기에 더해, 혐오를 배제하려는 노력이 더욱 적극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니, 페미니즘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이유로 진영 내부의 혐오 표현, 다른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오히려 공론장이 왜곡되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꽤 긴 시간 동안, 젠더갈등은 혐오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표출되었습니다. 젠더갈등 이전에 혐오를 배제해야 대화와 토론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혐오 자체에 대한 비토가 갈등 해결의 시작이 아닐까요.
임예인: 그렇죠. 페미니즘 진영에서 오히려 트랜스젠더에 대한 배제가 적극적으로 터져 나왔던 것은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기도 했어요.
문문: 그런 측면으로 본다면, 앞에서 길게 살펴본 ‘이준석 정치’에 대한 비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갈등과 혐오에 기반한 정치가 지속적으로 힘을 갖는다면, 갈등과 혐오를 키우고 싶은 정치인들도 계속 등장하지 않을까요.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갈등을 정치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쓴다면 갈등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당면해서는 ‘이준석 정치’를 공론장으로 끌어내야 하고, 사회적 토론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을 잘 할 수 있는 정치인이 있다면 정치적으로 성공할 가능성도 있겠죠.
임예인: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만 봐도 혐오를 부추기는 콘텐츠들이 전성시대를 맞고 있잖아요.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요?
문문: 그래서 전장연 시위를 둘러싸고 이준석의 혐오 동원 시도가 역포위된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보여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20대에서 두드러지는 젠더 갈등은 사실 경제적 기회에 대한 박탈감과 위기감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위기의 세대인 거죠. 그럼에도 이 세대는 사회적 토론에 참여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의 위기에 관련된 토론조차도 말이죠.
일자리 창출이든 자산 형성이든, 이 세대에 적극적으로 마이크를 쥐여줘야 한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성별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난다고 해도 말입니다. 오히려 그 갈등이 폐쇄적 커뮤니티에서 혐오표현과 함께 정서적으로 커지는 상황을 그대로 둔다면 갈등 해결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이준석식 ‘혐오 정치’를 넘기 위해서
임예인: 사실 ‘혐오’가 대두하는 건 한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소수자 혐오’에 자꾸 힘이 실리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요.
문문: 이런 현상이 나타난 지는 꽤 오래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2008년 위기 이후 사회적 불안 속에서 보수파가 선택한 정치적 활로로 보기도 하고, 경제적 위기에 놓인 대중의 심리적 경향이라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30년 넘게 세계의 지배적 이념이었던 신자유주의가 저물고 있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 맞는 말이겠죠.
임예인: 그러면서 중간 어디쯤의 타협점을 찾으려는 정치세력보다는, 극단적인 목소리나 인기 영합적인 목소리가 대두하는 경향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문문: 어떤 나라에서는 기존 중도좌파 세력보다 더 왼쪽의 정당들이 선거에서 승리하기도 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극우 성향의 정치세력이 약진하기도 합니다. 쟁점별로 의견을 달리하는, 일종의 ‘혼종’ 정치세력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임예인: 그 과정에서 포퓰리즘이 득세하기도 했죠?
문문: 그렇습니다. 우파는 물론이고, 좌파 진영에서도 ‘포퓰리즘’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라는 책이 세계를 강타하기도 했으니까요.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이렇다 할 대세적 이념이나 정치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이념적 모색기’ 일수도 있겠습니다.
임예인: 포퓰리즘이 여성, 장애인, 난민,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을 향해 분노의 방향을 돌리는 방향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게 계속 신경이 쓰입니다.
문문: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은데요. 특히 소수자 혐오 동원 정치가 한국에도 상륙했다는 점이 주목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역시 경제적 불안이 꽤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습니다. 혐오동원 정치가 발호할 물적 토대라는 것이죠. 세계 각국에서 성공했는데 한국에서도 성공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결국, 정치인들이 ‘정치적 성공’ 가능성이 높은 ‘베팅’을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에 맞설 ‘폭넓은 연대’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대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임예인: 말씀 감사합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 주신다면?
문문: 지금 중요한 지점은 적어도 민주당에서라도 혐오 동원 정치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민주당판 이준석의 출현을 막아야 한국 정치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비슷한 시도가 지난 대선에서 있었죠. ‘그런 정치는 국힘이나 하는 것’이라는 정서적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 지금 필요한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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