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지표에 목숨 걸면 안 된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어느 스타트업이든 각자의 KPI와 달성 목표가 있다. 그리고 그 KPI에 따른 달성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연도별, 분기별, 월별, 주별 목표를 세운다. 이렇게 목표를 잘게 쪼개는 일은 너무 당연하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다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목표를 지나치게 쪼개면 문제가 생긴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일간 지표에 목매는 것이다. 일간 지표를 지나치게 신경 쓰면 의미 없는 숫자에 매달리게 된다. 또한 단기적으로 일간 지표를 달성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극약처방은 장기적으로 더 상황을 악화시킨다
예를 들어 한 커머스 스타트업의 9월 매출 목표가 3억이라고 하자. 이 경우 30일 동안 매일 1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해야 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렇게 ‘일간 100만 원 매출 달성’이라는 세부 목표가 생긴다.
이때 일간 100만 원의 매출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조직 내에 불안이 생긴다. 이러다가 월 매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을 세워야 하는지 등의 대화가 오간다.
자연히 당장의 불안을 없애고, 일간 목표 달성을 위해서 극약 처방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장의 일간 매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정 할인 쿠폰을 고객들에게 발송해서 억지로 매출을 끌어올리는 식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프로모션은 고객들이 납득할 만한 명분, 적절한 타이밍, 명확히 세분화된 고객군의 조합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불안에 휩싸이면, 당장의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가격만을 강조한 프로모션을 하게 된다.
그래도 피치 못할 극약처방을 내려야 한다면, 이런 프로모션 한 번쯤은 괜찮다. 어쨌든 프로모션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니까. 하지만 며칠 후 또다시 일간 매출을 달성하지 못할 상황이 나오면, 그때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할인 프로모션을 쓸 것인가?
할인 프로모션은 극약처방에 해당한다. 반복될수록 고객 입장에서는 ‘아, 여기는 할인을 자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진짜로 사고 싶은 게 생겨도 ‘정가에 사면 바보고, 할인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렸다 사야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다음과 같은 악순환이 시작되는것이다.
매출이 줄어드는 날이 많아진다 → 매출이 줄어드는 날마다 할인을 한다 → 고객들은 할인을 자주 하는 것을 깨닫고 할인 때만 구매한다 → 할인을 하는 날은 매출이 증가한다 → 할인을 하지 않는 날은 매출이 떨어진다
할인 프로모션이라는 극약처방으로 당장 눈앞의 목표는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치 환자에게 계속해서 더 강한 약을 투약해서 억지로, 진통을 줄이는 것과 같다.
잘못된 가설을 세우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일간 지표에 목매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일간 지표가 100만 원인 상태에서, 하루는 일간 매출을 90만 원을 찍고 하루는 110만 원을 찍었다고 해보자. 왜 하루는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하루는 목표치를 넘겼을까? 이 현상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어떻게든 분석하려는 순간, 잘못된 의사결정을 통해 잘못된 결론을 도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매출 90만 원을 기록한 날, 매출 110만 원을 기록한 날 모두 목표 매출과는 10%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50%, 100%, 200%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10% 매출이 줄고 늘고 하는 일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고,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사소한 차이의 원인은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매출이 줄어든 날, 늘어난 날 특별하게 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면 외부적 요소에 의해 의해 저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즉, 그날의 운 때문에 매출에 변동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KPI와 지표, 데이터 분석에 집착할수록 어떤 상관관계라도 찾아내려고 한다. 그저 운에 지나지 않을 뿐인 작은 요소조차 데이터 분석이니, 퍼포먼스 마케팅이니, 그로스 해킹이니 등등을 끄집어내어 상관관계를 찾아내려 하는 것이다. 이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하나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혹여나 상관관계를 찾는다 치자. 그게 올바른 상관관계일지 알 수 있을까? 테스트하기도 어려울 텐데? 잘못된 상관관계를 답으로 찾아내어 이를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 액션 플랜을 수립한다면,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일간 지표의 구체적 수치보다 경향성이 중요하다
일간 지표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일간 지표와 같은 세부적인 지표를 의미 있게 활용하고 싶다면, 한발 떨어져서 경향성, 추세 등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제 매출과 오늘 매출을 비교할 것이 아니다. 일간으로 비교를 하려면 최소한 전 달 주말과 이번 달 주말을 비교해야 한다. 즉 전 달, 전 분기 대비 성장률, 추세 등을 봐야 한다.
지표가 어제보다 1% 상승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전 달 대비 10% 상승하는 게 중요하고, 년 대비 100% 상승하는 게 중요하다. 다른 말로 하면 내일 KPI 1% 올리는 것보다, 내년 KPI 100% 올라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단기적 관점과 KPI에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KPI를 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스타트업이 급격한 성장을 이루는 구간인 ‘J커브’라는 구간이 있다. J커브의 환상에만 빠져 있으면 안 된다. 애초에 만들기도 쉽지 않고, 만든다 하더라도 장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다. 단기간에 J 커브를 만들어낸 스타트업들은 말 그대로 신화에 가깝다.
오히려 스타트업은 계단식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더 많다. 다음 계단에 미치기 전까지 섣부르게 악수를 두면 안 된다. 성장을 위한 실험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오랜 기간 현상 유지를 하더라도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조급함이 드는 순간, 극약 처방을 내릴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진다.
성장을 위한 실험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한 계단, 한 계단 넘을 때마다 계단을 넘은 원인, 즉 성장의 원인을 찾아내서 공식화하고 수치화해야 한다. 그래야 또 그다음 계단을 넘을 수 있다. 스타트업은 이렇게 건강하게 성장해야 한다. 일간 지표에 목매면서 극약 처방으로 눈에 보이는 지표만 찍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참고로 배달의민족, 야놀자, 당근마켓 등 DAU가 큰 곳들은 일간 안에서도 점심, 저녁 등 시간대별로 쪼개서 봐야 하는 수준은 맞다. 그러나 이 역시도 시간대별 추세와 경향성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낮 시간이 활성 사용자가 적다거나 하루 목표치의 활성 사용자가 적은 등의 문제로 특별한 수를 쓰기 위해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문: ASH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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