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ABC의 질문: 차별 앞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What would you do(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미국 ABC 방송의 프로그램인데, 한국에서도 나름 인기를 끌어 개인이 한국어 자막을 붙인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프로그램 포맷은 이렇다. 페디큐어점에서 일하는 동아시아계 직원에게 인종차별적인 말을 내뱉는 백인 여성, 마트에서 일하는 아랍계 점원에게 종교차별적인 말을 내뱉는 백인 남성, 식당에 식사를 하러 온 게이 커플에게 성차별적인 말을 내뱉는 이성애자… 실제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소수자가 폭력에 시달리는 상황을 설정하고 전문 연기자들에게 연기를 시킨 뒤,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몰래카메라에 담는 것이다.
긴 설명보다, 일단 한 편을 감상해 보자. 가족과 식당에 방문한 레즈비언 커플이 점원에게 모욕적인 대우를 받는 장면이다.
어떤 사람은 슬금슬금 피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애써 무시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분노한다. 성차별적인 언사에 눈물을 보이는 레즈비언 커플에게 한 남자는 애정과 위로를 담은 쪽지를 건넨다.
또 다른 편에서, 종교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는 백인 남성에게 한 군인은 자신이 싸우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종교의 자유라며 매장에서 나갈 것을 요구했다. 또 어떤 편에서, 미용을 받던 여성은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대해 직접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들의 용기는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한국 채널A의 질문: 경제대국 한국! 당신은 젠틀맨입니까?
한편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한국에서도 만들어졌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12회에 걸쳐 방영된 채널A의 ‘젠틀맨’이다. 성추행, 아동학대 등의 상황을 설정하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몰래카메라에 담는 프로그램. 포맷이 거의 유사하다.
그러나 사소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아래의 동영상은 ‘젠틀맨’의 11회 방영분이다. 아이가 터미널에서 계모에게 학대당하는 모습을 보여준 뒤,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담고 있다.
이 방영분은 방송사 웹사이트에서 소개하는 기획 의도를 볼 때 2013년 일어난 ‘울산 계모 살인 사건’을 동기로 만들어진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가해자를 계모로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지만 2014년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아동학대 가해자의 76.2%는 친부모로, 3.7%를 차지한 계부모보다 그 비율이 훨씬 높았다. 물론 계부모의 수 자체가 친부모보다 적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겠으나, 최근 재혼이 초혼의 1/5 수준까지 그 수가 많아졌음을 함께 고려한다면 그 차이가 절대적이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는 계부 가정이나 계모 가정은 물론,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조부모가정 등에 대한 편견이 더 큰 차별을 낳는 경우도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친부모가정만을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것이라 여기고, 그 외의 가정을 비정상적으로 여기는 까닭이다. 젠틀맨의 가해자=계모 설정이 사려깊지 못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자성을 논했던 ‘What would you do’, 편견에 편승했던 ‘젠틀맨’
“What would you do”와 “젠틀맨”의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차이가 이것이다. “What would you do” 역시 늘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첨예한 갈등을 낳는 소재를 다루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대표적인 것이 위에서 다룬 동성 결혼 같은 것이다.
반면 “젠틀맨”은 장애인에 대한 폭력, 계모의 아동폭력, 청소년 탈선 등 만인의 공분을 사기 쉬운 소재들을 주로 다루었다. 그만큼 선정적으로 빠지기 쉽다. “What would you do”가 종종 “혹시 당신도 어떤 이슈에서는 타인을 차별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고민까지 던지는데 비해, “젠틀맨”은 “저 쳐죽일 놈의 새끼들” 하는 분노를 자극하는데 그친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에서는 스스로가 은연중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기까지 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쇼가 현실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은막 뒤의 쇼일 뿐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차별받는 그 ‘누군가’에게도 이게 그저 은막 뒤의 쇼일 뿐일까.
위에 소개했던 “What would you do”의 에피소드로 돌아가보자. 식당에서 점원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은 레즈비언 부부를 위해, 한 남자는 매니저에게 항의하려 하다가 대신 조용히 부부에게 쪽지를 건넨다. 당신의 가족은 정말 아름답다는, 위로와 애정을 담은 쪽지였다.
이 에피소드에서 레즈비언 부부 역을 맡은 배우는 실제로도 레즈비언이었는데, 이 남자에게 받은 쪽지를 보고 진심으로 감동했다는 후일담을 전했다. 누군가에게는 쇼일 뿐이지만, 그 쇼가 누군가에게는 현실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똑같은 모욕을 겪었을지도 모르고, 어떤 배려 없는 프로그램이 똑같은 모욕감을 그들에게 안길 수도 있다.
쇼와 현실의 경계는 이처럼 희미한 것이다. 특히나 이토록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프로그램이라면.
ABC는 프로그램에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제목을 붙였다. 어쩌면 이 제목은, 당신 또한 차별 앞에서 용기있는 시민이 될 수도 있지만, 차별하는 악인이 될 수도 있음을 드러내고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젠틀맨”에는 어떤 고민이 있었을까. 그저 “젠틀맨”을 뽑고 나면 그만일 뿐, 그 스스로가 “언젠틀맨”일지도 모른다는 고민이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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