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블록체인이든 뭐든, 당연히 많은 실험은 실패하더라도 기술 진보를 낳는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이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블록체인(코인) 실험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힘들다. 실험하는 이들은 실패하더라도 돈을 벌 수 있는데, 피해는 오롯이 개인투자자들에게 가기 때문이다.
회사를 예로 들자. 일반적인 사업자는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모은 자본을 투자한다. 실패할 경우 피해는 오롯이 자신이 진다.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의 경우, 창업자가 일부 자기 자본을 대고 외부 기관투자자가 큰돈을 투자한다. 실패할 경우 경영진은 자기자본을 날리고, 기관은 큰돈을 잃게 된다.
그런데 코인은 좀 다르다. 프로젝트가 어떤 결과를 낳든, 이미 암호화폐를 주조한 이들은 돈을 벌 길이 생긴다. 그러면서 성공을 향한 모티베이션은 약해진다. 반면 암호화폐를 구입한 이들은 기관처럼 전문성이 없는 개인이다. 프로젝트가 실패할 경우 돈을 날리는 건 이들이다.
주식도 DART에 공시되는 보고서 내용이 결코 쉽지 않다. 하물며 코인 백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는 경우는 드물다. 더군다나 그 백서의 내용을 온전히 신뢰하기도 힘들다. (당장 그 테라도 초기에 개인투자자들을 속였다. 상장사였다면 심각한 문제였을 테지만 테라는 아무런 제재 없이 넘어갔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는,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각종 책임과 의무를 부여받는다. 코인은 이런 방어장치도 약하다.
물론 web3가 화두로 떠오르며, 이전처럼 화폐를 주조한 이들이 너무 많은 토큰을 먹는 경우는 줄어들었다. ICO로 한탕하고 상장하기보다는, 생태계를 생성하고 참여자들에게 어느 정도 보상이 돌아가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는 발행자들이 이익을 선취하고 시작한다는 점, (물론 트레이드 잘하며 벌 수도 있다만) 위험은 개인 참여자들(투자자들)에게 간다는 구조에 변함은 없다.
2.
나심 탈레브는 〈스킨 인 더 게임〉에서 ‘의사결정에 영향을 직접 받는 이가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코인은 애초에 발행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조다. 실패해도 발행자는 돈을 벌 수 있고, 실패의 책임은 개개인 투자자가 떠안기 쉽다. 그래서 나는 블록체인 업계 일부 사람들이, 왜 그리 규제를 문제 삼는지 잘 모르겠다.
- 발행한 이들이 프로젝트 실패 시 온전히 그 책임을 진다
- 투명성이 낮고 위험성 높은 프로젝트에 사람들이 쉽게 투자할 수 없게 한다
이것이 사회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인가? 오히려 상식에 가깝지 않나? 존경하는 어르신께서 ‘화폐란 지적인 누군가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했는데 그 와중에 안정성을 높이도록 여러 가지 제도들이 만들어진 것’이라 이야기한 바 있다. 이미 인류는 지겹도록 온갖 실험을 겪었고, 지금의 시스템은 사회구성원을 보호하기 위한 그 결과물이다. (물론 꼼수는 계속되겠고, 많은 스캠 코인도 그중 일부다)
물론 혁신은 때로 규제와 부딪힌다. 열심히 web3 프로젝트를 만드는 이들에게는 먹튀하는 이들 때문에 자신들이 같이 묶이는 게 기분 나쁠 수 있다. 내 주변에도 정말 열심히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이끄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그분들의 진심과 별개로, 먹튀와 실패를 분간하기 힘들다.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있기에 튀려면 튈 수 있다.
그리고 대개 코인들이 가지는 구조가, 좋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분대로 가는 건 그냥 자본주의인데, 견제와 보호장치가 없다시피 한 고삐 풀린 자본주의로 흐르기 쉬운 구조다. 결국 코인을 많이 쥔 발행자들, 재단 마음대로 하기 너무 좋다. 자본주의는 여러 법의 지배를 받지만, 역으로 코인 쪽에서는 그 룰조차도 무시할 수 있다.
물론 정부도 문제가 있다. 코인 영역을 일정 부분 제도권으로 끌고 와, 좀 더 면밀히 법의 테두리 하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애초에 해외에 재단과 법인을 두는 경우가 많아 뭘 하기도 힘들다. 거대한 정부가 따라가기에는 그 변화가 너무 빠르기도 하고. 그나마 벌집 거래소 몰아낸 것만도 큰일 했다고 본다.
3.
지금껏 벤처, 스타트업이라 불리는 이들은,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타협하며 문제를 해결해갔다. 그런데 왜 블록체인을 옹호하는 일부 이들은, 왜 자신들은 별다른 리스크를 지지 않은 채 약자들을 위한 사회보호망을 걷어내라는지 모르겠다. 하물며 다수 개인의 삶에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금융의 영역에서 말이다.
이러다 보면 나오는 이야기가 돌고 돌아 사회실험인데, 이들 실험이 의미가 없다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실험이 필요하다고 하는 이가, 실험의 수혜자인 동시에 가해자일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작 실험의 피해자는 본인들이 아닌데. 주식이나 부동산과 달리, 가난한 계층일수록 암호화폐 투자에 나서는 비율이 높기까지 하다. 반대로 판을 짜는 이들은 높은 교육을 받은 이들이고.
사실 우리 사회는 모두 규제로 가득 차 있다. 듣기 싫은 단어 같지만, 법의 보호망 속에 있다는 이야기다. 주식도 규제받고 채권도 규제받는다. 그래서 투자자는 어느 정도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다. 파생상품이 합법적인 도박 소리 듣지만, 명확한 법률의 테두리 안에 있다.
그런데 왜 발행자의 책임은 약하고, 피해자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규제하면 안 될까?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하다.
원문: 이승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