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리: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석준웅: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바이석비석 대표 석준웅입니다.
리: 검색해보니 굉장히 유명하신 분이던데,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석준웅: 그렇지 않습니다. 인스타를 통해 공간과 브랜드는 유명해지지만, 디자이너가 드러나는 일은 많지 않아요. 디자인 자체를 유심히 보시는 분들은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분이거나, 잠재적인 클라이언트인 경우가 많죠.
리: 아무래도 소장님께서 유명해진 계기는 2020년의 ‘폴트버거’죠?
석준웅: 대중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인기가 많았죠. 연예인도 많이 왔고요. 개인적으로는 너무 강렬해서, 공간 이미지와 쓰임의 수명이 길 수 있을까 걱정이 좀 있었던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브랜드와 공간의 인지도는 여전히 높은데, 저희가 참여했던 도산공원 인근 폴트버거 지점은 문을 닫아 아쉬운 면도 있고요. 하지만 제게는 큰 도움이 됐죠. 기존에 석준웅 하면, 업계에서 정적인 디자인으로 알려져 있었거든요. 폴트 버거 이후에는 다른 느낌의 디자인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죠.
리: 아, 원래는 정적인 작업을 많이 하셨던 건가요?
석준웅: 네. 제가 업계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조선옥 더 옥’ 작업을 하면서부터였거든요. 조선옥 더 옥은 처음으로 해외 매체에 실렸고, 이후에 작업한 ‘애이치 한의원’도 세계적인 해외 매체에 등장하며 이슈가 됐죠. 아무래도 정적이고 동양적인 디자인은, 서양 쪽에서 더 낯설고 새로우니까요.
리: 오, 정갈하네요…
석준웅: 네. 덕분에 인지도를 쌓을 수 있게 됐죠.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는 데 큰 역할을 한 건 폴트버거라고 생각하고요.
Part 2
리: 왜 사람들은 소장님께 의뢰를 맡긴다고 생각하세요?
석준웅: 보통 디자이너들은 본인만의 색깔이 있어요. 어떤 디자이너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고, 어떤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를 표현하는 데 포커스를 맞추기도 해요. 저희는 후자에 가까워요. 클라이언트와 케미를 만드는 걸 최우선으로 하는데, 그걸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의 아이덴티티에 맞춰 연출해주는 거죠.
리: 신기하네요. 보통 예술가라 하면 자기 색깔을 많이 담으려 하지 않나요?
석준웅: 상업 공간이니까요. 저희는 디자인 후 떠나지만, 클라이언트는 여기를 계속 자신의 업장으로 활용하셔야 해요. 그래서 브랜드의 색깔을 더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죠.
리: 주로 작업기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석준웅: 다른 곳보다 오랫동안 손을 보는 편입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대중에게 공개되는 기간까지 최소 3개월 이상은 걸려요. 한의원을 맡으면 한의학 공부까지 하면서 차근차근 진행하는 식이죠. 예쁘게만 만든다는 생각으로 접근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클라이언트를 위한 디자인이란 결과로 이어져야 합니다. 매출로 이어지게 하거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거나 해야 하죠.
리: 그걸 클라이언트에게 설득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겠는데요? 보통은 알아서 잘해달라 생각하니까…
석준웅: 네. 그래서 시작할 때 말씀드려요. 미팅 많이 하고 얘기 많이 해주셔야 한다고, 한 번에 뚝딱 끝낼 수 없다고… 클라이언트분들도 고생해야지 원하시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고요.
리: 그러면 이번 대원과의 칸타빌 모델하우스 작업도 마찬가지였나요?
석준웅: 그렇지요. 그래도 대원과의 작업은 훨씬 수월한 편입니다. 대형 건축사이기에 건축 분야에 관한 이해도는 두말할 여지가 없지요. 처음부터 열린 마음으로 연락을 주셨고요. 오히려 힘든 건, 모델하우스라는 공간이 워낙 제한적이기에, 이를 어떻게 연출할지 머리를 짜내야 했다는 점이죠.
Part 3
리: 어쩌다 대원과 칸타빌 모델하우스 작업을 하게 된 건가요?
석준웅: 작년 말에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저도 당황스러웠죠. 지금까지 견본주택, 그것도 아파트 모델하우스 작업을 한 적은 없으니까… 그런데 미팅 때 굉장히 진심이 느껴지더라고요. 기존처럼 뻔하게 하고 싶지 않다, 자유로운 디자인을 선보여달라… 저도 그런 마인드가 너무 좋아서 수락했고요.
리: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모델하우스를 연출한다… 감이 잘 안 오는데요.
석준웅: 그쵸. 저도 막상 작업을 하려니 되게 낯설더라고요. 그동안 해온 상업 공간과는 너무나 다르니까요. 상업 공간은 잠시 머물렀다 나가는 곳이에요. 그런데 아파트는 먹고 자고, 하루의 절반을 머무르는 공간이잖아요. 거기에 살게 될 사람들의 삶을 견본주택에서 재현해야 해요. 쉽지 않았죠.
리: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셨나요?
석준웅: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어떤 공간인지를 많이 고민했죠. 맞벌이나 외벌이로 일하고 와서, 주말을 보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휴식을 하는 상황을 많이 생각했어요. 그런데 보니까 다른 아파트들은 브랜드의 색이 너무 강했어요. 기능적으로는 다들 훌륭하지만, 벽지나 포인트 등이 모두 자신의 취향과는 상관없는 것들로 통일되어 있었죠.
리: 그렇다면 심플함 외에 담고자 한 아이덴티티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석준웅: 오산은 서울에 출퇴근이 가능한 마지노선입니다. 그래서 30대의 신혼부부가 많이 들어올 거라 하더라고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젊은 분들의 페르소나를 상상해 보고, 거기에 따뜻한 이미지를 더하려 노력했어요. 기본적인 공간에 스타일링만 더해도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려 했죠.
Part 4
리: 아파트라는 공간은 다들 비슷하잖아요? 차별점을 주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석준웅: 오산 칸타빌은 다른 아파트와 다르게, 작은 방을 활용해서 거실을 확장할 수 있어요. 작은 방과 거실을 가르는 벽을 제거해서 공간을 확장할 수 있고, 분리하면 공간을 나눠서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죠. 하지만 모델하우스에서는 확장하거나, 확장하지 않은 상태 두 가지 중 하나만 골라서 보여줘야 했어요. 이것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게 가장 큰 숙제였어요.
리: 에… 서로 다른 두 가지 모습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표현하죠?
석준웅: 모델하우스의 베이스 자체는 확장한 상태로 만든 다음, 벽의 아래쪽 등 일부 프레임만 만들어서 확장된 거실로도 볼 수 있고, 분리된 방으로도 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결국에는 안 됐어요. 왜냐하면 모델하우스도 행정적인 가이드가 치밀한 편이더라고요. 고객은 모델하우스에 디스플레이된 모든 상황을 자신의 집에서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더라고요.
리: 반만 확장한 디자인이 예쁜데 킬됐다니, 아쉽네요.
석준웅: 네. 하지만 확장한 상태에서 블라인드를 활용하는 식으로 프라이버시를 지켰다가, 또 넓은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계속해서 새로운 안을 구상하고 있어요. 제 역할은 분양받으신 분들께 칸타빌에서 구현 가능한 삶을 연출해서 보여드리는 것이니까요.
리: 그래도 전반적으로 무척 젊은 감각이 느껴지네요.
석준웅: 맞아요. 실제로 오산에 거주하는 분들의 30%는 20~30대라는 조사도 있어요. 그래서 젊고 세련된 신혼부부의 이미지를 칸타빌 오산세교의 페르소나로 구상하고 작업했어요. 이들은 모노톤의 인테리어 위에서 자신의 감각을 더하고 싶어 하는 세대들이죠. 그래서 가상의 부부에게 가장 잘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집어넣었던 것 같아요.
Part 5
리: 어쩌다가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
석준웅: 대학교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싶어 디자인 누라는 곳에 입사했고요. 거기에서 현장 시공 일을 맡으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인테리어도 도면 안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이뤄집니다. 시공은 현장에서 필요한 것을 파악하고, 여태까지의 공정과 뒤의 공정이 잘 연결되도록 만드는 일이에요. 건축 현장 소장과 비슷하죠. 머릿속에서만 있는 디자인이 아니라, 현실로 구현 가능한 디자인을 하려면 시공을 거쳐야만 했죠.
리: 이후 커리어는 어떻게 되나요?
석준웅: 중간에 규모가 큰 곳으로 옮겨서, 좀 더 큰 프로젝트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배웠습니다. 그러다 7년 차에 제 스튜디오를 차렸어요. 겁도 났지만, 30대 때에는 실수해도 클라이언트들이 유하게 봐주시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데 마흔에 독립해서 세상 물정 모르고 실수하는 건 너무 창피할 것 같았어요. 이건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몇 년간 세금계산서 같은 것도 실수하곤 했는데, 나이 먹고 그랬을 생각을 하면 아찔하네요.
리: 독립하자마자 고객들이 좀 생겼나요?
석준웅: 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심지어 조선옥 더 옥으로 해외 매체에 소개되고 로얄라운지로 K-디자인어워드를 수상했던 그때까지도, 일이 없어서 한두 달 쉬는 경우도 있었어요. 지금이야 조금 자리를 잡아서 함께 일하는 분들도 한 분씩 늘리고 있지만,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독립한다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리: 그러면 학생들이나 갓 사회에 나온 분들께, 인테리어 디자인은 추천할 수 있을까요?
석준웅: 글쎄요, 비단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를 떠나, 독립하고 자립한다는 것에 대해서 저는 항상 꾸준함을 강조합니다. 매체에 나오거나 주목을 받으면 순식간에 일이 잘 풀릴 것 같지만, 아니거든요. 천천히 인지도를 쌓으며 꾸준히 해 나가야 합니다. 소위 이 업종에서 잘 나간다는 디자이너분들 모두가 입을 모아 동의하는 부분이에요.
리: 그런데 그 꾸준히 하려면 재능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석준웅: 물론입니다. 재능은 반드시 있어야 해요. 없으면 안 돼요. 재능이 있다고 잘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미적인 것과 실용적인 것을 연결하는 감각은 필수입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제 설계에 만족한 적이 없어요. 그만큼 주변에 훌륭한 디자이너가 너무 많습니다. 항상 그분들을 따라잡고 싶다는 마음으로 디자인을 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나중에 대단한 디자이너로 남기보다, 그저 이 일을 오래 했으면 좋겠어요.
Part 6
리: 대원과 같이 일하는 건 어떠셨나요?
석준웅: 처음에는 대형 건설사라서 딱딱하고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그런 분들이었으면 제게 연락을 주지 않으셨겠죠. 제가 추구하는 디자인 방향을 많이 배려해주셨고, 덕택에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젊은 분들과 같이 일할 수 있던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고요.
리: 반대로 힘들었던 건 없나요?
석준웅: 클라이언트의 문제가 아니라, 아파트와 분양 시장의 복잡함이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부동산 규정이 복잡해요. 그게 모델하우스 디스플레이에도 적용되어서, 여러 제약이나 규정이 많더라고요. 칸타빌이 생각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과감하게 연출해서 소비자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그게 안 되는 점이 좀 답답했어요.
리: 대원이 소장님 말고도 여러 디자인 전문가들과 협업했잖아요? 어떠셨나요?
석준웅: 너무 좋았습니다. 이분들과 함께 칸타빌에 참여하는 게 하나의 자부심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특히 브랜딩을 담당하신 마음스튜디오는 제가 예전부터 좋아하던 디자이너분들이어서, 그분들과 함께 일한다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모델하우스 스타일링을 넘어서, 더 좋은 방향을 제안드리려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리: 모델하우스 연출 말고, 추가로 아파트 관련 디자인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으세요?
석준웅: 당연히 욕심이 있죠. 모델하우스는 단 한 세대, 단 한 유닛만을 디자인하잖아요? 이 과정에서 새로운 욕심이 생겼죠. 기회가 생긴다면 아예 내부의 기본 유닛을 바꾸거나 개선하는 데에도 참여하고 싶어요. 칸타빌이 자이나 래미안과는 또 다른 아이덴티티를 가진 그런 브랜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리: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석준웅: 제 평범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원 칸타빌의 리브랜딩이라는 중요한 프로젝트에 힘을 보탤 수 있어서, 저희 스튜디오 입장에서도 무척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좋은 결과물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