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김: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현미: 안녕하세요, 우현미입니다. 공간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알레’와, 식당이며 카페, 농장이며 정원, 라이프스타일 숍이기도 한 ’마이알레’의 소장으로 있습니다.
김: 사무실을 찾아왔는데, 웬 농장과 정원이 있어서 조금 놀랐어요. 이곳이 ‘마이알레’ 인가요?
우현미: 네, 맞아요. 원래 여기는 디자인알레의 사옥으로 만들 예정이었어요. 디자인알레는 원래 신사동에 있었는데, 익스테리어(주: 건물의 외관, 조경 등 외부를 의미, 인테리어의 반대말) 디자인을 주로 하다 보니 넓은 공간이 필요해졌죠. 그래서 과천 교외 넓은 땅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이알레가 탄생했어요.
김: 농장과 식당, 숍과 사무실이 모두 한곳에 있다는 게 특이해요.
우현미: 디자인알레가 원래 조경 디자인을 많이 하거든요. 다양한 식물이 필요하니까, 자연스럽게 농장이 만들어졌어요. 알레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에 편집 매장이 생겼고요. 멀리 오신 분들께 뭐라도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에 식당과 카페가 생겼어요. 여기에선 마이알레 농장에서 직접 가꾼 채소가 그대로 올라가요. 알레 그 자체를 의식주로 담아낸 공간인 셈이죠.
김: 마이알레는 현대백화점에서 카페로도 만나 본 적이 있어요. 익스테리어와 카페 사업은 서로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은데, 둘 다 성공시키시다니 대단하시네요.
우현미: 그것도 아니에요. 최근에는 두 업체를 어떻게 구분해서 브랜딩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자꾸 착각하더라고요. 마이알레 전화해서 디자인 문의하고, 디자인알레 전화해서 레스토랑 예약하고 싶다고 하고(…)
김: 디자인과 요식업은 달라도 너무 다른 분야잖아요. 어쩌다 그런 고생길을…
우현미: 원래 계획하고 시작하는 타입이 아니에요. 마이알레만 해도 넓은 공간이 생겼으니 카페를 해 볼까 하고 덮어놓고 시작했죠. 접근성이나 사업성 같은 건 생각도 않고요. 백화점 들어갈 때도 그랬어요. 현대백화점 조경 설계를 하다가 카페가 있으면 좋겠다 싶은 자리가 보이길래 무작정 시작한 거죠. ‘마이알레’를 어떻게 알릴지가 지금 저희 숙제예요.
김: ‘마이알레’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우현미: 저희는 디자인이 유기적으로 라이프스타일에 녹아들었으면 좋겠어요. ‘더현대 서울’을 보시면 저희가 디자인한 독특한 빅팟(거대한 화분)이 있어요. 물을 넣었을 때 불룩해지는 주머니 느낌으로 디자인했죠. 그동안에는 그런 디자인을 비교적 큰 규모의 익스테리어 디자인으로 선보였다면, 마이알레는 개인의 생활 공간에서 선보이고 싶어요. 화분만 해도 아무거나 놓는 게 아니라, 홈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오브제가 되기를 바라는 거죠. 그렇게 익스테리어에서 개인의 공간에 이르기까지 유기적으로, 알레가 제안하는 디자인이 물 흐르듯 스며들었으면 좋겠어요.
PART 2
김: 디자인알레는 조경 디자인을 많이 한다고 하셨죠? 대표적인 작업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우현미: 압구정 솔리드옴므 사옥을 시작으로, 현대백화점, 현대카드 사옥, W 호텔, 갤러리아 백화점,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등의 공간 및 조경 디자인을 담당했어요.
김: 처음으로 맡았던 프로젝트는 어떤 거였나요?
우현미: 제 언니가 패션 브랜드 솔리드옴므의 우영미 디자이너예요. 남들은 IMF라고 가진 땅도 팔던 1998년에, 사업을 늘리겠다며 도산공원 밑의 땅을 사더라고요. 갔더니 언니가 “여기에 뭐라도 만들지 않을래?”라고 제안하더라고요. 솔리드옴므가 건물 하나를 다 쓰지는 않을 테니까요.
김: 그래서 어떤 걸 시작하셨나요?
우현미: 카페를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커피 내리는 것도 모르면서 공간만 보고 시작한 거예요. 아직 디자인알레를 하기 전이었죠.
김: 당시 솔리드옴므 사옥이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우현미: 건물 전면을 ‘베이스 판넬’이라는 소재로 만들었어요. 시멘트를 주원료로 압출 성형해 만드는 건데, 보통은 공장 외관에 붙이는 판넬이예요. 콘크리트 같은 느낌이 괜찮더라고요. 1층은 필로티 구조의 주차장이고, 2층으로 올라가면 카페 알레가 나와요. 보통 카페는 테라스를 내고 창문이 보이도록 하는데, 카페 알레는 일종의 닫힌 공간으로 만들었죠. 계단으로 2층 카페에 들어오면 드라마틱하게 공간이 펼쳐지며, 카페 너머로 정원이 보이도록 만들었죠.
김: 요즘 카페들이 많이 채택하는 디자인이잖아요. 그 당시 카페 알레 디자인도 화제가 됐겠는데요.
우현미: 맞아요. 카페 알레 디자인을 보고 조경 설계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죠. 카페 알레의 층고를 3.5미터까지 늘리는 바람에 정작 솔리드옴므 사무실의 층고는 2.3미터밖에 안 나왔지만요. (웃음)
김: 처음부터 다양한 영역에 손을 대셨네요.
우현미: 애초에 저희를 조경 디자인 팀으로 정의하지 않아요. 저는 조경 설계 석사를 했지만 저희 팀은 여러 전공자가 뒤섞여 있어요. 건축하다 온 사람, 파인아트 한 사람, 가구 전공자, 금속공예 전공자… 그래서 여러 일을 다양하게 도전할 수 있죠.
PART 3
김: 현대와의 인연이 참 깊으신 것 같습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부터 현대카드 사옥, 최근에는 더 현대까지…
우현미: 맞아요. 상상이 디자인으로 바뀌려면 기술이 필요하죠. 현대는 그런 부분에서 가장 잘 맞는 파트너예요. 현대카드 여의도 사옥은 특히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중 하나예요.
김: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았죠.
우현미: 정태영 부회장님이 조경 업체를 2년이나 묵고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현대카드 분들도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도 감이 잘 안 잡혀서, 여러 시안을 만들어서 가져갔어요. 실험적이고 과감한 안부터, 호불호 안 갈리는 무난한 안까지 짜서 가져갔어요. 그런데 가장 ‘센’ 디자인을 고르시는 거예요. 안목이 과감하시구나, 라고 생각했죠.
김: 원래 감이 좋은 분으로 유명하시죠.
우현미: 맞아요. 실제로도 기존의 조경과 다른 접근을 원하셨던 것 같아요. 예쁘기만 한 조경보다는, 현대카드의 스피릿을 표현하길 원하셨어요. 예를 들어 현대카드가 강조하는 고객과의 연결을 사옥에서도 나타나기를 원하신 거죠.
김: 그런 걸 어떻게 표현하나요-_-;;
우현미: 보통 조경은 조경 부분과 통로로 나뉘어요. 사람은 조경지에 드나들 수 없고, 통로를 따라서만 이동할 수 있어요. 그런데 현대카드 사옥은 달라요. 나무를 따로 심은 조경지를 만드는 게 아니라, 나무를 커다란 플랜터(주: 조경에 사용되는 대형 화분)에 심어 놔서 사람들은 사이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요. 마치 스펀지나 해면처럼, 사람이 어느 방향으로나 스며들 수 있는 거죠.
김: 최근에는 더현대 디자인이 화제가 됐어요.
우현미: 더현대는 전체적인 구상 자체를 그렇게 했어요. 지하에서부터 물과 큰 나무가 있어서 다른 집의 정원을 엿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시작해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테라코타(주: 양질의 점토로 구워낸 토기) 화분처럼 무심한 정원이 보이고, 그렇게 5층에서 내리면 찬란한 공원이 펼쳐져요.
김: 마치 산책 같군요.
우현미: 맞아요. 차이점이 있다면 일반적인 산책은 평면적이지만, 더현대에서의 산책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수직으로 올라가면서 하는 산책이라는 거예요.
김: 보통 사람들은 조경을 함부로 손대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드나들면서 자유롭게 터치하는 걸 추구하신다고 들었어요.
우현미: 맞아요. 그래서 작가와 많이 싸워요. 작가들은 보통 작품이 높은 곳에서 조심스럽게 대우받기를 원해요. 할 수 있다면 칸막이도 치고 싶어 해요. 그런데 저희는 반대로, 조형물을 최대한 낮게 만들고 싶어 하거든요. 사람들이 조형물 옆에 앉기도 하고, 여름의 햇살을 가려주는 용도로도 쓰고, 낮은 눈높이에서 편하게 보면서 영감도 받고 힐링도 하기를 원해요. 그러다 보니 매번 트러블이 있죠.
PART 4
김: 남들과 다르게 접근하시다 보니, 남들이 안 한 걸 많이 하셨겠네요.
우현미: 말도 못 해요. 20년쯤 전에 모닝라이트 그라스(주: 조경 식물의 일종)를 처음으로 썼던 게 기억나요. 지금이야 한강 지천에 피어 있는 흔한 식물이지만, 그때는 그렇게 찾기 힘들었어요. 이걸 꼭 써야겠는데 어디서도 구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충청북도에서 온실 짓고 그라스 연구하는 사람을 어렵게 찾아서 1년 전에 계약 재배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소중하게 구한 모닝라이트를 새벽에 물에 적신 신문지로 싸서 가지고 왔던 게 기억이 나요. 애써 심었더니 관리하시는 분들이 잡초인 줄 알고 잘라버린 일도 있고요.
김: 저희는 조경이 완성된 모습만 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큰 식물과 화분을 기고 배치하려면 기술적으로도 난점이 많을 것 같은데요.
우현미: 아무래도 저희는 이십몇 년을 하다 보니 노하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5미터가 넘는 나무를 5층까지 올리려고 하는데, 엘리베이터는 3미터밖에 안 돼요. 그러면 이걸 어떻게 올려야 할까요? 예전에는 이걸 다 비상구 계단으로 들어서 옮겼어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까진 안 하죠.
김: 그러면 어떻게 하나요?
우현미: 크레인을 써야죠. 그런데 크레인도 오래 부르면 비싸잖아요. 그래서 정해진 기간 안에 끝낼 수 있도록 처음부터 최대한 효율적으로 구성을 짜야 하죠.
김: 매 현장이 도전이시겠군요….
우현미: 제주도의 해비치 호텔을 맡았던 게 기억나요. 1미터 20센티 정도 되는 돌의 안쪽을 파내서 둥글둥글한 대형 플랜터를 만들었어요. 이제 그걸 옮겨야 되는데, 그 돌 무게를 생각을 못 한 거예요. 무려 5톤이 나오더라고요. 겨우 카트에 올렸는데 카트가 주저앉아버려요. 그걸 옮기다가는 타일이 다 깨질 판이었죠. 수배 끝에 이런 무거운 물건 옮기는 것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찾아냈어요. 매번 새로운 걸 공부하는 기분이예요.
김: 노하우가 중요할 수밖에 없네요.
우현미: 현대카드에서 사용한 빅팟도 그래요. 겉보기엔 철판처럼 생겼지만, 진짜로 철판으로 만들어서는 안 돼요. 철은 여름에는 너무 뜨거워지고 겨울에는 너무 차가워져서, 식물이 버틸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단열재를 만든 다음 그 안에 화분을 넣고, 자동 급수가 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죠. 이런 기술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고민을 많이 해야 돼요. 경제적인 문제, 기술적인 문제 등이 복잡하게 산적해 있거든요. 어떨 때는 공사비보다 더 비싸요.
PART 4
김: 이번에는 오산세교의 대원 ‘칸타빌’ 아파트 단지 조경을 맡으셨어요. 아파트는 대원이 처음이신가요?
우현미: 네, 맞아요.
김: 그동안 디자인알레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거의 상업 건물이었는데요. 아파트 단지를 맡게 된 게 신기해요.
우현미: 저희는 인공적으로 고급스럽거나 웅장하게 만들어서 ‘우리 부자 아파트야’, 이렇게 과시하려는 듯한 조경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숲에 놀러 온 것처럼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느낌을 만들고 싶었죠. 앞으로의 대원이 추구하는 조경의 지향점과 저희의 제안이 잘 맞아, 함께 작업을 하게 됐어요.
김: 저도 아파트 조경 디자인 하면 웅장한 디자인부터 떠오릅니다. 왜 예전에는 그런 디자인을 선호했을까요?
우현미: 우리나라 아파트의 역사를 생각해봐야 해요. 아파트 문화는 70년대에 도입되었고, 2000년대에 브랜드화가 진행되었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 문화를 가지고 있었어요. 눈 뜨면 나가서 일하고, 들어오면 바로 자고, 토요일까지도 일했죠. 집이라곤 하지만 실제 여가, 생활 공간이라고 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니 내실과 상관없이, 겉보기에 웅장한 디자인이 중요했던 거예요.
김: 이제는 그런 문화가 변했을까요?
우현미: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에 진입하며, 휴식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예전엔 여가라고 하면 술 진탕 먹은 뒤 한숨 자고 일어나는 것만 생각했어요. 이젠 저녁에 해 지는 노을을 보면서 강아지 산책을 시키죠. 집에서 진정한 의미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거에요.
김: 그렇다면 대원 칸타빌에서는 어떻게 휴식을 추구할 수 있을까요?
우현미: 단지 전체를 두를 수 있도록, 산책로를 최대한 넓게 빼고 순환 구조로 만들었어요. 도로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흐르는 길 같은 느낌이죠. 걷다 보면 구불구불한 부분도 있고, 쉴 수 있는 포켓도 있고, 어린이 놀이터도 나와요. 산책로만 통과해도 아파트의 여러 조경을 다 만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김: ‘포켓’이란 게 뭔가요?
우현미: 말 그대로 ‘주머니’ 같은 공간이에요. 길에 벤치만 덜렁 놓여 있어서 오가는 사람 다 보는 것보다, 살짝 안쪽으로 들어가거나 나무로 가려져서 아이나 연인, 혹은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죠. 공공주택 단지의 정원이지만 그곳만큼은 개인 정원처럼 느껴질 수 있을 거예요.
김: 신기한 개념이네요. 어떻게 그런 공간을 구상하셨나요?
우현미: 인간은 동물이에요. 그래서 자신을 가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사무실에서 종일 일하다가 집에 오면, 한 게 없는데도 너무 지치잖아요? 사회적인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인 거예요. 너무 힘들면 화장실에라도 숨어서 쉬게 되잖아요. 무의식중에 자신만의 공간을 찾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을 관찰할 수는 있지만, 나 자신 자체는 시선에서 살짝 비껴갈 수 있는 공간을 산책로에 만든 거죠.
김: 좋은 아이디어인데, 혹시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우현미: 물론 진짜로 은밀한 공간은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정서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을 정도로만 설계한 거죠. 그래서 ‘포켓’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럼에도, 보통 공원 같은 공공장소에서는 그런 걸 안 만들어요. 워낙 불특정 다수가 오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불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여기는 정해진 사람들만 드나드는 아파트 단지 안이기 때문에 이런 설계도 가능했어요.
김: 그런데 아파트다 보니 나만의 공간도 필요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곳도 필요하지 않나요?
우현미: 광장처럼 주민들이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공간도 있죠. 그런 곳은 산책로와 분리했어요. 어린이 놀이터 주변에 쉘터(주: 안식처) 같은 공간을 만들어서, 엄마들이 4~5명씩 모일 수 있도록 만들었죠. 커다란 공간도 있어요. 거기서는 비슷한 세대의 아이들을 키우는 집이 물물 교환도 할 수 있고, 크리스마스 마켓도 열 수 있어요.
김: 그러고 보니 놀이터도 중요한 요소겠군요. 왠지 놀이터도 흔한 스타일로는 구상하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디자인하셨나요?
우현미: 놀이터라는 공간은 어린이도, 청소년도, 나이 든 할머니도 다 같이 읽을 수 있는 동화책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어른이지만 놀이터를 참 좋아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른 세대도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김: 기존의 놀이터는 틀이 정해져 있잖아요? 미끄럼틀 있고, 벤치 있고… 특히 요즘엔 흙 놀이터도 없이 더 정형화되는 느낌이 있는데요. 혹시 새롭게 도전해 보신 게 있을까요?
우현미: 마운딩이라는 요소를 도입했어요. 인위적으로 흙을 쌓아 작은 구릉을 구성하는 개념이에요. 칸타빌의 놀이터를 그렇게 만들었어요. 땅이 구부러진 것처럼 보여서 조형적으로도 멋있고, 아이들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놀 수 있어요. 아이들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해요. 굳이 어떤 틀을 만들어주는 것보다, 아주 작은 다채로움만 마련해 주면 거기에서 스스로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하며 놀 수 있죠. 스케이트 보드 같은 걸 타기도 좋지만, 타지 않더라도 그 자체의 멋이 있어요.
PART 5
김: 그런데도 아파트라는 공간은 인공적이잖아요. 숲이나 개천 같은, 진짜 자연 속에서의 자연스러운 산책을 아파트에서도 할 수 있을까요?
우현미: 그래서 ‘물’이라는 요소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어요. 사실 이번에 처음 한 고민은 아니에요. 예전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작업을 할 때도 공공 공간에서 물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거든요. 우선 강물이 마치 지류처럼 흐르는 방식으로 연출을 했어요. 무작정 개천을 만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물 위를 밟고 물장구를 치며 놀 수 있게. 고객분들이 엄청나게 많이 찾아주시더라고요. 백화점에서 난감해할 정도로.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어요. 겨울의 풍경도 함께 고려해야 했죠.
김: 겨울의 풍경은 뭔가 달라지나요?
우현미: 우리나라는 겨울이 워낙 추워서 수도관이 꽝꽝 얼어서 터져버려요. 그래서 12월부터 3월까지는 물을 빼고 마른 상태로 유지해야 해요. 물길이나 분수를 만들면 여름에는 멋지지만, 겨울에는 텅 비고 고장 난 것처럼 보여요. 저희는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설령 물이 마르고 돌만 남아도, 그 자체로 조경이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썼죠. 칸타빌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김: 수종으로는 어떤 걸 쓰셨어요?
우현미: 저희는 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를 주로 써요. 천만 원, 몇백만 원짜리 나무들도 참 아름답죠. 하지만 벚나무도 꽃이 참 예쁘잖아요? 자작나무도 비싸지는 않지만 예쁜 나무예요. 애초에 모든 식물은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어요. 화려한 꽃을 피우고, 빨간 열매가 너무 예쁘고, 가을에는 낙엽이 예쁜 나무들이 있어요. 저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나무들을 좋아해요. 칸타빌에서도 자연스러운 나무들을 많이 썼어요.
김: 신기하네요. 보통 사람들은 웅장하고 멋있는 것들을 강조하는데, 자연스럽게 오래 유지될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강조하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현미: 조경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많이들 할 거예요. 정원은 자연스럽게 달라져요. 처음 갈 때의 정원과 1년이 지났을 때의 정원이 달라요. 나무는 계속 자라니까요. 계절에 따라서도 달라져요. 꽃이 필 때가 있고, 지면서 잎이 올라올 때가 있고, 낙엽이 질 때도 있고, 겨울이 되어 가지가 잘 보일 때도 있어요. 모든 순간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김: 조경이란 단순히 조성 순간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계절이나 시간에 따른 변화도 모두 생각해야 하는군요.
우현미: 그렇죠. 작년에는 피었던 게 지금도 피었는지 보고, 향기를 느끼고, 바람 소리를 듣고. 이런 감각을 모두 전달해 주는 게 정원의 진정한 목적이에요. 그런 걸 관찰하는 게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PART 6
김: 대원 칸타빌의 디자인 언어를 보면, 전반적으로 무척 젊고 열린 느낌의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우현미: 리뉴얼된 칸타빌의 이미지에 오산이라는 지역 색깔이 더해져서 그래요. 오산의 거주 지역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요. 기존에 사람들이 거주하던 구도심이 있고, 새로 지은 아파트가 많은 신도심이 있어요. 그중에서도 오산 칸타빌은 젊고 세련된 신혼부부의 이미지를 페르소나로 잡고 진행했어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을 상상했어요.
김: 확실히 자연스러운 느낌이에요. 물도 그렇고, 수종도 그렇고요.
우현미: 맞아요. 정문 디자인만 해도 그래요. 디자인알레는 나무를 심은 커다란 화분인 ‘빅팟’을 자주 활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칸타빌에는 입구 부분에만 썼어요. 창문가의 제라늄 화분처럼 입구가 넓고 밑으로 가면서 좁아지는 전형적인 화분인데, 크기만 뻥튀기된 것처럼 크죠. 그걸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기를 원했어요.
김: 대원과 함께 일하는 건 어떠셨나요?
우현미: 어디든 저희 생각이 100% 받아들여질 수는 없죠. 저희가 다 맞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계속 이야기해 가면서 조율해 나가는 게 중요해요. 대원은 저희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설명하면 이해하고, 함께 호흡하며 디자인을 진행했어요.
PART 7
김: 조경 디자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조경 디자인에 어울리는 독특한 감각을 기를 수 있을까요?
우현미: 너무 ‘조경 디자인’이라는 직업에만 힘을 싣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 무슨 뜻이죠?
우현미: 디자인알레는 “뭐 하는 회사예요?”라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어요. 그도 그럴 게 저희는 백화점 외부 인테리어도 했다가, 실내 공간도 했다가, 조경 설계도 하니까요. 어느 게 정답인지는 모르죠. 그런데 저 스스로도 정의를 내리지 않아요. 결국 사람을 상대로 하는 거잖아요? 사람이 즐기는 게 이 직업의 궁극적인 목적인 거죠. 거기엔 한 가지 방법만 있지 않아요. ‘조경 디자인은 이런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면, 오히려 다채로운 방식으로 즐거움을 추구할 수가 없어져요.
김: 자신의 전공 한 가지만 강박적으로 파고들지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우현미: 내가 창의성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니 기회가 주어지면 다 해봤으면 좋겠어요. 살아 보니까 세상에는 헛일이 없더라고요. 헛일을 했다 싶다가도, 손해를 봤다 싶다가도, 시간이 지나가면 그만큼 얻는 게 있어요. 저희가 수많은 시행착오에서 노하우를 터득했듯이 말이죠. 세상을 다양하게 즐기면서 자신의 요소를 찾아냈으면 좋겠어요.
김: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여 다양한 작업을 하는 게, 때론 비효율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현미: 세상의 모든 사람이 크리에이티브할 필요도 없어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있으면 현장에서 진행하는 사람도 필요해요. 저희 디자인알레 팀에 여러 전공자가 있는 게 저는 참 좋아요. 내가 어눌하게 뱉은 콘셉트를 인문학적으로 풀어주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기술적으로 풀어주는 직원도 있으니까요. 이런 게 어우러지면 훨씬 큰 시너지가 날 수 있어요. 그러니 자신의 길을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